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23)
좌로 보고 우로 보고 앞에서 보고 구르면서 봐도 이건 내 얼굴이 분명한데.
“내 얼굴이 왜 여기에?”
저는 그저 선량한 시민인데요.
그나마 한 나쁜 짓이라고는 최근에 사람 하나를 날려 버린 것밖에 없는데, 심지어 그것도 사람 하나 살리겠다고 그런 건데!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내 얼굴을?
“이게 네 얼굴이라고?”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대고 있으려니, 곧 어르신이 수배 전단을 빤히 바라보다 말고 툭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 여기 그려진 사람은 순 못난이가 아니냐.”
“그죠, 제가 사실 실물이 훨씬 더 잘 나오는 얼굴이거든요.”
역시 드래곤이라 그런가, 안목이 있……, 아니, 이게 아니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어르신.”
“그럼 뭐가 중요한데?”
“제 얼굴이 수배 전단에 붙어 있다는 거죠.”
이렇게 정중앙에 떡하니 붙여 뒀으니 오고 가는 사람들 모두 한 번씩은 이 전단을 봤을 테고.
그 말인즉, 우리의 첫 효도 관광은 시작부터 망했다는 뜻이었다.
“이깟 종이 쪼가리가 뭐 대수라고. 몇백 년 전에는 온 대륙에서 나를 찾겠다고 난리였는걸.”
“어르신의 기준을 자꾸 저한테 적용하지 말라니까요…….”
나는 지극히 선량한 인간이라고.
짧게 툴툴거린 후, 나는 다시금 눈앞에 놓인 수배 전단을 천천히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상단 그림의 사람을 찾습니다.>특징: 잿빛에 가까운 검은 머리카락, 연두색 눈동자. 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소유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 길이로 추정.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상당히 아름답다고 함.
특이 사항: 마법을 사용함
현상금: 500만 페온
※발견 시 황궁으로 연락 요망. 폭력적인 수단 사용할 시 엄벌에 처함. 직접 데려올 시 어떠한 정신적, 신체적 상처 하나 없이 모셔 올 것. 기타 제보 환영.
“뭐 이딴 수배 전단이 다 있어?”
총평을 이야기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인 수배 전단이었다.
게다가 이건 또 뭔데?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상당히 아름답다고 함?
폭력적인 수단을 쓰면 엄벌에 처해?
‘사람을 찾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어이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어르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경 쓰이면 전부 떼어 주랴?”
“에이, 아녜요. 이게 단순히 여기에만 붙은 거면 모르겠는데, 보아하니 전국에 다 붙여진 것 같고.”
가뜩이나 어르신은 마력이 응집된 심장을 내게 건네주었는데, 굳이 마력이 많이 들고 번거로운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지.
“이 전단 붙인다고 애꿎은 실무자만 고생하겠네. 그래도 저희의 편안한 관광을 위해 이건 떼는 게 좋겠어요.”
말을 마친 즉시 망설임 없이 수배 전단을 뜯어 돌돌 말았을 때였다.
저 건너편에서 누군가 왁왁 소리를 질렀다.
“어이, 수배 전단 함부로 뜯으면 처벌받는 거 모르나!”
“아이고야.”
설마하니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아니, 전단에 있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만!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기념으로 가져가게 해 주세요. 딱 5년만 보고 다시 돌려놓을게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잠깐. 그 얼굴은……!”
“쳇, 들켰나. 일단 돌아가요, 어르신.”
나는 한 번 혀를 쯧 차고서 곧바로 발아래 마법진을 띄웠다.
그러자 어르신이 마냥 즐겁다는 듯 눈꼬리를 휘며 딱, 손가락을 튕겼다.
즉시, 시야가 뒤바뀌었다.
뒤이어 드러난 풍경은 왁자한 시장 골목이 아닌 레어의 중앙 홀이었다.
“좀 전에 나가셨으면서 왜 벌써 돌아오셨습니까?”
이윽고 우리 앞에 나타난 플라멘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또 청소하고 있었나 보군.
나는 품에서 돌돌 말아 놨던 수배 전단을 꺼내 플라멘에게 건넸다.
“뭡니까, 이건?”
“효도 관광 실패의 원흉.”
“효도 관광이라니, 마스터를 대체 뭐로 알고……. 뭐야, 못생겼잖아?”
이 자식이, 그걸로 방금 누가 나 알아봤거든?
“흠……, 그래요. 어쨌든 당신 얼굴이기는 하군요. 물론 화가의 솜씨가 형편없긴 하지만.”
곧이어 플라멘이 수배 전단을 다시 내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래서 고작 이 흉물스러운 전단 때문에 돌아왔다는 겁니까?”
“고작 이 흉물스러운 전단을 보고 정말로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일단 돌아왔어.”
죄목이 적혀 있진 않지만, 이런 게 온갖 데 붙어 있는 이상 앞으로 사람들이 귀찮게 굴 게 뻔한데.
물론 레어에만 처박혀 있으면 누가 날 발견할 수 없겠지만…….
“역시 직접 황궁으로 가야겠어.”
“어떻게 하면 발상이 그쪽으로 튀는 겁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플라멘이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서 자비롭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고작 이 흉물스러운 전단 때문에 계속 숨어 살 수는 없지. 게다가 이렇게 날 찾는 걸 보면 그쪽도 사정이 있는 걸 테고.”
“그 발언이 싫었던 거면 그냥 말로 하세요.”
알아차렸다니 다행이군.
아무튼.
“게다가 마냥 피해 살기에는 아직 변신 마법 같은 세심한 마법은 어렵단 말이지.”
“인간치고는 빠른 속도긴 하지만, 확실히 아직 마력을 제대로 다룬 지 얼마 안 되긴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어르신한테 부탁하기엔, 어르신은 애초에 나한테 그런 마법 안 걸어 주실 테고.”
“굳이 네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겠니. 그놈들이 네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만들면 그만이지.”
“어르신은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어떻게 된 게 이 레어 안에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진 게 나밖에 없어?
“어쨌든, 몇 년이나 여기서 꼼짝 못 하고 지냈는데, 레어에서 숨어 지내는 건 이제 질려. 사람이 바깥바람도 쐬고 좀 그래야지.”
내가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이런 칙칙한 레어 안에서만 머물면 우울해지기 딱 좋다 이거예요.
“거기다 내가 밖으로 안 나가면 식자재 조달 같은 온갖 심부름은 모두 플라멘이 해야 할 테고…….”
“제가 생각해도 당신이 직접 황궁으로 가는 편이 좋겠군요. 한 번 다녀왔던 곳이니, 금방 갔다 올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플라멘이 급기야 내 어깨 두 쪽을 잡아채고서 말했다.
평소에도 인간들 틈에 끼는 걸 극도로 싫어하더니,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글쎄.”
어서 빨리 떠나 버리라는 플라멘의 닦달을 무시하는 사이, 내내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어르신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이유가 다는 아니지 않으냐.”
“네?”
“현상금이 갖고 싶었던 게지.”
나는 순간 뜨끔한 속을 감추기 위해 멋쩍게 미소 지었다.
“아니, 저번부터 플라멘이 자꾸 잔뜩 쌓여 있던 보물이 텅텅 빈 이유가 저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저한테 기억은 없지만, 어르신이나 플라멘이 그 많은 보화를 썼을 리는 없으니 응당 제 탓일 테고. 그러니 책임을 지기 위해서…….”
“…….”
“……돈 벌고 싶습니다, 어르신. 이왕이면 경매장을 거치지 않아도 언제든 쓸 수 있는 비자금으로.”
그래, 내가 이 드래곤을 속여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어.
나는 결국 하는 수 없이 본심을 드러내고서 방긋 미소 지었다.
솔직히 여기 있는 보화, 일일이 익명을 가장해 경매장에서 팔아 치우는 거 너무 귀찮았어요!
“하여간 맹랑한 것.”
그러자 어르신 또한 나를 따라 생긋 눈매를 휘었다.
“혀가 길어지면 거짓이 들통난다고 몇 번을 말해도 듣지를 않지.”
“헤헤.”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치고는 제법 솔직했으니 이번엔 봐주마.”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렇게 된 이상 제가 황궁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500만 페온을 직접 찾아오겠습니다!
‘겸사겸사 황제도 직접 만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의 나를 알아서 이렇게 수배령을 내린 듯한데, 이건 얘기를 나눠 봐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언제 황궁에 출발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던 순간이었다.
“대신.”
어르신이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도 같이 가자꾸나.”
* * *
그렇게 며칠 뒤, 황궁으로 향하는 해자 근처.
“어르신, 저희 지금 굉장히 수상하게 보이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황궁으로 향하는 다리 앞에 선 채 로브를 쓴 거구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나 역시도 두꺼운 로브를 한껏 뒤집어쓴 상태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수상해 보이네.’
차라리 로브를 쓰지 말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으면 사람들이 또 날 알아보고 달려들었을 게 분명하고.
“저번처럼 아예 황궁 안으로 침입하지는?”
곧이어 어르신이 상체를 한껏 굽히더니 장난스러운 어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두 번이나 황궁에 무단 침입하면 그건 발뺌 못할 중죄죠. 전 될 수 있으면 책잡힐 일 만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경비가 머저리가 아닌 이상 이리 수상한 자를 황궁에 출입시키진 않을 텐데?”
“그래서 지금 좀 고민이에요.”
대뜸 ‘이 수배 전단 주인공인데 직접 돈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하기엔 경비병이 순순히 황궁 안으로 들여보내 줄지 의문이고.
애초에 난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나 인맥이 없으니, 황궁에 들어갈 방법이…….
“아, 귀찮아.”
중죄든 뭐든, 일단 황궁 안에 들어간 다음에 생각할까?
결국 단순한 해결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순간 이동 마법을 시전하려던 순간이었다.
“거기, 잠깐.”
불현듯 귓속으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