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16)
나는 열었던 문을 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이건 예상 밖의 전개인데.
Q. 저는 그냥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상대가 갑자기 세상에서 이보다 슬플 수 없는 사람처럼 서글프게 울기 시작해요. 이거 왜 그러는 건가요?
내공 100 드립니다.
[왜, 왜 울어?]내가 뭐 잘못했나? 인사를 잘못한 걸까? 다시 나갔다가 들어와?
갑작스러운 오열에 당황해 묻자, 루스가 울다 말고 히끅거리는 목소리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모, 모흐게서요. 그냥, 목, 킁, 소리 들으니까, 허엉…….] [그,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미안해.]사실 알 것 같아서 더 미안해.
나는 그대로 엉거주춤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할 수만 있다면 바닥에 머리라도 박고 싶어질 정도였다.
내가 어린애를 울리다니.
애는 어떻게 달래야 하지? 내가 애였던 적은 있어도 애를 맡아 본 적은 없어서…….
[크흥, 킁.]그사이 루스는 나름대로 울음을 그쳤는지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우리 루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울음을 그치는구나. 정말 의젓하고 멋진 아이야.
한시름 놨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아, 아니에요.]이윽고 루스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황급히 부정했다.
이곳은 여전히 암흑천지인데도 어쩐지 두 손을 흔들며 고개를 휘젓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보면 볼수록 강아지 같단 말이야.
[저, 저 기다리는 거 잘해요.]그렇다고 정말 강아지 같은 발언을 하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의젓함을 넘어 과하게 눈치를 보는 것 같은 태도에, 나는 살포시 눈썹을 찡그렸다가 표정을 정돈했다.
저번에 보니까 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던 것 같은데. 괜히 애 주눅 들 표정은 짓지 말자.
‘그래도 역시 찜찜하단 말이야. 보통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진 않을 텐데.’
하물며 우리가 몇 달 안 만난 것도 아니고, 사실 고작 며칠에 불과한데.
[있잖아, 루스.]자칫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나는 더없이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평소에는 뭐하면서 지내? 그러니까, 다른 친……, 사람을 만난다든가.]일전에 친구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걸 보면 당연히 친구는 없을 테고.
[평소에요?] [응. 그러니까, 여기는 꿈이잖아. 꿈에서 말고 잠에서 깨면 보통 뭐 하면서 하루를 보내?]우선은 얘 일상을 들으면서 이상한 부분을 짚어 봐야겠는데.
설마 어딘가에 갇혀 지내거나, 아예 방치당한 채 어떤 보살핌도 받지 않고 있는 거라면…….
[일어나면 보통 누가 식사를 들고 와요. 다 먹으면 아버지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시고…….] [잠깐만.]지금 목적어가 빠졌는데.
[뭘 가르쳐 준다는 건데?]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제 능력이 뭔지…….] [그러니까, 그게 뭔데?]기초적인 개념도 모르는 걸 봐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보이는데, 와중에 뭔가를 배우고 있다니.
모순적인 상황에 따지듯이 묻자, 루스가 더듬거리며 답을 내놓았다.
[그,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순간 큰일이 난대요.]그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나는 당장에 이마를 짚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깊게 심호흡했다.
아직 일과 듣는 거 안 끝났다. 진정해라, 나 자신아.
[그……으럼 그 후에는 뭐 하는데?] [다시 식사하고, 씻고, 남은 시간엔 가만히 앉아 있거나 잠을 자요.] [다른 건 안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든가……. 창밖을 구경한다든가.] [장난감? 창밖?] [미치고 환장하겠네.]애 앞에서 욕하면 안 되는데, 이건 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머리를 쓸어 올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일상을 들으면서 이상한 부분을 짚어 보자고?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하지 않은 데가 없잖아!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거야, 너는?
[루스, 루스.]나는 한층 다급해져 허공의 목소리를 향해 부탁하듯 말을 꺼냈다.
[네 꿈이 까만 건 아마도 네 무의식의 반영이겠지. 대체 뭐가 널 그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솔직히 그 환경에서 자라면 제대로 된 꿈을 꿀 수 있을 리가 없겠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건 아직 이해 안 해도 돼. 그러니까, 내 말은. 네 꿈을, 여기를 조금 바꿔 보면 안 될까?]루스를 처음 만났을 때 제안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한, 바로 그 부탁을 다시 한번 꺼냈다.
그저 암흑이 싫어서 그랬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이 아이의 환경을 알고 싶어서. 이 아이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여기를……?] [네가 사는 곳을 보여 줘. 네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우리 친구잖아.
나는 뒷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서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이제 막 친구가 무엇인지 알아 가는 아이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무기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나만 알고 있을게, 응? 어차피 말할 사람도 없어.]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부탁뿐.
얼마 동안 깊은 침묵이 흐른 후에야 나는 속삭임에 가까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해 볼게요.]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까맣기만 했던 공간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장막이 걷히는 것 같기도, 새로운 생명이 창조되는 것 같기도 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온통 새까맣던 공간에, 새로운 배경이 펼쳐졌다.
[이건…….]바뀐 풍경, 그러니까 루스가 지내는 곳은 언뜻 보면 예상외로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아니,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혼자 쓰기에는 넓은 침대와 호화로운 가구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벽지와 화려한 샹들리에까지. 심지어 샹들리에엔 마정석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보이기 마련.
[……창문이 없네.]우선, 이곳은 창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1층에 있는 침실인지, 높은 첨탑에 있는 방인지, 혹은 지하의 밀실인지 알 수조차 없게.
그래서 마정석 박힌 샹들리에를 크게 달아 놓은 거였어.
이곳은 햇빛이 스며들 수 없으니까, 자연광에 가까운 빛을 내는 마정석으로 대체한 것이다.
[허어.]일단 아이의 보호자가 상당한 부자인 건 알겠는데…….
나는 갈수록 아리송해지는 기분을 애써 넘기며 계속해서 방을 살폈다.
두 번째로 이상한 점.
이 방에는 시계도, 거울도 없었다.
이러니 애가 꿈에서 이렇게 의식이 선명한데도 스스로 몸을 구현하질 못하지.
나는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형체 없는 아이에게 다시금 부탁했다.
[루스, 혹시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 줄 수 있어?] [한번 해 볼게요…….]자신 없이 내뱉어진 목소리와는 달리 루스는 내 요구를 곧잘 수용해 주었다.
잠깐 사위가 어두워진다 싶더니, 누군가의 시점으로 이 방의 하루가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일부러 의식을 가라앉히고 꿈이 보여 주는 시점에 흐름을 맡겼다.
* * *
어린아이 특유의 낮은 시야가 한곳에 붙박인 채 움직일 줄을 모른다.
아이는 기계적으로 눈을 깜빡이기만 할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식사예요.]이내 고저 없는 목소리와 함께, 마치 공연의 장막이 걷히듯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깊은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처럼, 누군가 먹칠을 해 놓은 양 그 얼굴은 우악스레 가려져 있었다.
곧이어 멈춰 있던 아이의 시선이 주르륵 흘러내려 제 앞에 놓인 트레이로 향한다.
꽤 실력 있는 요리사가 만든 듯, 어느 하나 부실한 것 없이 영양소에 맞춰 제대로 차려진 음식들.
아이는 익숙하다는 듯 식기를 들어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 오늘도 잘 있었니?]낮은 시야 너머로 이전의 여인이 아닌 다른 이가 나타났다.
내내 바닥에 붙박여 있던 아이의 시선이 새로 찾아온 사람의 발끝을 따라 올라가려던 순간.
[이, 이건 안 돼요.]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기색의 목소리가 다급히 외쳤다. 동시에 아이 앞에 펼쳐져 있던 풍경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것만큼은 절대로 보여 줘서는 안 된다는 듯이.
[식사예요.]이윽고 사이를 서로 기운 것처럼, 조각난 풍경이 다시 재생되었다.
조금 전에 나타났던 남자가 아닌, 일전의 여인이 이번에도 아이의 앞에 트레이를 내려놓는다.
역시나 품질이 좋은, 그러나 그 무엇도, 하다못해 미세한 플레이팅조차 바뀌지 않은 구성의 음식.
아이는 이번에도 익숙하다는 듯 음식에 손을 뻗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식사가 끝나고.
마땅한 창문조차 없는 방에 홀로 갇힌 아이는 정적을 반주 삼아 눈을 깜빡이다가, 그 일이 질리면 가만히 누워 샹들리에를 바라보다가.
이조차 지루해지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아이가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풍경이 어두워지다 밝아지기를 몇 번 반복한 후.
[목욕할 차례예요.]이동식 욕조와 함께 이번에는 꽤 여러 명의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반항 없이 그들의 시중에 맞춰 욕조에 몸을 담근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반사된 수면을 따라 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짙게 빛나는 푸른 눈.
그러나 그 눈동자는 누구보다 세상을 즐기고 궁금해할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