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ne Deliver RAW novel - Chapter (99)
신들의 배달기사(99)
“하준! 엎드리는 겁니닷!”
콰가가가각-
다급한 외침에 곧장 몸을 숙여 바닥에 바짝 붙은 하준은.
그 순간 제 머리 위로 거세게 불어닥치는 바람을 보며 식은땀을 주룩 흘렸다.
부서진 돔.
구멍 난 자리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거대한 무언가.
흐느적거리며 다시 하늘로 붕 떠오르는 말도 안 되는 사이즈의 문어 다리를 마주한 그는.
조금 전 일격으로 반파된 성벽과 무너진 건물, 그리고 잔해에 맞거나 깔린 인어들로 인해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도시를 조용히 훑었다.
“아아아아아악! 파, 팔! 내 팔이…….”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어머니! 어머니!”
곳곳에서 고통에 찬 비명과 비통함에 젖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항거할 수 없는 재앙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쓰러진 채 부둥켜안고서 신을 찾는 것뿐이었다.
“……이거 야단났네.”
온몸에 돋아 오른 닭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허리를 편 하준은.
시민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빙그르르 돌아 또다시 공격해오는 다리를 보며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철퍽-
이를 어찌해야 할까.
받아야 할 보상과 그러기 위해 감수해야 할 위험을 사이에 두고서 저울질하던 그는.
설상가상으로 바닥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물을 보고선, 빠르게 결정을 내리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을 올려다봤다.
“좋아. 도망치자.”
“잘 생각했습니닷, 하준! 목숨은 원래 하나뿐인…….”
띵동-
-배달의 만족, 주문!
그렇게 현명한 선택에 기뻐하는 루시오를 데리고서, 무너진 성벽을 향해 발걸음을 막 내딛던 찰나.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알림에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내 든 하준은.
지하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락도 하지 않았는데 주문 내용이 떠올라 있는 콜을 보고선, 지그시 눈살을 찌푸렸다.
“하준, 갑자기 멈춰서 뭐 하는 겁니깟!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콰아아아앙-!
어느덧 되돌아온 다리에 황급히 루시오를 붙잡아 휙 하곤 몸을 숙인 그는.
그 아찔한 순간에도 여전히 폰을 놓지 않곤, 화면에 적힌 메시지를 읽어 내렸다.
딸꾹-
“……하준!”
“어, 어?”
이윽고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면서도 저를 찾는 목소리에, 그제야 스마트폰을 집어넣곤 루시오를 돌아본 하준은.
잔뜩 성이 난 녀석의 얼굴을 보고선, 어색하니 눈을 끔뻑였다.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 겁니깟! 도망친다고 하지 않았습니깟? 그런데 왜 얼마 못 가서 또 한눈을 파는 것입니깟!”
“으음, 그게…….”
쏟아지는 질책에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이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히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루시오. 아무래도 나, 포기 못 하겠다.”
“……그게 무슨 소립니깟? 설마 크라켄이랑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깟?”
돌아온 답에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하준을 흘긴 루시오는.
방금 그 한 방으로 이미 걸레짝이 되어버린 도시를 둘러보며, 재차 다음 일격을 준비하는 괴물을 올려다봤다.
“미쳤습니깟! 하준이 아무리 그동안 세이렌도 잡고, 레드 드레이크도 잡고, 그 라비린토스의 악몽까지 잡았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깟! 메추리알로 돌멩이 치기, 아니, 명란으로 바위 치기인 겁니닷!”
침묵은 긍정이라고.
아무 말 없이 슬쩍 시선을 피하는 하준의 모습에, 답답하니 가슴을 두들긴 님프는.
그렇다고 저 혼자만 도시를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살짝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도대체 여기 있는 인어들이, 아틀란티스가 뭐라고…….”
“응? 뭔 소리야. 아틀란티스라니.”
“아틀란티스에 정이라도 들어서 지키려는 거 아니었습니깟?”
“……뭐? 푸하하! 그럴 리가!”
곧 앙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투덜거림에 고개를 기울인 하준은.
엇나가도 한참 엇나간 추측에 웃음을 터트리며 도리질 쳤다.
정은 무슨.
자기가 뭐 인어들이랑 몇 날 며칠을 동고동락하며 지낸 것도 아니고.
이제 고작 서로 얼굴 본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정 같은 게 붙었을 리가 있나.
“그냥 보상 때문에 그러는 건데?”
[아틀란티스에 들이닥친 재앙, 크라켄을 저지하고 도시를 구하십시오.] [제한 시간: X] [배달 팁: 크라켄을 쓰러트리는 데 소모한 포인트, 티탄 아틀라스의 신뢰, 티탄족의 우호]조금 전, 알림과 함께 어플에 떠오른 메시지.
배달 팁에 적힌 보상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틀라스가 보낸 듯 보이는 콜을 기억한 그는.
대왕으로부터 타내야 할 보상도 받고, 언제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신에 버금가는 존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거기다 이번에 들어가는 포인트도 전부 페이백해 주겠다는데. 여기서 물러서면 그건 남자라고 할 수가 없지. 더군다나 단순한 배후 찾기가 아닌, 저런 괴물로부터 도시를 지켜준다면 아틀란티스 쪽 보상도 좀 더 빵빵해질 테고.’
저울이 기울었다.
아까까진 굳이 무리해서 크라켄을 막을 이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명분과 실리도 접시에 올라온 셈이었으니까.
하물며 그게 놈을 꼭 물리치는 것도 아닌, 그저 저지하는 것에 그치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아, 아아아아! 도시가……. 백성들이!”
계속되는 소란에 저 멀리 왕궁을 나서 광장으로 뛰쳐나온 대왕이 보였다.
항상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어디다 흘리고 나왔는지 보이지 않았고.
커다란 덩치 탓에 쉬이 공격을 피하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덜렁거리는 오른팔 위로 무언가에 치여 살점이 뜯겨 나간 흔적이 선명했다.
“사, 사자시여! 부디, 부디 아틀란티스를. 당신의 후손들을 가엾이 여기소서!”
쿵-
이윽고 넋이 나간 얼굴로 반쯤 폐허가 된 도시를 둘러보다 저를 발견하곤, 곧바로 달려와 간절히 무릎 꿇는 대왕을 마주한 하준은.
시민들이 보는 와중에도 아랑곳 않고 고개를 조아리는 그를 보고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툭-
“저, 이건…….”
그에 지하 감옥에서 챙겨 온 물건을 꺼내 대왕에게 던진 하준은.
조심스레 물에 뜬 판자 위로 떨어진 노트를 집고선 제 눈치를 살피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서 그거나 읽고 계세요. 일 끝나면 바로 받을 수 있게, 보상도 미리 준비해 놓으시고.”
일기에 적힌 공주의 아빠인 그에겐 차마 맨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겠지만.
설마하니 지금 크라켄한테 도시가 다 작살나고 있는 상황보다 충격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 없는 얘기지만.
제 쪽도 만에 하나 크라켄이 물러갔을 때,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하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하기도 하고.
“아, 그리고 가능하면 왕궁 안에 있는 비석도 좀 지켜주세요! 그거까지 부서지면 다리 한 짝이 아니라 저 덩치 전체랑 싸워야 할 거 같으니까.”
“예, 예! 그리하겠나이다!”
마지막으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당부의 말까지 잊지 않은 하준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넙죽 예를 차리고 물러서는 그를 보며, 슬슬 상대해야 할 적을 올려다봤다.
꿀꺽-
압도적인 덩치.
그나마 다리 하나만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다행이었지만, 그마저도 두께만 족히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걸 보면 어찌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잔여 포인트: 3,072,000p]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의 얘기일 뿐.
본디 가지고 있던 100만에 더해, 지난 크레타섬의 문제를 해결하고 헤파이스토스한테 받은 보상까지.
하준은 도합 300만에 달하는 포인트를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상점을 열었다.
[포인트 상점]-황금 사과[1,000p]
-납 화살[10,000p]
-황금 화살[50,000p]
‘어디 보자, 뭐가 좋을까나.’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리스트에, 재빨리 쓸 만한 무기들이 모여 있는 구역으로 스크롤을 옮긴 그는.
예전과 달리 제법 늘어난 선택지를 보며, 지금 이러는 사이에도 이쪽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을 다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페이백될 포인트.
가격 걱정 없이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이제는 또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니.
“……응?”
그렇게 얼마나 내렸을까.
순간 강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무언가에 스크롤을 멈춘 하준은.
홀로 뒤편에 반짝이는 글귀가 붙어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선, 홀린 듯이 그리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스트라페 레플리카[3,000,000p] * 강력 추천 중!
[아스트라페 레플리카]-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다루는 번개. 그 레플리카. 번개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가공할 만한 위력을 자랑하나, 동시에 쥐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를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만큼 다루기 위험한 무기이다.
(남은 사용 횟수: 1)
아스트라페.
그 제우스의 무기임에도 사용자를 가리지 않고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도 안 되는 페널티 탓일까.
압도적인 성능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게 나온 녀석을 자세히 살핀 그는.
이내 강력 추천 중이라는 글귀마냥, 현재 상황에 딱 어울리는 신기를 보고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끽해야 표피나 좀 상할까 싶은 거대한 덩치.
뚫린 구멍 사이로 계속해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는 데다가, 아예 바깥은 심해로 채워져 있는 싸움 환경.
그리고 마침 공교롭게도, 제우스한테서 받은 보상으로 번개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제 몸뚱어리까지.
[잔여 포인트: 72,000p]번쩍-!
“읏!”
훅 하고 빠져나가는 포인트와 동시에, 새하얀 빛줄기 같은 것이 허공으로 모여들었다.
“하, 하, 하준. 그건 제, 제우스 님의…….”
파지지직- 파즉-
곧 기다란 창과 같은 형태를 잡으며,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새하얀 스파크를 튀기는 아스트라페를 쥔 하준은.
경악한 얼굴로 신기를 가리키며 뻐끔거리는 루시오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위험하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 가능하면 물에도 붙어 있지 말고.”
첨벙- 첨벙-
“대, 대왕님! 대왕님은……. 헙!”
그리곤 저 멀리 무릎 언저리까지 차오른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경비대장을 마주한 하준은.
광장 가운데, 번개가 내뿜는 빛에 둘러싸여 하얗게 번쩍이는 저를 발견하고선 딱딱하게 얼어붙은 그를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희 대왕 왕궁으로 돌아갔으니까, 가서 옆이나 지키고 있어라. 아니면 비석 지키는 데 한 손 거들어주면 더 좋고.”
그는 알고 있을까.
이미 제가 자신이 적은 노트를 들고서 대왕에게 넘겼다는 사실을.
뭐, 이제 겨우 동굴에서 돌아왔을 테니까 당연히 모르겠지마는.
부우우웅-
콰아아아아앙-!
계속해서 다들 엎드려 피하니까 방법을 바꾼 건지.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다리가 밑동만 남은 성벽과 건물들을 쳐부수며 땅을 부수고 들어갔다.
후드득-
그 충격파에 멀리 떨어져 나간 인어들과 잔해, 그리고 일자로 깊게 파인 구덩이를 본 하준은.
친절하게도 써먹기 편하라고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녀석을 보고선 곧장 그 위로 몸을 던졌다.
탁-
“이 자식 이거, 뒤에 보니까 왕궁도 반쯤 박살을 내놨구만.”
그간 애지중지하며 쌓아놓은 포인트.
“저러다 내 보물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파즈즈즉-
이제는 그 위력을 좀 맛볼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