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12)
내딛는 걸음이 허공을 내달리는 것처럼 가볍기 그지없다.
나는 몇 번이고 자유롭게 발을 움직이며 속으로 감탄했다.
이렇게 뛰어도 숨이 차지 않고, 심장이 아프지도 않다니!
게다가 머리도 구름이 걷힌 것처럼 너무 맑아! 꿈과는 또 다른 느낌이야!
‘현실 공기는 이렇게 달콤하구나.’
이렇게 정상적인 상태는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라, 꽤 낯설단 말이지.
“너무 좋다.”
진짜 짱인데? 너무 최고인데?
나는 다시 한번 탭 댄스 스텝을 밟으며 활짝 미소 지었다.
정령의 눈물 한 번 먹었다고 정말 몸이 이렇게 좋아지다니. 그 남자를 울려서 좀 더 뜯어낼 걸 그랬나?
이걸 계속 마시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아니야, 그게 안 되니까 한 병만 준 거겠지.’
여러 번 중복 가능한 효과였으면, 진즉 어르신이 그 사람을 내 곁에 붙여 놓고 자기가 올 때까지 그걸로 버티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이게 어디야!’
곧이어 나는 추던 춤을 모두 멈추고서 개운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내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아, 맞다. 내가 다 깨워 놨었지.
부끄럽게 추한 모습을 보였군.
“헤헤, 날이 참 좋네요.”
뒷머리를 긁으며 말을 건네자, 내 방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목을 삐걱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유령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넋 놓은 표정들이었다.
“그, 그래, 날이 정말 맑구나.”
이윽고 아버지가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미아, 몸은 대체…….”
“저번에 영약을 하나 받았거든요. 하루……는 이제 안 되겠구나. 그래도 한나절만큼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한나절이라면, 그 이후에는…….”
“에이,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좋은 날이잖아요, 그렇죠?”
오늘은 오늘을 즐겨야지.
내 말에 사람들이 또 한 번 단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는 웃기다기보다는 차라리 두려울 지경의 모습들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그, 다들 계속 그렇게 보고 있을 거예요?”
그러자 어머니가 평소의 이성적인 표정을 깨트린 채 답했다.
“그럼 내 새끼가 이렇게 활기찬 모습으로 서 있는데, 그걸 안 볼 수 있겠니?”
“아니, 그건 그렇지만.”
온 저택 사용인이 나만 쳐다보고 있잖아. 이건 너무 부담스럽다고.
심지어 지크프리트 씨도!
‘나를 여기서 꺼내 줄 구원자가…….’
저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건 역시 무리인가.
방 앞을 가득 메운 거대한 인간 장벽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말아 넣은 순간이었다.
“이제는 마중마저 없는 모양이군요. 급한 대로 일단 들어오긴 했……, 다들 거기서 뭐 합니까?”
저 멀리서부터 서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나는 잽싸게 외쳤다.
“여기예요, 대공자님! 침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왔구나, 나의 구원자!
“미리 설명은 들었지만, 정말 신기하군요. 당신이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니…….”
뒤이어 반으로 갈라진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 들어온 유스틴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너까지 상념에 빠지면 안 되지. 나는 이번에도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제가 부탁드린 건요?”
“물론 준비했습니다.”
“와, 감사해요! 그럼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일단…….”
“들여보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스틴이 고개를 까딱이며 덧붙여 말했다.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들여보내라고? 내가 부탁한 건 방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는 종류인데?
“대공자님, 대체 뭘…….”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연 순간이었다.
여전히 반으로 갈린 사람들 사이로, 이번에는 여러 사람이 척척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저마다 드레스를 든 채로.
이게 다 뭣이여?
“간단한 생일 선물입니다.”
“간단의 의미가 혹시 바뀌었나요?”
저 드레스 하나만 해도 평민의 1년 생활비는 되겠다, 이 녀석아.
“계획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고 보는데요. 당신이 이런 연회용 드레스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내 말에 유스틴이 살며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분하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뿐이군.
“연회라니, 그게 무슨……?”
그사이 멀리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더듬더듬 질문했다.
나는 휘황찬란한 드레스에서 시선을 돌리고서 수줍게 미소 지었다.
“오늘 생일 파티는 조금 성대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이걸 위해서 사비를 조금 많이……, 정말 많이 썼지.
‘평소에 개인적으로 돈 쓸 일이 없어서 이 정도면 예산 내지만.’
그러고서 나는 여전히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힘차게 말을 건넸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모두 저와 함께 가 주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모두……?”
“네, 여기 있는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저택 바깥에 마차들도 대기해 놨으니, 준비 끝나면 출발합시다.”
이 정도 인원이면 마차가 아마 저택을 빙 둘러싸고 있을 텐데, 그것도 진풍경이겠군.
“그전에 당신도 준비해야 할 테고요.”
유스틴이 옅게 웃는 낯으로 말을 보탰다. 나는 반짝이는 드레스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만큼은 피할 수 없겠지.
그러니까…….
“다들 나가!”
* * *
천장 새로 스며드는 햇빛을 반사해 아름답게 반짝이는 샹들리에.
누구의 지시인지는 모르겠으나, 건들면 괜히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가지런히 놓인 색상별의 디저트들.
연회장 한쪽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뽐내는 현악 콰르텟까지.
저녁이 아닌 낮에 진행되는 것만 빼고는 가히 완벽한 연회였다.
연회 참석자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시두스 저택의 사람들인 것만 제외하자면.
“이건 대체…….”
미에나의 아버지인 디아센 시두스가 여전히 넋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짜고짜 준비하라더니, 끝나자마자 모두 마차에 태워 이곳으로 데리고 오지를 않나.
와중에 이 모든 걸 지시한 딸은 다 나가라고 외친 이후로 코빼기도 비치질 않으니.
“이제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공자님.”
곧이어 디아센의 곁에 서 있던 레이나가 정중히 입을 열었다.
유스틴은 그녀의 시선을 모로 피하며 담담히 답을 내놓았다.
“모두 미에나가 부탁한 겁니다.”
“그건 저희도 이미 짐작한 부분입니다만―”
“최대한 데뷔탕트 무도회에 가깝게, 연회를 준비해 달라더군요.”
“데뷔탕트…….”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스틴의 말을 되뇌었다.
언젠가 미에나가 데뷔탕트 무도회에 참석하는 꿈을 꾼 적 있었는데.
‘설마 그때 미에나가…….’
레이나가 입술을 꾹 깨문 찰나였다.
“시두스 백작 가문의 레이디, 미에나 시두스께서 입장하십니다!”
입장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미에나가 드디어 연회장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연회장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어린 소녀에게 향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하나로 예쁘게 내려 땋고, 한 겹 한 겹 정성껏 덧대어진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부끄러운지 뽀얀 뺨 위로 살짝 올라온 장밋빛 홍조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 점차 빨라지는 걸음 속도도.
이런 자리는 익숙지 않은 듯,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연신 굴러가는 푸른 눈동자마저.
너무나도 어여쁘고 사랑스러워서.
“……으으, 이런 건 처음이라 영 익숙해지지 않네요.”
곧이어 연회장 끝에 자리한 연설용 단에 올라간 미에나가 어깨를 한 번 부르르 떨고서 입을 열었다.
“다들 깜짝 놀라셨죠. 깜짝 놀라게 하려고 준비해 봤어요.”
조금은 떨리는 듯, 조금은 장난스러움을 담아.
“생일 파티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 사람은 저 말고 또 없을 거예요, 하하. 이게 무슨 탄신연도 아니고.”
저들의 작은 주인이, 퍽 익숙지 않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건 그간 저 때문에 힘들었을 여러분을 위한 제 작은 선물이에요.”
“…….”
“가문이 기울었을 때도 저택을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아 준 분들은 물론이고, 이후에 들어오신 분들도. 제가 이상한 일을 저질러도 항상 비밀 지켜 주셨잖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자신은 이미 온 제국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시달렸을 거라며, 아이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서 그녀는 말을 하기 부끄러운 듯 다시금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가.
“저를 챙겨 주고, 소중히 아껴 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
“모두 감사합니다.”
끝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바다같이 푸른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어 찬란하게 빛났다.
“영약 효과가 정확히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어서 서두르느라 좀 이른 연회가 되었지만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준비한 거니까요!”
그러고서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에는 물기를 지워 내 당당하게 앞을 응시하더니.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생일 축사 끝! 해산! 즐겨! 나 보지 마!”
늘 그렇듯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뽐내며 연단에서 재빨리 내려갔다.
유스틴은 수많은 박수갈채 속, 내려 땋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미에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짧은 찰나, 보석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가 온전히 그를 담아내고.
“……이왕 데뷔탕트처럼 꾸며 놨으니.”
유스틴은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감히 정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이성을 가장한 본능에 충실히 몸을 맡겼다.
“춤, 같이 출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