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21)
“사실 제가 예상했던 낙찰가는 150만 페온이었거든요. 그것도 바람잡이가 제 역할을 최대한 잘 수행해 줬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요.”
1만 페온만 되더라도 일반 평민은 1년을 일도 안 하고 놀고먹으며 살 수 있다.
보물 상자에 들어 있던 로레인 존슨의 재산이 250만 페온 정도였으니, 150만 페온 정도는 적당히 바람만 잘 넣으면 부추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건데. 그 두 배가 넘는 금액을 벌게 하다니.
이건 단순하게 대충 바람 잡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수준인데?
혹시 에버딘 가문의 이름을 걸고 협박이라도 자행했나요?
“협박 안 했습니다.”
“제 표정이 너무 티 났나요?”
너무 믿기지 않아서 그만.
손으로 슬며시 얼굴을 쓸며 말하자, 유스틴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를 따라 어색하게 웃으며 표정을 정돈했다.
다음에 만날 땐 마스크라도 쓰고 있을까.
“레이디께서 가끔 저와 제 가문의 사회적 위치를 망각하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곧이어 그가 다시금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제국 내의 상인이나 귀족들은 언제나 에버딘 가문의 행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엇에 관심을 지녔는지, 무엇을 매입하고 매각했는지, 누구와 가까이 지내는지.”
“마지막 말은 조금 섬뜩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최근까진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 놨었으니까요.”
어쨌든 앞으로는 우리 가문에도 시선이 쏠릴 거란 뜻 아니야.
앞으로 물 밀 듯 쏟아질 각종 티파티 초대장의 거절 답신을 쓸 생각에 머리가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별개로 유스틴의 말뜻은 곧바로 이해했지만.
“제 예상보다 에버딘 대공가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말씀이시군요.”
“어차피 누가 사는지는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미리 정보를 얻은 인간들도 예상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혈안이 되었을 테고요.”
“허어.”
나는 또르르 시선을 굴려 낙찰자의 이름을 살폈다.
패트릭 존슨.
제 아버지의 유산과 더불어 투자의 귀재인 에버딘 대공가의 점지까지 받았으니, ‘이건 꼭 가져야 해!’라는 마음이 발동했나 보지.
사업 수완이 좋지 않은 패트릭 존슨에게 300만 페온이면 제 아버지의 상단을 팔아야 구할 수 있는 돈일 텐데.
미안합니다, 로레인 존슨 씨.
하지만 당신의 아들이 구제 불가능한 불 속성 효자인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어쨌든 저는 레이디께서 부탁하신 일을 수행했으니.”
이제는 당신의 차례겠군요.
뒤이어 유스틴이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를 따라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맡겨만 주세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VIP 고객님.
* * *
신이 등장하는 꿈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바로 ‘멋짐’이다.
완벽한 타이밍에 상서로운 기운을 뽐내며 멋지게 등장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기본 소양.
멋짐이 없으면 신도도 안 생긴다. 신도가 없으면 멋지지 않다.
이것이 신의 숙명. 멋짐의 굴레!
어쨌든 이 신의 숙명을 위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면.
[아아, 자네트……. 그리운 나의 자네트…….]리넥스 외교관의 꿈에 잠입해서 언제 등장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나는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 둔 채 길게 하품했다.
유스틴 때처럼 입장하자마자 꿈의 주인과 눈이 마주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꿈에 들어오자마자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루스의 꿈에서 영감을 좀 받았지.
이전까지는 너무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해서 내 몸 자체를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단 생각은 못 했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그대에게 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소. 그러니까…….]리넥스의 사절단 중 한 명인 로버트 씨가 돌아보지 않는 여인을 향해 애처롭게 외쳤다.
벌써 몇 분째 그는 고백할락 말락 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등장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그의 고백 쇼를 강제 관람하고 있는 상황.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절절하게 사랑을 고백하려 하는데, 눈치 없이 나타나 ‘듣거라, 우매한 인간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고백하겠…….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30년 동안 미루고 미뤄 왔지만…….]30년?
신은 눈치 따위 없어.
[자, 자네트……?]제 앞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여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로버트 씨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 틈을 타 주위 하늘에 구름을 흩뿌린 후, 구름 사이로 빛을 내려보내며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려워 말라……, 라고 하기엔 이번에는 조금 두려워하는 게 좋겠다.
두려워하라, 인간아.
곧이어 나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목소리를 모방하고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과실을 탐하는 자, 녹음에 눈이 가려 샘을 보지 못하노니.] [이, 이게 대체……?]로버트 씨가 이전보다 더 세차게 고개를 휘저으며 주위를 살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엄하게 말을 이었다.
[뱀의 혀를 지닌 자, 꼬리를 물고 헤맬지어다.]자고로 신의 뜻이란 몇 번 정도 꼬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 하지만.
그래도 난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바로 답을 도출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신탁을 내렸으니 나름 자비로운 편에 속하지 않을까?
[베, 베르단디시여……!]곧이어 그가 상황을 파악한 듯 재빨리 부복했다.
원래 신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쿨하게 퇴장해야 멋있는 법.
바꿔 놨던 풍경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자, 로버트 씨가 덜덜 떨다 말고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나타난 구 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뒤로한 채 빠르게 문을 열고 퇴장했다.
앞으로 같은 신탁 몇 번 더 내리려면 바쁘니까, 이후엔 알아서 하십시오.
30년의 고백 파이팅!
* * *
이튿날 새벽.
리넥스의 외교 사절단이 머무는 닉스 궁은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 댓바람부터 때아닌 소란에 휩싸였다.
외교 사절로 온 사제들이 모두 임시 예배당에 모인 까닭이었다.
“로, 로버트 경! 제가 무엇을 보았는지 아십니까?”
사절단 내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제가 예배당에 속속히 도착하는 사제들을 맞이하며 호들갑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니, 허억, 우선 내, 헉, 말을 들어 보게. 후, 내가 무엇을 들었느냐면 말이지…….”
그러자 이번에는 가장 나이가 많은 사제가 숨을 고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어린 사제의 말을 가로챘다.
이외에도 웬만한 고위 사제들은 모두 제 말을 먼저 들어야 한다며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버트는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황망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잠깐만요. 형제님들.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아니, 제 말을 먼저 들으셔야 한다니까요!”
“아닐세, 내 말을 먼저 들어야…….”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두가 제 말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상황이 말입니다.”
로버트의 말에, 시끄럽던 홀이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제 말을 들어야 한다며 우기지 않았던가.
마치 신탁이라도 들은 것처럼…….
“혹시……, 자네도?”
“형제님도?”
“설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신탁을 들었다는 겁니까?”
한 사제의 마지막 발언에, 장내가 이전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 가운데 로버트만이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서 드문드문 말을 건넸다.
“그,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셋을 세면 각자 자신이 들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 좋습니다.”
“그럼 제가 셋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과실을 탐하는 자, 녹음에 눈이 가려 샘을 보지 못하노니…….”
“뱀의 혀를 지닌 자, 꼬리를 물고 헤맬지어다!”
구령이 끝나기 무섭게 똑같이 내뱉어진 말에, 리넥스 사절단의 사제들이 눈을 크게 홉떴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문장을 듣다니.
이는 변명할 여지도 없지 않은가!
로버트는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선언했다.
“신탁! 베르단디께서 우리에게 신탁을 내리셨다……!”
* * *
난데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내려진 신탁에, 리넥스 외교 사절단에는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다.
얼마나 큰 소란이 일었느냐 하면, 당장 당일에 예정되어 있던 3차 협상까지 취소하고 황급히 리넥스의 성황에게 전서를 날릴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단체 신탁’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에 기함한 성황은 급기야 본인이 직접 솜니움에 가겠노라 선언했고.
당연히 성황의 갑작스러운 솜니움 방문 의사를 접한 제국 또한 덩달아 비상사태에 빠졌더란다.
이 때문에 무역 협정은 잠시 중단된 상태.
아마도 다음 달 월간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리넥스 성황의 솜니움 방문, 호재인가 악재인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어쨌든 이런 신문에도 실리지 않은 비사를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느냐면…….
“다 같이 허둥지둥하는 꼴이 제법 웃기더군요.”
당연히 황실 깊숙이 연관된 에버딘 대공자 덕분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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