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14)
꿈 같던 생일 파티가 끝나자, 내 상태는 빠르게 악화하기 시작했다.
산책은커녕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물론 나는 전생에서도 같은 말로를 겪은 전적이 있기에,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겼다.
부모님의 꿈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고, 매일 루스를 찾아가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가르치고.
그러다가 가끔 눈을 뜰 때면 티나와 눈을 맞추고, 지크프리트 씨와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기도 하고.
하루는 지난번 어르신의 심부름을 왔던 정령이 밤늦게 몰래 찾아온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군요. 마스터께서 시간에 맞춰 깨어나실 수 있을지…….’
정말로 내 상태를 살피는 게 목적이었던 듯, 짧게 혀를 차고는 다시 사라졌지만.
어쨌든 내가 한 번 눈을 뜰 때마다 시간은 빠르게 뜀을 뛰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송이가 내려앉기 시작하고.
혹여 찬바람이 새어 들어올까 커튼을 단단히 여민 까닭에 바깥 날씨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된 어느 겨울날.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
마치 저승사자에게서 죽을 날을 받아 온 사람처럼, 나는 불현듯 끝을 실감했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정말로 죽는다.
[옛날 같았으면 막막했을 텐데.]처음 겪었을 땐 더럭 겁부터 났었지. 막연히 죽음을 예감하는 것과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는 건 커다란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걸 한 번 겪어서 그런가,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무섭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다 했으니까.’
애초 설정했던 목표를 다 이뤘으니 무섭지도, 아쉽지도 않을 수밖에.
[게다가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매뉴얼도 준비해 놨지.]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서 플라네타륨을 빠져나왔다.
마지막 인사는 엄마 아빠하고 나누기로 했으니, 꿈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야지.
[오, 마침 밤이네.]완전 나이스 타이밍.
나는 하나둘 자리에 나타난 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가장 먼저 만나러 갈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안녕, 티나!]요즘엔 지크프리트 씨보다도 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티나 되시겠습니다.
나는 티나의 꿈에 들어가자마자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잠깐 멍하게 나를 응시하던 티나가 곧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았다.
[미에나 아가씨!] [헤헤, 이렇게 보는 건 거의 처음이네.] [그러게요, 아가씨. 그래도 이렇게 다시 건강해지셔서 참 다행이에요.]내 말에 티나가 살짝 동떨어지는 대답을 건넸다.
티나는 자각몽을 꾸는 능력이 없기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까닭이었다.
그래도 꿈에서 깨고 나면 여기서 했던 모든 말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 괜찮겠지.
‘솔직히 내가 진짜라는 걸 당장 인식하지 못하는 게 나도 마음 편하고.’
나는 작게 숨을 들이켜고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티나가 항상 내 곁에 있어 줬으니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왔어.]시두스 저택에 온 이후로 내 곁에서 한 번도 떠난 적 없었지.
솔직히 내게는 티나도 내 ‘진짜’ 가족이라, 부모님과 함께 직접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티나는 내 방에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찾아왔어.]마지막 순간만큼은 그녀가 내 방에 찾아오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티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나 돌보는 거 많이 힘들었을 텐데, 항상 신경 써 줘서 고마워.] [힘들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만큼 속 안 썩이는……, 음, 아무튼. 아가씨만 한 분이 또 어디 계시다고요.]잠깐, 중간에 뭔가 정적이 있었는데.
뒤이어 티나가 요즘에는 잘 짓지 않던 환한 미소를 띠고서 확신에 차 말했다.
[그게 제 평생의 영광이에요.] [티나가 그렇게 말해 주니, 그거야말로 나한테는 영광인데.]나는 그녀를 따라 웃으며 그간 꺼내지 못했던 진심을 남김없이 토로했다.
[티나는 내 최고의 유모야. 티나와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비단 유모로서뿐만 아니라, 때로는 내 친구로, 때로는 스승으로, 어버이로 존재해 주었던 나의 벗.
[너무 많이 슬퍼하진 말고,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겨 줘.] [아가씨?] [언제 어디서든 행복해야 해.]나는 티나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전에, 곧바로 그녀의 꿈에서 벗어났다.
시두스 저택을 떠나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 내가 아닌 다른 아이를 만나게 되어도.
언제나 행복하기를.
* * *
다음 타깃은 당연하게도 지크프리트 씨였다.
비록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지크프리트 씨를 제일 나중에 만나기는 했지만, 요 몇 달 동안은 그와 제일 많이 붙어 다녔으니까.
‘따로 부탁할 것도 있고.’
나는 지크프리트 씨의 꿈에 들어가자마자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자그마한 오두막과 그 앞에 멍하니 쭈그려 앉아 있는 지크프리트 씨였다.
지크프리트 씨를 처음 만난, 빅토리아 씨와 함께 살던 바로 그 집.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오두막 뒤로 울창한 숲 대신 시두스 저택의 후원이 펼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시두스 저택이 제법 익숙해지셨나 봐요.]그의 앞에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건네니, 잠깐 멍하게 빛나던 푸른 눈동자가 곧 담담하게 가라앉았다.
[아, 꿈이군.] [눈치도 빠르셔라.]저번에 꿈에 한 번 들어간 전적이 있다고, 바로 알아채시네.
[네가 이렇게 온 걸 보니, 때가 됐나 보군.]곧이어 그가 제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그의 옆에 가 앉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눈치 빠른 어른이란.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식이 아니고서야 틈이 안 날 것 같아서요.] [나한텐 굳이 길게 이야기 안 해도 돼. 그간 네가 돌아다닌 것만 봐도, 인사할 사람이 꽤 많아 보이던데.] [티나한테는 이미 다녀왔어요. 부모님이랑은 마지막으로 눈 떴을 때 이야기 나눌 생각이고.] [그게 네 마음대로 돼?] [한 번은 더 깰 테니까요.]마지막 생명력을 불태우는 사람의 감을 무시하지 말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지크프리트 씨가 가볍게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뭐. 그렇다면야.]그러고서 그는 여전히 내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정면을 응시했다.
나 역시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크프리트 씨와 나만이 공유하는 기묘한 평화, 편안한 정적.
나는 그 묘한 동질감에 젖어 천천히 속눈썹을 팔랑이다 입을 열었다.
[소중하게 여겼든, 그렇지 않았든. 가까이 있던 사람의 죽음은 늘 슬픔을 불러오잖아요.] […….] [두 번이나 같은 상실을 겪게 해서 죄송해요.]정확히 따지자면 ‘같은’ 상실은 아니지. 그에게 빅토리아와 나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지니고 있을 테니.
[너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내 말에 지크프리트 씨가 홱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하며 답했다.
역시 비교를 잘못했군.
[죄송…….]곧바로 사과를 건넨 순간이었다.
[그건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그보다 한발 앞서, 지크프리트 씨가 한 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람은 모두 크든 작든 이별을 겪어.] […….] [그걸 감내하는 건 남은 사람의 일이지, 네가 죄책감을 가질 부분이 아니잖아.]특히나 이런 경우에는 더더욱.
그가 무겁게 덧붙였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해요.]내가 죄책감에 매몰되어 있을 때마다 그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던 사람.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장난스럽고, 어른스럽고, 그래서 더 멋졌던 사람.
나는 이번에도 온 마음을 담아 그에게 마음을 전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 씨가 다시 시선을 돌리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래, 나도.]하여간 쑥스러워하시기는.
[저 가고 나면 그땐 정말로 여행 좀 가세요. 옷도 좀 다양하게 사 입으시고. 어떻게 옷 종류가 죄다 똑같을 수가 있어요?] [니케가 하던 잔소리를 똑같이 하네. 아유, 지겨워.]그가 짐짓 질린다는 듯 손사래를 내저었다.
그러고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가.
[그래도 이왕 마지막 인사랍시고 나한테 왔으니, 나도 하나만 말하마.]전과는 달리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너는 니케를 많이 닮았어.] […….] [니케한테 안부 전해 줘라.]나는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채고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지크프리트 씨와는 제법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럼 이제 슬슬 다른 사람한테로…….
[아, 맞다.]갑자기 여운에 젖는 바람에 하마터면 부탁을 안 하고 갈 뻔했네.
나는 곧바로 떼었던 엉덩이를 다시 바닥에 붙이며 지크프리트 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 러셀 경. 앞에 건 그냥 인사고요. 진짜 유언? 부탁? 이 하나 있는데요. 헤헤.] [뭐야, 뭔데. 기껏 분위기 좋게 얘기해 놓고 불안하게 왜 그러는 건데.] [겁먹지 마세요. 진짜 별거 아닌 부탁이니까.]나는 다시 한번 방긋방긋 미소 짓고서 말을 이었다.
[제가 떠난 후에…….]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