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71)
신들의 배달기사(71)
“아, 정말!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후배님!”
던전, 리자드맨의 늪지.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널따란 숲 한가운데.
레드 드레이크를 상대로 마땅히 유효타를 먹이지 못하고 있는 하준을 보며, 용기 있게 약점을 짚고 나선 최서윤은.
퀴네에의 효과를 받은 듯 모습도 기척도 잡히지 않는 그를 대신해 훤히 드러난 자신을 노리는 보스를 보고선, 잔불이 타들어 가는 바닥을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크와아악!
부웅-
“흐악!”
괴성을 지르며 휘두른 앞발이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이끌려 온 풍압이 만들어낸 바람에 나뭇잎처럼 휘청인 그녀는, 다급히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떨어지는 몸을 붙들었다.
“허억, 헉.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진짜 위험했…….”
쩌어억-
“……엄마야!”
가까스로 허공에서 균형을 다잡은 서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낼 틈도 없이 바로 발밑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드레이크를 보며 재빨리 위로 튀어 올랐다.
콰악-!
“이 망할 도마뱀 자식이 정말!”
앙다문 주둥이 사이로 시뻘건 불길이 흘렀다.
자칫 녀석의 한 입 거리로 전락할 뻔한 상황에 긴장의 끈을 단단히 붙잡은 그녀는, 곧장 양손에 꽉 쥐고 있던 유리병 중 하나를 집어 던졌다.
쨍강-!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동시에 산산조각 난 파편 위로, 찰랑거리던 내용물이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익-
이윽고 투명한 액체를 뒤집어쓴 자리를 기점으로, 일순간 뿌옇게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함께 거친 비늘 위로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쩌적- 쩌저적-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시뻘건 불길을 머금고 토해내던 모습이 무색하게, 두꺼운 얼음이 순식간에 꾹 다문 주둥이 전체를 덮어 나갔다.
“후후. 맛이 어떠냐, 이놈아!”
데메테르의 눈물.
올림포스의 열두 주신 중 하나이자, 자연과 대지를 관장하는 강력한 신격의 권능이 담긴 신비로운 액체.
자신의 성좌인 헤르메스로부터 그간 활동을 위해 받아온 여러 물건 중 하나를 선보인 서윤은.
비록 일회용짜리 소모품이긴 하나, 과연 주신 격의 힘이 들어간 귀물답게 7레벨급 보스의 거동마저 무력화시키는 성능에 보란 듯이 주먹을 꾹 쥐었다.
쩌적-
하나 기쁨도 잠시.
몇 초 지나지 않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얼음을 바라본 그녀는.
그 괴물 같은 치악력에 혀를 내두르며 반대쪽 손에 쥔 유리병을 내려다보았다.
“후배님! 아직 멀었어?”
길게 버터야 앞으로 십 초 남짓.
하나 남은 액체를 또 던져봐야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눈앞의 괴물을 쓰러트리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도대체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를 후배님이, 큰 거 한 방이라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준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는 겁니닷, 인간.”
“흐악! 깜짝야!”
그렇게 자못 초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여차하면 도망칠 각오를 다지던 찰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린 서윤은.
난데없이 제 옆에 슥 하고 모습을 드러낸 루시오를 보고선,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배님 곁에서 계속 붙어 다니던 꼬맹이? 여태껏 거기 있었던 거야?”
“……루시오는 그쪽이 정말 정말 싫은 것입니닷.”
“어? 아니, 왜? 나 뭘 잘못한 거야?”
새파란 머리에 귀염뽀짝한 인형 같은 외모.
순진무구한 얼굴과 달리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처음 봤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는 아니리라 생각했었지만.
땅에서 족히 10m는 더 떨어져 있는 이 허공에서 저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자니, 더욱 그 정체가 의심이 갔다.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에 비쳐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날개하며.
조금은 특이한 헬멧이라도 뒤집어쓰고 있던 하준과는 다르게 아무런 신기도 걸치지 않았음에도, 마찬가지로 시야에서 사라진 그 능력하며.
어쩌면 그 후배님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소녀를 지그시 살피던 서윤은, 이내 잡생각을 멈추곤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왼손에 쥔 그거, 그것도 데메테르 님의 권능입니깟?”
“뭐? 그걸 어떻게…….”
“흥. 이래 봬도 큐피트 님 아래에서 열심히 보고 배운 짬밥이 있는 것입니닷!”
아까 깨트린 병을 제외하고, 나머지 손에 들고 있는 물약 하나.
이미 써먹은 녀석과 달리 옅은 녹색으로 빛나는 액체를 흘긴 루시오는.
일전에 큐피트의 밑에서 일할 당시에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본 적이 있는 데메테르의 권능을 떠올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마무리 걱정은 허덜덜 말고 어서 던지기나 하는 겁니닷. 괜히 녀석이 그 전에 몸부림치기라도 하면, 쓸데없이 일이 길어질 수도 있으니깟.”
얘기를 마치고 이만 아래로 시선을 돌린 님프는, 그사이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를 집은 채 버둥거리는 드레이크를 향해 달려 나가는 하준을 보며.
어쩐지 자신감을 보이던 그의 얼굴을 눈에 그렸다.
‘충분하다는 게 이런 의미였습니깟?’
왜 굳이 드레이크가 용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던가.
그 이유가 바로 지금 하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거대한 폭에, 무언가를 베기보단 부수는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뭉툭한 대검.
익숙하다면 또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투박한 생김새를 가진 무기를 바라본 루시오는, 곧 헬헤임에서 마주쳤던 한 강대한 인상의 사내를 기억했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볼숭 사가의 주인공이자, 주신 오딘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며, 단언컨대 미드가르드에서 가장 강력했던 인간으로 손꼽히는 영웅.
시구르드.
그날, 오두막에서 그 커다란 몸집의 늑대 수십 마리를 단번에 형체도 없이 증발시켜버린 일격을 떠올린 루시오는.
그런 그와 평생을 함께한 애병.
용 살해의 전승이 담긴 저주받은 대검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마검, 그람.”
쩌적-
데메테르의 권능이 담긴 물약에, 도통 꺼질 줄 모르던 잔불도 한결 수그러든 대지.
영웅의 대검을 손에 쥔 채 바닥을 박찬 하준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금이 번지는 얼음을 보며 입술을 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사 들고 시작하는 거였는데.’
슈트의 남은 지속 시간은 고작 15초 남짓.
스크롤을 내리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한 탓일까, 앞으로 남은 시간이 촉박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랬다간 오히려 애꿎은 포인트만 날려 먹었을지도 몰라. 괜히 약점도 모르는데 아무 데나 대충 검을 찔러 넣었다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남았을 수도 있으니까.’
금방이라도 다할 것 같은 효과에 후회가 스치기도 잠시.
곧장 마음을 다잡은 그는, 어느덧 코앞에 놓인 거체를 보고선 있는 힘껏 하늘로 뛰어올랐다.
카챵-!
-크와아아악!
화르르륵-
동시에 입을 막고 있던 얼음을 깨트리며 주둥이를 쩍 벌린 드레이크는.
지금껏 모아온 분노를 한 번에 터트리기라도 하듯, 사방으로 넘실거리는 화염을 마구 쏟아부었다.
“히약! 뭐 하는 겁니깟! 빨리 남은 것도 던져버리는 겁니닷!”
“이미 던졌어! 이쪽은 원래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곧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불똥을 피해 멀리 물러선 서윤과 루시오는, 보스의 발밑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유리 파편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휘이이이-
콰앙-! 콰아앙-!
“이 미친놈이 이젠 아주 별 지랄을 다……. 큭!”
후웅-
이윽고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며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불덩어리를 보고선, 몇몇 제 머리 위로 내려오는 놈들을 검면으로 받아넘긴 하준은.
부자연스럽게 갑자기 옆으로 흘러내리는 불길을 보며 제 위치를 파악했는지, 쏜살같이 내리쳐오는 앞발을 마주하고선 이를 악물었다.
“이런 망할……. 응?”
쿠구구구-
그렇게 하필이면 이미 허공에 떠오른 터라, 어찌할 방도가 없이 대검만 앞으로 내세운 채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던 그때.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땅 위로 이곳저곳 바닥을 뚫고 우수수 자라나기 시작하는 무언가를 발견한 그는, 순식간에 드레이크의 다리를 타고서 넝쿨처럼 온몸을 뒤덮은 거대한 식물을 보고선 눈을 반짝였다.
“하준, 지금입니닷!”
“알고 있어!”
뒤이어 카랑카랑하게 귀를 때리는 목소리에, 망설임 없이 줄기를 타고 오른 하준은.
재빨리 녀석의 목덜미에 박혀 있을 역린을 찾아 움직이며,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훑었다.
[남은 일일 사용 시간: 10초]“……젠장, 산 넘어 산이구만!”
보기보다 물약의 성능이 너무 좋았던 걸까.
드레이크의 발을 묶다 못해 뒷목까지 그물처럼 덮어버린 식물을 보며, 난처한 눈빛으로 대부분 가려진 비늘을 살핀 그는.
허겁지겁 넝쿨을 걷어내며 홀로 뒤집혀 있을 녀석을 찾았다.
“이 빌어먹을, 분명 이쯤에 있어야……. 우와악!”
투둑- 툭-
조금 전 쏟아져 내린 불길 탓일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끊어지는 줄기에, 잔뜩 몸부림치기 시작하는 드레이크를 본 하준은.
한층 더 다급해진 손길로 식물을 헤집어대며, 역린을 찾아 바삐 눈알을 굴렸다.
“……찾았다!”
부웅-
얼마나 거칠게 넝쿨을 잡아 뜯어댔는지, 손바닥이 까진 상처로 벌겋게 물들었을 때쯤.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가까스로 약점을 찾아낸 그는.
곧바로 잠시 옆에 눕혀두었던 그람을 들어 올리고선, 있는 힘껏 역린을 향해 때려 박았다.
쩌어어억-!
-크와아아아악!
날카로운 날로 무언가를 베어낸다기보단, 도끼 같은 걸로 내리찍는다는 표현이 옳다 싶을 정도로 투박한 소리가.
숲이 떠나가라,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대는 드레이크의 괴성에 묻혀 잠잠히 먹혀들었다.
화륵-
“크으읍…… 이, 끈질긴 자식이! 이만큼 했으면 제발 좀 죽어라!”
[남은 일일 사용 시간: 3초]“으아아아아!”
쯔즉-
이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또다시 입가에 불길을 머금는 녀석을 보며 으스러져라 칼자루를 쥔 하준은.
겨우 3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내듯 기합을 내지르며, 반쯤 박혀 들어간 날을 그대로 깊숙이 밀고 들어갔다.
쯔어어억-
촤악-!
진즉에 박살 난 비늘을 뚫고서, 살을 가르고 뼈를 으깨며 뒷목 깊숙이 파고들어 간 대검이.
텅 빈 허공을 가로지르며, 뭉툭하다 못해 이가 다 빠져 무뎌진 날을 밖에 보였다.
쿠우우웅-
곧 지지대를 잃은 머리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땅을 울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허억, 헉…….”
푸슈웃-
더 이상 갈 곳을 잃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피가, 공터가 되어버린 숲 한가운데 타오르던 잔불을 꺼트렸다.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지칠 대로 지쳐, 앞으로 기울어가는 몸뚱이 위에 대자로 벌러덩 드러누운 하준은.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핏물을 맞으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깊게 자국이 남은 손잡이를 스르르 놓았다.
파삭-
동시에 날 끝부터 천천히 바스러져, 한 줌 빛으로 변해 날아가는 그람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지그시 눈을 감고선, 한껏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