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61)
신들의 배달기사(61)
“미, 미, 미, 미쳤습니까아아앗!”
어두컴컴한 대전 안.
하준을 따라 헬헤임의 지배자, 여신 헬을 영접하러 온 루시오는.
웬 프레이야가 전해달라던 편지는 전해주다 말고, 다짜고짜 여신의 면전에다 쌍욕을 박아버리는 그를 보고선 화들짝 놀라 앞으로 날아갔다.
“하준! 하준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습니깟? 여신님입니닷, 여신! 그것도 최소 주신급, 죽음의 여신님이란 말입니닷!”
어느 신화에서든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땅과 영웅, 심지어는 대부분 불로불사의 특성을 갖춘 신에게도 죽음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평소에도 하준이 가끔 신님, 영웅님께 무례한 언사를 보이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책이 없는 인간일 줄은 몰랐습니닷! 당장, 당장 엎드리는 겁니닷! 잘못했다고, 죄송했다고 싹싹 비는 것입니닷!”
그런 생명의 죽음을 관장하는 자리.
저승의 지배자란 직책에는, 모두가 인정할만한 격이 요구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주신급, 그 이상.
그런 무지막지한 존재 앞에서 대놓고 욕지거리를 내뱉다니.
간이 배 밖으로. 아니, 애초에 없이 태어난 수준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게. 어, 얼굴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까 본 그 충격적인 광경에, 아직도 넋을 잃고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하준은.
푸르죽죽한 낯빛으로 이제 어쩔 거냐는 듯 제 몸뚱이를 마구 흔드는 루시오를 보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굴? 이젠 하다 하다 여신님 얼굴까지 뭐라고 하는 겁니깟?”
그에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린 님프는, 아까부터 줄곧 면사 너머 여신의 얼굴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때 다리에서 굴렀을 때 머리를 다친 게 분명한 겁니닷.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정신 나간 언행을 불가능한 것입니닷! 이건 도랑을… 아니, 온 개울을 다 뒤져봐도 없을 미친…”
휘이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행에 투덜투덜 불만을 내뱉으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개울 최고의 두뇌를 팽팽히 돌리던 루시오는.
이내 또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면사를 보고선, 잠시 하던 말도 멈추고 뻣뻣하게 표정을 굳혔다.
“히, 히야아아아악!”
새하얀 백골.
그 가운데 뻥 뚫린 두 눈구멍 사이로 벌겋게 일렁이던 불빛과 마주친 녀석은.
조금 전, 제가 그리 언성을 높여가며 내뱉던 말도 잊고선, 대전이 떠나가라 새된 비명을 터트렸다.
“하, 하, 하준! 여, 여신… 여신!”
섬찟한 광경에 너무 놀란 탓일까.
두 눈에 눈물이 핑 고인 채, 하준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진 루시오는.
헐떡이는 숨에 연신 말을 더듬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여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여신님께서 돌아가신 겁니닷!”
“…아니, 그건 아니지 않을까. 아까 얘기도 잘하셨잖아.”
한바탕 일은 소동에 도리어 정신을 차린 하준은, 방금 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녀석을 보고선.
뒤늦게 졸이는 마음에 슬그머니 여신을 돌아보았다.
‘실례는 지금 나보다 본인이 더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이야. 그만하거라.
“헤에에에엑!”
아니나 다를까.
처음과 달리 제법 당황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입을 연 헬을 살핀 하준은.
잠깐이나마 정말 그녀가 죽었다 생각한 건지, 흠칫 놀라며 제 뒤로 쇽 몸을 숨기는 루시오를 보며.
그 엉뚱함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지난 한 달 새에 별의별 꼴을 다 본 저조차 심하게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는데.
이 조막만 한 녀석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 바깥의 아이들아. 어인 일로 이 춥디추운 죽은 자들의 땅까지 들어와 나를 찾았느냐.
다행히 이런 반응이 익숙한 건지, 아니면 신답게 넓은 아량과 배포로 덮은 건지.
앞선 무례를 논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서는 헬을 마주한 하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 예. 여기, 프레이야께서 부탁한 편지입니다.”
-…편지?
부스럭-
이윽고 슬그머니 내민 손에 가져온 편지를 올린 하준은.
곧 조심스레 그를 집고선 면사 아래로 가져가는 얄쌍하고 길게 쭉 뻗은 손가락을 보며, 조용히 침음을 내뱉었다.
적어도 손은 그야말로 섬섬옥수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곱고 예쁘장하건만, 어쩌다 얼굴이 그렇게 된 건지.
-으음. 아이야. 이 편지에 적힌 내용이 모두 사실이느냐?
“…예, 예?”
문득 머리를 스치는 의문에 말없이 여신의 모습을 살피기도 잠시.
퍽 심각한 목소리로 건네오는 그녀의 질문에 흠칫 몸을 떤 그는.
제 눈앞에 길게 펼쳐져 펄럭이는 편지지를 바라보며, 어색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저도 편지를 배달해달라는 말만 들었지, 안에 뭐라고 써 있는지는 몰라서.”
요 근래 발할라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 그 이상 현상들의 원인이 이 헬헤임에서 온 거 같댔나.
대강 얘기만 들었지,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모르던 하준은.
상황이 꽤 난처한 듯, 손가락을 세워 팔받침을 톡톡 두드리는 여신을 보고선 궁금하듯 말을 물었다.
“저… 혹시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하준!”
그 당돌한 물음에 깜짝 놀라며 하준의 옷깃을 붙잡은 루시오는.
왜 그러냐는 듯 물끄러미 저를 돌아보는 그를 보고선 붕붕 고개를 저었다.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었는지는 몰라도, 프레이야가 굳이 설명을 해주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
설령 단순히 얘기해주길 잊은 내용일지라 하더라도, 평범한 인간이 이리 멋대로 캐묻는 것은 그 자체로 걸핏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저들의 눈엔 불합리해 보일지언정, 모름지기 신들이 가지는 권위란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아니, 뭐 그냥 묻는 게 좀 어때서?”
그에 나지막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고개를 돌린 하준은.
뒤에서 기가 막힌다는 듯 새어 나오는 헛웃음과, 곧이어 따끔하게 찝히는 옆구리를 보고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실례면 아까 얼굴 보고 놀랐을 때 이미 벼락을 맞고도 남았겠지.
스윽-
그러곤 이내 답을 구하는 듯 재차 여신을 바라본 그는, 어느덧 손가락을 우뚝 멈추곤 지그시 면사 너머로 저를 살피는 시선에 당당히 어깨를 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리 진중한 분위기를 풍겼던 건지, 저도 알아야 조금 전 물음에 답을 해주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겸사겸사 무어라도 더 얻어가서, 프레이야한테도 점수 좀 팍팍 따고.
-…보기 드물게 당찬 아이로구나.
“그게 제 매력이죠.”
-후후. 확실히. 어이 됐든, 네 그리 궁금해하니 얘기해주지 않을 수 없구나.
루시오의 우려와는 달리 그런 하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보다 기특함이 실린 말투로 입을 뗀 여신은.
방금 확인한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때로는 그저 모르는 게 약인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만.
“예? 아, 그럼 딱히 안 알려주셔도…”
-누군가 죽은 자들이 저마다 떨어져야 할 장소를 꼬아놓은 모양이더구나. 본디 용맹한 전사만이 모여야 할 땅, 발할라에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죄인들이 모습을 보이다니. 그래서 내게 급히 편지를 지어 보낸 거겠지.
‘…이런 망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경고에 잽싸게 손을 뻗으며 질문을 무르려던 하준은.
무어라 막을 새도 없이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이야기에 허탈한 얼굴로 팔을 내렸다.
그냥 신들끼리의 이야기에 한낱 인간이 끼는 게 불경해서 안 된다는 줄 알았건만.
설마 들으면 위험해지는 종류의 것이었다니.
“그러니까 제가 말렸지 않습니깟.”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에 잠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루시오를 흘긴 그는, 제가 뭐랬냐는 듯 콧김을 뿜는 녀석을 보고선 작게 투덜거렸다.
“말릴 거면 더 강하게 말렸어야지.”
“…이게 루시오 잘못입니깟?”
인제 와서 뒤늦게 후회한들 뭐 하나.
어차피 들어버린바, 차라리 돌아가서 점수라도 딸 겸 다시 여신을 바라본 하준은.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저들을 기다려주던 그녀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너무 그리 걱정하지 말려무나. 그래 봐야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겐 별 소용이 없는 얘기니. 아무튼, 여기 적힌 내용은 전부 내가 벌인 일이 아니란다. 또한 마찬가지로 헬헤임의 문제도 아니지. 오히려 그랬다면 이야기가 쉽게 풀렸겠지만, 아쉽게도 누군가 밖에서 수작을 부린 모양이구나.
마저 입을 떼고 쭉 설명을 늘어놓던 헬은,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재앙에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프레이야야 라그나로크를 대비해 모으던 전사들의 수급에 이상이 생겼으니, 막연히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제게 의구심을 품은 듯했으나.
세상의 죽음을 잠시 거두어들이는 것도 아니고, 멋대로 발할라에 올라갈 망자들을 뒤섞어놓는 건 저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은 그저 산 자의 생명을 앗아갈 뿐.
그 뒤로 어떻게 되는 지까지 책임지고, 관장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혹시 누구라 하심은…”
그에 가만히 앞에서 이야기를 듣던 하준은, 퍽 심각해진 분위기에 고개를 기울이며 조심히 말을 붙였다.
척 봐도 이게 바로 그 점수따기용 대답일 듯했으니까
-삶과 죽음의 올바른 순환에 훼방을 놓는 이런 저열한 짓을 벌일 놈들은, 온 우주와 신화를 통틀어 오로지 한 곳밖에 없단다.
눈앞의 앙큼한 필멸자의 물음에 바라던 대로 입을 연 여신은, 중간에 한 차례 숨을 고르고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곱 갈래로 갈라진 땅, 군데군데 푸른 불길이 넘실거리는 곳.
본디 저들 북유럽 신화에 이미 예정되어 있던, 널리 알려진 파멸 외에도.
아주 먼 옛날부터 조금씩, 차츰차츰 이어져오던 멸세의 씨앗.
어쩌면 그 라그나로크보다도 더 위험하고 더 광대할지 모를 재앙에 지그시 눈을 감은 그녀는, 아직 제가 죽음의 여신이 아닌 철없던 소녀 신일 적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 물었다.
당시, 오딘의 손에 니플헤임으로 던져지며 우연히 마주했던 그 파멸의 편린을.
“일곱 갈래로 갈라진 땅? 루시오, 저거 혹시…”
그러는 사이.
여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지명에 흠칫 루시오를 돌아본 하준은.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그 설명에 조용히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긴.
“저번에 아틀라스 님께서 말씀하셨던 거기 아닙니깟?”
일전의 그 흉측하게 생긴 촉수와 괴물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던 세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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