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10)
설마 그때 그 반스 남작 일가처럼 꿈에서 깨지 못하는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
‘……그건 아니야.’
잠깐 상황을 따져 본 후, 나는 곧 간단하게 결론지었다.
이건 그때와 같은 저주가 아니다.
그랬다면 지금쯤 나는 꿈 통로가 아닌, 나도 눈치채지 못할 진짜 ‘꿈’에 빠져들었겠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곧바로 이상함을 눈치챘을 테고.
‘그냥 의식이 안 돌아온 거야.’
평소 같았으면 누군가의 꿈에서 튕겨 나올 때 같이 의식이 돌아왔겠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는 힘든 거군.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내 상태가 정말 심각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스트레스받고 쓰러질 때부터 대충 예상은 했지만.]그래도 이런 식으로 입증되니까 조금 기분 나쁘네.
정말로 끝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나는 허허벌판처럼 펼쳐진 어둠을 응시하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염없이 이렇게 시간을 축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르신의 꿈에 놀러 가기엔, 여기서 또 한참을 걸어야 해서 가는 중간에 깰 수도 있단 말이지.
‘옛날처럼 다른 사람들 꿈이나 구경해 볼까.’
요즘에는 루스 가르치랴 사건 해결하랴 바빠서 그것도 잘 못 했는데.
[……아냐, 됐다.]나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은 딱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꿈을 구경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오랜만에 플라네타륨이나 가야지.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플라네타륨에 발을 들이고서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곳에 머무는 빈도도 줄어들었으니까.
[어우, 구닥다리 냄새!]나는 부러 과장을 떨며 플라네타륨을 쭈욱 훑어보았다.
전생과 이번 생의 정보를 한데 모아 만든 서재.
‘여기에 있는 지식은 대부분 루스에게 전달해 줬고.’
천장이 심심해서 넣어 본 지구의 별자리.
[이건 이제 바꿔야겠다.]생각을 마치고 손가락을 튕기자, 기존에 별자리를 이루고 있던 별들이 천천히 흩어졌다가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마주한, 내가 직접 관찰한 이 세계의 밤하늘.
그러고 보면 지난 가족 여행 때도 다 같이 밤바다 앞에 앉아 별을 구경했었지.
‘이런 곳에 함부로 앉다간 옷이 망가지는…….’
‘여행의 낭만, 여행의 낭만.’
깔끔한 체하는 유스틴을 모래사장 위로 밀치듯 앉히기도 하고.
‘엄마, 티나, 이거 봐요. 제가 만든 조개껍데기 목걸이예요!’
‘어머나, 깨지지 않게 조심히 차고 다녀야겠구나.’
괜히 들뜬 마음에 조개껍데기를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저건 우르드 자리란다. 저 끝에서 시작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머리가 없는데요?’
‘그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지. 거기엔 전설이 있는데…….’
아버지와 지크프리트 씨에게서 별자리와 관련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즐거웠는데.]이제는 그런 식으로 여행 못 가겠지. 그건 조금 아쉽네.
일에 빠져 사는 바람에 정작 부모님께는 신경도 제대로 못 쓰고.
그 와중에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두느라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셨으니.
[……꿈에 들어가 볼까?]그러고 보니 가끔은 자기 꿈에 들어와 달라고 하셨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위로 쭉 꺾었던 고개를 원위치하고서 두 눈을 깜빡였다.
아까 플라네타륨에 들어오기 전에 봤을 때, 아직 어머니의 문이 남아 있었는데.
나는 곧장 플라네타륨을 벗어난 뒤, 근처에 자리한 문 앞에 섰다.
[레이나 시두스>곧 깨어나실 것 같긴 하지만, 어차피 잠깐만 들어갔다 나올 생각이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처음에는 모습을 숨기고 들어가야지.’
괜히 남들에게 밝히기 싫은 꿈을 꾸고 계셨다가 나한테 들키면 부끄러우실 테니.
준비를 마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천천히 어머니의 꿈속에 발을 들였다.
뒤이어 마주한 건, 너무나도 익숙한 시두스 저택의 전경이었다.
[정신이 없네, 정신이 없어.] [또 한 소리 들으실 거야.]사용인 두 명이 조잘대며 내 앞을 지나쳤다. 꽤 빠른 발걸음이었으나, 그들의 안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저택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용인들을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다들 바빠 보이네.
‘동시에 행복해 보이고.’
대체 이게 무슨 꿈이길래 다들 이렇게 즐겁게 일을…….
[미에나는 아직이니?]바로 그 순간,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당연하게도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분명 오늘만큼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어머니가 고개를 설설 내저으며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기억을 기반으로 한 꿈은 아닌 것 같은데.’
사용인이 이렇게 많은 걸 봐서는 엄청 옛날이거나, 가문이 다시 부흥한 최근의 일이어야 할 텐데.
옛날에도 지금도 이런 식으로 엄마가 나를 깨우러 온 적은 없었으니.
‘그나저나 대체 무슨 날이길래 일찍 일어나라고 하는 거지?’
대체 무슨 꿈인 거야?
[미에나!]곧이어 내 침실에 다다른 어머니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사납게 외쳤다.
[내가 늦잠 자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앞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당신 우리 엄마 아니지.
우리 엄마는 나한테 늦잠 가지고 뭐라 한 적 없는데.
‘아니면 평소에 이렇게 잔소리하고 싶으셨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빼꼼 내민 찰나였다.
[헤헤, 그래도 시간 안에 준비 끝났는걸요. 이 정도면 완벽하지 않나요?]이번에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의 여린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앞에 선 사람을 마주하고서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은빛에 더 가까운 잿빛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 잘못을 무마하려는 듯 배시시 웃는 미소까지.
내 침실의 주인인 만큼,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나였다.
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럼 당연히 시간을 맞춰야지. 데뷔탕트 무도회에 주인공이 늦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구나.] [에이, 제가 주인공은 아니죠. 이번에 성년이 되는 영애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요.]지금 나와는 달리 완연한 성인이 된 미에나가 너스레를 떨었다.
윤기 넘치는 머리카락은 아래로 길게 땋아 내려져 있었으며, 옅은 장밋빛 뺨과 입술에는 생기가 가득 불어넣어져 있었다.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고,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어쨌든 준비 다 끝났으면 서두르자꾸나, 응접실에서 대공자님이 기다리고 계셔.] [하여간 유난이라니까. 이러다 약혼식 때는 하루 전에 와서 기다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네?
잠깐 감상에 빠지려던 나는, 뒤이어 이어지는 말에 모든 생각을 뒤로 넘기고 입을 쩍 벌렸다.
잠깐만요, 지금 꿈에 함정이 있는 것 같은데요.
넌 왜 그렇게 수줍게 웃어?
너 이 자식, 나 아니지!
당연히 아니겠지!
‘엄마는 무슨 꿈을 꿔도 이런 설정으로…….’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하고서 어머니의 얼굴을 무심코 바라본 찰나였다. 나는 그대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그 표정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에.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게 바로 엄마의 ‘꿈’이구나.
‘음, 여기서는 모습 못 드러내겠다.’
차라리 아버지랑 알콩달콩 금슬을 뽐내는 내용이었으면, 냅다 달려가서 훼방 놓기라도 하는 건데.
‘시기가 좋지 않은데, 그냥 나갈까.’
괜스레 볼을 긁적이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꿈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살랑이며 흩뿌려지는 꽃잎, 길게 깔린 융단.
그리고 그 위를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와아악!]엄마! 잠깐!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 것 같지만!
그래서 이건 더 아닌 것 같아요!
나는 곧바로 소리를 꽥 지르며 엄마의 꿈을 흩뜨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공허한 눈동자로 텅 빈 꿈을 훑어보다가.
[……미에나?]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그맣게 나를 불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 여기 있어요, 엄마.]그러니까 그렇게 길 잃은 아이 같은 눈빛 하지 말아요.
곧이어 그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한가득 안고서 중얼거렸다.
꿈인 까닭에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없이 따스한 품이었다.
[괜찮아요, 엄마. 저 어디 안 가요.]나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꿈의 가장자리를 일별하고는 그대로 어머니를 마주 안았다.
[그러니까, 깨어나서 만나요.]나는 그 후로도 하루가 꼬박 더 지나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