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92)
신들의 배달기사(92)
게이트 앞.
도윤이 남긴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내역을 보고선, 곧바로 길드에 남은 두 팀과 백아린을 이끌고 잠실에 도착한 성준은.
일렁이는 공간 너머로 계속해서 줄지어 나오는 시민들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분명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예, 예. 팀장님께서 빨리 민간인들을 대피시킨 다음에, 어서 길드장님을 모셔 오라고…….”
조금 전.
가장 먼저 겁에 질린 사람들을 이끌고 게이트 밖으로 나왔던 길드원을 돌아본 그는.
도윤을 비롯해 1팀 전체가 위험하다고 한 것과는 달리, 비교적 풀어진 분위기를 보며 알쏭달쏭한 눈빛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그새 전황이 바뀐 건가?
그렇지 않아도 급박한 상황에 일부러 인원을 떼어내어 지원을 요청한 걸 보면, 보통 위기가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만히 고개를 주억인 성준은.
고비를 넘긴 듯한 도윤과 1팀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어떻게?”
“으음.”
이윽고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아린의 물음에 잠깐 고민에 빠진 그는.
곧 빠르게 결심을 내리고선 말을 이었다.
“일단은 계획대로 진입해야겠지. 지금 당장은 분위기가 나아졌다 해도, 이후엔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까 협회 쪽에서 나온 책임자가 해준 얘기에 따르면, 못해도 7레벨짜리 게이트로 추정된다고 그랬던가.
과연 지난번에 해운대에서 본 게이트보다 훨씬 커다란 입구를 흘긴 성준은, 이내 제 뒤편에 쭉 도열한 길드원들을 항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게이트 안으로 들어선다! 다행히 예상보단 안쪽 상황이 괜찮은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들 긴장 풀진 말고.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항상 주의하고 지시에 따를 수 있도록!”
먼저 들어가 있는 1팀이라면 모를까.
급히 데려온 2팀과 3팀은 아직 난이도가 6레벨을 넘어가는 던전은 공략해본 경험이 없는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이번처럼 아무런 정보가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 몬스터라도 저레벨 던전이나 게이트의 보스급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자, 그럼…….”
우웅-
“휴, 드디어 모두……. 아! 기, 길드장님!”
그렇게 곧 구출한 시민들을 전부 내보낸 듯 인적이 끊긴 게이트를 보며, 길드원들을 이끌고 진입하려던 찰나.
뒤늦게 땀을 훔치며 바깥으로 나온 누군가를 발견한 성준은.
익숙한 얼굴에 잠시 나머지를 멈춰 세우곤 그를 맞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 예! 그게, 그러니까…….”
도윤의 지시로 아틀란티스에 있던 민간인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온 남자는, 길드장의 물음에 안쪽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았다.
축축한 동굴.
경사진 언덕과 포로들을 붙잡고 성으로 향하던 인어 무리.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도윤이 나서서 먼지를 일으키고, 시민들 모두가 멀리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끌 요량으로 싸움을 이어나간 것.
그리고 생각보다 강력한 몬스터들에게 자칫 전멸당할 뻔한 이야기와, 족히 20m는 넘을 법한 거대한 덩치를 가진 대왕 인어.
마지막으로 그가 싸움을 멈추고, 오해를 풀고 싶다며 대화를 청했던 사실까지.
“……그렇게 된 겁니다.”
길드원으로부터 모든 얘기를 전해 들은 성준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일그러진 공간을 올려다봤다.
몬스터가 사람 말을 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대화를 제안하기까지 하다니.
지금껏 집단생활을 하면서 나름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저들끼리 나름의 언어 체계가 잡혀 있는 녀석들은 종종 있었지만.
아예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데다,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일부러 동족을 물리며 대화할 의사를 비치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인어라.’
의아함에 불안한 듯 입술을 저민 성준은, 잠시 그에 대한 궁금증을 집어넣으며 나지막이 말을 물었다.
“한데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있는 헌터를 구해서 와달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게이트에 휘말린 시민들의 구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나오지 않고 있는 하도윤.
그런 도윤의 청이랍시고 요청한 사항에 고개를 기울인 그는, 통 알 수 없는 내용에 지그시 눈살을 찌푸렸다.
한쪽 팔이 부러지기까지 했다는 놈이 밖으로 나와서 치료받을 생각은 안 하고.
대체 왜 거기 그대로 눌러앉아서, 영문 모를 부탁을 늘어놓는 건지.
‘설마 정신계 공격에 당하기라도 한 건가? 일부러 한 명을 미끼로 보내서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깊어지는 고민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앞으로 얼마나 올지도 모르는 헌터들을 노리고서, 백 명이 넘는 포로들을 전부 풀어줄 이유가 없었다.
하면 어째서…….
“아! 그건 팀장님이 헬멧이라고 전해드리면 길드장님께서 아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헬멧? 아!”
뒤이은 말에 그제야 대충 가닥을 잡은 성준은.
이만 온몸에 자잘한 상처가 난 그를 병원으로 보내고선, 저 멀리 건물 바깥을 통제하고 있는 협회 관계자를 찾았다.
“사이코메트리, 말씀이십니까? 그건 왜…….”
그러곤 곧장 책임자에게 지원을 요청한 그는,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하니 묻는 과장을 보고선 난감하니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혼자서 팔괘로를 잡고 레드 드레이크까지 공략한 진짜 인물이 안에서 부탁해왔다고 하면 믿을까.
“아무튼 알겠습니다. 협회 소속에 감사 업무를 맡은 헌터가 있으니, 바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없이 그저 쓴웃음만 흘리던 성준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어딘가로 연락을 날리는 그를 보며,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얘기, 잘됐어?”
“다행히.”
용건을 마치고 다시 게이트 앞으로 돌아온 그는, 그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눈빛이 반짝이는 아린을 보고선 조용히 미소 지었다.
따로 다른 길드에다 수소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협회에 소속된 이를 불러준다고 하니.
사이코메트리가 가능한 헌터도 금방 자리에 도착할 터.
“가자. 팔 부러진 바보 만나러.”
처음 겁에 질려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던 녀석을 안내역으로 남긴 성준은.
아마도 당장은 전투가 없으리란 이야기에 한결 표정이 풀린 길드원들을 데리고선, 당당히 일렁이는 공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웅-
서울, 잠실 한복판에 등장한 초거대 규모의 게이트.
공략 시작이었다.
* * *
“그러니까 평소엔 얌전했던 사람들이, 이따금씩 난폭해져선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도윤에게 무엇 하나 부탁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온 하준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헌터가 도착하기 전, 본격적인 배후 찾기에 앞서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하나씩 둘러보며.
당시에 문제를 맡았다는 경비들을 찾아,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음, 그러면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처음엔 다들 붙잡아서 바로 근처에 있는 지하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때마다 방패로 둘러 세우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만 잠시 격리해두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릴 때까지라니. 그러면 난폭해진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단 건가요?”
“아, 네. 대략 30분 정도면 진정하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회까닥 미쳐버리는 것도 아니고, 30분이면 다시 정신을 차린다라.
거참 요상한 변화에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던 그는, 이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에 눈살을 좁혔다.
「그에 대해선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소신이 느낀 바로는 아마 아니리라 짐작되옵니다. 그간 저희 경비들의 눈을 피해 도시 일부를 파괴하고, 알 수 없는 힘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홀려 문제를 일삼았다기엔…….」
조금 전, 경비대장 플롭스가 알현실에서 보고를 올릴 적에 꺼냈던 피해 내용들.
개중 알 수 없는 힘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홀렸다는 말을 곱씹던 하준은.
곧 어딘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얘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들 중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소리……. 아! 그러고 보니 비교적 나이가 어린 인어들 사이에서, 미치기 전에 웬 소름 끼치는 노랫소리가 들렸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노랫소리!”
이어진 답에 눈을 번뜩인 그는, 여기저기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조각에 점점 형태가 잡혀가는 퍼즐을 보며 루시오를 돌아봤다.
“아닙니닷, 하준! 인어들은 인간이 아닌 물고기들을 부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깟.”
“하지만 그때 분명 몇몇 예외가 있다고 했잖아. 이번이 그 예외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게다가 엄연히 따지면 이쪽은 인간이 아니라 인어잖아, 인어.”
사람을 홀리는 노랫소리.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에 홀로 고개를 주억인 하준은.
마침 시민들이 회까닥해서 소란을 피웠다는 구역조차 죄다 한곳에 몰려있는 것을 보고선, 속으로 확신을 굳혔다.
“저기, 경비대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어쩌면 이 소동이 일었던 구역 근처에 배후가…….”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 부분이라면 이미 며칠 전에 부하들을 데리고서 샅샅이 주변을 뒤졌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해당 구역만이 문제라기엔, 다른 곳은 물론 도시 바깥에서도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고 말입니다.”
이윽고 무어라 묻기도 전에 칼같이 의견을 부정당한 그는.
절대 아니라는 듯 단호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플롭스를 보며 시무룩하니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다른 사건은 또 어떤 게 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대부분, 성벽 및 도시 바깥에 있는 성물들의 파손입니다만.”
하는 수 없이 제 추측은 잠시 마음속에 접어두고,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 물은 하준은.
탁자에 놓인 지도에서 성벽과 아까 지나왔던 동굴을 비롯해, 아틀란티스 바깥에 그려진 구역들을 가리키는 경비대장을 향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항시 경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도시가 아닌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라. 뒤늦게 도착하면 범인은 온데간데없고, 종종 희한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희한한 흔적이라면…….”
흔적.
잘하면 이번 사건의 배후를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증거에 눈을 반짝인 그는.
그렇지 않아도 채취해놓은 게 있는지, 부하들을 시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드는 플롭스를 보고선 마른침을 삼켰다.
부스럭-
“……어?”
“아앗! 저, 저건!”
뒤이어 보자기 같은 데 둘둘 싸여 있다 모습을 드러낸 증거품을 마주한 하준은.
순간 너무나 익숙한 그 생김새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흔적이란 녀석이.
“촉수?”
일전에 해운대에서 열린 게이트.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있던 바위산과, 라비린토스 안에 있던 그 망할 눈깔 괴물들과 똑같이 생겼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