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59)
신들의 배달기사(59)
“뭐?”
루시오의 말에 잠시 눈밭을 헤집길 멈춰 서고 녀석을 돌아본 하준은, 조금 전 자신이 때려눕힌 늑대 세 마리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죽다니.
설마 인제 와서 평범한 죽음을 논하는 것은 아닐 테고, 분명 더 이상 부활조차 하지 않는 진정한 죽음을 얘기하는 것일 터인데.
조금 전 머리를 비롯해 상체의 대부분을 잃고서도 꾸물꾸물 다시 살아나던 녀석들을 떠올린 그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에이, 설마. 네가 뭘 잘못 본 거겠지. 아니면 아직 살아나기까지 시간이 좀 남은 거던가.”
“잘못 본 게 아닙니닷! 뭔가, 뭔가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왠지 모르게 느낄 수 있는 겁니닷. 지금 이 세 마리는 아까 쓰러졌던 때와는 어딘가 다르다고, 님프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닷!”
이만하면 슬슬 돌아올 법도 하건만.
무슨 님프의 감 같은 소리를 해대며 버티는 루시오의 모습에, 혹시나 해서 재차 늑대 사체를 살핀 하준은.
흐리멍덩한 눈에 머리가 움푹 파이고 덜렁거리는 주둥이를 쩍 벌린 그대로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놈들을 보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으니까,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빨리 돌아와. 그러다 다른 녀석들도 전부 부활하면 어쩌려고 그래?”
부그르르-
이윽고 크레이터가 파인 자리.
그 많던 늑대들의 복슬복슬한 털 하나, 핏물 한 줌 남지 않고 투명한 얼음덩어리만 비치던 자리에서조차 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살점들이 뭉치기 시작하는 걸 본 그는.
어느새 눈밭에 파묻혀 있던 스쿠터를 꺼내 시동을 걸어놓고선 제 뒷자리, 안장에 반쯤 남은 부분을 툭툭 두드리며 녀석을 재촉했다.
“…알겠다는 겁니닷.”
툭-
끝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저에게 토라진 듯, 입을 삐죽 내밀며 터덜터덜 안장에 오른 루시오를 훑은 하준은.
곧 말없이 슬쩍 제 옷자락을 집는 녀석을 보며 씁쓸하니 미소를 흘렸다.
누군들 뭐 믿어주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겠나.
설령 그렇다고 한들 아직 남아있는 놈들이 수두룩하니, 위험해서 그렇지.
‘게다가, 애초에 제 털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해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는 놈들이 고작, 저한테 머리 하나 깨졌다고 더 이상 부활하지 않는다니. 그건 좀.’
“죄송합니다. 이제 정말 출발하시죠, 시구르드 님!”
어쨌든 기어코 고집을 부리던 녀석도 태웠겠다.
이만 늑대 놈들이 부수고 들어온 듯, 쓰러져 있는 목책을 향해 핸들을 돌린 하준은.
지금껏 이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묵묵히 저들을 기다려준 시구르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구르드 님?”
그러곤 자연스레 스로틀을 당기며 반쯤 형상을 갖춘 늑대들로부터 달아나기도 잠시.
고작 몇 걸음 되는 거리조차 가지 못한 채, 무슨 일에선지 움직이지 않는 영웅을 돌아본 그는.
곧 물끄러미 사체 셋을 향해 가 있는 시선을 파악하곤 이마를 탁 짚었다.
기껏 루시오를 설득해서 자리에 앉혔더니만, 이번엔 또 왜 이쪽이 이러는 건지.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예?”
뒤이어 그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사람이 고장이라도 났나, 재빨리 스쿠터에서 내려서 시구르드를 부르러 가던 하준은.
도중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 조용히 입을 떼는 그를 보고선, 당황한 듯 눈을 끔뻑였다.
“무슨, 짓이라뇨? 제가 뭘…”
-그르륵… 컹!
눈앞의 영웅도 그렇고, 아까 루시오도 그렇고.
난데없이 요상하게 구는 둘 탓에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기울이던 그는 시구르드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앞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이내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우뚝 멈춰 서야 했다.
‘…이런 젠장. 그냥 처음부터 루시오를 억지로라도 뒤에 태웠어야 하는 건데.’
그 갈팡질팡하는 사이 수복을 다 끝낸 듯,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진 채로 슬금슬금 저들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한 늑대들을 둘러본 하준은.
뒤늦은 후회에 입술을 잘근 저미며, 아쉬운 눈빛으로 시구르드를 훑었다.
그라면 분명 좋은 인맥이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별수 없나. 인맥이든 뭐든, 결국 살아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 응?’
-커헝! 컹!
-크르르… 그륵?
그렇게 인제 와서 그와 함께 빠져나가기엔 도무지 답이 보이질 않는 상황에, 체념한 듯 퀴네에를 향해 손을 올리던 찰나.
갑자기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는 몰라도, 하나둘 주춤거리기 시작한 늑대들을 마주한 하준은.
이어서 저와 크레이터 앞에 널브러진 동료의 사체를 연신 번갈아보는 녀석들을 보고선, 조용히 인상을 찌푸렸다.
루시오에 시구르드로도 모자라서 이젠 짐승들까지.
-끼잉… 낑…
-깨갱!
타다닥-
결국, 머지않아 앓는 소리를 내며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늑대들의 뒷모습을 지켜본 하준은.
그제야 처음부터 뚝심 있게 밀어붙이던 루시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없이 제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깟. 진짜진짜 죽은 거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깟.”
이제 알겠냐는 듯.
억울함과 기세등등함이 반씩 섞인 듯한 애매모호한 표정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린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믿을 수가 없구만. 헬헤임에서 죽음이라니. 그건 이 땅의 주인, 여신 헬조차 그리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들었거늘.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허나 기껏 시선을 피한 곳에서조차 부담스레 들어오는 질문에,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본 하준은.
자그마치 더는 죽어서 갈 곳조차 없는 불사의 존재를 영면에 재워버린 제 손을 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저도 모르는 사이 그간 신들의 배달을 들어줘 가면서 특별한 힘이라도 얻게 된 걸까.
저 마룡조차 홀로 때려잡은 드래곤 슬레이어마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놀라운 업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달콤한 감상에 잠겼다.
‘아니면, 헤르메스한테서 무슨 권능이라도 몰래 전해 받았던 걸지도.’
“아아앗! 알겠닷! 알겠는 겁니닷! 이제야 기억이 난 겁니닷!”
“응? 뭔데, 뭔데?”
재능의 개화일까.
언제 한 번 숨겨져 있었던 보상일까.
궁금증에 조만간 수소문을 해서라도 헤르메스를 찾아가 물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던 하준은.
곧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루시오를 보고선, 잔뜩 기대감에 찬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몽둥이! 이 나무 몽둥이 덕분이었던 것입니닷!”
“…몽둥이? 그 몽둥이가 왜?”
그러나 희망도 잠시.
조금 전 배달통에 집어넣었던 몽둥이를 꺼내 번쩍 들어 올리는 녀석의 모습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찡그린 그는.
제법 실망스러운 눈으로 슬쩍 제 양손을 내려다보며, 마저 그 이유를 물었다.
이번에야말로 제게도 뭔가 좀 있어 보이는 능력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그렇습니닷! 분명 대학에선 나뭇가지라 그래서 몰랐는데, 이걸로 확실해진 겁니닷! 어쩐지, 제우스 님께서 그렇게 애지중지하신 보물이었다더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입니닷!”
“아니, 그게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단 말이야?”
이윽고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는 루시오를 본 하준은.
그런 녀석의 말마따나, 처음 몽둥이를 건네받았을 적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제 격한 반응을 고대하던 아레스의 얼굴을 떠올리며 침음을 내뱉었다.
하긴, 자기도 그 상자 안에 있던 물건의 정체가 뭔지 모르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그 보물창고에 있던 다른 어떤 물건들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귀중한 물건이라고 얘기를 덧붙였었지.
‘막상 직접 써보니까 드럽게 튼튼하기만 하고, 뭍에 올라와 있는 세이렌조차 잡질 못해서 되게 실망했었는데.’
“듣고 놀라지마는 겁니닷. 그건 먼 옛날, 북유럽에서 가장 선하고 완벽했던 존재이자,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찬양받던 빛과 정의의 신! 신들의 땅, 아스가르드의 적법한 지배자인 오딘의 둘째 아들 발두르를 죽인 겨우살이나무!”
아무튼.
그 끔찍했던 기억을 뒤로하고 이만 설명을 이어가는 루시오를 살핀 하준은.
지금껏 녀석의 입을 거친 설화중에서 가장 장황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며, 다시금 설레는 눈빛으로 몽둥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까짓거 저한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게 아니면 좀 어떠하겠는가.
결국 그 특별함을 가진 몽둥이가 바로 제 것인데.
“온 세상의 모든 신화를 통틀어도 한 손에 꼽을 만큼 귀하디귀한 신물! 불사 살해의 전승을 가진 신화급 무구, 멸망을 부른 나뭇가지. 미스틸테인인 것입니닷!”
미스틸테인.
어느덧 저벅저벅 스쿠터 앞으로 되돌아가, 루시오가 들고 있던 몽둥이를 건네받은 그는.
인제 보니 과연 제우스가 제 벼락만큼이나 아꼈다던 말마따나, 무척 귀중해 보이는 신물을 꾹 쥐고선 두어 번 허공에 휘둘러보았다.
부웅-
뒤랑달이 200억이라 했던가.
손에 착착 감기는 그립감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저번 배달 때 경호를 부탁받았던 검의 경매가를 기억한 하준은.
이후 말없이 미스틸테인을 다시 배달통 안에 고이 집어넣고선, 흐뭇한 손길로 통을 쓰다듬었다.
일개 영웅의 설화에 등장하는 귀물이 그 정도 가격이라면, 북유럽 신화.
그것도 무려 최고신 오딘의 후계를 죽인, 불사 살해의 전승을 가진 신기는 도대체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 걸까?
열 배? 스무 배? 아니면 백 배?
‘아레스… 아니, 아레스 형님!’
모르긴 몰라도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 금액에 활짝 웃음꽃이 피인 하준은, 지난 사흘간 스쿠터를 타고 죽어라 달려왔던 방향을 내다보며.
곧장 망설임 없이 허리를 팍 숙였다.
‘정말 빌어먹게 감사했습니다!’
그 누가 올림포스의 적법한 후계를 보고선 양아치, 못난 놈이라 했던가.
돌아보니 과연 제왕의 그릇에 맞는 큰 배포를 가졌던 것 같은 아레스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그만 뒤늦은 감상을 마치고선, 여전히 알쏭달쏭한 눈빛으로 저를 살피고 있는 시구르드를 돌아봤다
“…무, 무슨 일인가?”
“예, 예?”
조금 전, 불사인 녀석들을 죽인 탓일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저를 보고선 살며시 걸음을 빼는 시구르드의 반응에 덩달아 흠칫 놀란 하준은.
어딘지 모르게 경계 어린 듯한 영웅의 모습에, 어색하니 부서진 목책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슬슬 출발할까 해서요.”
미스틸테인이니 뭐니, 일단 방해가 되던 늑대들도 모두 사라졌겠다.
“배달하러.”
이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었으니까.
…괜히 늦어서 머리 위로 천벌이라도 떨어지기 전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