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89)
신들의 배달기사(89)
“빨리빨리 시민들 대피시키고, 게이트 근처에 아무도 못 다가오게끔 폴리스라인 쭉 둘러쳐! 저기 저쪽은 뭐야! 다들 들어오지 말라고 얘기 안 했어?”
“저, 그게…… 기자들인 거 같습니다. 분명 조금 전에 내보냈는데 어수선한 사이에 또…….”
서울, 잠실.
평화로운 주말에 예고도 없이 터진 비상사태에 황급히 현장으로 모여든 협회 직원들은.
건물 한쪽을 부수고 떡하니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게이트를 보며, 그 거대한 규모에 마른침을 삼켰다.
“뭐? 기자? 지금 피해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확인도 안 되는 판국에 기삿거리 하나 따겠다고……. 내가 저 새끼들을 아주 그냥!”
개중 바쁘게 현장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정리하던 중년인은, 저 멀리 슬금슬금 게이트가 드러난 쪽으로 다가서는 연놈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주말 아침.
가뜩이나 사람이 몰리는 역 앞에 놀이공원까지 끼고 있어, 통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건만.
저러다 무슨 사고라도 터지면 또 누구 탓으로 돌리려는 건지.
남성은 슬그머니 제 눈치를 살피더니 후다닥 기자들을 물리러 가는 부하 직원을 보며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 짚었다.
“후, 헌터들은 아직이야?”
“드러난 규모 때문에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된바, 일단은 최상위 길드들 쪽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만…….”
돌아온 답에 나지막이 한숨을 푹 내쉰 그는, 외벽을 무너뜨리고 빼꼼 삐져나와 있는 게이트를 흘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보통 게이트는 최소 발생 몇 시간 전에 마력이니 뭐니 하는, 헌터들이 다루는 특별한 힘과 비슷한 파장을 가진 에너지를 내뿜으며 경고를 보내오기 마련이었다.
협회에서는 진도계처럼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장비를 이용하여 미리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잡히는 세기에 따라 얼추 레벨을 측정하여 헌터들을 배치시켰고 말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온 거지?’
이따금씩 감지계에 잡히지 않고 불쑥 발생하는 게이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경우엔 대부분 그 변화가 미미해, 민간인들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수준이라든가.
감지계가 닿지 않는 산골짜기에 위치해, 물리적으로 감지가 되지 않는 경우뿐이었다.
한데 이 서울, 그것도 잠실 한복판에.
입구가 족히 10m는 될 법한 거대 규모의 게이트가 소리 소문 없이 터지다니.
‘현재 잡히는 신호로만 봤을 때, 최소 7레벨 그 이상. 규모로만 보면 저번에 해운대에서 터진 게이트보다 더 높다.’
물론 단순히 입구가 크다고 해서 난이도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전례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보는 쪽이 옳았다.
재빨리 시민들을 구출한답시고 어중간한 실력의 헌터들을 밀어 넣었다간, 괜히 희생자만 더 늘리는 꼴이겠지.
애당초 이 크기를 보면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겠지만.
“……젠장. 부디 희생자가 없어야 할 텐데.”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뜬 남자는, 아직도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었다.
난데없이 발생한 게이트에 외벽이 무너지고, 놀란 손님들이 대피하다 서로 밀치고 밟히며 몇몇 부상을 입었다 했던가.
다행히 사망자는 없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정도로 시민들이 밀집해있던 구역에 게이트가 터졌으니.
과연 몇 명이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을지, 도무지 가늠이 서질 않았다.
백 명? 이백 명?
어쩌면 오백이 넘을 수도…….
“과장님! 영원! 영원에서 왔습니다!”
“영원? 그쪽 오늘 인천으로 재조사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호들갑을 떨며 저를 찾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돌린 남자는, 저 멀리 번쩍이는 장비를 갖춘 헌터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조사를 마치고 협회에 보고하러 돌아오는 길에, 이쪽에 문제가 터졌다고 해서 급히 왔습니다. 영원 1팀장, 하도윤입니다.”
“아! 하도윤 헌터님!”
하도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마침 타이밍 좋게 모습을 드러낸 랭커를 마주한 그는, 그간 막막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일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 정도 규모의 게이트라면 못해도 어제저녁에는 감지계에 잡혔을 텐데.”
협회로부터 할당받은 던전의 재조사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속보와 불이 나게 울리는 전화기에, 그대로 팀원들을 이끌고 잠실을 찾은 도윤은.
슬그머니 건물 밖으로 삐져나온 게이트의 규모를 보곤, 따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섰다.
“하,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발생 직전까지 아무런 전조도 없었어요. 지금 휘말린 인원들이 확인된 것만 오십이 넘습니다.”
“……오십이요?”
확인된 피해자만 오십.
수십 년 전, 아직 게이트와 던전 그리고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와 대처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기를 제외하고.
협회가 들어선 이래, 가장 큰 피해자 수에 헛숨을 뱉은 그는.
뒤에서 술렁이는 팀원들을 진정시키곤 마저 얘기를 물었다.
“예상 난이도는 나왔습니까?”
“감지계에 잡힌 세기로는 못해도 7레벨 이상이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7레벨?”
이어진 답에 숨이 턱 막힌 도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7레벨이라면 그 어마무시한 팔괘로가 보스로 있던 화과산과, 일전에 해운대에 자리 잡았던 게이트와 같은 난이도였다.
당시 저들 영원의 길드장과 부길드장, 거기에 더해 부산에 있던 A급 6명까지 함께했음에도 자칫 공략에 실패하고 전멸당할 뻔했던 걸 생각해보면.
지금 있는 인원으로 이 게이트를 공략하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팀장님, 어떡하시겠습니까?”
“으음.”
팀원의 물음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린 그는, 늦어지는 대답에 안절부절못하는 협회 사람들을 보며 조용히 입을 떼었다.
“일단 길드장님께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할 테니, 그동안 우린 먼저 들어가 있는다.”
“예? 설마 저희끼리 먼저 공략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정보 수집과 민간인 구출이 목적이다. 추가로 인원이 오면 곧바로 문제없이 공략에 들어설 수 있게, 무리하진 말고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인다.”
안쪽에 있는 민간인들을 생각해, 가능한 한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판단을 내린 도윤은.
이 정도면 괜찮겠냐는 듯 협회 쪽 책임자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박성준 헌터님이나 백아린 헌터님께서 오시면 저희가 자세히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상대를 확인하곤, 팀원들을 이끌고서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이내 성준에게 간단히 연락을 마치고선, 허가가 떨어진 뒤 안으로 들어섰다.
우우웅-
“으, 여기는…….”
“다들 불 켜.”
화악-
일렁이는 공간을 지나고, 어지러운 머리에 휘청이는 팀원들을 다독인 도윤은.
초능력과 마법 계열 헌터들의 능력으로 허공에 떠오른 빛 덩어리들을 흘기며, 환히 밝아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팀장님, 아무래도 동굴인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일단 민간인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이동한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사주경계를 늦추지 말고!”
바깥과 마찬가지로 일렁이는 게이트를 뒤로하곤, 눈앞에 이어진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긴 그는.
중간중간 바닥에 남은 물 자국을 보고선, 방향을 잡고 민간인들을 찾아 나섰다.
“비, 빛이다! 빛이 보입니다!”
“탱커들 앞으로! 혹시 입구에서 무언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방패를 들고 이동한다!”
그렇게 조심조심 얼마나 걸었을까.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오는 통로에 잔뜩 긴장한 채 밖으로 나선 도윤은.
다행히 아무런 습격도 없는 입구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적어도 열 명이 넘는 팀 단위로 움직일 때 불편하기 짝이 없는 동굴에선, 무사히 벗어난 셈이었으니까.
“티, 팀장님. 저기, 위에…….”
하나 그것도 잠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위쪽을 가리키는 팀원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투명한 벽 같은 걸로 둘러싸인 돔 너머로 비치는 풍경에, 멍하니 입을 쩍 벌렸다.
“저게, 무슨…….”
짙은 군청색 바다.
그 가운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비정상적인 사이즈의 거대한 해파리와 어류들을 살핀 도윤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팀장님, 발견했습니다! 게이트에 휘말린 민간인들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옆에…….”
이윽고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이번엔 동굴 아래쪽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저 아래, 제법 높다랗게 올라선 성벽과 그 안에 광활히 펼쳐진 도시.
그리고 그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채 통제하고 있는 특이한 생김새의 몬스터들을 발견한 도윤은.
활짝 열린 성문을 향해 줄지어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이들을 보며 황급히 명령을 뱉었다.
“다들 견제해! 놈들이 민간인들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
“예? 하지만…….”
타닥-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옆에서 불만이 툭 튀어나오기도 전에 바닥을 박찬 그는.
인간의 상체에 물고기 같은 하체가 달린 기이한 괴물들을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조금은 성급한 결정일지도 몰랐지만, 지금 잡혀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놈들이 저 거대한 성벽 안으로 들어간 뒤론, 아예 게이트를 공략하지 않는 이상 빼내 오기가 쉽지 않을 터였으니까.
콰아아앙-!
“뭐, 뭐냐!”
“적습! 적습이다!”
높이 뛰어올라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착지한 도윤은.
뭉게뭉게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들려오는 얘기에, 순간 흠칫하곤 몸을 떨었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허, 헌터! 헌터다!”
“살려주세요! 흐윽…… 제발 살려주세요!”
의문도 잠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민간인들의 목소리에, 먼저 하나둘 뒤따라온 팀원들과 함께 사람들을 빼낸 그는.
슬슬 걷혀가는 먼지구름에 마지막 남은 시민을 뒤로 물리며, 재빨리 언덕을 뛰어올랐다.
아니, 뛰어오르려고 했다.
쐐애액-
카앙-!
“큭!”
“티, 팀장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경종에 다급히 몸을 틀어 옆으로 주먹을 휘두른 도윤은.
쇳소리와 동시에 위로 튕겨 나가는 팔을 보고선 입술을 물었다.
“역시 일행이 더 있었나.”
쿵-
뒤이어 둔탁한 무언가로 바닥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훅 밀려나는 먼지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적을 발견한 그는.
조금 전 사람들을 통제하던 녀석들과는 달리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덩치의 거대한 인어를 보고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전투 준비.”
“네? 그러면 민간인들은…….”
아직 사람들을 채 동굴 쪽으로 대피시키지도 못했는데 떨어진 전투 명령에, 의아한 눈으로 도윤을 살핀 팀원들은.
이내 심각하게 구겨진 그의 표정을 보고선 입을 다물었다.
“알아서 동굴 쪽으로 뛰라 그래.”
그에 나지막이 답을 덧붙인 도윤은.
단순히 마주하고 있음에도 비처럼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이를 악물며, 으스러져라 주먹을 쥐었다.
방금 단 한 번, 아슬아슬하게 창날을 쳐낸 것만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는다.’
시작부터 보스라니.
그저 지원이 오기 전에, 먼저 민간인들만이라도 어떻게 구출하려고 했던 그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