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79)
신들의 배달기사(79)
“여기가…… 라비린토스.”
신전에서 미노스 왕과 미노타우로스의 행적을 확인하곤, 왔던 길을 되돌아 성벽 밖으로 나온 하준은.
드문드문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성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거대한 건축물에 다다랐다.
“미치겠구만. 설마하니 녀석이 다시 이 안으로 숨어들었을 줄이야.”
마치 고대 유적 같은 투박한 입구 앞에 선 테세우스는, 깊고 어두운 미궁 안쪽을 들여다보며 입술을 씹었다.
라비린토스.
미노스 왕이 아테네 최고의 명공 중 하나인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해 특별히 제작한 천혜의 미궁.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한 환경에, 수백 수천 갈래로 나눠진 구불구불한 길목 탓에.
‘사람 잡아먹는 미로’란 별명이 달라붙은, 명실상부 그리스 최악의 건물.
“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것부터 기둥에 잘 묶어놔. 혹시라도 풀리지 않게, 단단히 매듭지어 놓으라고.”
안으로 향하기 전.
신전에서 생존자들한테 빌린 물건을 꺼낸 테세우스는.
개중 하나를 하준에게 건네며, 돌돌 말린 실뭉치를 길게 풀었다.
“나중에 나올 때, 이 실을 써서 되짚어 나오라는 소리시죠?”
“……그래, 맞아. 안 그러면 남은 삶은 평생 저 안에서 헤매게 될 테니까.”
아리아드네.
미노스 왕의 장녀이자, 한때 제 연인이었던 크레타의 공주.
잠시 자리에 서, 이제는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인을 떠올린 영웅은.
그녀에게 배운 라비린토스의 공략법을 기억하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풀린 실을 내려다보았다.
화륵-
이윽고 기둥 한쪽에 실을 꽉 묶은 영웅은, 기름 먹인 천을 두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선 천천히 미궁으로 발을 내디뎠다.
저벅-
“으, 여기 되게 으스스한 것입니닷.”
“그러게. 뭔가 분위기가…….”
마찬가지로 테세우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하준은.
앞에서 횃불을 비춰줘도 여전히 어둑어둑한 시야에, 잔뜩 움츠러든 눈빛으로 조심조심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 셋이서도 옆으로 붙기 힘들 만큼 좁은 길목에, 군데군데 바닥에 질질 끌려 있는 핏자국.
어찌나 깊은지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 통로에, 음산하게 동굴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까지.
툭-
“테세우스 님?”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처음으로 맞닥뜨린 코너 앞에 멈춰 선 테세우스를 바라본 그는.
영 찝찝한 얼굴로 골목을 살피고 있는 영웅을 보고선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네.”
“이상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혹 저쪽에 미노타우로스라도 숨어 있는 걸까.
긴장한 표정으로 슈트를 매만진 하준은, 언제든 싸울 수 있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헬멧을 뒤집어썼다.
“공기가. 원래 이렇게 질척하지 않았는데.”
“……공기?”
스릉-
가만히 꺾어지는 길목을 살피던 테세우스는, 이내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잠시 횃불을 놓고선 검을 빼 들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아니었다.
그놈은 숨소리만 해도 최소 열 걸음 밖에서 들릴 테니까.
“앗!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겁니닷! 피 냄새, 보다는 조금 더 끈적거리는 느낌의……. 어라? 분명 어디선가 맡아본 기억이…….”
뚝- 뚝-
그에 무슨 소린가 하며 코를 킁킁거리던 루시오는, 순간 물 떨어지는 소리에 하던 말을 멈추곤 천장을 올려다봤다.
“……히야아아악!”
“흐어억! 뭐, 뭐야? 뭔데!”
이윽고 새된 비명에 덩달아 놀란 하준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위쪽을 가리키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저건…….”
흐느적거리고 질척이는 몸뚱어리에, 다닥다닥 붙어선 뒤룩거리는 십수 개의 눈깔.
철퍽-
사방에 달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꾸물럭꾸물럭 천장을 타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괴물을 마주한 하준은.
그 너무나도 익숙한 생김새에, 당황한 눈빛으로 동공을 마구 떨었다.
이 녀석들이 왜 여기에…….
스억-
툭-
그러는 사이.
재빨리 벽을 타고 뛰어올라 촉수를 베어낸 테세우스는.
반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진 이후에도, 잠시 죽지 않고 펄떡이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준, 이게 뭔지 알겠어?”
“예. 전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요. 지금 이건 꽤 조그마한 사이즈고, 큰 놈은 진짜 수십 미터까지도 자라는 녀석이긴 한데…….”
그놈을 어찌 잊으랴.
검 끝에 꼬챙이처럼 꿴 사체를 들어 보이며 제게 내미는 영웅을 보고선 가만히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해운대에서 터진 게이트와 헤라클레스가 지키고 서 있던 구덩이에서 본 녀석들을 떠올리며,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이놈들이 왜 라비린토스에?’
애당초 지상은 물론, 올림포스에서도 얼굴을 비친 녀석들이니만큼, 이제는 어디서 나온들 딱히 이상할 게 없었지만.
하필 헤파이스토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차에 마주하게 되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더니.
이번 일이 그 망할 일곱 머시기랑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이런 얘기였나.
‘……그런데, 얘네가 원래 몸뚱이를 잘리고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가?’
“으음. 그 말인즉, 앞으로 저런 녀석들이 몇 마리 더 튀어나올지도 모른단 얘기네.”
의문도 잠시.
앞에서 가만히 촉수를 살피던 테세우스를 돌아본 하준은.
예상치 못한 복병에 불안한 듯 잘근잘근 손톱을 깨무는 그를 보고선, 곧장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작은 녀석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예요. 여차하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셔도 될 테고.”
확실히 떼를 지어 몰려오는 놈들은 위협적이긴 했지만, 테세우스 정도라면 무리 없이 정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때 스쿠터로도 간단히 밀어버렸던 걸 생각해보면, 하나하나는 그리 강력하지 않은 모양이었으니까.
‘문제는 안쪽에 그 거대한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데.’
당시, 홀로 박성준을 제외한 ‘영원’ 길드의 주력을 모두 쓰러트렸던 보스를 기억한 그는.
여전히 고민이 많아 보이는 영웅을 보고선 뒷말을 삼켰다.
괜히 여기서 걱정거리를 더했다가 그가 돌아서기라도 하면, 저 혼자 그놈에 미노타우로스까지 잡아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일단, 혹시 모르니까 지금부턴 더 조심히 이동하는 게 좋겠어.”
저벅-
이만 피 묻은 날을 털고서 검을 집어넣고 다시금 횃불을 주워 든 테세우스는.
전보다 불을 더 높이 들어 올리고선, 살금살금 천장까지 살펴가며 골목을 돌았다.
크그그긍-
“어? 방금, 뭔 소리가…….”
“젠장! 벌써?”
뒤이어 테세우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찰나.
갑자기 흔들리는 건물에 우뚝 멈춰 선 하준은,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영웅을 보곤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예? 벌써라니? 그게 무슨…….”
“하, 하준! 벽이…… 벽이 움직이는 겁니닷!”
쿠구구구-
이내 루시오의 외침에 벽을 바라본 그는, 그 말마따나 저 멀리 바뀌어가는 지형을 보고선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사람 잡아먹는 미로’라더니.
설마하니 그게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그렇게 멀뚱히 있을 시간 없어! 둘 다 빨리 이쪽으로 붙어!”
“아, 네!”
다급한 목소리에 곧바로 뒤를 돌아본 하준은.
테세우스가 건너간 자리, 점점 엇갈리듯 좁아지는 통로를 보고선 다급히 그리로 몸을 던졌다.
아니, 몸을 던지려고 했다.
철퍽-
“뭐, 뭐야? 이 자식, 살아 있었…….”
쿠웅-!
막 바닥을 박차던 그때.
난데없이 위에서 날아든 뭔가에 흠칫 뒤로 물러선 그는.
곧 완전히 갈라져버린 길을 눈앞에 두고선, 새로이 들어찬 벽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빌어먹을!”
콰작-
그렇게 횃불을 든 테세우스와 헤어져 캄캄한 어둠으로 들어찬 길목에, 아까 떨어진 촉수를 지르밟은 하준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던 건지, 손쉽게 뭉그러지는 감촉을 느끼며 입술을 저몄다.
‘먼저 잘려 나간 몸뚱이가 살아 움직일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걸까.
하필이면 미로가 변하는 타이밍에 앞을 가로막은 녀석을 보며, 지그시 눈을 감은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주머니를 슬쩍 뒤적였다.
화악-
“하준, 이제 어떡할 겁니깟?”
“……일단, 테세우스 님부터 찾아봐야겠지. 이 큰 미궁이 한쪽으로만 길이 이어져 있진 않을 테니. 그것도 주기적으로 길이 변하는 놈이라면 더더욱.”
곧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로 주변을 밝힌 하준은.
터진 살점이 눌어붙은 밑창을 바닥에 긁으며, 조금 전 테세우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벌써라고 했었지.’
그는 라비린토스의 벽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 지형이 변하더라도 충분히 길은 이어져 있다는 것.
저벅-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만 남아 있다면야 딱히 두려울 건 없었다.
퀴네에도 슈트도, 아직 사용 횟수가 멀쩡히 남아 있었으니까.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테세우스 쪽이겠지.’
지금 이 미궁 안에 미노타우로스만 있었다면, 굳이 제가 함께할 필요조차 없을 터였다.
그랬으면 그가 녀석을 퇴치하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실이나 붙잡아주면 그만이었을 테니.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테세우스 또한 무언가 일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챘다는 얘기였다.
아마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금 그 촉수 때문만은 아니겠지.
처음 배를 정박하고 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영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뭔가 있어. 애당초 미노타우로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는 것부터…… 아니, 이 미궁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돼.’
“저기, 하준. 우리 꼭 걸어서 가야 하는 겁니깟? 스쿠터를 쓰면 조금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깟. 게다가 그 흐물흐물한 녀석이 나오더라도, 저번처럼 그냥 곤죽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을 테고 말입니닷.”
말없이 고민에 빠진 채 길게 늘어진 통로를 걷던 하준은.
누군가 제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곤 슬그머니 루시오를 돌아보았다.
“나도 그러면 편한데, 그랬다간 실이 끊겨버릴 거 아니야.”
“……그럼 테세우스 님을 찾을 때까지 이 커다란 미로를 계속 이렇게 돌아야 하는 겁니깟?”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가능한 한 빨리 만나길 비는 수밖…….”
쿵-
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에 지친 걸까.
작은 불만을 토로하는 녀석을 다독이며, 마저 발길을 재촉하려던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묵직한 진동에 황급히 입을 꾹 다문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선, 마침 코앞에 있는 코너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쿠웅-
조금 비좁긴 해도 저들에 테세우스까지, 어찌 셋이 나란히 설 수는 있었던 통로가 꽉 끼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크그긍-
길게 늘어져 바닥에 쓸리는 쇠사슬에.
두껍다 못해 차라리 둔기라 보는 게 나을 만큼, 크고 묵직해 보이는 양손도끼.
쿠우웅-!
컴컴한 어둠 속에서 벌겋게 빛나는 안광과 제대로 눈이 마주쳐버린 하준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실소를 터트리며,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시발.”
-크워어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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