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9)
신들의 배달기사(9)
“어흐, 놀래라. 어떻게 그걸 하루도 안 지나서 걸릴 수가 있냐. 아침부터 죽는 줄 알았네.”
이른 점심.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하준은, 일어나자마자 오두막에 다녀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첫 끼를 해결하며 아직도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잘못하면 지금쯤 나도 접시 위에 올라가 있었을지도.”
기왕 늦은 거 아점으로 든든하게 채워야겠다 싶어서 찾은 백반집.
천벌을 받으면 돼지로 변한다고 했던가.
그는 일전에 도시락을 배달할 적에 봤던 경고 메시지를 상기하며, 어딘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돼지불고기를 훑었다.
“에이, 뭐 어때. 어쨌든 잘 넘겼으면 그만이지. 어우, 맛있어. 이모! 여기 밥 한 공기만 더 주세요!”
찝찝함도 잠시.
금방 기운을 차리고 밥을 싹싹 긁어 먹은 하준은, 여유롭게 계산을 마치고서 가게를 나섰다.
“그나저나 참 의외네. 아프로디테 님이 화장에 관심이 있으셨을 줄이야. 아니지, 오히려 미의 여신이니까 없는 게 이상한 건가?”
이윽고 이쑤시개로 이빨을 정리하며 스쿠터에 올라탄 그는, 조금 전 아프로디테와 오두막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얼굴에 화장이 필요한가 싶었으니까.
“아무튼. 덕분에 이렇게 새 일감도 생겼으니, 나야 이득이지만.”
[아프로디테에게 화장품을 배달해주십시오.] [제한 시간 : 24시간] [배달 팁 : 5,000p]새로운 의뢰.
하준은 잠깐 구석에 치워놨던 메시지를 다시 불러들이며, 또다시 큰돈을 벌어들일 기회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이런 걸 두고 바로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건가?”
이번에도 딱히 던전에 들어가든가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쉽고 간단한 요청에, 배달 팁은 또 5,000p나 되는 알짜배기 콜.
물론 지난 맥주 때처럼 아프로디테의 마음에 드는 화장품을 찾을 때까지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보상을 생각하면 그 정도야 불평할 거리도 아니었다.
딸랑-
올리브형.
스쿠터를 타고 금방 근처에 있는 매장을 찾은 하준은, 곳곳에 진열된 화장품들을 슥 둘러보며 천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 근데 정확히 뭘 사가야 되나 모르겠네.”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막상 여신이 쓸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다들 너무 저렴한 게 아닌가 걱정이었다.
애당초 가게부터가 명품이 아닌,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화장품들을 모아놓은 브랜드긴 했지만.
‘뭐, 우선은 가져가 보고. 별로라고 하면 그때 백화점이라도 들리면 되겠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나가기엔, 앞서 저렴한 카스만 찾던 헤파이스토스가 마음에 걸렸다.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들 하니까.
십 년, 이십 년.
길어봐야 팔십 년 같이 사는 사람들도 그럴진대, 수천수만 년을 살아왔을 두 신들은 오죽하겠는가?
“손님,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세요?”
“예? 아, 네. 선물 좀 찾고 있는데.”
짧은 고민을 마치고 이만 다시 진열대를 둘러보던 하준은, 곧 여기저기 서성이던 저를 발견하곤 다가온 직원을 보고선 고개를 주억였다.
모르긴 몰라도 화장품에 대해서 문외한인 자신보단, 이곳 알바생이 추천해주는 제품을 들고 가는 게 더 먹힐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니까.
“선물이라면, 여자친구분께 드리시는 걸까요?”
“여신님이요.”
“여신… 푸훗! 아, 죄송해요. 여자친구분을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부럽다.”
아니, 진짜 여신인데.
그녀의 물음에 덤덤히 아프로디테를 떠올린 하준은, 이어진 반응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친구분 선물이시면 틴트나 립스틱 같은 게 무난한데. 따로 생각해두신 물건이라도 있으실까요?”
“글쎄요. 제가 이쪽은 잘 몰라서. 가능하면 화장을 처음 하는 사람이 쓰면 좋을만한 게 없을까요?”
“아, 평소에 화장을 좀 가볍게 하시는 편이신가 보다. 그러면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이내 짧은 질문 끝에 물건을 고르러 가는 알바생을 뒤로하고.
하준은 적당히 주변을 살피면서 시간을 보냈다.
‘혹시 모르니까 스킨이나 로션도 같은 것도 좀 사갈까.’
딸랑-
“길. 물건 좀.”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진열대 앞에 서서 따로 사갈만한 게 있나 둘러보는 사이.
그는 옆에서 누군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슬그머니 몸을 비켰다.
“어? 어제 편의점에서…”
어디서 본 듯한 모습에 자칫 예의 없어 보이는 말투.
하준은 바로 전날에 과하다 싶을 만큼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여자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이번에는 또 길 좀 막고 있었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새치기?”
“하하…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좀 바빠 가지고.”
“…응.”
새치기라니.
상대 또한 저를 알아본 눈치에 어색하니 웃음을 흘리며 다시 사과를 건넨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그녀를 보고선 눈썹을 꿈틀거렸다.
‘거 좀 별난 사람이네.’
이윽고 여자를 피해 자리를 옮긴 하준은, 다른 진열대에도 충분히 놓여 있는 스킨이나 로션들을 보고선 살만한 게 있나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집에 있던 스킨도 거의 다 썼던가. 기왕 온 김에 내 것도 하나 사가야… 응?”
부스럭-
뒤이어 제가 쓸 건 크게 고민 없이 원래 쓰던 브랜드를 그대로 집어 들려던 찰나.
그는 근처에서 누군가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뒤를 돌아보았다.
“읏, 흐읏!”
방금 전 자신이 비켜줬던 자리.
하준은 진열대 앞에서 가장 위 칸에 손이 닿을 듯 말 듯 낑낑거리고 있는 여자를 보고선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별로 엮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조금 있으면 알바생이 와서 도와주겠지 뭐.
“안 닿아.”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
곧 새어 나오는 한숨에 저도 모르게 슬쩍 눈길을 준 그는, 무언가를 바라듯 지그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망할.’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긴 하준은, 아까 열심히 손을 뻗던 위치에 있는 수분크림을 집어 건네주었다.
“여기요.”
“…감사. 의외로 착한 사람.”
착하면 착한 거지, 의외는.
그래도 표현이 서툴 뿐인지, 제대로 꾸벅 감사를 전해오는 여자의 모습에.
하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스킨을 사러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했다.
“손님! 여기 이것들 중에 마음에 드시는 거로… 어머.”
그는 추천해줄 물건을 고른 듯 양손에 바리바리 화장품을 챙겨오는 알바생을 보고선.
저들을 발견하곤 어딘가 알겠다는 눈빛으로 미소를 짓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옆에 계신 분이 여자친구신가요?”
“아뇨, 그냥 손이 안 닿으셔서 뭐 좀 꺼내드린 거예요.”
“아! 죄송해요. 그런 건 저희가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무슨 엉뚱한 오해를.
곧바로 사과를 건네오는 알바생의 모습에, 힐끔 수분크림을 바구니에 담고서 다른 진열대로 향하는 여자를 곁눈질한 하준은, 생각보다 더 앳된 얼굴에 식은땀을 주륵 흘렸다.
저걸 여신이라고 했으면 범죄지, 범죄.
“그러면, 다해서 138,000원 되겠습니다.”
“예, 고생하세요.”
이후 직원이 가져온 화장품 중 몇 개를 골라 빠르게 계산을 마친 그는, 잠시 있었던 해프닝을 뒤로하고 매장을 나섰다.
아무리 제한시간이 널널해도, 백화점엔 영업시간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혹시 아프로디테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를 생각해서라도, 가능한 서둘러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부릉-
“…?”
하준이 떠난 직후.
그가 꺼내준 수분크림과 함께 몇몇 물건을 골라 계산을 하던 여자, 백아린은.
귓가에 울리는 스쿠터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빨리 바깥을 살폈다.
“저건…”
어제도 얼핏 들어봤다 싶었던 목소리.
그리고 얼굴을 가린 헬멧과, 멀어져가는 엔진 소리.
“던전.”
이틀 전.
타르타로스를 탐색하던 저들을 뚫고, 모두를 당황하게 했던 그 의문의 남자.
“찾았다.”
어느덧 하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아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 *
“배달뿐만 아니라 사용법까지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시고, 친절하시네요. 자, 여기 약속드린 답례에요.”
띠링-
[배달 팁으로 ‘5,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잔여 포인트 : 30,300p]“아이고, 친절하긴요! 당연히 알려드려야 하는 거지요.”
올림포스.
직원에게 추천받은 화장품을 싸 들고 곧장 아프로디테를 찾은 하준은, 예상외로 쿨하게 배달 팁을 쏴주는 그녀를 보고선 미소를 활짝 피웠다.
“후후.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그리고 헤파이스토스. 당신, 또 술 마시면 그때는 정말 잔소리로는 안 끝날 줄 알아요.”
“하하! 걱정은 허덜덜 마쇼. 내가 언제 당신이랑 한 약속 어기는 거 봤수?”
“…오늘 제가 여길 왜 찾아왔는지 잊었어요?”
“윽. 그, 그건…”
쿵-
이윽고 작별인사와 함께 헤파이스토스를 한 번 노려보고선 오두막을 나서는 여신을 보고선.
하준은 순간 느껴진 살기에 부르르 몸을 떨며, 꾹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흐어어. 하마터면 죽는 줄 알았구만.”
“진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뭐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관 앞.
하준은 뒷짐 진 손에 소주병을 든 채 잘도 코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뱉은 헤파이스토스를 바라보며,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이 사람도 참 대단한 사람이야.
아참, 그러고 보니 신이었던가.
“아무튼, 잘 넘겨서 다행이구만.”
“그러니까요. 저 아침에 돼지로 변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으응? 돼지로 변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이번 배달도 무사히 마쳤겠다, 슬슬 떠나기 전.
그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식은땀을 닦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와 몇 마디 잡담을 나눴다.
“으하하! 고모님이 그러셨단 말이요? 하긴, 그분 자식 사랑이야 워낙 유명하지. 페르세포네가 갑자기 사라졌을 땐, 정말로 지상의 식물들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고모님이요?”
천벌이라고 전부 그렇게 잔인한 것들은 아니라는 그의 이야기를 듣던 하준은, 그 사실보단 데메테르를 보고 고모라 부르는 사실에 더욱 놀라며 눈을 깜빡였다.
“어쨌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가는 거요? 오늘 진짜로 고마웠수다! 다음에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거 잠깐만 기다려보쇼!”
“예?”
뒤이어 신발을 신고서 지상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직접 문까지 열어주며 배웅을 하다 말고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헤파이스토스를 보고선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섰다.
“자. 어제 맡겼던 물건이요.”
“아니, 이걸 벌써 다 고치신 거예요?”
“흐흐. 설마 고치기만 했으리라고. 한 번 확인해보쇼. 아마 깜짝 놀랄 테니까.”
이내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돌아온 그로부터 깡통이 됐던 퀴네에를 돌려받은 하준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어서 살펴보라 손짓하는 헤파이스토스를 보며 조심스레 투구를 살폈다.
띠링-
“이, 이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