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55)
신들의 배달기사(55)
쏴아아아-
먼발치에서도 저 멀리 반대편 땅이 안 보일 만큼, 거대한 폭을 가지고 흐르는 물줄기 앞.
헤파이스토스의 오두막에서 저를 찾던 여신을 만나, 그녀의 부탁을 듣고서 내비를 따라온 하준은.
장장 사흘에 다다른 여정 끝에 눈 앞에 펼쳐진 강을 보고선, 끝도 없이 이어진 다리 앞에 잠시 스쿠터를 멈춰 섰다.
“하준은 정말정말 겁대가리를 상실한 게 분명합니닷! 그 여신님 대체 어떤 분이신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한 겁니깟!”
그리고 이놈의 귀따가운 잔소리도 사흘째.
그날 저한테 배달을 부탁한 여신에게 선제시 좀 한 번 했다고 계속 땍땍거려오는 루시오를 돌아본 그는, 지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겁대가리라니. 너 어째 날이 갈수록 입이 점점 험해지는 거 같다?”
거 살다 보면 얼마나 줄 건지 좀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하준은 억울한 표정으로 저를 나무라는 녀석을 흘기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이아손은 먼저 잘만 알려주고 그러더만.
왜 신한텐 그런 걸 묻는 게 실례라는 건지.
애초에 일을 시키면서 꼭 받고 나면 보수를 알려주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나중 가면 천벌이랍시고 함부로 취소도 못 하게 하면서.
“그럼 거기서 그걸 보고도 예쁜 말이 나오게 생겼습니깟? 프레이야 님이란 말입니닷, 프레이야!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고. 모든 발키리들의 수장이자, 발할라의 위대한 전사들을 절반씩이나 거두어드릴 막대한 권한이 있는 그 프레이야!”
그에 답답하다는 듯 그때의 아찔했던 상황을 기억한 루시오는.
다행히 필멸자의 치기, 신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패기로움으로 치부하곤 웃어 넘어가 줬던 분위기를 떠올리며.
지금도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말이 아프로디테 님과 같은 미의 신이지.
실상은 그쪽에서 전쟁의 신의 역할도 일부 겸하고 있으니만큼.
어지간한 그리스 신화의 주신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 여신님이건만.
“그래, 그래. 알았다니까. 아무튼, 그쪽에서도 좋게 넘어갔으니 됐잖아.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뭐.”
“…진짜, 하준이랑 같이 있으면 이따금 수명이 팍팍 깎이는 느낌입니닷!”
그렇게 근심 가득한 님프의 이야기에 일단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이윽고 잠깐 세워놓았던 스쿠터의 핸들을 다시 잡고, 시야 한 편에 덩그러니 달아두었던 메시지 하나를 슥 펴놓으며.
마음속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거 천벌 하나 무섭다고 배달 내용도, 보수도 안 듣고 덥석 콜을 받아버리면.
자기는 뭐, 만날 손해만 보고 살라는 건가?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실패하면 하늘에서 번개 떨어지는 건 똑같구만.
띠링-
[용맹한 전사들이 모이는 곳, 발할라에서 생긴 이상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헬헤임의 주인, 헬에게 프레이야의 편지를 배달하십시오.] [제한시간 : 120시간] [주의 * 배달에 실패하거나 포기할 시 천벌을 받게 됩니다.] [배달 팁 : 500,000p]발할라 그리고 헬헤임.
경쾌한 알람과 함께 쭉 펼쳐진 콜을 읽어 내려간 하준은.곧 루시오에게 전해 들었던 두 지명의 의미를 상기하며 조용히 입술을 저몄다.
‘그러니까, 발할라는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 보내지는 천국 같은 거고. 헬헤임은 뭔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떨어지는 저승 같은 곳이라 했던가.’
천국과 저승.
간단히 말해서 저보고 저승에 좀 갔다 와달라는 부탁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이내 그 헬헤임으로 가는 다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선, 그때 오두막에서 들었던 자세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제가 배달해드렸으면 하는 물건이…」
「편지에요. 아무래도 아래쪽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 같아서. 본래대로라면 발할라에 와선 안 될 망령들이, 조금씩 얼굴을 비추고 있거든요.」
「어… 그거 혹시, 좀 위험한 거 아닌가요? 문제가 생겼으면 배달보다 헌터나 영웅 같은 해결사를 보내야 하심이 아닐지.」
「후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아직까지 헬헤임에서 아무도 올라오지 않은 걸 보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닐 테니까. 아무튼. 저는 하준 씨가 이 편지를 들고서 죽음을 만나주셨으면 좋겠어요.」
「예? 죽음을 뭐… 나가 뒈지라고요?」
처음엔 웬 죽음을 만나고 오라기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저승으로 보내져야 할 영혼들이 자꾸 천국으로 올라오니까, 가서 담당자한테 일 처리 좀 똑바로 하라고 전달해달라는 이야기.
이제 정말 출발하기 전, 슬그머니 배달통을 열어 편지가 잘 들어있음을 확인한 하준은.
곧 마음을 굳게 가다듬곤, 저 멀리 헬헤임, 저승과 이어진 다리 위로 살살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부릉-
“…하준, 하준. 앞으로 며칠이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깟?”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달려도 달려도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 다리에 지친 루시오는.
가뜩이나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아려오는 엉덩이를 쓱쓱 문지르며, 안개 낀 사방을 쓱 둘러보았다.
“뭐? 며칠?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누가 들으면 여기 올라온 지 벌써 하루 이틀은 된 줄 알겠다 야.”
이제 고작 서너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어쩜 단어를 골라도 그런 커다란 단위를 쏙 가져다 쓰는 건지.
말이 씨가 된다고 재수 없는 소리에 흘끔 내비를 살핀 하준은, 다행스럽게도 절반쯤 지난 듯한 다리를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딱 지금까지 온 만큼만 한 번 더 가면 도착이니까, 요상한 걱정 말고 시답잖은 소리나 할 거면 그냥 자고 있어. 잘하면 오늘 안에 아예 그 죽음이란 녀석도 만나볼 수 있을 거 같으니…”
쿠우우웅-!
“흐어억! 뭐, 뭐야?”
이윽고 아예 내비에 찍힌 최종 도착시간까지 확인하며, 대강 남은 일정도 함께 계산을 때리던 찰나.
난데없이 울리는 폭음과 동시에, 안 그래도 뿌연 안개 너머로 휘몰아치는 먼지구름을 맞닥뜨린 그는.
곧 거칠게 흔들리는 바닥에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균형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핸들을 막 기울이며 어떻게든 수평을 맞추려 애썼다.
“하, 하준! 앞에! 앞에 조심하는 겁니닷!”
“뭐? 어, 어어어어!”
끼이이익-
허나 그런 부단한 노력도 잠시.
다급히 먼지구름 너머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는 루시오의 경고에 흠칫 고개를 든 하준은, 이내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훅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를 보고선 황급히 브레이크를 꽉 쥐었다.
부웅-
텅- 터덩-
“아으윽, 방금 도대체… 아! 루, 루시오!”
갑작스레 확 멈춰선 스쿠터에 쏘아지듯 앞으로 튕겨 나간 그는, 여기저기 쓸린 상처에 눈살을 찌푸리며.
마찬가지로 어딘가 날아갔을 루시오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준! 괜찮습니깟! 하준!”
“루시오! 하아.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등 뒤에 난 날개 덕분일까.
몇 번이고 바닥을 굴렀던 저와 달리 멀쩡하게 날아오는 녀석을 바라본 하준은.
곧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흐으음. 게 요상한 일이로구나. 오늘 다리를 건너는 망자가 있으리란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그리곤 저 앞에 무언가에 걸려 멈춰 있는 스쿠터를 발견하곤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위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목소리에 고장 난 기계처럼 고개를 치켜든 그는.
머리만 해도 조그마한 바위산과 다름없던 크기를 가진 아틀라스만큼은 아니나, 족히 전체가 작은 언덕만치는 되어 보이는 거인을 보고선.
그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뗐다.
“…나도, 다리에 웬 거인이 지키고 있을 거란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자글자글 주름이 진 눈가에, 쭈글쭈글한 손아귀와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여전사.
“모, 모드구드…”
모드구드.
싸우다 지친 자.
미드가르드에서 헬헤임으로 통하는 다리, 걀라르브루를 지키는 수문장.
말없이 하준의 곁에서 거인을 지그시 올려다보던 루시오는.
이내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듯 노파의 이름을 되뇌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조그만 요정아. 이 늙은이의 정체를 알아보겠느뇨?”
그에 겁도 없이 제가 지키고 선 다리를 무단으로 건너다 걸린 침입자들을 살피던 노파는.
개중 더욱 작은 아이로부터 튀어나온 제 이름에 이채를 띄우며, 흥미롭다는 눈으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조, 조그만?”
“야, 야! 진정해, 진정! 솔직히 네가 쥐똥만 한 건 맞잖아! 저 거인 눈으로 보면.”
그러는 사이.
그놈의 조그맣다 소리에 또 콤플렉스가 도진 듯, 치와와 마냥 울컥하려는 루시오를 본 하준은.
솔직히 안개가 없어도 한눈에 다 들어오질 않는 거인의 덩치를 가리키고선, 무어라 이야기를 따지려 드는 녀석을 뜯어말렸다.
“저기, 하준. 아직 아무도 쥐똥만 하다고는 안 한 것입니닷.”
아, 그런가.
“홀홀홀. 거참 재미있는 아이들이로구나. 그래, 간만에 즐거웠으니 내 바로 너희를 벌하진 않으마.”
이윽고 가만히 그런 둘을 지켜보던 모드구드는.
웬 만담 같은 얘기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기분 좋은 듯 말을 이었다.
“하여. 조그만 아이야. 무슨 연유로 이 걀라르브루를 지나려 하느뇨?”
산 자가 죽은 자들의 세상인 헬헤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본디 정해진 이치에서 벗어나는 일.
제아무리 수백 년 만에 저에게 재미를 안긴 녀석이라 한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리를 건너게 해주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야 프레이야 님의 부탁을 받고, 헬 님께 이 편지를 전해드리러 가는 길인 겁니닷!”
“프레이야 님께서? 허어. 그런 거였음 진즉에 얘기를 하지 그랬느뇨. 좋다. 지나가거라.”
돌아온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루시오가 들어 올린 편지를 자세히 살핀 노파는.
곧 그 가운데 찍힌 밀랍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선,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쿠구구구-
“어… 그, 저기요.”
“으음?”
잠시 뒤.
슬쩍 옆으로 비킨 모드구드의 몸뚱이 덕에 뻥 뚫린 길을 바라보던 하준은.
누가 상점제 아니랄까 봐 무사히 시동이 걸리는 스쿠터에 다시 올라타고선, 조금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물었다.
“혹시 그거, 저한텐 안 물어보십니까?”
처음엔 그냥 루시오가 답한 거로 같이 통과시켰겠거니, 그렇게 생각하고 후딱 넘기려 했던 그였지만.
무던히 그리 여기고 노파를 지나치기엔,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기에.
잠깐 자리에 멈춰서 그 이유를 듣고자 했다.
“홀홀. 게 참 요상한 질문이로구나.”
역시, 괜한 기우였던 걸까.
무얼 그런 걸 묻냐는 듯 조용히 웃음을 흘리는 모드구드의 모습에 어색하니 미소를 짓던 하준은.
이내 이어진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이미 죽은 자가 아니더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