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6)
신들의 배달기사(6)
“와, 진짜 식겁했네.”
노량진 근처.
어느덧 완전히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
어두운 밤길을 헤치고 자취방 앞에 도착한 하준은, 이젠 깡통 헬멧이나 다름없어져 버린 투구를 벗으며 스쿠터에서 내렸다.
“하마터면 보험료 오를 뻔.”
그는 조금 전, 던전 안에서 헌터들과 부딪칠 뻔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면허 딴지 5년이 안 된 데다가, 아직 나이도 어려서 비싸 죽겠는데.
여기서 무사고까지 깨지면 다달이 얼마를 내야 할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근데 던전에서 사고 나도 보험처리가 되려나?’
쓸데없는 고민도 잠시.
곧 자취방에 들어선 하준은 땀에 젖은 몸을 씻어내곤 푹 꺼진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졌다.
“흐, 흐흐. 흐흐흐!”
시간도 늦었겠다, 가만히 누워서 잠 좀 청하려는데.
자꾸만 입가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잔여 포인트 : 15,199p]15,000포인트.
하준은 이번 배달을 통해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를 보며 행복한 미소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게 돈으로 바꾸면 다 얼마야? 이, 일억 오천만 원?”
억.
입에 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마법 같은 울림에, 하준은 더이상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앞으로 월세가 문제가 아니라, 대출을 끼고 작은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구해볼 만한 금액이었다.
게다가 데메테르가 헤파이스토스의 소개를 받아 배달을 맡겼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이런 알짜배기 콜을 받아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뭐, 이번에는 조금 위험하긴 했다만…’
그것도 말이 위험이지, 다른 헌터들 또한 목숨을 내놓고 일하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쪽은 따로 몬스터랑 싸울 필요도 없이, 빠르게 배달만 싹 끝내고 나오면 그만이니.
어떻게 보면 더 안전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 까짓거 던전이 뭐 대수냐? 한 번 갔다 올 때마다 돈이 억대로 쌓이는데!”
이게 아니면 제가 또 언제 이만큼 목돈을 만져보겠는가.
맨날 진상한테 욕이나 들어 처먹으면서 하루종일 뼈 빠지게 날라도, 한 달에 400이나 받을까 말깐데.
물론 그렇다고 400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집도 사고 노후까지 생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였다.
지금도 계속해서 배달비가 오른다 어쩐다, 갈수록 콜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언제까지 배달대행이 수요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으니까.
“으음.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앞으로도 던전에 들어갈 만한 방법이 필요한데.”
오늘이야 투구가 기척과 모습을 없애줘서 몰래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지만, 매번 그렇게 상점에서 퀴네에를 가져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번 사용에 무려 800포인트.
그마저도 왕복으로 따지면 일회용이나 매한가지인 데다가, 800포인트도 어디까지나 세일 중인 가격이었다.
“…어떡하지. 미리 헌터증이라도 따놔야 하나?”
헌터증.
결국 합법적으로 던전을 오가기 위해선, 시험을 치르고 헌터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거, 내가 딸 수는 있는 건가?’
허나 시험에 합격하려면 못해도 오크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어야 했다.
아니면 힐러나 버프 계열의 헌터들처럼 따로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던가.
신들한테서 배달 콜을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곤 사실상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하준에게 있어, 헌터증을 따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자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보지 뭐.”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내 포기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하준은, 서서히 몰려오는 졸음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쨌든 배달이라고 꼭 목적지가 던전에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 * *
“어우, 어제 너무 무리했나? 삭신이 다 쑤셔 죽겠네.”
다음날.
잠에서 깬 하준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평소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어제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가, 온몸에 느껴지는 피로가 장난이 아니었다.
[잔여 포인트 : 15,199p]“흐흐흐. 거 삭신 좀 쑤시면 어떠냐. 하루 동안 돈을 이만큼이나 벌었는데. 이게 바로 금융치료인가?”
그러나 무기력함도 잠시.
곧바로 두둑하게 쌓여 있는 포인트를 확인하곤 활기를 되찾은 하준은, 당분간 콜도 잘렸겠다 이 돈으로 무얼 하고 놀면 좋을까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일단 나가서 좀 돌아다녀 볼까? 아니면 아싸리 집부터 한 번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매트리스랑 책상 하나만 놨을 뿐인데, 빨래 건조대만 펼쳐도 지나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좁은 원룸을 보며.
그는 곧장 근처에 매물이라도 한 번 알아볼 요량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응? 이게 뭐야.”
그렇게 부동산 어플부터 뒤져볼 생각으로 잠금을 풀던 하준은, 상단에 웬 처음 보는 모양의 알림이 와있는 걸 확인하고선 그를 클릭해보았다.
[부재중 콜 6건]“…부재중 콜? 아, 이거 설마!”
뭔지는 몰라도 콜이라는 걸 보아하니, 누군가 배달대행을 불렀던 것일 터.
평소에는 자신이 놓치더라도 다른 대행원이 있으니 몰랐는데, 이런 알림도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까워라! 여섯 건이면 대체 얼마를 놓친 거람!”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준은 아쉬운 마음으로 알림을 클릭해봤지만, 화면은 평범하게 어플 메인으로만 넘어갈 뿐이었다.
띠링-
-배달의 만족, 주문!
“떠, 떴다!”
간절함이 통했을까.
그는 곧 경쾌한 알림과 함께 들어오는 콜을 보고선, 환한 미소로 재빨리 수락을 눌렀다.
번쩍-
“윽!”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앞을 가리고 눈살을 찌푸린 하준은, 이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야에 천천히 팔을 내렸다.
“아, 형씨! 드디어 왔구만! 여기요, 여기!”
“예, 지금 갑니다!”
구름 위.
오늘은 과연 얼마나 벌 수 있을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눈앞의 오두막을 마주한 그는, 문 앞에 나와 저를 기다리고 있던 헤파이스토스를 보고선 잽싸게 걸음을 옮겼다.
“아래에서 뭘 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늦게 온 거요? 내가 아침부터 형씨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쇼?”
“네? 아, 아! 그게 좀, 방금 일어나가지고요.”
아침부터 기다렸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만.
하준은 조금 전에 찍혀 있던 부재중 콜 여섯 개를 떠올리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도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길래 그러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그 정도로 급한 건수라면, 보수도 두둑하게 챙길 수 있을 터.
“헤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씨익 미소를 지으며 헤파이스토스의 앞에 바짝 붙은 하준은, 어서 빨리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크흠.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어제 형씨가 배달해준 넥타르 있잖수.”
“예, 예. 그 한 모금만 마셔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음료 말이죠.”
“그렇수, 그거. 후… 하필이면 그때 막 작업 끝내고 목 좀 축이려는 찰나에, 우리 집사람이 들이닥쳐서 말이요.”
그에 헤파이스토스는 천천히 목을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놈의 여편네가 평소에는 덥다고 오두막 근처엔 오지도 않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덕분에 넥타르도 뺏기고 따로 꿍쳐놨던 술도 다 압수당하고. 아주 일할 맛이 안 나서 죽겠수다. 당장 주말까지 만들어야 할 것들이 산더민데.”
“…집사람 분께서요?”
길어지는 푸념에 슬그머니 말을 붙인 하준은, 정말로 근심 가득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고선 안타까움에 말을 이어갔다.
“그거 그냥 강하게 밀어붙이면 안 되는 겁니까? 남편이 일 다 끝내고 가볍게 술 한 잔 좀 하겠다는데.”
“어허.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원래 남자가 져주고 하는 거요. 그래야 나중에 집에서 반찬이라도 하나 더 나오지.”
돌아온 대답에, 하준은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아니, 무슨 신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술 한 잔 가지고 와이프한테 잡혀서 산단 말인가.
“…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곧 활짝 열린 오두막 안쪽에 걸려있는 사진을 하나 발견하고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저, 헤파이스토스 님. 혹시 저기 걸려계신 분은…”
사진으로만 봐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
헤베랑 데메테르도 분명 여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미인이었지만, 이쪽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밖에 설명이 안 될 정도였다.
“응? 아, 내 마누라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들어본 적 없수?”
마누라.
그 충격적인 답에 놀란 눈으로 헤파이스토스를 돌아본 하준은, 방금까지만 해도 축 처져 있던 입꼬리가 어느덧 올라가 있는 그를 보며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처음으로 신을 봤을 때도, 하데스에게서 자그마치 15,000포인트라는 거금을 받았을 때도 이러지 않았건만.
하준은 진심으로 존경심을 담아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허허. 따로 비결이랄 게 있나. 뭐, 그래도 굳이 하나를 뽑자면 역시…”
“역시?”
“남자는 능력 아니겠수?”
능력.
“아. 과연, 그렇겠네요.”
“…으응?”
그 말에 유심히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하준은, 확실히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흘렸다.
“크흠. 아무튼, 그래서 배달 말인데.”
그런 그의 반응에 어딘가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 헤파이스토스는, 이내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아래에서 맥주 좀 구해다 주쇼. 넉넉하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