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20)
‘조만간 탈레스 폐광산을 매각할 예정이에요. 대외적으로는 광산 경비 비용이 커져 팔게 되었다는 이유지만…….’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군요.’
‘대공자님껜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죠?’
그렇게 말하고선 방긋 미소 짓던 그 얼굴이 어찌나 맹랑하던지.
유스틴은 계속해서 피켓을 빙글빙글 돌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매장 내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측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경매에 저희가 알지 못하는 노다지가 숨어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노다지는 무슨, 이미 다 말라 버린 광산을 노리는 척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경매품을 선점하는 게 좋겠군요.”
바로 그걸 노리고 이곳에 온 것이다.
유스틴은 고개를 슬며시 기울이며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현 상황은 토가 나올 정도로 지루했으나, 미에나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간들을 구경하는 건 퍽 즐거운 일이었다.
에버딘 가문의 대공자를 경매의 바람잡이로 보낼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재미있는 아이지.’
자신이 대공가의 자제라는 사실은 새하얗게 잊은 듯 허물없이 대하려 들다가도, 의외로 그어 놓은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욕심이 많기에 가능한 일이야.’
가진 욕망이 거대하기에 잠깐의 이득을 좇지 않는 것이다.
유스틴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 없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제 가문에 이득이 될 만한 거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던 푸른 눈동자 속으로 순식간에 스며드는 그 열의가.
찻주전자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고, 급하게 일어서려 할 때마다 넘어질 듯 휘청이는 몸을 가지고서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그 용기가.
‘미에나 시두스는 아주 귀중한 인재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사업 상대였다.
고작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할 법한 평가는 아니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그녀가 가진 고유의 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정도의 상황 판단력과 배짱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물론 바보 같은 면도 있지만.’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유스틴의 손짓이 한순간 멈칫했다. 또 지난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것도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던, 그래서 더 이질적인 기억이.
* * *
‘저희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모르지 않으실 테죠.’
동업자가 될 소녀와 대강의 이야기를 끝낸 후, 정식으로 계약을 권하기 위해 시두스 백작의 서재로 향하던 와중이었다.
자신을 안내하던 미에나 시두스는 돌연 이렇게 운을 뗐다.
‘그렇게 쏟아붓고도 로레인 존슨의 유산의 3분의 1이나 되는 빚까지 졌을 정도예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이전까지 보여 주었던 모습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대화 주제였다.
‘아무리 대공가라고 할지라도, 제 연명 치료비를 대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거예요.’
‘…….’
‘제 무엇을 보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투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대공자님의 감이 틀렸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서 그녀는 ‘정보의 대칭성은 상호 존중되어야 하니까 말해 주는 거다’, ‘그때 가서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해도 난 이미 세상에 없는 몸이 되어 있을 거다’,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양심선언이다’ 따위의 말도 덧붙였다.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경고를 해 주는 것처럼.
갑작스레 쏟아진 다소 뜬금없는 말에 자연스레 제 걸음은 천천히 멎을 수밖에 없었고.
자신이 뒤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미에나 시두스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서 뒤를 돌았다.
그 순간 자신이 본 것은 퍽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곧은 빛, 그 비스듬한 선 아래 선 소녀.
내려앉은 햇빛을 따라 부드럽게 반짝이는 은회색의 머리카락이.
반쯤은 어둠에 먹히고 반쯤은 빛에 파묻혀 서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
그 환한 빛조차도 흔적도 없이 좀먹힌 듯, 이전과는 다르게 진중하고 어둡게 가라앉은 짙푸른 눈동자가.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공허함마저 느껴지는, 바로 그 눈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마땅한 이유도 찾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게 될 만큼, 숨을 쉬는 것조차도 잊게 할 만큼.
너무나도 무겁고 깊어서…….
‘대공자님?’
‘아.’
미에나가 한 발짝 다가오며 걱정스럽게 저를 부르고 나서야, 자신은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기묘한 느낌은 제게 퍽 익숙지 않아서, 금방 너스레도 떨었더란다.
‘아무것도 없는 폐광산을 제값의 몇 배에 팔려고 하는 사람이 했다기에는 너무 양심적인 발언이라.’
‘혹시 동업자한테 시비 거는 게 취미세요?’
다행스럽게도 미에나 시두스는 금방 이전에 보여 주었던, 밝고 허물없는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어째서 ‘다행스럽다’라는 감정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부러 더 과장을 담아 그녀의 걱정을 덜어 주기로 했다.
‘동업자의 죽음을 손 놓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평판 측면에서든, 알량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든.’
‘정말 솔직하시네요.’
‘그리고 전 제 감을 믿습니다.’
그러니 설령 정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네 잘못이 아니라.
내가 섣불리, 하지만 언제나처럼 내 감을 믿은 잘못일 뿐이라고.
그것이야말로 저보다 한참 작고 연약한 아이를 위한, 아니, 어쩌면 정말로 제 죄책감을 덜기 위한 걸지도 모르는.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 * *
‘제 감을 믿습니다’라는 말에 숨기지 못하고 피어오르던 떨떠름한 표정이 어찌나 웃기던지.
유스틴은 제 머릿속을 헤집은 기억의 마지막 자락을 흘려보내며 무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사실 미에나 시두스의 충고는 애초에 제게는 별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이번 협상의 활로만 제대로 열어 준다면, 그로 인한 이득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테니까.
‘비단 마정석 거래뿐만이 아니다.’
마정석 거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제 무역이 시작될 테니까.
더 많은 상인이 솜니움을 오가고, 수입과 수출량도 상승하고, 다양한 산업이 활성화되겠지.
그리고 에버딘 가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따지자면, 이건 오히려 완전히 남는 투자였다.
‘그 아이는 미처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그녀는 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제 능력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그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포기했다는 느낌이었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예감한 것처럼, 저보다도 어린 소녀는 담담하게 제 죽음을 논했다.
제 몸 대신 자신이 떠난 뒤 남겨질 사람들의 삶을 걱정했다.
실로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이번 경매품은 바로 탈레스 폐광산 및 일대 토지 소유권입니다.”
그사이 경매는 빠르게 진행되어, 어느덧 그가 나설 차례가 다가왔다.
유스틴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눈앞의 경매에 시선을 두었다. 그마저도 한없이 무감한 눈빛이었다.
“부동산 감정평가액은 30만 페온입니다.”
30만 페온이라.
사실 로레인 존슨의 재산이 이미 시두스가에 넘어간 이상, 30만 페온도 미에나 시두스에게는 충분한 이득이 될 터였다.
‘탈레스 폐광산의 가격이 보화의 예상 가치보다 커지는 순간 사람들은 매입 자체를 포기할 테니, 그 적정선을 잘 지켜야 해요.’
그렇기에 미에나 시두스는 굳이 모험을 택하는 대신 적정선까지만 치고 빠지라고 했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올라가는 호가 사이에서, 유스틴이 한쪽 입꼬리를 부드럽게 빼 당겼다.
“32만 페온.”
“32만 페온 나왔습니다.”
“33만 페온!”
“34만 페온!”
이 기회에 제 소중한 인재이자 동업자에게 ‘에버딘’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는 것도 좋겠지.
유스틴은 그대로 우아하게 피켓을 들어 올리며 호가했다.
“200만 페온.”
* * *
경매가 열리고 바로 다음 날.
나는 시두스 저택 앞으로 배달된 우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그 앞에는 유스틴 에버딘이 고고한 자태로 앉아 유유히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를 한 번, 눈앞의 증명서를 한 번 바라보다 말고 툭 말을 내뱉었다.
“낙찰가가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 대공자님.”
분명 부동산 감정평가액은 30만 페온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왜 낙찰 대금 완납 증명서에는 300만 페온이 적혀 있는 걸까?
어쩌다가 감정가보다 열 배나 뻥튀기된 건지 모르겠네…….
“당연히 동업자의 수완이 뛰어난 덕이죠.”
유스틴이 차를 마시다 말고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심지어는 항상 피곤에 절어 있던 눈동자마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광기에 젖은 표정은 대체 뭐지.
칭찬해 달라는 건가. 아니, 물론 칭찬해 마땅할 일인 건 맞는데.
도대체 어떻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