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58)
신들의 배달기사(58)
-컹! 커헝!
오두막 안.
부서진 문짝을 사이에 둔 채, 늑대들과 대치하고 선 하준은.
조금 전 벗어놓은 패딩 탓일까, 뻥 뚫린 문 사이로 불어오는 한기에 부르르 몸을 떨며.
하나둘 집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들 발아래에 깔린 시구르드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아니, 얘기는 무슨 금방 알아서 다 처리해줄 것처럼 하더니만.’
드래곤 슬레이어라더니.
한껏 기대감을 심은 설화와는 달리 맥없이 쓰러져나간 영웅을 어처구니가 없는 눈빛으로 흘긴 그는.
곧 의자에 걸어놨던 패딩을 주워입으며, 같이 내려놨던 퀴네에를 바라보았다.
‘…그냥 버리고 튀어?’
매정하긴 하지만 마침 스쿠터도 바로 근처에 세워져 있겠다.
지금 당장 루시오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마침 스마트폰도 다 녹은지라, 내비도 정상 작동되는 중이었고.
-크르르…
‘그래. 튀자.’
고민도 잠시.
눈앞에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늑대들을 마주한 하준은.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내리는 끈적한 침과 날카롭게 선 이빨을 보며, 결심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루시오. 패딩 다 입었…”
콰아아앙-!
“흐어억! 까, 깜짝이야!”
“뭐, 뭡니깟! 이번엔 늑대 말고 곰이라도 찾아온 겁니깟?”
이윽고 망설임 없이 퀴네에를 집어 들며, 기척과 모습을 숨기려던 찰나.
또다시 입구 쪽에서 터진 폭음에 화들짝 놀란 그는, 그 잠깐 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방으로 확 튀어 오른 나무 파편들을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후두둑-
“저, 저, 저거!”
우수수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와 파편 아래.
곧 부서진 문짝을 훅 뚫고 나온 무언가를 발견한 그는.
그대로 늑대 한 마리의 멱을 콱 쥐고선 조르고 있는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보며,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극, 그륵…
우드득-
“헉.”
뒤이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돌아간 늑대의 머리를 마주한 하준은, 순간 등줄기를 내달리는 소름에 헛숨을 삼키며 퀴네에를 향해 올리던 손을 내렸다.
-컹!
-커헝! 컹!
“으으음. 이거 참, 갑자기 이렇게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응? 자네 아직도 거기서 멍하니 뭐 하고 있나? 도망치지 않고.”
이내 갈라진 문짝 사이로 몸을 일으키며 축 늘어진 늑대 사체를 무심히 바닥에 던진 시구르드는, 방금 순식간에 제압당한 동족의 모습에 경계하듯 으르렁거리는 녀석들 사이로 비치는 하준과 루시오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두 사람 모두 딱히 전사로 보이진 않는지라.
당연히 제가 문짝에 깔린 그 순간 바로 도망쳤을 줄 알았는데.
“예? 하, 하지만…”
“하지만은 뭘 하지만인가. 나야 여기서 이런다고 더 이상 죽을 것도 없지만, 자네는 아니지 않나. 밖에서 왔다면서?”
단순히 놀라서 굳었던 건지, 아니면 짧은 시간이나마 얼굴을 맞댄 의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는지.
어느 쪽이든 제법 용감함에 피식 웃음을 흘린 시구르드는.
이제 됐으니 이만 가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등에 멘 대검을 훅 뽑아 들었다.
부웅-
“내 적어도 자네가 이곳을 빠져나갈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줄 터이니, 걱정 말고 이만 여길 떠나세나.”
마검 그람.
사냥을 나설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몸을 씻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살아생전부터 저승에 온 지금까지,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제 애병을 손에 쥔 영웅은.
그 거대한 대검을 마치 수족처럼 가볍게 휘두르며, 곧장 두 사람이 있는 쪽에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늑대들을 향해 바닥을 박찼다.
콰자자작-
매서운 기세로 짐승을 가로지른 대검이, 허공에 시뻘건 피와 살점을 흩뿌렸다.
찰팍-
‘…이런 미친.’
베어냈다기보다는 찢어발긴 듯.
어디 한 번 비명조차 지를 새 없이 곤죽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세 녀석을 흘긴 하준은.
대검이 지나간 자리, 오두막 벽면에 질척하게 달라붙은 살덩어리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하나? 어서 도망치라니까!”
“이쪽입니닷, 하준!”
-커헝!
-컹! 컹!
잇따른 호통에 곧장 퀴네에를 뒤집어쓴 그는.
앞서 눈 깜짝할 새에 갈려 나간 제 동료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구르드에게 달려드는 늑대들을 보며.
어느덧 루시오가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도망치는 대신, 잠시 헬멧을 쓰느라 내려놨던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하준.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깟? 시구르드 님도 아까 도망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깟!”
“쉿.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봐. 이러다 들킬라.”
살금살금.
제 동족의 복수를 위해 눈깔이 뒤집혀선 시구르드에게 달려드는 녀석들 몰래, 벽 쪽에 붙어 걸음을 옮기던 하준은.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곤 쪼르르 달려와 제 소매를 잡아당기는 루시오를 슬쩍 떼어놓고선 조용히 기회를 엿봤다.
-커헝!
-그르륵… 컹!
“이 무식한 놈들. 아주 지치지도 않고 달려드는구나!”
그러는 사이.
한 번, 두 번, 세 번, 그람을 휘두를 때마다 두엇씩 쌓이는 사체 위로 꾸역꾸역 계속 밀고 들어오는 늑대들을 질린 눈으로 살피던 시구르드는.
어느새 다시금 자신을 에워싸, 이번엔 제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한꺼번에 달려드는 녀석들을 보며 애병을 높이 들어 올렸다.
“흐읍!”
부웅-
쩌어억-!
이후 짧은 기합과 동시에 높다란 천장까지 닿아 있던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부쉈다.
-커헝!
-컹! …그륵?
콰아아앙-!
이윽고 사방에서 덮쳐든 발톱과 이빨이 피륙으로 된 몸뚱아리를 찢고 들어가려던 찰나.
뒤늦게 부서진 바닥 아래서 거대한 폭발이 일며, 시구르드와 늑대들을 집어삼켰다.
화아아악-
“읏!”
숨을 죽인 채 가만히 벽면에 달라붙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준은, 매캐하게 피어오른 연기 뒤로 거칠게 불어닥치는 폭풍에 황급히 팔을 들어 올리며 눈 앞을 가렸다.
“콜록, 콜록! 흐아! 하준, 괜찮습니깟!”
“어, 어어. 괜찮아. 난 괜찮은데…”
방금 그 충격으로 인해 천장이 날아간 듯 비치는,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헬헤임 하늘 아래.
눈보라에 휩쓸려 금방 흩어지는 먼지구름 사이로 거뭇거뭇 드러나기 시작한 인영을 마주한 그는.
이내 눈 앞에 펼쳐진 아찔한 광경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무언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입을 뻐끔거렸다.
‘…용, 죽인 거 맞구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구르드를 둘러싸고 있던 늑대들은 물론, 입구 밖에서 득시글득시글 대기 중이던 녀석들에 더해. 당장 시구르드 본인이 우두커니 서 있는 바닥까지.
무슨 하늘에서 조그만 운석이라도 떨어진 양, 깊게 파인 크레이터를 눈에 담은 하준은.
끝내 거기서도 그치지 않고 대검을 내리찍은 방향 뒤로 족히 수십 미터는 쫙 갈라진 빙판을 보고선, 경외에 찬 눈빛으로 영웅의 등을 올려다보았다.
‘근데, 이러면 굳이 도망쳐야 했을 필요가… 응?’
허나 그렇게 넋을 놓곤 시구르드를 바라보기도 잠시.
문득 머리를 스치는 의문에 눈을 깜빡이던 그는, 곧 시야 구석에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선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스르륵-
‘저게 무슨…’
처음 시구르드가 휘두른 참격에 짓이겨, 사방에 핏물을 흩뿌리곤 벽면에 날아가 붙었던 선홍색 덩어리.
부그르르-
이내 둥그렇게 난 크레이터의 경계선 밖으로, 머리와 상체 대부분을 잃고 쓰러져 있던 사체에 하나둘 모여드는 살점을 본 하준은.
금세 바깥에 드러난 갈빗대 위를 채우곤 서서히 모양을 잡아가는 늑대를 보고선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헬헤임이라 죽지 않는다는 게 저런 소리였어?’
저벅-
차마 눈 뜨고 봐주기 힘든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올라오려는 속을 진정시킨 그는.
그 짤막한 새에 어느덧 본래의 형상을 되찾곤, 소리 없이 시구르드를 향해 다가가는 세 늑대를 보고선.
퍼뜩 정신을 차리곤 망설임 없이 슈트의 능력을 켠 채 놈들의 뒤를 쫓았다.
“허억, 훅. 이거 참, 준비 운동도 없이 갑자기 전력으로 휘두르려니 몸이 잘 따라주질 않는구만.”
천천히 하나둘 베어내면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머릿수에, 과감히 힘을 끌어다 쓰느라 지친 시구르드는.
아까 그 일격에, 그렇지 않아도 헬헤임에 떨어진 뒤로 영 제 맘 같지 않던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며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그래도 이만하면 둘 다 어느 정도 도망쳤을 테니, 나도 늦기 전에 슬슬… 으응?”
-그르륵… 컹!
-커헝!
“이런…”
그리곤 곧 뻐근해진 몸을 이리저리 풀며, 다시금 그람을 등에 메어 놓고 자리를 벗어나려던 그때.
바로 제 뒤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흠칫 몸을 떤 그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세 늑대를 보고선 황급히 재차 애병을 뽑아 들었다.
아니, 뽑아 들려고 했다.
“시구르드 님!”
뻐억-!
가장 앞서 나온 늑대의 이빨이 막 제 옆구리를 물고서 살갗을 찢어발기기 직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래턱이 뭉개지며 덜렁거리는 입을 쩍 벌린 채, 서서히 옆으로 쓰러지는 녀석을 본 시구르드는.
이어서 남은 두 마리마저 순식간에 머리를 날려버리곤 제 옆에 붙은 하준을 보며,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거 도망치라니까!”
도대체 왜 아직도 자리를 뜨지 않고 오두막에 남아있던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하준을 흘긴 영웅은, 안타까움에 탄식을 터트리며 미간을 꾹 짚었다.
제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 늑대들 사이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는 건지.
물론, 조금 전 세 놈한테 물릴 뻔한 자신을 걱정해 나서준 마음만큼은 고맙긴 했지만.
그렇다고 둘이서 계속 이 끝없이 살아나는 녀석들을 상대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러지 말고, 그냥 같이 도망치시죠. 그런다고 죽진 않아도 아픈 건 똑같으시다면서요? 게다가 저희 둘이서 어째 도망친다 해도, 다음에 또 녀석들을 만나면 그땐 어떡합니까?”
그에 어서 잡으라는 듯 손바닥을 건넨 하준은, 그 뻔뻔함에 할 말을 잃은 듯 눈을 좁히는 시구르드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이야 그래도, 내심 반가운 듯 꿈틀거리는 입꼬리가 눈에 띄었으니까.
‘북유럽 신화에도 인맥 하나쯤 들여놔서 나쁠 건 없겠지.’
단칼에 두께가 족히 수 미터는 넘어가는 빙판을 일직선으로 갈라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
그런 그의 환심을 살 수만 있다면야, 이 정도 용기를 내어주는 게 어디 대수겠는가.
어차피 정 급하면 퀴네에라도 확 켜 버림 그만인데.
부그르르-
“어서 가시죠. 더 늦기 전에.”
조금의 침묵 끝에 여기저기 거품이 일며 형태를 잡아가는 늑대를 본 하준은.
여전히 허전한 손을 다시금 흔들며 슬쩍 울타리 밖을 쳐다봤다.
텁-
“…빌어먹을. 자네도 참 고집불통이구만.”
“하하. 뭐해, 루시오! 출발하게 빨리 와!”
그리곤 결국 하는 수 없이 툴툴거리며 제 손을 맞잡은 시구르드를 향해, 어색하니 웃음을 터트린 그는.
곧바로 아까부터 무얼 하는지 멍하니 크레이터 앞에 서 있는 루시오를 불러들이며, 그새 눈발에 묻힌 스쿠터를 찾아 여기저기 눈밭을 헤집었다.
“…저, 하준.”
녀석이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선.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내뱉긴 전까진.
“얘네, 진짜 죽은 거 아닙니깟?”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