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87)
신들의 배달기사(87)
“……아틀란티스? 설마 그 아틀란티스 말하는 거야?”
마치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듯 커다란 돔 위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신비로운 풍경 아래.
사람들을 포로로 잡고 어딘가로 향하는 인어를 따라, 어두컴컴한 동굴을 벗어난 하준은.
자못 긴장한 얼굴로 이곳의 지명을 읊는 루시오를 보고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하준이 생각하는 아틀란티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 겁니닷. 루시오가 알기로 아틀란티스라 불리는 지역은 하나밖에 없으니깟.”
아틀란티스.
먼 옛날,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유럽 전역을 주름잡았다 전해지는 전설 속의 초고대 문명.
감히 올림포스의 비호 아래 있는 아테네를 침공하려다 신들의 분노를 사지만 않았어도,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리스와 로마를 넘어서는 초강대국이 되었으리라 여겨지던 비운의 도시국가.
하준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인 루시오는, 저 멀리 언덕 아래 펼쳐진 거대한 성벽을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유명하고 오래된 전설상의 도시라고 해서, 꼭 세이렌이나 미노타우로스보다 더한 괴물들이 나오리란 법은 없었지만.
문제는 자신이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해저 도시, 아틀란티스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소실되거나 신들에 의해 지워진 지 오래였으니까.
“수심이 깊은 바다보다 오히려 수심을 모르는 계곡이 더 위험하다고 한 것입니닷. 가능한 한 아까 그 인어들이 적이면 좋겠지만, 그쪽도 비석이 부서진 걸 모르고 있던 걸 보면…….”
깊어지는 고민에 눈살을 찌푸린 님프는.
조금 전부터 혹여 들킬까 적당히 거리를 두고서 인어들을 쫓아가고 있는 하준을, 꽤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물론 지금껏 그와 함께 던전과 그리스, 북유럽을 오가며 세워온 업적을 생각해보면 아틀란티스가 무어 그리 대수겠냐마는.
세이렌도 그렇고 저번 레드 드레이크도 그렇고, 하준의 전투 방식은 대부분 상대의 특성에 맞는 신기를 구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이곳 아틀란티스에서 무슨 몬스터가 나올지 모른다는 건, 이번에는 그 강점을 살릴 수 없다는 뜻이었고.
“으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커다란 성문 앞에 다다른 인어들을 살핀 하준은.
탁 트인 평야에 마땅히 몸을 숨길 곳이 없어 멀어진 그들을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어떡할 겁니깟, 하준? 동굴로 돌아갑니깟?”
“……글쎄.”
루시오의 말에 슬그머니 왔던 길을 되돌아본 그는, 이내 곤란한 얼굴로 헬멧을 만지작거렸다.
현재 남아 있는 퀴네에의 횟수는 단 한 번.
아직 날이 바뀌려면 족히 한나절은 남았으니, 여기서 능력을 쓴다면 당분간 맨몸으로 적진 한복판에서 버텨야 한다는 얘기였다.
고작 30분으로 저들을 따라 들어갔다가 무사히 도망쳐 나오기엔, 눈앞의 성이 무척이나 거대해 보였으니까.
“일단 힘닿는 데까진 움직여 봐야겠지.”
하나 그렇다고 인제 와서 그냥 발길을 돌릴 수는 없는 법.
약간의 망설임 끝에 퀴네에의 효과를 발동시킨 하준은, 언제 성안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그들을 바라보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설령 우려대로 안쪽에서 시간이 다 되어 고립되는 상황이 온다 해도, 까짓거 포인트 좀 주고 상점에서 일회용 퀴네에를 하나 더 구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충성! 고생하셨습니다, 대장님!”
그러는 사이.
인어들에게 이끌려 성문 앞에 도착한 포로들은, 생각보다 규모가 큰 도시와 군기가 바짝 들어간 경비를 보며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까부터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
이대로 들어가면 헌터들이 자기들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
“음, 도시 쪽은 아무 이상 없었나?”
“예,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한데 뒤쪽은…….”
의뭉스러운 눈으로 저들을 살피는 시선에 흠칫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갈수록 커져만 가는 두려움에 질끈 눈을 감았다.
“침입자다. 지상의 인간들이 어떻게 이 심해까지 내려온 건진 모르겠지만, 동굴 내부를 서성이고 있더군.”
“예? 지상이라니……. 헉! 그, 그러고 보니 꼬리가!”
대장의 말에 슬쩍 아래를 흘긴 경비는.
꼬리 대신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선 괴이한 생김새의 포로들을 보며,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모습은 한때 저들의 조상이자, 이제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인간과 동일했으니까.
“이, 인간! 대장님, 그러면 혹시 녀석들이…….”
“아니. 그러기엔 다들 너무 약해 빠졌더군. 하지만 다른 동료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은 옥에 가두어두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다.”
경비의 물음에 지그시 고개를 저은 대장은, 조금 전 훼손되어 있던 비석을 떠올리며 입술을 씹었다.
최근 들어 도시 곳곳에서 보고가 올라오고 있는 이상 현상들.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자칫 아틀란티스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문제에, 기어코 원인을 찾아 그 멀리까지 순찰을 나선 것이었건만.
건진 거라곤 무엇 하나 아는 것도, 힘도 없어 보이는 이 고문서 속 존재들뿐이라니.
“그럼 이만. 혹시 이놈들을 구하러 다른 인간들이 올 수 있으니, 당분간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대장님!”
노파심에 경고를 마치고 성안으로 들어선 대장은, 곧바로 포로들을 이끌고서 도시 구석에 있는 지하 감옥으로 발길을 옮겼다.
방금 이야기한 대로 놈들이 지난 이상 현상을 일으킨 주범이리라 생각되진 않았지만, 조심해서 왕국에 해가 될 건 없었으니까.
“……하준, 방금 들었습니깟?”
“일단 옥에 가두어두고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천만다행이지. 적어도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는 거니까.”
그렇게 대장 인어가 경비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다행히 늦지 않게 그들을 따라잡은 하준은, 아까 두 인어의 대화를 기억하며 조금은 안심한 듯 긴장을 풀었다.
“그게 아니라 그 인간들을 구하러 다른 인간들, 그러니까 헌터들이 올 수도 있다는 거 말입니닷. 보니까 언어도 잘 통하고, 우리가 게이트에 휘말리기 전부터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이거 잘하면 대화로 어떻게 풀어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깟?”
“대화로? 으음.”
돌아온 답에 다시금 곰곰이 내용을 상기한 그는, 이내 그 말뜻을 알아채곤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저들이 오기 전, 아틀란티스에선 이미 어떤 문제가 벌어졌고.
그 범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와중에, 게이트가 터져 사람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다.
하지만 정작 동굴에 쓰러져 있던 이들은 평범한 인간이니, 약해빠져 그런 문제를 일으킬 능력이 없었고.
혹시 모르니 진범이 밝혀질 때까지 구금만 시켜놓겠다는 상황이라.
“……이거 야단났네. 대화로 풀어볼 수 있고 자시고가 아니라, 큰일 나기 전에 어떻게든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거잖아.”
자기는 그냥 적당히 사람들이 끌려간 위치를 파악해 놓았다가, 나중에 헌터들이 오면 그 장소만 귀띔해줄 생각이었건만.
이대로 두었다간 민간인을 구출하러 온 헌터들과 인어들끼리 한판 붙었다가, 앞선 문제까지 덤터기를 쓸 판이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어째 사람들만 잘 구해내고 게이트를 닫을 수만 있다면야 상관없겠지마는.
“루시오, 아까 그 석판…….”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닷.”
문제는 이 인어들을 잡는다고 해서, 상황이 종료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였다.
처음 동굴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바로 뒤편에 세워져 있었던 거대한 비석.
만일 그 비석을 훼손한 놈들이 이 게이트의 진짜 보스와 관련이 되어있는 거라면, 헌터와 인어들의 충돌은 괜스레 이 게이트의 공략 난이도만 높여버리는 셈이었으니까.
저벅-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은 그저 주말에 마음 편히 아쿠아리움으로 놀러 나왔을 뿐인데, 터무니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 하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짚으며 인어를 쫓아 감옥으로 들어섰다.
“추, 충성! 경비대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포로다. 신성한 동굴 안을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더군. 너무 거칠게 대하진 말고, 적당히 방 안에다 구금시킬 수 있도록.”
“예? 그게 무슨……. 어? 이, 인간?”
이윽고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지하 깊숙이 내려온 그는, 끌고 온 사람들을 곧장 옥졸에게 넘기고선 돌아서는 녀석을 보며 주변을 슥 흘겼다.
‘딱히 고문 도구나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건 없는 거 같고. 죄수들 상태도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는 거로 봐선, 헌터들을 설득하기 어렵지 않겠어.’
혹 조만간 오해를 푸는 데 있어서 방해될 요소는 없을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쪽을 살피던 하준은.
다행스럽게도 나름 인도적인 환경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자초지종을 설명해서 어찌 헌터들을 잘 구슬린다 한들, 정작 무사해야 할 시민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오해고 나발이고 국물도 없었으니까.
“하준, 이제 돌아가서……. 하준?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깟? 성문은 저쪽인 것입니닷!”
뒤이어 천천히 지하 감옥을 빠져나온 그는.
그 위치가 나름 성문에서 가까웠던 터라 제법 여유가 남은 퀴네에를 보고선, 마저 경비대장을 쫓아 나섰다.
앞으로 대략 19분.
도중에 상점에서 레플리카를 하나 더 구매해 쓴다 치면, 한 시간 정도 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준!”
“알고 있어. 근데 대화로 한번 풀어보자며. 그러려면 우선 저쪽 얘기도 들어봐야 할 거 아니야. 괜히 이쪽만 평화롭게 나서려고 했다가 뒤통수 맞으면 어쩌려고.”
포로들을 인도한 경비대장이 다음으로 발길을 옮길 곳은 어딜까.
사방이 온통 인어로 가득한 이 아틀란티스에서 말짱히 두 다리로 걷는 인간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제 상관한테 향하지 않을까.
인어와 인간, 둘 사이에 생긴 오해를 풀기 위해선 어느 한쪽만 생각이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양쪽 모두 조금이나마 의향이 있어야 무얼 시도해보든 하지.
그렇기에 지금 인어들 쪽은 어떤지 확인해보러 가는 것이었다.
똑똑-
“이 시간에 누구냐.”
“경비대장 플롭스입니다, 대왕님.”
그길로 루시오와 함께 왕궁 안쪽까지 들어선 하준은.
보기보다 제법 높은 직급이었던 듯, 곧바로 알현실로 향하는 경비대장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쓸데없이 상관 여럿 거쳐 가며 시간을 낭비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
끼이익-
“……그래, 플롭스. 순찰 중에 이상한 점은 없었나?”
이윽고 저절로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왕을 마주한 하준은.
근엄한 목소리로 경비대장을 맞이하는 그를 보고선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크다.’
커다란 조개껍질과 반짝이는 진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옥좌.
족히 15m는 넘을 법한 그 커다란 자리가 갑갑해 보일 만큼 거대한 덩치의 인어.
“저쪽이 아틀란티스의…….”
띵동-
-배달의 만족, 주문!
“……응?”
그렇게 자못 근심 어린 표정으로 플롭스를 내려다보는 왕을 보고선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던 하준은.
이내 경쾌하게 울리는 알람을 듣고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깟, 하준? 또 일입니깟?”
“어, 어. 그런데…….”
이어서 슬그머니 들러붙는 루시오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주억인 그는.
잠시 손에 쥔 스마트폰과 눈앞의 대왕을 몇 번 번갈아 보더니, 곧 땡잡은 듯 씨익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밝아진 화면 가운데 떠오른 거리가, 채 10m가 되지 않았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