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78)
신들의 배달기사(78)
“테세우스 님!”
“응? 아, 선실은 좀 어때. 괜찮았어?”
크레타섬.
새벽 일찍 부두를 떠나, 해가 중천에 뜰 때쯤에나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하준은.
자갈밭으로 된 해변을 거닐며, 먼저 배에서 내려 상자를 하적하고 있는 테세우스를 불렀다.
“어휴, 편하고말고요. 덕분에 멀미 하나 없이 잘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뭘 내리고 계시는 겁니까?”
처음 도시에서 옮겨 실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하준은 혹시 미노타우로스를 잡기 위한 비장의 무기라도 되는 걸까 하며,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상자를 훑었다.
“아, 이거? 별거 아냐. 내 비즈니스지.”
“……비즈니스?”
비즈니스.
예상외의 답변에 멀뚱히 눈을 깜빡인 그는, 이내 조금 더 설명을 요하는 눈빛으로 영웅을 바라봤다.
“하하! 뱃사람한테 비즈니스가 달리 뭐 있겠어? 그냥 단순한 교역품이야, 교역품.”
“교역, 품이요?”
덜컥-
계속된 물음에 상자를 열어젖힌 테세우스는, 그 안에 꽉 들어찬 내용물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 미노타우로스가 미궁 밖으로 나왔다면, 아마 근처의 건물이란 건물은 다 부서졌을 테니까. 값싼 물건을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상대에게 높은 값으로 팔아먹는다. 장사의 기본이잖아?”
건축물의 뼈대로 쓸 수 있게 잘 가공된 석재 블록들.
굳이 다 열어보지 않아도, 죄다 비슷한 자재들이 들어있을 게 뻔한 상자들을 흘긴 하준은.
이내 어색한 얼굴로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분명 화살이든 투창이든, 미노타우로스를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소모품들이 잔뜩 들어있으리라 의심치 않았건만.
설마하니 이런 생뚱맞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을 줄이야.
‘……하긴, 굳이 뭐 없어도 애초에 검 한 자루 가지고 잘만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웠던 사람이니까.’
“물론 그러려면 그 전에 괴물부터 어떻게 해야겠지? 아무리 물건이 많아도, 살 사람이 없으면 다 재고일 뿐이니까.”
“하하…… 네, 그렇죠.”
이윽고 상자를 다 내리고선, 타고 온 배를 돌려보내는 테세우스를 본 하준은.
다시 전에 있던 도시로 갔다 나머지를 싣고 돌아올 거란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적한 양도 그리 적어 보이진 않는데, 여기서 또 가져올 게 있다니.
대체 도시가 얼마나 난장판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지, 괜스레 두려울 지경이었다.
“루시오. 테세우스 님, 원래 저런 분이셔?”
“저런 분이시냐니, 뭐가 말입니깟?”
“아니, 그냥.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랑은 많이 다른 거 같아서.”
곧 뭍에 남은 선원과 루보르를 자리에 두고서, 드디어 도시로 향하는 테세우스를 따라 발길을 옮긴 하준은.
저와 달리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루시오를 보며, 조용히 말을 물었다.
“하준, 도대체 뭘 기대한 겁니깟? 영웅님들이 무슨 청빈한 학자들처럼 살 거라 생각한 겁니깟?”
“으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돌아온 대답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린 그는, 영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가만히 저를 쳐다보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어색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단순히 돈이 목적이라기엔, 테세우스는 결국 아테네의 왕이 되었을 텐데.
혹 이후에 끝이 안 좋았던 결말 때문에 그런가.
‘그러고 보면 이아손도 원래는 말년에 안 좋게 끝났더랬지.’
본디 신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지그시 눈살을 찌푸린 하준은, 이내 마찬가지로 난데없이 무역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이아손의 경우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인제 와서 고작 그런 걸 가지고 무어라 하기엔, 애당초 영웅들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것부터가 난센스였으니까.
“애초에, 영웅 노릇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겁니닷. 보통 유명할수록 주변에 모여드는 인간도 많아지는 법이니까 말입니닷. 게다가…….”
그러건 말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가던 루시오는, 옛날에 교수에게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다.
“영웅님들께선 대부분, 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계시는 겁니닷.”
“……더 높은 곳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혹 들었을까.
슬그머니 테세우스의 눈치를 살핀 녀석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물에, 그쪽으로만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는 그를 보고선 마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면 어디 가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 왜, 루시오가 한번 말하지 않았습니깟? 신님에는 대개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소곤소곤, 전보다 조심스러워진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 하준은.
일전에 파라오를 만나러 갔을 적에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분명 태생부터 신인 경우와, 살아생전 신으로 추앙된 경우가 있다고 했던가.
“그럼 테세우스 님께서 지금, 신이 되려고 하신다는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을 모아서 신이 되겠다니.
도무지 무슨 꿍꿍이인 건지,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아무리 세상에 돈으로 못 할 것이 없다지마는.
단순히 그걸로 사람들의 신앙을 구해 신이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금액이 필요할지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뭐 수백 수천 명쯤 신도를 모은다고 해서 신이 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아니면, 상인의 신 같은 자리라도 노리고 있는 건가?’
그나마 돈으로 봤을 때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따지던 하준은, 곧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혼자 고개를 주억였다.
상인의 신이야 이미 헤르메스가 있다지마는, 그쪽은 그것 말고도 이미 맡고 있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잘하면 하나쯤은 그냥 양보해줄 수도.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는 겁니닷. 티타노마키아나 기간토마키아 같은 대전쟁에서 신님들의 눈에 띌 만큼 대활약을 펼치면, 충분히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하사받을 수 있으니깟. 어쩌면 그런 날을 대비해, 엄청 엄청 비싸고 좋은 장비를 맞추려고 하시는 걸지도 모르는 겁니닷.”
“아, 그런가? 하긴, 뒤랑달만 해도 거의 수백억짜리였으니까. 신기의 가치는 이쪽도 별반 다를 거 없을 테고.”
슬슬 느려지는 걸음에 적당히 이야기를 마친 루시오는, 조금 전 배에서 봤던 루보르의 표정을 기억하며 입술을 꾹 물었다.
방금, 말이야 그렇게 했다마는.
테세우스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이, 현 올림포스의 심기를 건드리는 방법만은 아니길 바랄 뿐.
그랬다간 괜히, 제 친구까지 쌍으로 책임을 지게 될 터였으니까.
툭-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성벽 근처에 다다른 하준은.
저 멀리 무언가를 발견한 듯, 우뚝 멈춰 서는 테세우스를 보고선 슬그머니 앞을 내다봤다.
“테세우스 님, 설마 저거…….”
한쪽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 성벽과, 그 너머로 죄다 작살이 난 건물들.
그간 오는 방향에선 보이지 않던 참상에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한 하준은, 도무지 가늠이 안 가는 적의 괴력에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부순 건가?
저 두꺼운 성벽을?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좀 늦은 모양이네.”
정신을 차리고 잔해를 밟고 오른 테세우스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성내를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민가는 물론, 가게나 광장 모두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크고 아름답던 궁전은 부서지다 못해 반파되어 있었으며, 활기가 넘치던 거리는 군데군데 거대한 무언가가 내리찍어 깊게 파인 자국들로 가득했다.
단순히 이성 없는 괴물이 미쳐 날뛰었다기보다는, 마치 원한에 의해 전부 찾아가 분풀이를 해놓은 듯한 모습.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수십 년간 저를 가두어 두었던 왕가에 대한 복수일까.
그 광기 어린 흔적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생존자를 찾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욱…… 우웨에엑!”
“하준! 괜찮습니깟?”
마찬가지로 테세우스의 뒤를 따라 도시로 들어온 하준은.
어질어질한 피 냄새에 무릎을 짚으며, 무너진 잔해 위로 울렁이는 속을 게워냈다.
“허억, 헉. 이게 무슨……. 우욱!”
여기저기 벽과 바닥에 분무기처럼 흩뿌려 있는 검붉은 핏자국.
드문드문 웅덩이진 핏물 위로 축 널브러져 있는 시체와, 몇몇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덩어리들.
철퍽-
언제 밟았을까.
신발 밑창에 눌어붙어 찌익 늘어지는 살점을 본 그는, 다시금 올라오려는 내용물을 애써 삼키며 거칠어진 숨을 내쉬었다.
“일단, 생존자를 찾는 게 우선이겠네. 하준, 움직일 수 있겠어?”
“아…… 네. 죄송합니다.”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는 테세우스를 본 하준은.
내밀어준 손을 맞잡으며,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진 않았다마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엎어져 있을 순 없었으니까.
“저기! 저쪽에 멀쩡한 건물이 있는 것입니닷!”
이윽고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니며, 생존자를 찾아 헤매기도 잠시.
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홀로 높다랗게 선 건축물을 발견한 셋은.
혹 늦을까, 바로 그곳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저벅-
“여기는…….”
금세 언덕을 뛰어올라 건물 앞에 선 하준은.
생각보다 더 커다란 크기와, 그 가운데 세워진 화려한 동상을 보고선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신전, 포세이돈 님의 신전인 것입니닷.”
거대한 조개껍질로 된 왕좌 위에, 날카로운 삼지창을 쥐고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근육질의 남자.
루시오는 제우스의 형제이자, 현 올림포스를 이끄는 가장 강대한 세 주신 중 하나인 바다의 폭군을 우러러보며.
경건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녀석이 이쪽은 피해 간 모양이네요.”
“그렇겠지. 함부로 신전을 파괴했다가는 머리에 천벌이 떨어지는 정도로는 안 끝날 테니.”
조금 전 언덕을 올라올 때부터 이어져 있던 핏자국을 따라, 안으로 들어선 테세우스는.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거닐며 불안함에 입술을 꾹 씹었다.
다른 데는 몰라도 이 신전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 그놈이 여전히 최소한의 지성은 갖추고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끼이익-
“히이익! 겨, 결국 놈이 여기까지…….”
“다들 여기 계셨군요.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곧 핏자국이 멈춘 기도실 앞에 도착한 그는, 활짝 문을 열어젖히며 잔뜩 겁에 질린 사람들을 바라봤다.
“……테세우스?”
“진짜 테세우스 님이십니까? 그 망할 괴물을 해치우셨던!”
“아아! 살았어! 우린 이제 살았다고!”
기어코 그 괴물이 신전 안까지 발을 들인 걸까.
갑작스레 열린 문짝에 저마다 몸을 숨긴 그들은, 곧 영웅을 알아보곤 환한 눈빛으로 그를 맞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습니까? 또 미노스 왕은요?”
그에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테세우스는.
생각보다 적은 수의 시민과,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왕을 보고선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바깥에다 그렇게 도움을 요청해놓고, 혼자서 도망친 건 아니겠지.
“저, 그것이…….”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기도실 내 모두가 저마다 눈치만 살피고 있기를 잠시.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슬그머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테세우스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비교적 좋은 차림새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을 보고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미노스 왕께선 그 괴물에게 붙잡혀 끌려가시고 말았습니다.”
“……끌려갔다니,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죽지 않고 끌려가다니.
예상외의 답변에 멍하니 눈을 끔뻑인 영웅은, 곧 이어진 말에 곤란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한번 발을 붙이면 두 번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최악의 미궁.”
빌어먹을.
하필이면 그곳으로 끌려가다니.
“라비린토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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