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85)
신들의 배달기사(85)
“하준, 하준! 저기 보는 겁니닷! 물고기가 엄청 엄청 많은 것입니닷!”
이른 아침.
약속대로 루시오를 데리고 아쿠아리움을 찾은 하준은.
입구에서부터 잔뜩 신난 얼굴로 주변을 돌아다니는 녀석을 보고선, 퍽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씨익 미소를 흘렸다.
“그래, 그래. 그렇다고 너무 뛰어다니진 말고. 다른 사람이랑 부딪칠라.”
도대체 이런 데는 어디서 알아가지고 그리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른 건지.
어느새 유리창에 착 달라붙어선 반짝이는 눈으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님프를 흐뭇하니 바라보던 그는.
이내 주말인 걸 감안하더라도 꽤 북적이는 내부에, 무언가 깨달은 듯 탄성을 내뱉었다.
오늘 무슨 이벤트라도 있는 건가.
자는 사이에 TV에서 광고라도 본 모양이네.
“와아…… 종류도 진짜 진짜 다양한 겁니닷. 매번 개울에서 본 거랑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닷.”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조 속에서 군집을 이룬 채 돌아다니는 알록달록한 작은 물고기들과, 이따금씩 창에 배를 붙이며 마치 눈처럼 생긴 콧구멍을 벌름이는 가오리.
거기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유유히 물살을 가로지르는 백상아리와, 거대한 고래상어까지.
이 많은 어류들이 한데 모여서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진기한 모습에,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린 루시오는.
난생처음 보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 한참을 그렇게 넋을 잃곤 수조를 올려다봤다.
“이야, 확실히 사람이 몰릴 만하네. 이렇게 다 모아놓고 보니 장관이구만.”
마찬가지로 옆에서 가만히 물고기들을 훑던 하준은.
생각보다 제법 볼만한 풍경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제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고래상어를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거의 레드 드레이크랑 세워놓아도 얼추 덩치가 맞겠는……. 응?’
“우, 우와악!”
“히야아악!”
투웅-
이윽고 점점 커지더니 그대로 벽을 들이박는 녀석을 본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화들짝 비명을 지르며 흠칫 자리에서 뒷걸음질 쳤다.
“까, 깜짝이야. 뭐야, 방금?”
다행히 진심으로 달려든 건 아니었는지 조금 울리고 만 유리를 살핀 하준은.
무슨 조련사에게 애교를 떠는 돌고래처럼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고래상어를 보며, 황당한 눈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엄마, 엄마! 저기 봐, 저기! 물고기들이 우르르 모여 있어!”
하나 당황도 잠시.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슬그머니 눈길을 돌린 그는.
저들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신기하다는 듯 제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를 보고선, 흘깃 다시 수조를 돌아보았다.
“후아!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한 것입니닷! 거기, 그쪽 때문에 깜짝 놀랐지 않습니깟!”
“……루시오?”
아까까지만 해도 수조 곳곳을 헤엄쳐 다니던 녀석들이, 하나둘 너 나 할 것 없이 루시오의 앞으로 다가오는 광경을 목격한 하준은.
마치 훈계를 하듯 조금 전 부딪친 고래상어를 나무라고 있는 녀석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앗! 하준, 걱정하지 마는 겁니닷! 방금 루시오가 따끔하게 혼을 냈으니, 이제 누가 놀라게 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닷!”
“어, 어? 아니, 잠깐만!”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며칠 전에 리자드맨들에게 하던 것처럼, 물고기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루시오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하준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선 녀석을 벽에서 떼어놓았다.
“왜 그럽니깟, 하준?”
“왜 그러긴 뭘 왜 그래, 인마! 지금 너무 눈에 띄니까 그렇지!”
뒤이어 뭐가 문제냐는 듯,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님프를 마주한 그는.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며 놈을 나무랐다.
“눈에 띄면 안 좋은 겁니깟?”
“그건…….”
돌아온 질문에 순간 턱, 하고 말문이 막힌 하준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며, 잠시 뒤 소곤소곤 입을 열었다.
“후. 잘 들어, 루시오. 내가 왜 너한테 이 모자를 계속 눌러 씌우는지 알아? 네가 아무리 날개를 눈에 안 띄게 숨기고 다닐 수 있다 하더라도, 혹시 누군가 네가 님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디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아직까지 설화 속 인물이 바깥에 나와서 활동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물론 누가 날개도 없는 루시오를 보고, 녀석이 님프인 줄 알아채고서 신고를 하겠냐마는.
세상엔 수많은 헌터들이 있는 만큼, 각양각색의 능력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특히 개중에는 실물이 아닌 사진만 보고도 상대의 과거를 읽는 사이코메트리나, 정체를 간파하는 부류도 있다고 하니.
만에 하나 루시오가 매스컴이라도 타게 되면, 또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순히 신기하다고 한 번 이슈가 되면 다행이요, 최악의 경우엔 몬스터로 분류돼서 잡혀갈지도 몰랐다.
뭐, 어지간하면 정말 그렇게 분류될 리는 없겠지만.
“그, 그럼 어떡합니깟? 이제 루시오 잡혀가는 겁니깟?”
“아니, 아직 그런 건 아니고. 앞으론 조심하라는 거지.”
표정을 싹 굳히며 주의를 주듯 가라앉은 목소리에, 울먹이는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루시오를 마주한 그는.
곧 피식하곤 웃음을 터트리며 괜찮다는 듯 녀석을 다독였다.
그래 봐야 겨우 물고기 몇 마리가 한군데 모여들었을 뿐이고, 벽이 튼튼한 건지 유리가 깨지거나 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괘, 괜찮으십니까, 손님?”
아니나 다를까.
이 어린애가 무얼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단순 사고라 판단하고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직원들을 바라본 하준은.
별문제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돌려보내곤, 집중된 시선에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휴, 정말 정말 다행인 겁니닷. 하마터면 루시오, 미치광이 과학자들한테 해부당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닷!”
적당히 수조에서 멀어져 동굴 같은 통로를 지나, 저 멀리 기념품 가게가 보이는 장소까지 도착한 하준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는 루시오를 보며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해부는 무슨.
이거 또 새벽에 영화 보다 잠들었나 보구만.
“그보다 괜찮아?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다 지나와 버려서야.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갈까?”
그리곤 들어온 지 고작 20분도 안 돼서 출구를 옆에 둔 님프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녀석을 살핀 그는.
아까 아쿠아리움 관계자가 사과의 뜻이라고 강제로 쥐여 준 티켓을 보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으응. 괜찮은 겁니닷. 물고기들은 이미 충분히 봤으니깟.”
그에 지그시 고개를 저으며 티켓을 들고 있는 손을 꾹 눌러 내린 루시오는.
대신 벽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하준! 루시오는 이거, 돌고래 쇼가 보고 싶은 것입니닷!”
“……돌고래 쇼?”
이윽고 녀석의 손가락을 따라 등을 돌린 하준은, 커다랗게 인쇄되어 있는 돌고래 쇼 관련 포스터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혹시 이거 때문에 그렇게 사람이 북적였던 건가.
“그렇습니닷! 오늘은 특히 그냥 돌고래가 아니라, 벨루가라는 하얀색 돌고래가 나온다는 겁니닷!”
좀 전에 시무룩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금세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본 루시오는.
잔뜩 기대된다는 얼굴로 포스터에 찍힌 벨루가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래, 가자. 마침 공연 시간도 딱이네.”
그렇게 루시오를 데리고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긴 하준은, 곧 시작인 듯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는 조련사를 보곤 서둘러 따로 필요한 티켓을 끊으러 갔다.
“벨루가! 완전 두근두근하는 겁니닷!”
혹 이미 만석인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판매소를 찾기도 잠시.
일전에 있던 소란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티켓을 알아본 직원 덕에, 도리어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그는.
공연 시작 전, 먼저 조련사와 함께 호흡을 다지는 벨루가를 발견하곤 환히 웃는 루시오를 보고선, 흐뭇하니 미소를 지었다.
“하준, 하준, 그거 알고 있습니깟? 벨루가는 예전에 어부들한테 인어로 착각당하기도 했다는 모양입니닷!”
“인어? 으, 그리 말하니까 어째 느낌이 좀 묘한데.”
인어라.
광고에서 나온 표어였는지 뭔지, 뜬금없는 이야기에 어색하니 웃음을 흘리던 하준은.
인어 하니 순간 머리를 스치는 아찔한 기억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혹시 세이렌 때문에 그러는 겁니깟?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는 것입니닷! 둘이 비슷하기는 해도, 엄연히 다른 종족이니 말입니닷!”
“……그런 거치곤 로렐라이의 황금 빗은 잘만 통하던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손님 여러분! 지금부터 환상의 벨루가 쇼를 시작하겠습니다!
삐익-!
이후로 몇 분 정도 지났을까.
공연장 내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과 동시에 시작되는 쇼를 마주한 그는.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수면 위로 튀어 올라 핑그르르 돌기도 하고, 동그란 링을 통과하기도 하는 벨루가들을 보며 제법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돌고래가 보기보다 엄청 똑똑한 동물이라던데.
꽤 어려워 보이는 묘기도 연달아 가볍게 성공시키는 놈들을 보아하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푸우우-
“흐앗! 차갓!”
“어푸후! 하하하하!”
그렇게 숨구멍에서 관객석으로 흩뿌리는 물도 맞아가며, 루시오와 함께 한창 공연을 즐기던 그때.
쿠구구-
“……어?”
“하, 하준! 방금…….”
갑작스레 흔들리기 시작하는 건물에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 하준은, 어딘가 불길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리며 재빨리 출구를 찾았다.
쿠구구구-
“지, 지진인가?”
“지진? 아니, 안내 방송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다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밖으로 대피해요!”
“비상구, 비상구 어디 있어!”
어째 불안한 느낌은 한 번도 빗나가질 않는 건지.
갈수록 심해지는 진동에 우왕좌왕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보며, 곧장 루시오를 감싸 든 그는.
다행히 바로 근처에 하나 위치한 비상구를 보고선, 꾸역꾸역 인파를 뚫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오려고 했다.
쩌적-
“꺄아악! 저, 저기!”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귓가를 파고드는 아찔한 비명 뒤로.
“허공이…….”
“게, 게이트다!”
“게이트? 아, 안 돼! 빨리 여기서 나가야…….”
마치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기 시작하는 허공과 함께, 장내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기 전까진.
“……망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