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32)
뭐야, 사람 무안하게 반응이 왜 저래. 자기보다 신분 낮은 사람이 윗사람처럼 칭찬해서 기분 나쁜 건가.
“대공자님?”
슬그머니 들어 올렸던 엄지를 접어 넣으며 눈치를 살피니, 유스틴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 말고 그제야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럴 수 있죠, 이해해요.”
무릇 사람이란 ‘사과’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이러다가 생각을 백두산까지 보내 버리는 존재니까.
“어찌 됐든, 설득은 당신의 몫입니다.”
곧이어 완전히 정신을 차린 유스틴이 여상스러운 태도로 말을 건넸다.
“조언을 하나 하자면, 당신이 내건 조건처럼 그는 돈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마 보통 사람처럼 포섭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탐나네요.”
정확히 내가 원하는 인재상이야.
나는 다시 한번 방긋 미소 지으며 장담의 말을 꺼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능력으로 어떻게든 포섭할 테니까요.”
돈으로 안 된다면 인연으로 꾀지, 뭐.
인연 만들기는 내 특기니까.
* * *
유스틴은 내게 그 사람의 이름과 현 거주지를 알려 주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걸 알려 주기 위해 저택에 방문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오래 머무르다 갔단 말이야.
[하여간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요즘따라 표정 읽기도 어렵고. 와중에 걔는 내 표정을 다 읽어서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란 말이지.
모두가 잠든 밤.
나는 그가 알려 준 이름이 적힌 종이비행기를 바라보며 폭 한숨을 내쉬었다.
[지크프리트 러셀이라.]러셀이라면 대대로 기사를 배출해 낸 가문이었지. 그러고 보면 유스틴도 그가 10년 전에 기사직을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내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안 나와 있고.’
10년 전이라면 아직 인명사전을 만들지 않았을 때라, 그 뒤로 신문 같은 데에 이름이 나지 않았으면 당연히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그걸 찾은 유스틴도 참 대단해.
[아무튼, 빨리 해치울까.]후딱 끝내고 루스 보러 가야지.
오늘은 현장 체험 학습의 일환으로 바다나 산을 보여 줘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지크프리트의 이름이 적힌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렸다.
그러자 종이비행기는 힘차게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가.
[……엥?]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툭 추락했다.
[뭐야. 왜 이래.]크레이튼 지방이면 분명 내 탐지 범위 안에 있는 곳일 텐데.
그보다 더 멀리 있는 사람의 꿈에도 들어가 본 적 있으니, 이건 확실했다.
[아직 안 자는 건가?]나는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주섬주섬 다시 주워 들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어른은 좀 더 늦게 잘 수도 있지.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날려 보자.
조금만 있다가…….
·
·
·
조, 조금만 더…….
“기다릴 게 아니잖아!”
“에그머니, 깜짝아!”
내 분노 섞인 외침에 커튼을 걷던 티나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 뺨에 닿는 이건 분명 햇살인데. 응, 햇살이잖아.
그건 즉 지금이 아침이란 뜻이고.
“허, 허?”
나는 그대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 지금 설마 꿈 하나 못 찾고 잠에서 깬 거야?
* * *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 탓에 작게 덜컹거리는 소리가 쉼 없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벨벳으로 덧댄 시트에 뺨을 대고서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크레이튼 지방으로 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꿈과 희망이 아닌, 불안과 절망을 안은 채로.
‘그나마 멀리 있는 곳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지크프리트 러셀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치고는 꽤 황도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따르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하아…….”
원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우선 꿈에 들어가서 정보를 모으고, 몇 번이고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서 내 외양을 각인시키고.
그러고 나서야 지금처럼 크레이튼으로 가서 ‘너와 나는 운명이다!’라는 사실을 어필하려 했는데.
이게 내 완벽한 플랜이었는데.
“왜…….”
왜 꿈을 찾을 수 없는 거야?
폭신폭신한 쿠션에 몸을 맡긴 채 징징대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호위가 몸을 움찔거렸다.
혹여나 내가 시트 아래로 떨어질까 봐 불안한 모양이었다.
‘사실 떨어질 리가 없는데.’
새로운 마차는 내 옆으로 어린애 한 명쯤은 더 누워도 될 정도로 넓고 커다랬다. 심지어 이런 좌석이 양쪽에 있고.
그 거대한 마차 앞에서, 아버지는 나보다 더 신난 얼굴로 이렇게 외치셨다.
‘자, 미아. 새 마차란다! 이제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을 게야!’
나는 그때 깨달았다.
당장 새 마차를 구하겠다고 해 놓고선 한동안 유스틴에게 마차를 빌려야 했던 이유.
그건 탈레스 폐광산이 팔리기 전까지 자금 유통을 감추기 위해서도, 내가 집에 있기만을 바라서도 아닌.
그저 특별 주문 제작 상품이라 오래 걸렸을 뿐이라는 사실을.
“몸이 좋지 않습니까?”
떠오르는 기억에 한숨을 푹 내쉬려니, 이번에는 마차의 바퀴 소리 대신 단정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늘어뜨렸던 목을 바로 하고서 역시나 건너편에 앉은 유스틴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내게 시선 한 점 주지 않은 채 들고 온 서류들을 빠르게 훑어내리고 있었다.
얘는 멀미도 안 하나 보네. 역시 젊은 게 좋아.
“바쁘시다더니.”
“바쁩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앉아 계시네요. 이상하기도 해라.”
그땐 꼭 안 올 것처럼 얘기하더니.
내 말에 그제야 그가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시두스 백작께서는 오늘 일정이 있어 당신과 동행할 수 없었잖습니까.”
“그거랑 대공자님이 여기 앉아 계시는 거랑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당신이 보호자도 없이 크레이튼까지 가겠다는데,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혀야 말이죠.”
유스틴이 그것도 모르겠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가끔 보면 당신은 의외로 이상한 부분에서 둔하더군요.”
“제가요?”
“본인이 어리고 약하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아하.”
요컨대,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애 취급하고 있다는 소리군.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하긴. 유스틴의 말처럼 나는 누가 봐도 어리고 약한 소녀니까.
게다가 정말로 건강도 좋지 않으니, 유스틴 입장에선 보호자도 없이 뽈뽈 돌아다니다가 픽 쓰러지지는 않을까 싶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유스틴한테 몰래 동행을 부탁한 걸 수도 있겠는걸.
“호위도 여러 명이나 있으니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는데.”
“믿고 맡길 수 있는 자가 당신 곁을 지킨다면 저도 굳이 따라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방금 건 옆에 계신 기사분께 실례되는 발언이지 않을까요?”
“만일의 상황에도 제가 아닌 당신을 최우선으로 둘 수 있는 자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자는…….”
“잘 이해했으니 마저 일 보셔요.”
옆에 있는 기사님 곧 울겠다, 야.
나는 내내 안절부절못한 채 나와 유스틴을 번갈아 바라보는 건너편의 기사를 흘긋거렸다.
차라리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겠지. 이해합니다.
제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 보기도 전에 죽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 이해해요.
“그나저나, 시두스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마차에 에버딘 가문의 대공자가 타 있으니.”
나는 불쌍한 기사 아저씨를 위해 일부러 화제를 돌려주었다.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소문나겠네요. 에버딘 가문과 시두스 가문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러자 유스틴이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냉큼 답했다.
“그건 이미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사실입니다. 아마 티타임 초대도 받기 시작했을 텐데요.”
“그러고 보니…….”
실제로 얼마 전부터 티나가 티파티 초대장을 내게 건네주기 시작했지. 양이 꽤 돼서, 일일이 거절 답장을 쓰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더란다.
진통제가 없었다면 분명 중간에 때려치우고 침대에 누우러 갔을 거야.
“기껏 에둘러 거절하면 다음번엔 티타임에 직접 초대해 달라는 답장을 받았을 테고요.”
“굉장히 상세하게 알고 계시네요?”
“들려오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게 모든 정보를 다 들으려면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질 않겠어요, 대공자님.”
진짜 잠 잘 자는 거 맞지?
조만간 다시 불시검문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유스틴이 곧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러고서 그는 마차에 탄 후 처음으로 사르르 눈꼬리를 휘며 말을 건넸다.
“저라고 모든 정보를 다 듣지는 않습니다. 쓸데없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는 안 듣느니만 못하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