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31)
나로서는 첫 만남과 진배없는 부모님과의 재회는 이후로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주된 이야기는 당연히 지난 10년 동안의 내 신상이었다.
‘그동안에는 저를 되살려 주신 분께 의탁하며 지냈어요. 살림을 해 주시는 분도 계셔서…….’
어떻게 되살아난 거냐는 질문부터 시작해, 그간 어디서 지냈는지, 누구랑 살았는지, 밥은 굶지 않았는지, 부족한 건 없었는지.
‘머리랑 눈 색이요? 아마 어르신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 이분이 바로 어르신인데…….’
‘어르신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어르신이 곤란해진다기보다는, 여러분이…….’
질문 하나에 대답하면 곧바로 다른 질문이 들어오고, 그 질문에 관해 이야기한다 싶으면 또 다른 물음이 이어지니.
‘……정리가 좀 필요하겠군요.’
나중에는 아예 유스틴이 가운데서 중재하며 질문을 정리해 줘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기적이 내렸구나, 정말로 우리 가문에 기적이 내렸어…….”
유스틴의 완벽한 요약 정리에 그간의 일을 빠짐없이 이해한 아버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나를 슬쩍 비켜, 내 옆에 서 있던 어르신께 향해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정말로,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어머니 역시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몇 번이고 어르신께 인사를 건넸다.
“내 너희 좋으라고 한 일도 아닌 것을. 굳이 감사 인사를 하고 싶거든, 너희의 피붙이에게 하거라.”
물론 당연하게도, 어르신의 반응은 무덤덤하기 그지없었지만.
‘내 저럴 줄 알았지.’
나는 내 무릎을 베고 잠든 마일리를 바라보며 멋쩍게 미소 지었다.
마일리는 대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비비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더란다.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주제긴 했지.’
시끄러웠을 텐데도 잘 자네.
나는 어느덧 느슨하게 풀린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몇 살이에요?”
기껏해야 일고여덟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이제 막 여섯 살이 되었단다. 며칠 전이 생일이었거든.”
내 말에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나는 이번에는 그녀의 보드라운 뺨을 조심스레 찔러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줄 알았으면 자그만 선물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어요.”
“그게 무슨 소리니, 미아. 네가 이곳에 온 자체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선물인 것을.”
“마일리는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지 않은데요.”
“그렇지 않아. 마일리가 가장 갖고 싶어 했던 건 바로 ‘언니’였으니까.”
곧이어 어머니 역시 따스한 눈으로 나와 마일리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너를 잃고 나서 마일리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많이 후회했단다.”
그러고서 그녀는 오랜 기억을 들추듯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게 해 주지 못한 걸 마일리에게 해 주며, 네가 말했던 것처럼 온전한 사랑을 그 애에게 주며.”
지그시 감은 눈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툭 떨어져 내렸다.
“더 많이, 더 깊이 후회했어.”
“…….”
“너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했지만, 이미 무너진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니. 그저 견디는 거지.”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운다 한들, 수많은 세월을 함께한 추억까지 세워지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마일리도 남의 감정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된 것 같아. 네게도, 마일리에게도 늘 미안한 일투성이였지. 그랬는데…….”
이윽고 그녀가 내내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뜨며,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서 고맙구나.”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감정에 하릴없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그들이 바라는 반응을 할 수 없어서.
“저, 그런데 이분 말로는 제가 10년 전에 벌인 사업이 몇 개 있다고 하던데요.”
결국 나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고서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런 건 비단 마일리뿐만 아니라, 아직은 내게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니 차라리 일 얘기를 한다.’
물론 기억이 없는 상태인 탓에, 일 이야기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확률이 높지만…….
“아, 그래. 그게 궁금한 거구나!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려무나.”
제법 노골적인데다 뜬금없기까지 한 화제 전환이었음에도, 아버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접실을 벗어났다.
마치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구나.”
어머니 또한 상심한 기색 하나 없이 추억을 회상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은 분위기를 깨 버렸으니 조금이나마 아쉬워하지 않나?
10년 전의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
“여기, 우선 이건 국외 은행의 10년간 재무제표란다. 그리고 이건 후원 사업 현황 보고서고…….”
이윽고 아버지가 온갖 서류를 바리바리 품에 안아 와 내 앞에 늘어놓고서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아찔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서 그가 건넨 서류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 이게 정말로 제가 벌인 사업들이라고요?”
나는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을 진정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10년 전이면 기껏해야 내가 마일리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았을 시절 아니야?
그 꼬맹이가 이런 대규모 사업을 벌인다고? 진짜로?
“제 도움을 상당수 받기는 했지만, 모두 당신이 직접 고안하고 제안한 것들입니다.”
뒤이어 유스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10년 전의 저는 정말로 비범했었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네 내게 돈을 뜯어내지 못했겠지.”
어르신 또한 무덤덤하게 말을 보탰다. 나는 더더욱 믿을 수 없어 눈을 커다랗게 떴다.
플라멘이 맨날 ‘당신이 마스터의 돈을 다 가져다 쓰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더니, 진짜로 그걸 가져가서 몽땅 여기에 투자했던 거구나.
‘게다가 이 후원 사업도.’
나는 시선을 옮겨 가지런히 정리된 [후원 대상자 목록]을 바라보았다.
빽빽하게 적힌 목록이 겹겹이 쌓아 올려진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느낌이었다.
“인생이 바뀔 정도의 도움을 받은 자들은 은인의 이름을 절대 잊지 못하는 법이죠.”
이런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유스틴이 자못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들에게는 당신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 * *
“아쉽지 않으냐?”
계획에 없던 일정을 소화하고 난 후 돌아온 레어.
어르신이 저녁 식사를 하는 내 건너편에 앉아 물었다.
나는 파스타 면을 돌돌 말다 말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요?”
“너의 가족 말이다. 네가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눈치던데.”
“아.”
레어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내내 조용했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시네.
나는 다시 포크를 돌돌 돌리며 슬쩍 미소 지었다.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요. 어차피 기억도 없는데.”
오히려 아무 기억도 없는데 냅다 집에 들어가는 게 더 민폐 아닌가.
처음이야 괜찮다고 할지 몰라도, 계속 모르쇠처럼 굴면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게 될 텐데.
“네 그런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끔 보면 내 동족보다 더 정이 없게 느껴질 때가 있어.”
“이것도 어르신 심장의 영향인가 보죠, 뭐.”
머리 색 눈 색도 영향을 받아 바뀌었는데, 사고 정도는 당연히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끝까지 네 상태에 대해서는 입도 안 열고.”
“행복해하시는 분들 앞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초 칠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제대로 말리지 않은 파스타 면을 접시 위로 툭 내려놓고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예 모른 척하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끔 들른다고 했고, 기억이 모두 돌아오고 일도 모두 해결되면 그땐 정말로 돌아갈 거예요.”
“흐음.”
“지금은 여러모로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았을 뿐이에요.”
앞으로는 황제와 얽혀 있을지도 모르는 끝없는 밤의 병도 조사하고 다녀야 하는데.
혹시라도 이 모든 일의 배후가 가족을 인질로 잡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들에 관한 기억은 없지만, 그렇게 됐을 경우 완전히 외면하지도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보다 전 앞으로의 일을 얘기하고 싶은데요. 정말로 저랑 같이 조사 다니실 거예요? 평소에는 움직이기 귀찮다고 레어 밖으로 안 나가셨으면서?”
“그렇지 않으면, 내 계약자가 불결한 것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밖에서 객사하는 꼴을 보랴?”
“어차피 외박할 생각은 없으니까, 저녁에 레어로 돌아오기만 하면 저번처럼 처리할 수 있지 않나요?”
솔직히 오늘만 봐도 어르신은 이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괜히 짐만 늘어나는 거 아니냐고.’
플라멘이 이 생각을 들으면 당장 길길이 날뛰겠지만.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어르신의 진짜 꿍꿍이를 다시 한번 캐내려던 찰나였다.
토독, 톡.
창문 너머로 새가 부리를 쪼는 듯한 소리가 새어 들었다.
“……?”
미치지 않고서야 어르신의 레어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동물이 있을 리 없을 텐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