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208
73. 인외마경 (2)
그런데 오르크의 형상이 그들이 알던 것과 조금 달랐다.
무언가 오르크 같으면서도, 오르크 같지 않다.
“저, 저건 마치…….”
평소 판타지 소설을 즐겨보는 박유원이 중얼거렸다.
“설마 하프 오르크?”
그의 말대로, 오르크는 오르크인데 반만 오르크인 듯한 외모였다.
흉측하긴 했으나 딱 반만 흉측했고, 덩치가 크긴 하지만 딱 반 정도만 우람했다.
인간과 오르크의 중간이었다.
[이봐요.]의사소통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이슬린처럼 오르크임에도 엘프들 특유의 의사소통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아이슬린보다 조금 더 명확하고 맑았다.
이 능력도 아이슬린과 엘프들의 중간 정도 되는 듯했다.
제임스가 중얼거렸다.
“애매한 오르크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오르크가 눈을 치켜떴다.
[애매하다니? 정말 무례한 인간들이군!]하지만 유진 일행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유진 일행은 당사자를 앞에 두고 쑥덕거렸다.
“오르크도 인간도 아닌 것이, 딱 중간이다.”
“애매하다, 애매해.”
“보세요. 화내는 것도 어색합니다. 화를 내야 할 것 같긴 한데, 어차피 덤벼 봐야 못 이기니 형식상 화를 내는 척만 하는 꼴이라고 할까요. 진심으로 화냈다간 도리어 맞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저런 어색한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유원아, 너 애들 괴롭혔어?”
“예? 아, 아닌데요.”
“그런데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비서 말이 맞다. 수상하다. 협객의 동료가 되기 부적합하다.”
“저는 그런 애들 도와줘서 아는 거예요! 그리고 임스 형님은 산적 주제에 사람 따지고 있습니까! 악인 출신 주제에!”
“옛날 일을 들추지 마라!”
“상철 형님, 좀 도와주지요!”
“나 어릴 때 괴롭힘 좀 당했는데, 너 같은 놈들이었…….”
“형님?”
유진은 자신의 동료들이 부끄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헛소리를 하는 사이, 유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오르크에게 다가갔다.
“나는 유진이라고 합니다. 오르크 선생, 당신은 누구입니까?”
유진 일행의 무례한 대화를 듣고 주춤했던 오르크가 유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엘라리오라고 한다.]“얼라리요?”
[엘라리오다.]“엘라리오.”
유진은 엘라리오라는 오르크와 악수했다.
“이렇게 된 김에, 길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길?]“예. 도와주시겠습니까?”
유진은 엘라리오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그는 애매한 오르크였다. 박유원의 말대로 딱 반만 오르크 같았다.
그 말은 곧, 다른 오르크들보다 더 이성적으로 보인다는 뜻과 같았다.
말이나 몸짓, 유진 일행의 무례한 말에 당황하는 표정까지, 한때 동료였던 아이슬린을 포함해서 유진이 만난 오르크들 중 가장 인간적이었다.
엘라리오가 턱을 쓰다듬었다.
[으으음…….]그 모습도 친근했다.
“형님, 이 오르크 형님이 뭐래요?”
“응?”
박유원이 건들거리며 다가와 엘라리오를 쳐다봤다.
덩치가 더 큰 엘라리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그래요. 해치지 않아요. 에이, 왜 그래?”
박유원이 씩 웃으며 엘라리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엘라리오가 목을 움츠렸다. 박유원이 억지로 어깨동무하며 히죽거렸다.
유진이 미간을 모았다.
“유원아.”
“예, 행님.”
“네가 말했던 과거가 의심스러워지는구나. 학교의 질서를 지키던 정의로운 학생이었던 게 맞느냐?”
“마, 맞습니다.”
“돌아가면 확인하겠다.”
유진은 박유원을 떼어놓은 다음 엘라리오에게 다가갔다.
“엘라리오 선생, 우리는 엘프들에게 가려고 합니다.”
[으음?]엘라리오가 미간을 모았다.
[엘프들은 왜? 여기 인간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엘프들에게 간다니. 당신들 혹시…….]“우리는 지구에서 왔습니다.”
엘라리오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유진 일행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긁었다.
[이런, 이런…….]“왜 그러십니까?”
[아…….]그는 혼자 한숨을 푹푹 쉬었다.
[무슨 일로?]“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은…….]엘라리오가 물었다.
[엘프들에게 가면 위험하다. 그들이 당신들을 환대할 리 없다.]“알고 있습니다.”
유진은 부드럽게 웃었다. 엘라리오가 그들을 염려해 주고 있었다.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가야만 합니다.”
[가야만 한다…….]“때로는 위험할 줄 알면서도 걸어야 하는 길이 있지요.”
[그래, 그렇지.]엘라리오는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명처럼.]“예, 숙명처럼.”
[어쩌면 이것도 숙명인가.]엘라리오는 유진에게 손을 뻗었다. 유진은 가만히 있었다. 엘라리오의 손이 유진의 어깨에 올라가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청량하고 맑은 기운이 유진의 몸을 훑은 것이다.
[좋다. 내가 안내하겠다.]“엘라리오 선생께서?”
[이 드넓은 마경에서 하필 우리가 마주친 것도 숙명이겠지.]“하늘의 이치에 대해 아시나 보군요.”
[오래 살면 그런 거지.]엘라리오는 턱짓했다.
[나를 따라와라. 내 집에 들렀다 가지.]“괜찮겠습니까?”
[물론이다.]엘라리오는 유진 일행을 인도했다. 나머지는 아직 엘라리오를 믿지 못했으나, 유진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박유원이 유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형님, 너무 쉽게 따라가는 거 아닙니까? 저러다 오르크 마을로 유인해서 우리를 공격하면…….”
“그럼 사람을 잘못 본 내 탓이겠지.”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떤?”
“형님은 보통 상대를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면서, 가끔 선생이라고 하시잖아요. 기준이 있습니까?”
“정해진 기준은 없다. 선생이라 불러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느낌이요?”
“가끔은 그의 처지가 안타까워 그럴 때도 있고, 정말로 선생이라 불러 마땅한 이도 있고.”
“엘라리오는 어느 쪽이죠? 궁금해서요.”
“그것은…….”
유진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선생이라 불려 마땅한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구나.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군.”
“그냥 느낌이군요.”
“그렇지.”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곧 엘라리오의 거처에 이르렀다.
유진 일행이 탄성을 냈다.
“이건…….”
마경의 나무로 만든 통나무집이었는데, 언뜻 보아도 잘 관리한 것이 느껴졌다. 땔감을 쌓아 둔 창고도 있었다. 직전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쪼개진 목재와 도끼, 톱 같은 게 마당에 기대어져 있었다.
여태까지 만나 온 오르크들과는 달랐다.
제임스가 감탄했다.
“산에서 살아 본 나는 알지. 엘라리오는 진정한 자연인이다.”
“형님, 산적질만 하고 잠은 호텔에서 잤다면서요.”
“조용히 해라.”
엘라리오는 짐을 챙기더니,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그가 말했다.
[출발하자. 내가 너희들을 엘프들에게 안내해 주겠다. 너희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겠지.]“고맙습니다.”
엘라리오가 유진 일행을 안내했다.
그들은 묵묵히 마경을 나아갔다.
식사를 위해 잠시 멈추었을 때, 박유원이 엘라리오에게 다가가 물었다.
“엘라리오 선생님.”
그는 유진의 호칭을 따라 그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왜 그러지?]“궁금한 게 있는데요. 무례일 수도 있는데, 한 번 여쭤봐도 될지…….”
[말해라.]“하프 오르크세요?”
박유원의 말을 들은 엘라리오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군. 나는 하프 오르크다.]“오오…….”
[놀랄 것 없다.]유진 일행이 강하다 보니, 마경을 나아가는 동안 큰 위기는 닥치지 않았다. 오히려 괴물들을 반기기까지 했다. 엘라리오의 안내를 따라 그나마 맛이 괜찮은 괴물들을 사냥하다 보니 식량에 대한 걱정도 덜었다.
오히려 저번에 겪었던 버섯과 바둑이, 폭풍우가 가장 큰 위기였었다.
[그 버섯을 먹었나?]“예.”
[그 버섯은 특이하게도, 같은 종이라도 각자 정신에 작용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것은 외모로, 어떤 것은 강함으로 어떤 것은 또 다른 요소로 사람을 차별하게 만들지. 재미있는 경험이었겠군.]“재미없었습니다.”
[바둑이라는 괴물은 원래 그런 녀석들이다. 워낙에 귀여워서 같은 괴물들도 속아 넘어가고는 하는데, 때가 되었다 싶으면 도둑질을 하고 사라지지. 참고로 그건 새끼가 아니라 성체다. 다 자란 괴물이 그렇게 귀여운 것이지.]“예?”
[간교한 괴물에게 걸린 것이다.]“크으윽, 바둑이가…….”
박유원이 좌절했다.
엘라리오는 마경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유진이 전에 만난 엘프들이나, 혹은 오르크들보다도 마경의 생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반쪽짜리 오르크인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여느 인간보다도 똑똑한 것 같았다.
“그 촉수들은 안 보이네요?”
[마경의 가장자리로 가고 있으니까.]“아…….”
[그것들은 마경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많이 분포한다. 괴물들도 덜 포악하지 않나?]“정말 그러네요.”
엘라리오의 말대로, 그의 인도를 따라 나아갈수록 점차 마경의 기후가 평온해지고 괴물들도 덜 흉측했다.
촉수 같은 끔찍한 존재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경은 침입자들을 중심으로 인도하는 성질이 있지.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너희들은 마경의 중심부를 계속 헤맸을 거다.]“어…….”
일행이 모두 유진을 쳐다보았다.
그는 별자리로 방향을 읽는다면서 어설픈 소리를 한 바 있었다.
엘라리오가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마경에서 죽을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것도 다 하늘의 인도지.”
유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엘라리오가 웃었다.
[맞네. 그래서 내가 자네들을 따라나선 것이지. 이런 우연이, 하늘의 인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나.]“엘라리오 선생님은 마치 유진 형님처럼 말씀하시네요.”
[어느 세상이든 이치는 서로 통하니까.]마경의 가장자리로 나아갈수록 날씨가 맑아졌고, 환경도 평화로워졌다. 괴물들이 나타나긴 했으나 마경 중심부에 있는 포악한 개체들에 비하면 순한 양처럼 느껴졌다.
평화로운 여정을 멈춘 것은, 갑작스레 날아든 화살이었다.
엘라리오와 이야기를 하며 걷던 유진이 소리쳤다.
“정지.”
그리고 그 순간, 화살 여러 발이 날아들었다.
유진이 검막을 펼쳐 엘라리오를 보호했고, 나머지 일행 또한 각자의 방법으로 화살을 쳐냈다.
“누구냐!”
박유원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다른 방향에서 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엘라리오가 말했다.
[엘프들이다.]“엘프?”
[마경의 외곽을 지키는 파수병들이다.]그의 말대로, 이윽고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가 많았다.
“어…….”
이종도의 기억을 제외하면, 유진은 이렇게 많은 엘프들을 직접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엘프 수십 명이 유진 일행을 포위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지?]책임자로 보이는 엘프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철판으로 된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검을 찬 채 유진 일행에게 활을 겨누고 있었다. 그가 시위를 당기며 경고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유진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라이예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종도의 기억을 통해 유진은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엘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엘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이예나 님을 어떻게 알지?]“나는 라이예나의 친구입니다.”
엘프가 피식 웃었다.
[헛소리군. 물러서라. 더 대화하지 않겠다.]“정말인데.”
[물러서라.]“라이예나에게 유진이 왔다고 전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대답 대신 화살이 날아왔다.
정령의 기운이 깃든 수많은 화살이 유진 일행을 향해 쏘아졌다.
온갖 속성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포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임스가 소리쳤다.
“모두 모여라!”
어설픈 공격이 아니다. 명백히 상대를 죽이기 위한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
유진 일행이 강하지 않았다면 모두 여기서 죽었으리라.
“내가 막겠습니다.”
유진이 일행 모두를 감싸는 거대한 기막을 펼쳤다.
엘프들의 화살은 벽을 뚫지 못하고 폭발했다.
사방이 빛으로 번쩍였다.
엘라리오의 눈이 커졌다.
[이 정도였다니…….]유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갈!
유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음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마경이 뒤흔들렸다. 화살을 메기고 있던 엘프들이 주저앉았다. 어떤 이들은 귀에서 피를 흘렸다.
유진은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섰다.
그가 살기를 일으키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마경 일대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앞서 유진과 대화했던 엘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가 착각했다. 일단 대화로 하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유진은 엘프에게 달려가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엘프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주먹으로 대화합시다.”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