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23)
미에나 시두스, 단기 유배형에 처하다.
나는 창밖에 고정되어 있던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호화로운 유배라니.’
반대편에 앉은 부모님은 연신 내 표정이며 몸 상태를 살피고 계셨다.
“혹 몸이 안 좋다 싶으면 당장 말해야 한다. 알겠니, 미아?”
“지난번에 탈레스에 다녀오고 나서도 며칠을 앓았다며.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가야 하는데.”
“저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너는 안 괜찮은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하잖니…….”
“그때는 이렇게 좋은 마차도 아니었던 데다 쉬면서 이동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날도 추워서 그랬던 거예요. 지금은 정말로 괜찮아요.”
지금은 가문의 문장만 없을 뿐이지 두 발 뻗고 누워도 될 정도로 호화롭고 큰 마차를 탄 데다, 중간중간 머무는 숙소 또한 여타 여관과는 달리 굉장히 깔끔하고 편안했다.
심지어 이 뒤로는 유스틴이 직접 고용한 호위 용병과 의원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도착하면 대공자님께 편지라도 보내야겠어요…….”
지금도 이 정도인데 자신이 ‘후원’했다고 주장하는 별장은 얼마나 호화스러울까.
작게 중얼거리자,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부모님 또한 잠시 흐뭇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공자님께서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은 미처 몰랐지 뭐니.”
“에버딘가는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하하.”
당연히 모르셨겠죠. 이건 오로지 저만을 향한 아첨에 가까우니까.
이렇게 보면 정말 과하긴 하지만, 사실 제국이 얻은 이득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기는 했다.
‘내가 성황을 제국으로 불렀는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심지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이용당할 테고. 하지만 이걸 사실대로 말하면 아버지가 당장 마차를 돌릴 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불편한 진실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다시 돌아가면 놀지도 못하고 시간만 날리는 거니까.
“별장이 하임 산맥 근처에 있다고 했던가요? 이왕이면 대공자님께서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안 그래도 내가 여쭤봤는데,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하시더군.”
당연히 그럴 것이다. 며칠 내내 나를 만나느라 잠시 미뤄 두었던 업무를 처리해야 할 테니까.
나는 그들의 대화를 한쪽 귀로 흘려 넘기며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숲길을 지나 탁 트인 평야 너머로는 어느덧 기다란 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하임 산맥이라면…….
‘50년 만에 돌아왔다는 마법사가 드래곤을 봤다고 주장한 곳이었지.’
저 울퉁불퉁한 능선을 보니, 정신이 없으면 정말로 드래곤이랑 착각할 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또 얼마나 지났을까.
다행히 저녁이 되기 전, 우리는 유스틴이 후원했다는 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별장을 마주한 내 소감을 정리하자면 이거였다.
유스틴은 진짜 중간이라고는 없는 애구나.
“이게 별장이라니.”
우리 영지에 있던 저택보다 넓어 보이는데?
아무리 시두스 가문의 영지가 특히 작은 편에 속했다고 한들, 그래도 영주의 저택인데.
역시 돈의 힘이란 대단하구나.
에버딘 대공가가 대단한 건가.
“어머나, 예뻐라.”
곧이어 내 곁에 선 어머니가 드넓게 펼쳐진 화원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티나 역시 입을 떡 벌린 채 연신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호수가 이렇게 넓고 깊다니, 까딱 잘못했다가 빠지면 시체도 못 건지겠어요.”
“저쪽에 조각배가 있구나. 미아를 태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방금 티나가 빠지면 시체도 못 건지겠다고 말했는데, 저를 태우고 싶다고요……?
섬뜩한 집단적 독백에 입술을 오므리고 있으려니, 곧이어 한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이 별장의 관리인인 레오날드 버틀러라고 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반짝이는 눈동자를 내게 고정한 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동시에 나는 곧바로 직감했다.
유스틴이 언질 줬구나.
여기서 제일 잘 보여야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걸.
“저쪽에 작은 배가 있던데, 내 딸이 뱃놀이를 즐길 수 있겠는가?”
그사이 아버지가 연신 호수 쪽을 흘긋거리며 넌지시 물었다.
나는 레오날드 씨가 거절 의사를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원하시면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레오날드 씨, 당신은 초장부터 저를 성심껏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는구나, 미아. 네 어머니와 뱃놀이하고 오는 건 어떠니? 그간 티나도 고생 많았으니 같이 다녀오고.”
“좋은 생각이에요, 여보. 미아는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배를 타 본 적이 없으니까…….”
“시두스 경께서도 같이 즐기시는 건 어떠십니까. 더 큰 배를 준비하라 명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네.”
아니, 저는 탄다고 한 적 없는데요.
더 큰 배라고 해도 결국에는 조각배일 텐데, 그거 조금만 움직여도 출렁여서 좀 무섭단 말이야.
괜히 단체로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티나 말대로 진짜 넓고 깊어 보이는데.
“그, 저는…….”
입을 연 순간, 아버지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꽂혔다.
나는 순간 말을 내뱉으려다 말고 가만히 숨을 참았다.
그렇게 하나같이 설렌 얼굴로 쳐다보면 싫다고 할 수가 없잖아.
“너어무 기대돼요오, 헤헤.”
나는 하는 수 없이 안면 근육을 잡아당겨 순수한 어린아이의 미소를 내비쳤다.
그래, 사공도 있겠다 내가 빠져도 누군가 건져 주겠지.
여러분이 좋으면 나도 좋아…….
* * *
좋지 않았다.
전혀, 절대, 정말로 좋지 않았다.
나는 안내받은 침실에 도착하자마자 비척비척 걸어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늘어뜨렸다.
내 곁으로는 티나가 눈썹을 누그러뜨린 채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가씨?”
“괜찮을 리가…….”
“주인님께서 조금 짓궂으셨죠.”
“티나는 그게 조금이었어……?”
나는 지옥을 보고 왔는데.
내 말에 티나가 또 한 번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곧이어 그녀가 내민 약을 냉큼 입에 털어 넣고서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약이 쓴 게 아니다. 인생이 쓴 거다.
내가 이다지도 진절머리를 치는 원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 때문이었다.
‘미아, 재밌지? 응?’
‘아, 아버지, 조금만 천…… 악! 아버지! 아, 좀! 멈추라고!’
어떻게 호수 위에 떠 있는 배를 억지로 흔들 수가 있어. 이 조각배가 무슨 베트남 바구니 배도 아니고.
물론 그 정도로 심각하게 흔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간 떨어질 뻔했단 말이야.
“다시는 아버지랑 같이 조각배 안 탈 거야.”
“주인님도 다시는 그런 장난 안 치실 거예요. 마님께도 엄청나게 혼나셨잖아요.”
“으…….”
“아가씨께서 그렇게 소리 지르시는 건 처음 봤다니까요. 특히 ‘아, 좀! 멈추라고!’ 하셨을 때 주인님의 표정이―”
“알았으니까 그만 놀려.”
내 말에 티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서 그녀는 더없이 다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 툭 말을 건넸다.
“정말로 아가씨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서 그러신 건 아닐 거예요. 알고 계시죠?”
“응, 알고 있어.”
나는 이불 아래로 몸을 더 쑤셔 넣으며 웅얼거렸다.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것과는 별개로,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가 응석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겠지. 다시 태어나고 나서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으니까.’
이건 비단 내 정신연령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건 염치의 문제였다.
간이며 쓸개며 다 떼 줄 것처럼 나를 정성껏 보살피고 챙겨 주는 사람한테 어떻게 응석을 부릴 수 있겠는가.
‘물론 오늘은 내 간을 떼 가려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제 자식이 제게 한 번쯤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것뿐이었다.
보통의 자식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난 정말 부족한 자식인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가씨. 아가씨만큼 착하고 예쁜 분이 또 어디 있다고요.”
반쯤은 흐릿해진 정신으로 중얼거리려니, 티나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저는 아가씨가 화내셔도 좋고, 욕을 하셔도 좋아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주인 내외께서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우응…….”
“혼자 많은 걸 짊어지려 하지 마시고, 조금은 저희한테 기대 주세요.”
저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아가씨의 편이니까요.
이내 티나가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자장가 삼아 깊은 수마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몸 전체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어우.]곧이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히 또렷해진 정신으로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이렇게 곯아떨어지듯이 잠든 건 되게 오랜만이네. 아무리 편안한 마차라도 역시 피로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니, 어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걸로 보아 아마 디스코 팡팡(조각배 ver.) 때문인 게 분명해.
[아무튼, 다 화냈으면 이제 할 일을 하자.]거리가 멀어서 루스의 꿈에 닿을 수 있나 싶기는 한데. 일단 종이비행기를 날려 봐야지.
하얗고 작은 아기 강아지를 떠올리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려던 찰나였다.
[……?]나는 불현듯 몰려오는 위화감에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