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52)
신들의 배달기사(52)
“흐아암. 엄청엄청 피곤한 겁니다앗…”
“야, 야. 졸거면 안에 들어가서 졸아. 밖에서 이러지 말고.”
이른 새벽.
성준으로부터 받은 건수를 해결하기 위해, 전날 미리 부산으로 내려온 하준은.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배편에, 아직 잠에서 채 못 깨 비몽사몽거리는 루시오를 데리고선 슬금슬금 약속한 항구로 나섰다.
‘나 참. 처음엔 뭐, 휙 가서 물건만 잘 가져다놓으면 될 것처럼 그러더니. 이게 무슨 배달이야? 호위지, 호위.’
이틀 전, 막 기사식당에서 배달해달란 부탁받았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금방 일본으로 건너가서 검을 건네주기만 하면 그만일 줄 알았던 그는.
예상과 달리 물건을 실어보내기로 한 배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도둑이 들지 않도록 지켜달란 내용이었던 이야기에.
저 멀리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커다란 화물선을 보고선, 나지막이 혀를 내둘렀다.
‘…하기야. 요게 뭐 개인 간 거래도 아니고, 길드와 길드. 그것도 한국과 일본 양측을 대표하는 초거대 길드간의 거래라던데. 그런 자리에 아무리 믿는다 한들, 달랑 외부인 하나한테 물건을 맡겨 보낼 수 있을 리가.’
아무튼 이미 선금도 일부 받았겠다, 주저할 것 없이 배를 찾은 하준은.
출항 전,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준, 하준. 여기, 무기를 찬 인간이 진짜진짜 많은 것입니닷.”
“그야 그렇겠지. 어디서 대단하신 도둑님이 온다는 모양이니까.”
화물선의 안팎을 오가며 바삐 거래할 물건을 옮기고 있는 인부들을 제외하고도, 사방에 깔려 저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다양한 헌터들.
성준에게 전해 듣기론, 요 근래 하도 당한 길드가 많아서 한꺼번에 옮기고 각자 인력을 합치기로 했다던가.
새벽 같이 전용기에 실어 보내든, 상대를 불러서 직접 건네준 뒤에 돌려보내든, 작은 배에 사람 하나랑 같이 태워 보내든.
뭘 해도 도착만 하고 나면 거래하기로 한 물건만 쏙 도난당해 있으니.
이제 그냥 다들 뭉치기로 했다는 모양이었다.
‘뭐, 확실히 보는 눈이 많으면 그 도둑도 쉽사리 들어오진 못하겠지. 경호로 뽑은 인원들도, 대부분 탐지와 관련된 능력을 각성한 B급 이상의 노련한 헌터들이랬고.’
“정지, 정지. 잠깐 신원확인이 있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어느 길드에서 오신 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느덧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계단 앞에 선 하준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관계자의 제지를 받으며 자리에 멈춰 섰다.
“‘영원’에서 왔는데요. 이걸 보여드리면 알 거라고.”
“…‘영원’에서요? 그,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윽고 품에서 성준에게 받았던 명함을 꺼내 보여준 그는, 당황한 얼굴로 위쪽에 확인해보려는 듯 슬쩍 돌아서는 남자를 보고선 어색하니 미소를 지었다.
하긴.
어디 유명한 헌터도 아니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다짜고짜 국내 최고 길드의 부탁을 받아서 왔다고 하니.
아무리 앞서 언질을 들었다 한들, 가장 먼저 의심이 들 수밖에.
그것도 곁에 웬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다 하니 더더욱.
“죄송합니다! 신원, 확인되셨습니다!”
“예, 고생하세요.”
이내 금세 통화를 마치고선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오는 남자를 지나 배 위에 오른 하준은.
방금 그 튀는 반응 탓일까, 수군거리는 바깥에 흠칫 고개를 숙이고선 자리를 찾았다.
괜히 누가 소문을 듣고 달라붙기라도 한다면, 가는 동안 일이 귀찮아질 것이 뻔했으니까.
“우와아… 하준, 하준! 여기 엄청엄청 넓은 것입니닷!”
“그야 오늘 물건을 실은 길드만 열 개가 넘어간다고 했으니까. 근데 별로 놀랄 것도 없지 않냐? 올림포스에도 이만한 배는 잔뜩 있었잖아.”
“이아손 님의 아르고 해운 선박들 말하는 겁니깟? 그거야 영웅 소유의 상단이지 않습니깟. 커다란 게 당연한 것입니닷.”
경호를 서는 헌터들을 배려한 건지, 아니면 물건 값이 값이다 보니 다들 갑판 위에 싣기는 그랬던 건지.
길게 늘어진 복도를 따라, 각 길드에 배정된 방들을 쭉쭉 지나치던 그는.
곧 제가 맡은 화물이 들어서 있는 방을 발견하고선 조심스레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거 배가 커다라면 그냥 커다란 거지. 영웅 소유면 어떻고, 민간인 소유면 어떻고. 그런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이후, 조용히 잡담을 마치곤 창고 안에 들어선 하준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구에다 슥 설치해놓곤, 널따란 방 가운데 홀로 귀하게 모셔져 있는 물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게 그 책임지고 안전하게 배달해줬으면 한다는 물건인가.”
누가 배달비로만 20억을 지불할 정도로 이름난 명검 아니랄까봐.
보관도 어디 고풍스러운 받침대에 조심스레 올려, 두꺼운 유리로 막아놓은 검 앞에 선 그는.
어두운 창고에서 스스로 샛노란 빛을 발하고 있는 검을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확실히 비싸 보이긴 하네.
“아앗! 이, 이 검은!”
“뭔데. 또 아는 거야?”
대체 뭐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빛나는 걸까,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물건을 살피기도 잠시.
뒤에서 깜짝 놀라는 목소리에 흘긋 고개를 돌린 하준은, 곧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검을 올려다보고 있는 루시오를 발견하고선 말을 물었다.
“척 보면 모릅니깟? 저 황금으로 번쩍이는 칼자루에, 바라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시퍼런 검날! 뒤랑달이지 않습니깟!”
뒤랑달.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샤를마뉴 대제의 열두 기사 중, 그 수장을 맡고 있는 팔라딘 롤랑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 속 명검.
이야기에서 말하길, 대천사 가브리엘이 샤를마뉴 대제를 통해 하사한 무기니만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날이 무디지 않고 이가 빠지지 않는 권능을 가진, 이른 바 절대 망가지지 않는 검을 눈앞에 둔 님프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리저리 뒤랑달을 살피며, 헤실헤실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단하네. 아주 모르는 게 없어, 모르는 게.”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창고 구석에 자리를 잡은 하준은.
뒤랑달인지 뭔지, 아무튼 자신은 도둑만 맞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문을 닫고선 근처를 둘러보았다.
“엣헴.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깟? 루시오는…”
“그래, 그래. 도랑물 고등학교를 1년 월반하고, 개울물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초 엘리트 님프라고?”
“1년 아닙니닷! 자그마치 2년 월반인 것입니닷!”
1년이나, 2년이나.
이내 별 시답잖은 걸 가지고 따지는 루시오를 뒤로하고서, 대충 주변탐색을 끝낸 그는.
조금 전 제가 들어왔던 문을 제외하곤 딱히 사람이 드나들만한 통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마음 편하게 엉덩이를 깔고 앉아 물건을 사이에 두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하준. 이제 뭘 하면 되는 겁니깟?”
“뭘 하긴. 도착할 때까지 누가 물건 훔쳐가지 않게 잘 지켜야지. 너도 피곤하다고 막 자지 말고, 어디 도둑이 들어오나 살피고 있어. 무려 20억짜리 건수니까.”
뒤이어 구경을 끝낸 듯 뽈뽈뽈 제 곁으로 다가와 앉은 루시오를 돌아본 하준은, 이제 슬슬 출발할 듯 출렁이는 배를 보고선 나지막이 입을 떼었다.
20억도 말이 20억이지.
혹여 도난당했을 때 귀책사유로 물어질 배상금을 생각하면, 실상 그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 걸린 셈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안 털릴 자신이 있으니까 받은 거였지만.
“20억? 20억이면 엄청 큰돈인 것입니깟?”
“뭐?”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혹여 도둑이 들 것을 대비해서 아까 문 앞에 설치해둔 물건을 가만히 지켜보던 찰나.
웬 뚱딴지같은 소리에 루시오를 바라본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자식이, 그걸 말이라고 하나. 20억이면 인마, 우리 이사 갈 집에 잔금을 치르고도 가구까지 빵빵하게 채울 수 있는 거금이야.”
“헤. 그렇습니깟?”
이게 기껏 물어봐서 알려줬더니만, 이해를 한 건지 못한 건지.
영 영혼이 없는 대답에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며 님프를 흘긴 하준은, 곧 무슨 방법이 떠오른 듯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가 좋아하는 사탕을 한 천만 개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야.”
“허어업! 처, 천만… 사탕을 천만 개나 말입니깟!”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탕 얘기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접었다 펴며 금세 이해를 마친 루시오를 본 그는.
비록 제가 내준 예시긴 했지만, 너무 얼척없는 깨달음 방식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벽에 등을 기대었다.
“여튼. 그러니까 눈 크게 뜨고, 잘 감시하고 있으란 말이야. 무사히 배달만 마치면 탕수육이든 사탕이든 원하는 대로 다 사줄 테니까.”
“…하준은 걱정 허덜덜 마는 겁니닷! 뒤랑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루시오가 꼭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닷!”
그거 참 듬직하네.
‘그런데. 그 도둑이란 놈이 정말 뭔가를 훔치러 오긴 오는 거려나.’
이후, 물건을 모두 실은 듯 일본으로 출발한 배에서 문 쪽을 살피며 뒤랑달을 지키길 몇 시간.
벌써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곤 턱을 괴고서 앉아있을 때쯤.
슬슬 도대체 무슨 수로 이 동해 한가운데 떠 있는 배에 잠입해서 물건을 훔치겠다는 건지, 이해가…
* * *
“…준! 하준! 어서 일어나는 겁니닷!”
“어, 어?”
어두컴컴한 창고 안.
누군가 다급히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감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린 하준은.
어째선지 부스스한 눈을 슥슥 비비며, 황급히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일까.
자신은 분명 멀쩡히 여기 앉아서 문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중간에 사라져버린 기억에 입술을 깨문 그는, 저와 달리 멀쩡해 보이는 루시오를 돌아보곤 상황을 물었다.
“방금 갑자기 위에서 연기가 확 뿜어져 나오더니, 하준도 그렇고 바깥에 다른 인간들도 그렇고 전부 코 잠들어버린 것입니닷!”
“…연기?”
연기.
아까부터 열심히 천장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루시오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그는, 곧 구석에 위치한 환풍구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매캐한 연기를 보고선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이런 망할!”
수면가스인가?
짝-!
루시오의 도움으로 어째 정신을 차린 지금도 점점 가라앉는 눈꺼풀에 화들짝 제 뺨을 때린 하준은, 말똥해진 머리에 몸을 일으키고선 옷가지로나마 코와 입을 가리곤 버텼다.
‘어떻게… 분명 어느 수준 이상의 헌터들은 평범한 독이나 가스 같은 게 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설마 이게 그 도둑놈의 권능인가?’
끼이익-
“…응?”
그러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에, 고개를 기울이기도 잠시.
분명 성준에게 부탁해 도착 전까진 아무도 물건이 있는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 했건만, 서서히 바깥으로 열리기 시작한 문을 목도한 하준은.
이윽고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를 마주하고선, 곧 얼빠진 얼굴로 우두커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신님.”
그도 그럴 것이.
“오늘도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
거기엔 웬 익숙하게 생긴 방독면을 뒤집어 쓴 미친년이 문 앞에 서선.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