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39)
열기가 맞닿은 손끝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정말로 손끝이 뜨거운 건지, 뺨이 뜨거운 건지, 혹은 머릿속까지 열이 뻗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노을을 머금은 순간조차 희미하게 반짝이는 하얀 머리카락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곧이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가.
‘솔직히 이건 반칙이지.’
저렇게 유해하게 잘생긴 얼굴로 작정하고 유혹하는 말을 꺼내다니.
아무리 어르신의 얼굴로 마음을 단련한 나라고 한들, 이런 급작스러운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다.
“저, 폐하. 우선은…….”
괜히 간질거리는 마음에 슬쩍 손을 빼려 하자, 루스가 이번에는 손가락 마디마다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당신이 했던 말도, 제가 했던 말도, 그때의 배경과 했던 행동까지도.”
“…….”
“모두 똑같이 재현할 수 있어요.”
이조차도 당신께 배운 거니까.
말을 마친 그가 언제나처럼 눈꼬리를 반달처럼 휘어 웃었다.
나는 그에 따라 가지런히 내려앉은 기다란 속눈썹을 응시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숨을 들이켰다.
‘위험하다.’
얘는……, 진짜야.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나는 꼼짝없이 휩쓸리고 말 것이다.
“그, 어,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아니, 그렇다고 평생 기억이 없는 채로 살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러니까…….”
근데 있잖아. 내가 봤을 땐 나 이미 휩쓸린 것 같아.
굳어 버린 사고에 내가 지금 무어라 말하는 건지도 모르고 아무 말이나 내뱉던 찰나였다.
“하하.”
꾹 눌러 담은 듯한, 다정한 웃음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더니.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미에나. 미에나도 이제는 알겠지만 전―”
“제가 싫다는 행동은 하지 않으신다고요.”
“정확해요.”
그제야 루스가 내 손을 조심스레 놓아주며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순식간에 손끝으로 몰려드는 차가운 공기에, 나는 어깨를 떨고서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하는데.
“꼭 싫은 건 아니고요…….”
“네?”
“아니에요. 방금 한 말은 잊어 주세요.”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한댔더니, 정말 아무 말 대잔치가 열렸잖아.
‘정신 차려, 미에나!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이게 다 저 잘난 외모 탓이다. 저렇게 예쁘고 귀엽고 잘생겨 놓고서는,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듯이 구는 탓이다.
나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눈을 질끈 감고서 투덜거렸다.
“폐하께선 본인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미모를 이용하는 게 아주 그냥 정상급이야. 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어떨까!
“제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적도, 그래서 이걸 이용하겠다는 생각도 단 한 번조차 한 적 없지만.”
곧이어 루스가 천천히 말했다.
눈을 감은 탓인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당신이 이렇게 눈을 감아야 할 만큼, 제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동시에 손끝으로 또 한 번 온기가 닿는다 싶더니, 이어 그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한 열기가 손바닥 전체에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저도 제 얼굴이 제법 마음에 들 것 같네요.”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파르르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헙.”
그대로 몸을 굳힌 채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손에 뺨을 가져다 대다니!
‘저, 저 여우 같은…….’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완전 여우 그 자체였잖아.
물론 싫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 전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자면.”
그사이 루스의 목소리가 다시금 도서관 내에 사근사근 울려 퍼졌다.
“미에나가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과거의 기억을 저 혼자만 기억한다고 해도.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여전히 손바닥에 닿은 열기는 가시지 않은 채였다.
“앞으로 저희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고, 미에나와의 추억은 제가 온전히 기억하고 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물론 미에나가 궁금해한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기억을 미에나에게 알려 드릴게요. 원한다면 끝없는 밤의 병에 걸려서라도.”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되면 미에나가 분명 저를 구해 주러 올 테니까요.”
시야가 차단된 탓에 한층 더 예민해진 귓속으로, 특유의 달큼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파고든다.
나는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가, 하는 수 없이 다시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저 기다리는 거 잘해요.”
동시에 루스가 깊고 푸른 눈동자를 반으로 접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이 마음이 조여 오는 것만 같아서.
“……그, 그럼 하나씩 차근차근 들춰 보는 건 어떠신가요?”
나는 무심코 엄지 끝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네, 좋아요.”
돌아온 것은 언제나처럼 밝고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 * *
“나 아무래도 얼굴에 약한가 봐.”
그렇지 않고서야 할 일이 이렇게나 산더미인데 먼저 그런 제안을 했을 리가 없어.
레어에 돌아오자마자 중얼거리려니, 플라멘이 어르신의 수발을 들다 말고 고개를 홱 돌렸다.
“당신이요? 그럴 리가.”
“아니야, 진짜야. 난 아무래도 미인에 약한 것 같아.”
“그랬으면 당신은 지금쯤 저나 어르신한테 영혼을 저당 잡혔겠죠! 그런데 당신은 어르신도, 이 나도 이렇게 부려 먹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은근슬쩍 자기가 잘생겼다고 말하는 거야?”
“은근슬쩍이라뇨, 제 미모 어디가 모자라서 ‘은근슬쩍’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겠습니까?”
곧이어 플라멘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이 맞긴 맞아.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어르신의 얼굴을 보고 자랐는데, 어르신한테는 그런 식으로 휘둘려 본 적이 없잖아.”
“왜 은근슬쩍 저는 제외합니까?”
“플라멘은……, 그런 게 있어.”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인성이 예쁘지 못하면 탈락이란다.
“이전까지는 네게 그렇게 살갑게 구는 인간이 없어서 그런 게지.”
그사이 어르신이 내게 다가오며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입가에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묘한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오자마자 혼낼 줄 알았는데.
“게다가 나도 네게 그런 식으로 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윽고 내 앞에 멈춰 선 어르신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서 말했다.
그러고서 그는 무언가 작정한 듯 황금빛 눈동자를 장난스럽게 접더니.
“맹랑하고 우둔한 나의 계약자여.”
곧장 상체를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고는, 내 손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미처 반응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너보다 귀하지 않고, 세상 밖의 그 어떤 것도 너보다 빛나지 않으니.”
서늘한 냉기가 손을 타고 팔을 넘어 전신으로 흐른다 싶은 찰나.
“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번에는 더없이 서늘한 입술이 손톱 끝에 잠시 머무르다 떼어졌다.
나는 이 일련의 행동을 머릿속에 제때 입력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서 꽥 소리를 내질렀다.
“악, 어르신! 뭐하시는 거예요!”
“네 스스로 미모에 약한 것 같다고 하니, 그 말이 정녕 사실인지 몸소 확인시켜 주는 거란다.”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이렇게…….”
플라멘도 다 있는 공간에서 이런 남사스러운 발언을 하시다니.
나는 뒤쪽에서 거의 폭발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서 있는 플라멘을 애써 무시하며 도르륵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는 동안 어르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장 내 손을 놓고서 흥, 코웃음을 내뱉었다.
“자, 그래서. 이제 좀 알겠느냐?”
“네, 네?”
“그 도서관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들었냐는 말이다.”
“잠깐만, 그걸 보셨어요?”
떠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야?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상황에 얼굴을 붉히려니, 어르신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 쳤다.
“인간이 인간을 마음에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네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단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어르신. 애초에 루스랑은 다시 마주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요.”
“그런 주제에 밤마다 늦게까지 대화를 주고받았지.”
“아! 좀!”
이 집구석에는 무슨 비밀이 있을 수가 없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번에도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어르신은 시끄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한쪽 귀를 막고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는 아직 해결해야 할 일도 많지 않으냐. 비단 그 시답잖은 병인지 뭔지 말고도.”
“네네, 세계수도 찾아야 하고, 이 빌어먹을 힘도 억눌러야 하고요.”
“네 기억도 모두 되찾아야지.”
이어 그가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네 그 병으로 네 가족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생각은 없는 게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