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2)
대충 아침 11시 정도일 것 같은데, 조금 애매하네.
아침 늦게까지 자는 사람들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영양가가 없다.
일머리 있는 사람들은 10시쯤이면 모두 일하느라 깨어 있으니까.
그렇대도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라. 나는 서재를 벗어나 새까만 공간을 거닐기 시작했다.
이곳은 다른 이의 꿈으로 넘어가는, 이를테면 대기실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어떤 꿈에 들어가 볼까.]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꿈을 꾼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꿈에 들어가면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알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기도 했다.
말하자면 ‘꿈 투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이렇게 많고 많은 꿈 중에서 어떻게 내게 도움이 되는 꿈을 찾느냐?
그것도 모두 방법이 있다.
[오, 이건 좀 환하네.]개인이 가진 능력에 따라 꿈으로 향하는 문 주위가 밝게 빛나거든.
정확히 어떤 기준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아마도 잠재력 아닐까.
문 주위가 밝게 빛나는 사람의 이름은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 입장 좀 해 보겠습니다, 하워드 씨.
은은한 빛을 발하는 문에 다가간 후, 그대로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푸르른 평원이 펼쳐지는 동시에 누군가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마법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다! 나는 천재야!] [어이쿠.]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나는 곧바로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돌려 그대로 문을 닫았다.
저런 꿈은 영양가도 없을뿐더러, 괜히 눈이라도 마주쳤다간 서로 머쓱해지기만 할 뿐이다.
[또 뭐 없나.]역시 늦은 아침이라 그런지 문이 별로 없네.
이후로 덧없이 문들을 지나치며 시간을 축내고 있으려니, 별안간 저 멀리에 자그마한 문이 뿅 피어올랐다. 꿈의 주인이 이제 막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이 시간에?]뭐 밤이라도 샌 건가?
나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문이 생겨난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쪽은 한 번도 살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새로 넓혀진 구역인가?
[그러고 보면 저기만 유독 밝은 것 같기도 하고…….]보통은 깜깜해야 정상인데, 왜 저기만 저러지.
작은 의문을 품고 열심히 걸음을 옮긴 결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문이 주변 일대가 환하게 보일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던 것이다.
이 정도로 빛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곧바로 문의 주인을 찾기 위해 시선을 위로 올렸다.
본래 명패가 있어야 할 곳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채 뻥 뚫려 있었다.
[이름 없는 문……?]모든 꿈은 주인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설령 그 사람이 의식불명이든, 사람이 아닌 동물이든, 이름이 없어 별명으로 불리든.
해피든 초코든 방귀쟁이든 두칠이든 삼식이든!
살아 있는 이상 누군가에게 불리고, 이로써 제 존재를 드러내는 게 바로 인간 아니던가.
[……진짜 이름이 없어?]나름대로 요리 살피고 조리 살펴도 명패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문 주위에서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명패 하나 찾으려다 실명하겠네.
이내 나는 문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고서 고개를 기울였다.
[갓난아기인가?]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라면 명패가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이 정도로 빛나는 문을 본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
내가 온종일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만일 타이밍이 잘 안 맞으면 이 문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판단은 간결히, 행동은 단호히.
생각을 마친 즉시, 나는 괜히 들리지도 않을 노크를 두어 번 하고서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문 주위를 둘러싸던 빛무리가 한순간 내 몸을 휘감는다 싶더니.
[…….]곧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 깊은 어둠이 나를 압도했다.
[이게 뭐야.]갓난아기라 뭐 본 게 없어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걸 꿈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
이곳은 완전한 무(無)의 공간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암흑.
[……나가야 하나.]이름이 없는 것도 그렇고, 뭔가 찝찝하단 말이지.
들어왔던 곳을 더듬거리며 출구의 문고리를 손에 쥔 순간이었다.
[……거기.]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공간 속, 곧 꺼질 것 같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빼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환청을 들은 건 아닐 텐데?
[……거기 누구 있어요?]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다시금 문고리를 세게 틀어쥐고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온통 검디검은 탓에, 마치 귀신의 집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음산함이 몸을 타고 흘렀다.
딱 5초만 대답 기다렸다가 안 들리면 부리나케 빠져나가야지.
난 어둡고 답답한 곳은 질색이란 말이야.
5, 4, 3, 2…….
[누, 누구세요?]1을 세기 직전에, 또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문고리를 놓는 동시에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선, 이건 신생아의 꿈이 아니다.
저렇게 정확하게 말을 구사하는데 저게 무슨 갓난아기야. 나처럼 환생이라도 한 게 아니면 몰라.
아, 그러고 보니 환생했을 가능성이 있겠네. 그럼 일단 보류.
어쨌든 꿈의 주인이 스스로 목소리를 밝힌 이상, 이 꿈 같지도 않은 암흑천지는 확실히 누군가의 ‘꿈’이라고 봐야 옳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것투성이네.
아무런 내용도 없는 꿈이나 툭 튀어나온 목소리는 그렇다고 쳐도.
왜 문패에 이름이 없는 거지?
[저기요.]뭐 어찌 됐건, 꿈의 주인이 나타난 이상 대화라도 해 보는 게 좋겠지.
이름이 있든 없든 문에서 흘러나오던 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어디 있는지 모를 주인을 향해 말을 건넸다.
곧이어 앳된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현실이었다면 들리지조차 않았을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공간이 공간인 까닭에 어렵지 않게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거대한 공동에라도 갇힌 기분이네. 이런 곳은 딱 질색인데.
곧바로 다시금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하,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그보다 한발 앞서,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목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산들바람에도 꺼질 촛불처럼 한없이 유약한 목소리는 어쩐지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목소리만 듣고 상대를 동정하는 건 서로에게 몹쓸 짓이지만.
나는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꿈 주인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이름도, 모습도 없이 그저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
이 이상한 꿈을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래도 이야기 정도는 나눠 봐야 좋을지 깊은 고민이 나를 휩쌌다.
물론 원한다면 내가 이 꿈을 직접 조종할 수는 있겠지만, 왜인지 함부로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내 오랜 감각이 외치고 있달까.
‘게다가 꿈인데도 굉장히 의식이 선명해 보여.’
대부분은 꿈에 취해 내가 들어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데.
‘괜한 위험 요소를 두느니 빠르게 나가는 게 나으려나?’
근데 이렇게까지 환하게 빛나는 문은 본 적이 없단 말이야. 그냥 포기하고 나가기에는 언제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르고…….
오늘 이후부터 꿈도 안 꾸고 숙면한다거나, 나랑 잠드는 시간대가 다르거나.
‘하다못해 이 사람이 내 능력이 닿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 버린다면?’
돈은 소중하고, 그 돈을 불러오는 인재는 더더욱 귀중하다.
꿈이 좀 이상하다고 도망쳐 버리면 이런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지! 물론 그전에 죽겠지만.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 무서운 사람 아닌데.]보면 아시겠지만, 저 정말 순하고 착하게 생긴 사람이거든요.
당신의 꿈에 무단 침입하기는 했지만, 이건 신선한 경험이라 치고 넘어가 주시고.
[……이야기?]꿈 주인이 대체 어느 방향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대충 앞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하자, 곧이어 어둠 속에서 다시금 유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전보다 더 무해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목소리로 추측하건대 대충 나랑 비슷한 나이의 또래 같은데?
[네, 이야기요. 그전에 일단 제가 여기 좀 어떻게 바꿔 봐도 될까요? 어두운 건 딱 질색이라.]가능하다면 꿈 주인 얼굴도 직접 볼 수 있으면 좋고. 이름도 물어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지.
우선 주변 경관부터 바꾸기 위해 손가락을 빙글 돌리며 물은 찰나였다.
[아, 안 돼요.]마치 사시나무 떨듯, 기겁한 음성이 내 행동을 막아섰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여기서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데.
보통은 무의식에 빠진 사람들 몰래 꿈을 조작하고는 했으니까.
[그럼 잠깐 이야기만 나누는 건?] [그, 그것도 안 돼요.] [아, 그래요.]그럼 나도 그냥 떠나지, 뭐.
인재가 귀한 건 사실이지만, 당사자가 싫다는 걸 뭐 어쩔 수 있겠어?
짧게 어깨를 으쓱거리고선 등 뒤에 있는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바로 그때.
[……허락받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 나누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여전히 벌벌 떨리는, 그러면서도 어쩐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가 또 한 번 나를 멈춰 세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