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54)
‘이 목소리는…….’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살펴보았다.
시선 끝자락에는 반쯤 예상했던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사무엘.”
클레어 역시 활짝 웃는 낯으로 사무엘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사무엘은 한숨처럼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더니, 곧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마력으로 만든 전령 새를 내게 내밀었다.
당연하게도, 루스의 전령이었다.
“폐하?”
― 아, 잘 도착했나 보군요.
곧이어 내 손 위로 건너 올라탄 전령 새가 방싯방싯 미소 지었다.
나는 괜히 손가락 끝으로 자그마한 턱 끝을 간질이며 따라 미소 지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그냥 사무엘에게 보고 사항을 전달해도 됐을 텐데.”
― 미에나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원체 말수가 적고요.
“아하하.”
맞는 이야기지만, 당사자 앞에서 해도 되는 말이 맞나?
나는 괜히 소리 내 웃음을 흘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무엘은 내게서 조금 떨어진 채 클레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클레어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고. 역시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이네. 둘을 떼어 놓는 게 아니었나.
“전령도 전달했으니 저희는 먼저 조사하러 가 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엘이 다시 몸을 휙 돌려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서 큼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지는 마세요.”
“…….”
동시에 사무엘이 조금 전과는 달리 눈동자를 흐리게 뜨고서 시선을 살짝 비켜 나갔다.
나는 그제야 내 뒤에 선 존재를 깨닫고서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요, 아무래도 이곳에선 어르신의 존재가 가장 눈에 띄겠군요.
“하하, 그럼 부탁드릴게요.”
사무엘의 눈빛을 애써 모른 체하며 손을 흔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곧 한 번 예를 갖추고서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그제야 엉거주춤 들고 있던 손을 편하게 바꾸고서 전령 새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폐하. 이제 막 조사를 나가려던 차였거든요.”
―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당신의 일을 방해한 건 아닌가 싶네요.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폐하께 보고해 드릴 이야기도 있었으니까요.”
마침 이곳엔 사람도 없고.
혹시 몰라 내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까지 약식으로 건 후, 나는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이쪽은 아직 이렇다 할 정보는 못 얻었어요. 오전에 리넥스의 마정석 수출국 및 수출량에 대한 자료를 건네받기는 했는데…….”
나는 곧바로 품속에서 성황이 건넨 서류를 꺼내고서 자료에 적힌 수출량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전령 새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 수입한 양 역시 자료에 적힌 대로예요. 검수를 꼼꼼하게 진행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요.
“으음, 어렵네요.”
그렇다면 국외에서 빼돌리는 거려나?
하지만 웬만큼 주먹구구식인 나라가 아니고서야, 이런 숫자놀음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데.
“리넥스 내부에 마정석을 따로 빼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가설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겠네요.”
신전에서 제작하는 마정석이 아닌, 따로 제련한 마정석이려나.
그렇다면 아티팩트 제작자를 뒤져 보는 편이 빠를 텐데.
― 따로 의심 가는 사람은 아직 없었나요?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루스가 질문했다.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고서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막 조사를 시작한 터라…….”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 이반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왜 갑자기 이반의 얼굴이 떠오른 거지? 딱히 이반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아직은 딱히 그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어요. 폐하께서는 별다른 일 없으셨나요?”
― 이쪽도 아직 실마리를 잡지는 못했어요. 일부러 공격하기 쉽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잠잠하네요.
내 말에 루스가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곧장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본인 몸을 미끼로 쓰지 마세요, 폐하.”
공격하기 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니,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에나.
“공작님?”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령 새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전령은 자그마한 솜털과는 어울리지 않는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유스틴이네.’
루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스틴도 옆에 있었구나.
“저는 어르신이 곁에 있으니 괜찮아요. 게다가 저도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고요.”
솔직히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우리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나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히려 전 폐하께서 더 걱정인걸요. 항상 몸조심하세요.”
― 그쪽 걱정할 바에는 날 걱정하라니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이번에는 전령 새가 호쾌하게 날개를 파닥거리며 고개를 잔뜩 추어올렸다. 당연하게도 지크프리트 씨의 목소리였다.
― 이런, 방해꾼이 많네요. 저는 미에나의 걱정을 듣는 게 좋은데 말이에요…….
뒤이어 루스가 제법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말을 유스틴과 지크프리트 씨 옆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재주야.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란 말인가.’
나는 괜히 헛기침을 몇 번 내뱉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큼, 흠, 어쨌든 저도 마저 조사하러 가 볼게요. 그래도 덕분에 윤곽은 조금 잡힌 것 같아요.”
―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오늘 하루도 힘내길 바라요.
이윽고 그가 언제나처럼 봄볕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응원했다가.
― 그리고, 혹시…….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것처럼 슬며시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날개 사이로 얼굴을 숨기는 전령 새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아까는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했으면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길래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지?
― 혹시 저녁에 다시 전령을 보내도 될까요? 미에나가 이곳에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많이 쓸쓸해서요.
얼마 지나지 않아, 루스가 눈에 띄게 줄어든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활짝 끌어 올렸다.
“당연하죠. 물론 폐하께서 이곳까지 전령을 보내실 수 있다면요.”
―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내 결계까지 뚫는 인간이 고작 이거 하나 못 하겠느냐?”
동시에 내내 이곳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어르신이 불퉁하게 끼어들었다.
그러고서 그는 나와 내 손에 얹힌 전령새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꼴값을 떠는구나.”
곧바로 고개를 설설 내저으며 혀를 쯧 차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뺨으로 치솟는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 다른 손으로 손부채질을 시작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 * *
클레어와 사무엘, 그리고 나는 이후로 각자 찢어져 마정석의 출처를 찾을 수 있을 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지만.
“힘들다, 힘들어.”
아무리 마법을 썼다고는 하지만, 역시 밖을 계속 돌아다니는 건 피곤하단 말이지.
신전 내부에 자리한 인조 호수의 가장자리에 다다르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발끝을 담갔다.
성황이 이래도 된다고 했어. 아무튼 나는 당당하다.
삑삑.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둑한 사위를 멍하니 바라보며 슬쩍 발장구를 치는 사이, 작고 빛나는 새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곧바로 손을 뻗어 전령 새를 조심스레 그러쥐었다.
“안녕, 예쁜아.”
이번에도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구나.
―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미에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령 새의 입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새를 내 옆에 앉히고서 그를 따라 인사를 건넸다.
“폐하께서도 고생 많으셨어요. 많이 피곤하실 텐데,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그래서 지금 이렇게 미에나를 만나러 왔잖아요.
하여간 말은 잘해.
나는 괜히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서야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아직 며칠 더 있어 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태만 봐서는 이렇다 할 결실은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무리 내가 성황의 친구라고 해도, 남의 신전을 마음대로 막 들쑤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이후로는 성황에게 맡기는 수밖에.
― 미에나가 사과할 일이 아닌걸요. 어차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요.
“그래도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볼게요.”
― 언제나 이야기하는 거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안 될 것 같으면 다시 돌아와도 좋아요.
“마지막 말은 폐하의 희망사항 아닌가요?”
― 이런, 티가 났나요?
루스가 농담을 내뱉고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웃음소리였다.
나는 그 아름다운 소리를 음미하다가, 곧 이어진 기척에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잠시만요, 폐…… 루스.”
아무래도 이곳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