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00)
전원 몰살당했다.
루스의 행방을 쫓으려던 사람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에,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유스틴은 그제야 내게서 다시금 눈을 돌리고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 아이의 행방을 뒤쫓는 건 목숨을 내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대공자님께서는 어떻게…….”
“에버딘 가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황제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언약을 맺었으니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대공가가 이렇게까지 힘을 키울 수는 없었을 거라며, 유스틴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하나 이 특혜가 제공되는 건 어디까지나 ‘에버딘’의 성을 가진 사람들뿐입니다. 거기에 스스로 가진 능력도 필요하죠. 아니었다면 아마 저도 제거당했겠죠.”
“……폐하께서는 인재를 좋아하시니까요.”
“맞습니다.”
딴에는 비아냥거리기 위해 꺼낸 말이었는데, 유스틴은 오히려 진심으로 수긍했다.
유스틴도 그러더니, 저 핏줄엔 ‘인재를 향한 강렬한 열망’ 유전자라도 담겨 있는 걸까.
“저는 폐하께 진실을 숨길 수는 있을지언정, 그가 내린 명령에 불복할 수는 없습니다. 폐하의 신변을 위협하는 행동 또한 할 수 없고요.”
“제게 걸린 방어 마법 같은 원리군요.”
마치 이 방어 결계가 내가 위협으로 판단하는 모든 것을 상쇄하는 것처럼.
내 말에 유스틴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이어 나갔다.
“어쨌든 그렇게 들킨 이후로, 저는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당신을 도울 수 없고요.”
“…….”
“하지만 당신은 에버딘이 아니고, 누구의 강제도 받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죠.”
또 한 번, 은빛 눈동자가 내게 닿았다.
하지만 이번에 마주한 눈동자는 평소와 달리 차분하지도, 담담하지도 않았다.
그 속에 담긴 건 오늘 내내 보여 주었던 죄책감이 아닌, 가끔 드러내던 희미한 애정도 아닌.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겁이었다.
“다가서서는 안 되는 진실에 거침없이 발을 들이는 당신이, 그로 인해 맞게 될 결말이.”
“…….”
“당신이야 그 방어 마법으로 안전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다를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 지크프리트 씨와 티나.
내가 루스에게 다가갈수록,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유스틴이 옳았으니까.
나는 나로 인해 그들이 겪게 될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폐하께선 저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아뇨, 적어도 당신이 그 아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실 겁니다. 폐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니까요.”
내 말에 그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불안을 일축했다.
“이번 일은 저의 독단으로 두었습니다. 마담 아페르타가 지닌 펜던트에 남아 있던 힘이 특정한 지역에 반응하는 걸 토대로, 홀로 조사를 나서다 발각된 것으로요.”
“실제로도 반응했었나요?”
“첫 조사 때는 그랬습니다. 그 후로는 곧 모든 힘을 잃었지만요.”
모든 힘을 잃었다는 건, 곧 드래곤의 사념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겠지.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도, 얼마 없는 사념을 끌어내 왔다고 했었으니까.
‘역시 그 드래곤이 솜니움의 수호룡이었구나.’
초대 황제와 계약을 맺어 영원한 풍요를 약속했다는, 바로 그 드래곤.
“게다가 당신이 알현실 앞에서 그렇게……, 쓰러졌으니. 앞으로 폐하께서는 당신을 그리 경계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유스틴이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 속에 담긴 뜻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차피 나는 곧 죽을 사람이기 때문에. 황제는 나를 굳이 경계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딱 타이밍 좋게 쓰러졌네요.”
“그런 걸로 농담하지 마세요.”
가볍게 말을 던지자 유스틴이 정색하며 반응했다.
나는 몇 번 어색하게 웃음을 흘린 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드래곤의 축복을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피붙이가 있다면, 보통은 그 아이를 황태자로 올리려 하지 않나요?”
그거야말로 황실의 권위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니까.
그런데 왜 황제는 루스를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에 가둬 놓은 거지?
“……그건.”
내 물음에 유스틴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황족 사이에서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더 있다고 했던 말,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내 결심한 것처럼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며 되물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건국 신화를 이야기하며 분명 그런 말을 했었지.
“직계 황족, 그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드래곤의 축복을 진하게 이어받은 황족은.”
곧이어 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성인이 된 후로 두 가지 소원을 빌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즉시 모든 퍼즐을 맞추고서 작게 중얼거렸다.
“……루스의 능력을 본인이 사용하기 위해서군요.”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 제 소원을 빌기 위해서.
아이의 모든 욕망을 거세하고, 배움을 차단하며 자신이 가르치는 것만을 세뇌한 것이다.
혹여라도 루스가 성인이 된 후 다른 소원을 빌지 않도록.
오랜 시간 자신이 아이에게 세뇌한 소원을 빌게 하려고.
“그건 부조리해요.”
생각하면 할수록 치미는 구역감에,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루스는 평생을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지내고 있었어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도 모른 채로요.”
“…….”
“항상 똑같은 음식에, 똑같은 하루를 보내기만 했다고요. 그런데 그게 다, 그게 다…….”
제 저택에서 자신이 원하는 디저트를 마음껏 쌓아 놓고 먹는 꿈을 꾸던 반스 남작의 아들이 생각났다. 밖으로 나가 최고의 전사가 되는 꿈을 꾸었던 그의 딸이 떠올랐다.
아이라면 응당 생각할 법한 꿈과 바람.
루스는 그조차 모두 빼앗긴 채 새카만 꿈을 꾸고 있었는데.
“……역겨워요.”
나는 결국 참을 수 없어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황제가, 그리고 그런 사람을 황제로 두고 있는 이 제국이 역겨웠다.
“아이의 일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스틴은 그 모든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저조차도 고통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도 당신이 이 일을 더 파고들었다가 괜한 상처를 받을까, 혹여 잘못되진 않을까. 그게 더 걱정됩니다.”
“……대공자님.”
“당신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압니다. 알지만…….”
나처럼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조차 제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유스틴이 간절하게 말을 건넸다.
“한 번쯤은 당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생각해 줄 수 없겠습니까?”
나는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 *
내가 루스를 데리고 나가게 되면 내 주위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동시에 루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를 챙겨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 두 가지가 양립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유스틴이 떠난 후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루스, 너한테 할 말이 있어.]여지없이 찾아온 밤.
나는 루스의 꿈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손을 붙잡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곧 꺼내 준다고 약속했었잖아. 그게 나는, 정말로 곧 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약속했던 건데.]네가 비로소 스스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 주었는데.
너는 하루하루 내가 자기를 데리러 올 날만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미안해, 루스.] [미에나?] [내가, 내가 지금 당장 너를 꺼내 줄 수 없게 됐어.]내게는 소중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너를 포기할 수 없는 만큼, 그들도 포기할 수 없어서.
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어.
[미안해, 루스. 미안해…….]실은 이런 식으로 무작정 사과를 빌려던 게 아니었는데.
제대로 된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이해시킨 뒤 사과하려고 했는데.
하염없이 미안한 마음이 목구멍을 막아서는 바람에, 기계처럼 미안하다는 말밖에 반복할 수 없었다.
심지어 분한 마음 때문인지 어느새 시야마저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내 힘으로는 모두를 지킬 수 없어서.
분하고 억울했다.
이 상황, 그리고 내 섣부름마저도.
[우, 울지 말아요.]그런 나를 바라보던 루스는 잔뜩 당황해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자그마한 손으로 나를 토닥이며 도리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저는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진짜예요. 어쨌든 저는 미에나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는걸요. 어, 이제는 이렇게 달래는 것도 할 수 있어요.]미련할 정도로 착한 아이가, 오히려 저는 괜찮다며 해맑게 미소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미에나가 저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한다고 해도, 저는―] [응?]나는 이어지는 루스의 말에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가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잠깐, 잠깐만.
[내가 널 왜 포기해, 루스?] [네?]왜 갑자기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 포기 안 해.] [그, 그럼 왜……?] [그거야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몇 발 물러서야 한다는 게 미안해서…….]괜한 기대감을 심어 줬잖아. 당연히 미안할 수밖에 없지.
[아, 아……!]그제야 내 말을 이해했는지, 루스가 가볍게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고서 그는 내 두 손을 붙잡더니.
[그런 거면 저, 잘 기다릴 수 있어요. 기다리는 거 잘해요!]언제나처럼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보다 더 밝게 빛나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런 루스를 끌어안고, 하얀 머리칼 위에 얼굴을 비비며 다짐했다.
[우리 포기하지 말자.]여기서 포기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플랜 B로 간다.’
네 뜻대로 되게 둘까 보냐, 이 미친 황제 놈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