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95)
신들의 배달기사(95)
뚝- 뚝-
“여깁니까?”
어두컴컴한 동굴 안.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성준은.
텅 빈 공동에 눈살을 좁히며 영수를 돌아봤다.
“……예. 분명 이쪽에 있어야 하는데.”
처음 게이트를 지나 발을 디딘 그 동굴 깊숙한 곳.
길드원에 인어들까지, 야밤에 거의 백에 달하는 인원을 이끌고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본 장소에 도착한 그는.
그럴 리가 없다는 눈빛으로 천장을 훑으며,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끔찍하게 생긴 그 촉수.
십수 개의 눈으로 보이는 어지러운 광경 탓에, 녀석이 꾸물럭거리며 지나온 길이 좀 헷갈리기는 했지만.
부서진 비석이나 특이하게 생긴 종유석 같은 구조물, 혹은 통로가 여럿 나 있는 갈림길 등을 기준으로 잡고 움직였으니.
도중에 길을 잘못 들었다거나 했을 리는 없었다.
“그냥 단순히 놈들이 거처를 옮긴 거 아닙니까? 그 증거품이란 것도 당장 오늘 잡은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성준의 만류에도 기어코 다친 몸을 이끌고 일행에 합류한 도윤은.
아까부터 불안한 표정으로 인어들의 반응을 살피는 영수를 보고선 재빨리 입을 열었다.
헌터들이야 그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별달리 의심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지만.
인어들 중에서는 어디까지나 대왕의 명령이 있었으니 같이 행동하고 있을 뿐, 낯선 종족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한 녀석들이 몇몇 보였으니까.
“확실히, 사흘 전에 보고받은 물건이긴 했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을 통솔하는 경비대장이 꽤나 이지적인 인물이란 것일까.
덕분에 잡음 없이 배후를 추적하는 데 문제가 됐을 만한 부분을 확인한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영수를 달래며 성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도윤이 말대로 그사이에 자리를 옮긴 걸 수도 있겠네. 다들 이 안쪽을 비롯해서 주변으로 이어지는 통로까지 샅샅이 수색한다!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하면 곧장 여기, 영수 씨한테 말씀드릴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인 성준은.
제 뒤편에 도열한 길드원들을 돌아보며 수색을 시키곤, 까득까득 손톱을 깨물고 있는 영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영수 씨, 조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예…….”
도대체 그 촉수에서 무엇을 본 걸까.
그때 비명과 함께 넘어진 뒤로부터, 쭉 안색이 창백한 영수를 흘긴 그는.
아직도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는 그를 보며 침음을 내뱉었다.
‘단순히 그 거대한 촉수 덩어리나 돔이 무너지는 광경을 봤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데.’
물론 그 둘만 해도 절망적인 광경인 건 다름없었지만, 협회 소속으로 B급에 올랐을 만큼이나 닳고 닳은 양반이 고작 그걸로 이성을 잃으리란 생각은 안 들었다.
분명 그것 말고도 무언가 더 있을 텐데.
꾸욱- 꾹-
“성준. 여기, 이거.”
잠시 어디 한번 추궁해볼까 고민하던 성준은.
그 순간 제 소매를 잡아당기며 바닥에 난 얼룩을 가리키는 아린을 보고선, 마음을 접었다.
자기도 여기서 죽고 싶은 게 아닌 이상에야, 숨겨서 문제가 될 만한 정보를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리가 없을뿐더러.
가뜩이나 아직 그 배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찾지 못한 마당에, 괜히 심적으로 몰아세우다가 불안 증세가 악화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음, 이건…….”
쯔억-
이윽고 아린이 발견한 흔적을 손가락으로 슥 훑은 그는.
짙은 얼룩 위로 묻어 나온 끈적끈적한 점액을 보며, 슬그머니 영수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저기, 저쪽입니다.”
곧바로 사이코메트리를 이용해 점액을 떨어트리고 간 녀석의 이동 방향을 추적한 영수는.
중간중간 눈에 띄는 흔적을 통해 방향을 다잡으며, 안내를 계속했다.
“대, 대장님! 이 안쪽은…….”
그렇게 얼마 뒤.
지금껏 지나온 통로들과는 달리, 좁아지는 입구 옆에 횃불을 놓아둘 수 있게 받침이 걸려있는 자리에 도착한 성준은.
하나둘 당황한 표정으로 경비대장을 돌아보는 인어들을 살피며,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봤다.
“혹시 아는 장소십니까? ……플롭스 씨? 플롭스 씨!”
돌아오지 않는 답에 조용히 눈살을 찌푸리며, 조심조심 허리춤에 매단 검을 향해 손을 옮기던 그는.
곧 깜깜한 길을 내다보며 얼굴이 허옇게 질린 플롭스를 보고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비, 비석…….”
“비석?”
이내 조그마한 목소리로 무어라 읊조리는 그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 성준은.
금방 정신을 차리곤 창대로 바닥을 찍어 인어들을 정렬시키는 녀석을 보고선, 흠칫 벽으로 물러섰다.
“더 이상 비석이 깨지게 두어선 안 된다! 경비대!”
“플롭스 씨! 잠시만……. 이런 젠장!”
그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병사들을 이끌고 급하게 안쪽으로 달려가는 플롭스를 보며 입술을 저민 그는.
곧장 저와 매한가지로 어리둥절하니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드원들과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가는 인어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아, 아아…….”
“대장님, 비석이…….”
길게 늘어진 통로를 지나, 아주 널따란 공동에 들어선 플롭스는.
보다 작은 덩치로 먼저 도착해 망연자실한 얼굴로 저를 살피는 부하들을 보고선, 부르르 주먹을 떨었다.
“……앞으로 몇 개나 남았지?”
“도시 바깥에 세워져 있던 비석이 다섯 개……. 이제 왕성 안쪽에 남아있는 것이 마지막입니다.”
쿠우웅-!
무언가 둔기에 맞아 부서진 듯,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튀어 있는 파편.
여태껏 훼손돼도 어느 정도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던 다른 비석들과 달리, 바닥에 박힌 뿌리 부분을 제외하곤 완전히 형체를 잃은 녀석을 마주한 그는.
돌아온 답에 신경질적으로 창대를 내리찍었다.
타다닥-
“바보 같은! 아무리 급해도 같이 움직여야지, 촉수가 아직 안쪽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다 각개격파라도 당하면 어쩌려…….”
그에 얘기도 없이 멋대로 뛰쳐나간 그들을 보며 잔뜩 불만을 늘어놓던 성준은.
또 무슨 짓을 벌였는지 저 멀리 뿌옇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언뜻 비치는 흐느적거리는 그림자를 보고선, 황급히 입을 열었다.
“……플롭스 씨! 위! 위쪽에!”
콰아아아앙-!
“이런 빌어먹을! 영원, 전투 준비!”
이윽고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과 동시에 귀를 때리는 폭음에 이를 악문 그는.
강력한 충격에 바닥이 진탕되다 못해 통로까지 튀는 파편을 손으로 쳐내며, 곧바로 검을 빼 들었다.
후우욱-
부러진 팔이 덜 붙은 도윤을 대신해, 백아린과 필두로 공동에 들어선 성준은.
서서히 가라앉는 흙먼지 사이로 모습을 비치는 인어들과, 천장에 달라붙은 선홍색 덩어리를 보고선 마른침을 삼켰다.
이전에 해운대에서 고전한 보스와 비교해 보더라도 두 배 남짓.
아니, 어쩌면 세 배 그 이상도 나갈 법한 거대한 덩치.
꾸르륵-
“저, 저게 무슨…….”
“히익!”
데구루루 사람 머리통보다 커다란 눈알을 뒤룩거리며 침입자들을 살피는 녀석과 눈을 마주친 헌터들은.
거의 축구장 절반만 한 너비의 공간을 반쯤 가득 채우는 덩치와, 기괴하다 못해 끔찍한 생김새로부터 오는 혐오감에 헛숨을 들이켰다.
‘……할 수 있을까?’
막상 눈앞에 서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흠칫 물러선 성준은.
이내 떨리는 검 끝을 바로잡으며 각오를 굳혔다.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일정 기간 클리어하지 못한 게이트는 그대로 자리에 굳어져 던전이 되고.
거기서 또 오랫동안 방치당한 던전은 재앙이 되어, 알집처럼 몬스터를 내뱉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덩치를 불리며 강해지는 보스.
모든 비석이 파괴되면 캄캄한 심해 속에 삼켜질 운명인 수중 도시.
지금 여기서 놈을 막지 못하면, 헌터들이 활동할 수 없는 심해 속에서 유유히 덩치를 키워나갈 녀석에게 서울이.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함락당할지도 몰랐다.
“백아린!”
“응.”
어느덧 전부 통로를 빠져나온 길드원들을 보며, 탱커들을 쭉 앞으로 세운 성준은.
그사이 저마다 창을 꼬나쥐고 강대한 적을 향해 날을 세운 인어들과, 조금씩 아름드리나무보다 두꺼운 촉수를 밀어내며 건재함을 비치는 플롭스를 보고선 바닥을 박찼다.
부웅-
콰가가각-
적막을 깨는 외침에 반응한 녀석이, 촉수 한쪽으로 바닥을 긁으며 채찍처럼 휘둘러왔다.
콰아아앙-!
거대한 촉수가 바닥에 뿌리를 박고 일렬로 세워진 방패를 때리며, 굉음과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
타악-
백아린과 같이 튀어 오른 촉수에 올라탄 성준은.
경계하듯 하나둘 제 쪽으로 모이는 시선과 동시에, 덩어리진 몸뚱이에서 쩍 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주둥이를 보고선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아린…….”
“어딜 함부로 한눈을 파는 거냐!”
쐐애액-!
푸욱-
이윽고 경비대장을 찍어 누르고 있던 촉수를 회수해 저들을 쳐내려는 듯한 움직임에, 슬쩍 아린에게 눈짓을 주기도 잠시.
섬찟한 소리와 함께 살덩어리를 찢어내며 깊숙이 박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저 아래 병사들에게서 창을 넘겨받고 있는 플롭스를 내려다본 그는.
곧 괴성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괴물을 보고선, 마저 촉수를 타고 올랐다.
-키에에에엑!
콰앙-! 쾅-!
인어와 헌터.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는 살덩이와, 뿌옇다 못해 거뭇하게 이는 먼지에도 여전히 저들 쪽을 주시하는 눈동자에 손잡이를 고쳐 쥔 성준은.
몸뚱이 주변에 똬리를 틀곤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촉수 하나를 주시하며 날을 세웠다.
휘릭-
“아린아!”
곧 뒤룩거리는 눈깔들 앞에 도착한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마지막 남은 촉수를 휘둘러오는 녀석을 보며 몸을 내던졌다.
부우웅-
쩌어어억-!
똬리를 풀며 원을 그리듯 날아오던 촉수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우뚝 멈췄다.
터어엉-!
사악-
이후 출렁거리며 뒤로 튕겨 나가는 선홍색 살덩이 위로, 시뻘건 검신이 허공에 선을 그었다.
툭-
“……후.”
그대로 바닥에 착지해 달뜬 숨을 훅 뱉어낸 성준은.
묻어 나온 살점에 번들거리는 날을 털며, 찌르르 울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촤아아악-!
-키야아아아아악!
뒤늦게 터져 나오는 핏물과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반투명한 액체에 비명을 내지른 괴물이, 곧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웅-
이어서 굉음과 동시에 매캐하게 일어나는 먼지구름 사이.
울룩불룩 몸을 일으키는 그림자 너머로 번뜩이는 안광을 마주한 그는.
대여섯 개 반으로 잘려 나간 눈 아래로 꿀럭꿀럭 내용물을 쏟으며 으르렁거리는 녀석을 보고선, 덜덜거리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꾸륵- 꾸르륵-
서울.
잠실 한복판에 나타난 초거대 게이트.
-크와아아아악!
공략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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