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80)
신들의 배달기사(80)
-크워어어어억!
“루시오, 피해!”
“……에?”
쿠웅-! 쿠웅-!
스마트폰 불빛 탓일까.
마주치기 무섭게 곧장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미노타우로스를 본 하준은.
다급히 루시오를 옆으로 밀치며 퀴네에를 작동시켰다.
콰아아아앙-!
후드득-
“바, 바, 방금 뭡니깟?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깟!”
빠꾸 없이 그대로 머리만 내놓던 벽을 향해 들이받는 녀석을 피해, 멀찍이 몸을 던진 그는.
제 옆에 꼭 붙어있던 탓에 영문도 모른 채 밀쳐진 루시오를 데리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크와아아아악!
콰아앙-! 콰앙-!
부서진 벽 때문에 뿌옇게 인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
사라진 저들을 찾아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두르는 미노타우로스를 본 하준은.
도끼질 한 방에 족히 1m는 되어 보이는 두께의 석벽이 두부처럼 으깨지는 것을 보며,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휴, 가만히 있었다간 진짜 죽을 뻔했네.”
“미,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인 겁니깟?”
빌어먹을.
하필이면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혼자 날뛰는 놈이라니.
뭐가 그리 화나는지, 아직도 주체를 못 하고 그 큰 도끼를 한 손으로 붕붕 휘두르는 녀석을 얌전히 살피던 그는.
날이 닿지 않았음에도 무언가에 베인 양 군데군데 자국이 파이는 바닥을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이거야 원, 저래서야 기척이 없어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겠는데.’
평생을 거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미궁 속에 살아서 그런 걸까.
그렇게 멀리서, 보이지도 않는 적을 향해 한참 동안 난리를 피우는 미노타우로스를 지켜본 하준은.
이내 씩씩거리며 다시 돌아서는 놈을 보고선, 뭔가 요상함에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쿵- 쿵-
“잠깐만. 저 녀석, 팔이…….”
방금까지 죽어라 도끼를 휘두를 때는 스마트폰도 꺼놓았던 데다가 먼지가 워낙 자욱하게 피어있던 터라, 자세히 살필 수가 없었지만.
인제 보니 왼팔이 좀 흐느적거리고, 과하게 울룩불룩한 것이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저거, 아까 그 촉수 아닙니깟?”
“촉수?”
루시오의 말에 슬금슬금 거리를 두고 따라붙으며 녀석의 팔을 살피던 그는.
곧 그 말마따나 어둠 속에서 불그스름하게 비치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야, 저게?”
미노타우로스의 왼팔을 비롯해, 어깨와 목 일부까지 꾸물꾸물 뒤덮은 선홍색 촉수.
하준은 무심히 앞만 보고 어딘가로 발길을 옮기는 미노타우로스와는 달리,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며 사방을 견제하는 녀석을 보고선 가만히 눈살을 찡그렸다.
처음 천장에 조그마한 놈이 달려 있었을 때부터, 어딘가 더 큰 녀석이 숨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저런 데 달라붙어 있었을 줄이야.
“……하준. 어쩌면, 저 촉수가 녀석을 조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겁니닷.”
“뭐? 에이, 그럴 리가. 미노타우로스가 무슨 동네 고블린도 아니고.”
이윽고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시오의 말에 멍하니 눈을 끔뻑인 그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기엔 꽤 생기 있던 눈빛을 기억하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게 뭔 대단한 기생충도 아니고.
애초에 머리도 아닌 팔에 달린 놈이 누굴 부리고 있을 리가.
“그야 그렇지 않습니깟? 미노타우로스는 분명 테세우스 님께서 해치우셨을 텐데. 인제 와서 다시 말짱히 나타났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깟?”
“……그거야 뭐, 영웅들처럼 되살아나기라도 했나 보지.”
여전히 가시질 않는 의문에, 지그시 촉수를 살피는 녀석을 마주한 하준은.
뭐가 그리 문제냐는 듯, 마찬가지로 살아서 잘만 돌아다니고 있는 이아손과 테세우스를 떠올렸다.
그쪽도 이야기대로라면 이미 헤라클레스가 신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참 전에 죽었어야 할 인물들이었으니까.
“되살아나다니, 영웅님들이 말입니깟?”
“뭐? 그야 당연히…….”
하나 돌아온 반응에 도리어 당황을 감추지 못한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순수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루시오의 모습에, 조용히 뒷말을 삼켰다.
설마.
이쪽은 알려진 얘기랑은 좀 다른 건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앗! 왜 갑자기 말을 하다 마는 겁니깟! 궁금해 죽겠는 것입니닷!”
그에 마저 얘기해줄 때까지 안 떨어질 기세로 끈질기게 달라붙으려는 녀석을 밀어낸 하준은.
곧 뾰로통하니 삐져선 고개를 돌리는 님프를 보며 어색하니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야 워낙 신과 영웅을 많이 만나다 보니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원래는 누가 됐든 떨려서 감히 눈도 못 마주치고, 인사도 제대로 못 해 혀까지 씹으며, 그 자리를 평생의 영광으로 알 만큼 그들을 존경해 마지않던 놈이었다.
한데 그런 녀석한테 제가 우러러보는 영웅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라니.
그러기엔 세간에 퍼진 설화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팬심 가득한 아이에게 들려주기에는 다들 그다지 좋은 결말도 아니었다.
“가끔 보면 하준은 루시오한테 숨기는 게 너무 많은 겁니닷!”
“아서라. 다 널 생각해서 그런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인간치고 좋은 인간은 한 번도 못 본 것입니닷.”
“허, 참. 지가 사람을 만나봐야 뭐 얼마나 만나봤다고.”
투덜투덜.
옆에서 불만을 쏟아내는 루시오를 데리곤 계속해서 미노타우로스를 쫓던 그는.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님프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산 지, 이제 고작 한 달 좀 더 된 녀석이 말은.
“에헴! 이래 봬도 벌써 백 명은 넘게 관찰한 겁니닷. 그 알록달록한 상자에서!”
그러건 말건.
당당하게 가슴을 쭉 내밀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놈을 마주한 하준은.
어쩐지 요새 밤늦게까지 틀어져 있던 TV를 떠올리며 미간을 꾹 짚었다.
내 하다못해 이 OTT라도 다 끊어버리든 해야지.
‘좋아. 돌아가면 우선 새벽에 드라마부터 좀 못 보게 해야겠다.’
쿵-
-그륵.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꺾어지는 길목을 몇 번 돌다 못해, 두 번 정도 지형이 더 바뀌었을 때쯤.
드디어 걸음을 멈춰 선 미노타우로스를 본 그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녀석을 따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으으…….”
“……뭐야, 저거. 사람?”
“미, 미노스! 미노스 왕입니닷, 하준!”
미노스 왕.
양팔이 위로 묶인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노인을 바라보던 하준은, 이내 그가 누군지 알아본 듯 다급히 제 소매를 잡아당기는 루시오를 보고선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크와아악!
자신을 이 어둡고 칙칙한 미궁에 영영 가두어버린 아비에 대한 분노일까.
분풀이하듯 그 우악스러운 손길로 왜소한 몸뚱이를 꽉 쥔 채, 거칠게 흔들어대는 미노타우로스를 가만히 지켜보던 하준은.
어지럽다 못해 속이 다 뒤집힐 만한 충격에도 힘없이 신음만 흘리고 있는 미노스 왕을 보곤 입술을 꾹 물었다.
‘……이거 곤란한데.’
바로 어제.
자신이 헤파이스토스로부터 받은 부탁은, 크레타섬에서 왜 제물이 올라오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달라는 것.
‘단순히 따지자면 이번 주문은 이미, 진즉에 해결되고도 남아야 했는데 말이야.’
옛적에 테세우스가 해치웠을 미노타우로스가, 어째선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이제는 아예 미궁 밖으로 빠져나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평범하게 제물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를 찾는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됐어야 할 터.
하지만 그러지 않고 아직도 목적지가 미궁으로 찍히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여기서 더 알아내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전방 10미터……. 아무래도 저 할아버지한테 뭘 들어야 하는 모양인데.”
“듣다니, 뭘 말입니깟? 설마, 지금 미노스 왕을 구할 생각인 겁니깟?”
조용히 내비에 뜬 거리를 훑으며, 재차 노인을 올려다본 하준은.
그동안 괜히 바닥에 핏자국이 찍혀있던 게 아닌 듯, 쓸리고 까지고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몸뚱어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정도면 도리어 오늘내일하는 게 팔팔해 보일 지경인데.
나중에 정신이나 차릴 수 있으려나.
“안 됩니닷, 하준! 퀴네에는 어디까지나 착용자의 모습과 기척만 가려주는 걸 잊은 겁니깟? 설령 미노스 왕을 구해 도망치더라도, 그쪽은 계속 눈에 보이는 것입니닷! 스쿠터도 못 타는데, 분명 얼마 못 가 따라잡히는 겁니닷!”
말없이 허공에 걸린 미노스 왕을 올려다보는 하준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루시오는, 부디 제 걱정이 괜한 기우이길 바라며 그를 뜯어말렸다.
“어쩔 수 없잖아. 마냥 저 녀석이 다시 자리를 비울 때까지 기다리기엔, 저기서 한 번만 더 몸을 흔들었다간 노친네가 먼저 스틱스강을 건너게 생겼으니까.”
“그렇다고 미노타우로스랑 싸우겠다는 겁니깟? 그것도 한쪽 팔에 괴상한 촉수가 달린 놈을, 이 좁은 미궁에서 말입니닷!”
그에 이미 각오를 다진 눈빛으로 천장에 걸린 사슬을 살핀 하준은.
위험하다며 결사반대를 외치는 님프를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안 싸워, 안 싸워. 그냥 인질만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는 거야. 그때까지 잠깐 시선만 끌자는 거고.”
“……그게 싸우는 거지 않습니깟!”
결국 우려한 상황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루시오는, 아직도 제 아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괴물을 보고선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여튼 하준이랑 같이 다니면 목숨이 두 개…… 아니, 세 개 네 개라도 모자란 것입니닷! 그리고, 애초에 하준이 미노타우로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면 누가 미노스 왕을 옮긴단 겁니깟?”
문득 떠오른 의문에, 이 무모한 작전의 맹점을 찌른 님프는.
이내 지그시 저를 바라보는 눈길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루시오입니깟?”
뒤이어 묵묵히 고개를 주억이는 하준의 모습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은.
곧바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마, 말도 안 되는 겁니닷! 루시오 혼자 어떻게 이 두 배나 큰 인간을 데리고 가란 겁니깟?”
“왜 못 해? 너 장신이잖아.”
“……그게 이거랑 대체 무슨 상관입니깟? 애당초 종이 다르지 않습니깟!”
“에이, 그러지 말고.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거 알잖아.”
격렬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는 루시오를 보며, 찡긋 윙크를 보낸 하준은.
잠시 후, 진정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는 녀석을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면 오늘 고생한 값은 톡톡히 받을 겁니닷.”
“아무렴! 그걸 말이라고.”
툭-
그렇게 허락도 받았겠다,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이 슈트의 능력을 발동시킨 그는.
곧장 벽을 타고 공중에 뛰어올라, 미노스 왕을 매단 사슬을 꽉 붙잡았다.
“흡!”
끼기긱-
촤악!
이윽고 양손으로 쥔 녀석을 위아래로 쭉 잡아당긴 하준은.
무언가 늘어나는 소리와 함께 끊어지다 못해 박살이 난 쇠사슬을 보고선, 그대로 노인을 들고 바닥에 툭 내려왔다.
“자, 루시오.”
-그륵?
그리곤 예정대로 미노스 왕을 루시오에게 맡긴 그는.
난데없이 사슬을 끊고 허공에 둥둥 떠오른 제 아비를 보며,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미노타우로스를 뒤로한 채 재빨리 소리쳤다.
“뛰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