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1)
한국인과 과로, 과로와 한국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반짝이는 건물이 아름다운, 야근과 야식의 나라 코리아 아니겠어.
하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다. 솜니움에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형광등도, 야근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 줄 족발이나 치킨 같은 야식도 없다.
물론 따지고 보면 얘는 밤에 잠을 자는 건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속임일 뿐이고.
[……그대를 진찰해 준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 [증상만 봐서는 과로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동안은 현실의 업무를 좀 줄였습니다.] [그만큼 꿈에서 더 열심히 했겠지.] [한시적으로 업무를 줄여 맡는다고 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의 총량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그러니까 그걸 왜 네가 다 하냐고. 대공님은 일 안 해? 바지 대공이야?
[가문의 후계자라면 응당 해내야 할 일입니다. 평소엔 이 정도로 힘들지도 않고요.]유스틴이 변명하듯 덧붙여 말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유스틴 에버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 시대는 아직 아동의 노동 인권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대공자가 저렇게 일하는 것도 이 시대의 기준에서는 퍽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게 맞긴 한데.
어쨌든 나는 아직 현대인의 사고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쟤는 이 세계인의 상식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일하고 있고?
그거 때문에 내 어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시질 못하고 있네?
[보통 그만큼 일하면 한 번은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나?] [당연히 합니다. 하루 정도는 온전히 휴식을 취하려 노력하고 있고요.] [그럼 지금은 왜 앓아누울 때까지 과로하고 있는 거지?] [그건 무역 협정 때문에……, 잠깐.]무심코 대답하던 유스틴이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슬며시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스스로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여전히 상체를 뒤로 젖힌 채 그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생각이 많은 것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고. 왠지 나랑 비슷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해서 얘를 더 챙기는 걸 테고.
물론 나는 쟤처럼 꽉 막힌 일 중독자는 아니지만.
[역시, 몸 상태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런 꿈을 꾸게 된 건가.]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유스틴이 깨달음을 얻어 후련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의심이 많은 것치고 순순히 얘기한다 싶더니만, 그렇게 정의한 거였냐.
[협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런 식으로도 발현되는군. 이제 알았어.]뭐래, 그냥 제가 당신의 꿈에 들어온 건데요.
[어째서 신의 사자라는 껍데기를 불러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접근이었어.]곧이어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단숨에 명료해진 그의 은빛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다가, 슬쩍 입을 열어 물었다.
정확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눈빛 속에서 명쾌함을 넘어선 광기를 엿보았기 때문에…….
[그걸 깨달아서 뭘 어쩌려고?] [어쩌긴.]이윽고 유스틴이 오늘 내가 마주한 것 중 가장 밝고 해맑은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협정 방향과 목적은 확실하니, 세부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서 최대한 이득을 보는 쪽으로…….] [뭐래, 진짜.]얘가 일만 하더니 진짜 머리가 그쪽으로 회까닥 돌아 버렸나.
더는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었기에, 나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유스틴을 뒤로 밀쳤다.
그가 밀쳐진 자리에는 어느새 내가 만든 침대가 자리해 있었다.
거기에 특별히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호텔식 차렵이불까지.
[뭐야?]뭐긴 뭐야, 이 녀석아.
천사표 처방전이다.
[분명 이건 내 꿈인데……?]아직도 제 마음대로 꿈을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한지, 유스틴이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를 향해 사람 좋게 웃어 주며 말을 건넸다.
[두려워 말라, 인간아.]해치지 않아요, 환자님. 잠깐 눈 감았다가 뜨면 모두 끝나 있을 거예요.
곧이어 나는 그가 누운 침대에 온갖 폭신폭신한 양 인형을 만들어 낸 후, 그중 하나를 유스틴의 품에 안겼다.
이미 그의 머리맡에서는 오르골의 자장가 소리가 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잘 들리진 않겠지만요, 환자님. 제가 숙면에 좋다는 2.0Hz 델타파까지 은은하게 깔아 뒀답니다.
한마디로, 아무리 일 중독자라도 안 자고는 못 배길 최고의 환경!
[푹 쉬거라, 아이야.] [아니, 무슨 이런…….]서늘한 은빛 눈동자가 반항하듯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몸 역시 억지로 일어나기 위해 버둥대고 있었다.
‘그건 안 될 일이지.’
고객님께서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눈 마사지도 해 드리겠습니다.
유스틴의 눈두덩이 위에 한 손을 올렸다. 동시에 그가 움찔 어깨를 떨고선 하던 행동을 모두 멈췄다.
옳지, 그래야지.
나는 그대로 그의 눈을 살살 토닥이며 속삭여 주었다.
[몸이 완벽히 회복될 때까지.]내 너와 함께하리라.
그러자 유스틴이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말을 내뱉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여기서 괜히 대답했다가는 노곤해진 정신을 깨울 수 있었기에, 나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 대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도 쉬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과로는 옳지 않습니다, 일 중독자 도련님.
무엇보다 네가 빨리 나아야 우리 엄마도 집으로 돌아온단 말이야.
그러니 착한 청소년은 이제 그만 잘 시간이랍니다.
* * *
“요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아가씨.”
내 콧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던 티나가 차를 따라 주다 말고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흥얼대던 가락을 멈추고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으응, 티 나?”
“이쯤 되면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한 수준이죠.”
“헤헤, 그런가?”
정말로 기분이 좋긴 하지.
나는 그녀가 따라 준 차를 한입 마시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요 며칠 흘러가는 상황을 잠깐 설명하자면, 어느 정도는 내가 생각한 대로 되었다.
패트릭 존슨이 드디어 움직인 것.
생각보다 빨리 탈레스 폐광산으로 찾아온 걸 보면 아무래도 조력자를 구한 듯싶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쨌든 패트릭이 움직임에 따라 꿈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또 다른 물고기들 역시 미끼를 물고 광산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미 보물도 얻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말이다…….’
다행히 제때 철조망과 순찰 용병을 배치한 덕분에, 탈레스 폐광산은 외부 침입 없이 안전한 상태.
다 망한 폐광에 왜 이런 경비를 세워 뒀을지, 그들이 수상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더 좋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되면 침입은 더더욱 어려워질 테고, 결국 이럴 바에야 이 광산을 헐값에 매입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겠지.
과연 ‘헐값’에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이시다기보다는 조금 사악해 보이세요…….”
“아냐, 티나. 이건 기분 좋음의 미소야. 내 진심이 보이지 않니?”
“아가씨가 좋으면 저도 좋아요…….”
곧이어 티나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는 살며시 뒤로 물러났다.
나는 진심 백 퍼센트의 미소를 유지한 채 지저귀는 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내 기분이 좋은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스틴 에버딘 대공자가 드디어 건강을 회복해 어머니가 저택에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도 내 공이 크다.
최대한 빨리 낫게 하겠다고 며칠 내내 유스틴 꿈만 집중 마크했거든.
예를 들면 이런 거.
‘이 간지러운 소리는 대체 뭡니까?’
‘아아, 모르는가. 이건 내가 있는 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에이―에스―엠―알이다.’
‘에……, 뭐요?’
아니면 이런 거?
‘옛날 옛날 어느 한 옛날에, 잠을 죽어도 안 자는 아기 염소가 살고 있었어요.’
‘동화책을 읽을 나이는 지났는데요.’
‘그렇다고 이론서 읽어 주면 안 자고 경청할 거 아니야. 잠자코 들어.’
심지어는 혹시나 유스틴이 아예 잠을 안 자겠다고 할까 봐, 어머니께 직접 친필 편지까지 보냈다.
[사랑하는 어머니!대공자님께서 저와 증세가 비슷하다니, 이 소녀 안타까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겠어요. 제 병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처방을 적어 보내 드리니 꼬옥 참고해 주세요!>
라고.
당연히 처방은 수면제다.
꿈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으니, 분명 잠을 줄일 게 분명했거든.
그쪽 의사도 이게 과로로 인한 병인 걸 알고 있으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준 모양이고.
그렇게 잠든 유스틴을 나는 꿈속에서 또 한 번 재웠다. 그것도 매일.
솔직히 이런 효녀 또 없을 거예요, 어머니. 세상의 어느 누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생판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제 시간을 써 주겠어요.
물론 얼굴은 봤지만.
어쨌든 이런 남모를 노력이 통한 바, 오늘이 바로 어머니께서 저택으로 돌아오시는 날 되시겠다.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오늘은 안에 있고 싶지 않더라고.
“날씨 참 좋다, 그치?”
“그러게요.”
“어머니가 곧 도착하시기만 하면, 아주 완벽한 날이 될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