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41)
내 말에 유스틴이 짧게 턱짓했다. 나는 그의 시선 끝에 닿은 물건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가리킨 것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건네주었던, 마정석이 박힌 아티팩트였다.
“시전자가 받은 물리 공격을 10회 상쇄시켜 주는 아티팩트입니다. 러셀 경 앞에서는 잠시 시간을 끄는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당신이라면 그 안에 묘책을 내놓을 수 있겠죠.”
“아니, 무슨…….”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건 그렇다 쳐도, 이 귀한 걸 왜 내게 준 건데.
나는 쉬이 이해하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멀미 해소용 아티팩트인 줄 알았는데…….”
“누가 귀한 아티팩트에 그런 마법을 걸어 놓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귀한 아티팩트면 대공자님이 들고 계셔야지…….”
나한테 건네주면 자기는 죽겠다는 소리 아니야?
“이거 지금이라도 돌려드릴게요.”
남의 비싼 물건을 들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심장에 좋지 않아서.
황급히 들고 있던 아티팩트를 유스틴에게 건네자, 그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됐습니다. 하나 더 구하면 그만이니까요. 당신이 가지고 있으세요.”
“아니, 그래도 이렇게 비싼 걸 이유도 없이 덥석 받기에는…….”
“후원 물품이라고 생각하세요.”
“아,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 황소고집을 보아하니 어차피 안 받을 것 같은데, 괜히 더 실랑이할 필요는 없지.
나는 곧바로 아티팩트를 다시 품 안에 집어넣고서 냉큼 감사 인사를 건넸다.
유스틴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드디어 시선을 내려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그렇게 크레이튼 지방에 다녀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게 흘렀다.
나는 그중 초반 3일을 내리 앓았는데, 아무래도 단시간에 이런저런 일에 휩쓸렸던 여파 같았다.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티나는 난리가 났고.
‘당분간은 절대 안정이다, 미에나! 사업 생각일랑 하지 말고 쉬거라!’
급기야는 사업 구상 금지령까지 내리며 나를 침실 안에 가두었더란다.
심지어 유스틴이 찾아와도 문전박대 할 기세였다.
다행히 리넥스 성황의 솜니움 방문이 성큼 다가온 덕에, 유스틴도 요 며칠 시두스 저택에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유스틴도 은근히 운이 좋단 말이야. 지금 왔으면 분명 모두의 눈초리를 받았을 텐데.
“그나저나 사업은 진짜 어쩌지.”
적어도 리넥스 성황이 오기 전까지는 제대로 윤곽을 잡아야 할 텐데.
루스의 현장 체험 학습 일정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번 사업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던 순간이었다.
“저, 아가씨.”
별안간 노크 소리가 두어 번 울려 퍼지더니, 티나가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티나?”
이 시간엔 웬만하면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 설렁줄을 건드렸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펼쳐 놨던 지도를 슬쩍 이불 밑으로 숨겼다.
그러자 티나는 잠깐 두 눈을 부릅떴다가,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내게 말을 건넸다.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대공자님?”
“아뇨, 다른 분이에요.”
그리고 솔직히 그분은 이곳에 조금 덜 방문할 필요가 있어요.
그녀가 작게 투덜거리고서 덧붙여 말했다.
“페터라고 소개하면 아가씨께서 알 거라고 하시던데요.”
“러셀 경?”
진짜로 찾아왔다고?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고서 침실을 박차고 나갔다.
티나는 내 뒤를 착실히 따르면서도 응접실에 가는 내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세요, 아가씨. 또 앓으면 어쩌시려고요!”
“오래 쉬어서 이 정도는 괜찮아, 티나. 뛰는 것도 아니잖아. 나 오늘 몸 상태도 좋은걸.”
“적어도 몸 상태에 관해서는 아가씨의 말을 믿지 말라는 대공자님과 주인님의 전언을 받았어요.”
“철저하기도 하셔라.”
아버지라면 몰라도 유스틴까지 그런 말을 하다니.
이윽고 응접실에 다다른 찰나였다.
“그렇게 빨리 걸어올 필요는 없는데.”
특유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시선을 올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금빛 리본으로 동여맨 타오를 듯 붉은 머리카락. 시원하게 드러난 이마와 푸른 눈동자.
지저분한 수염마저 모두 깎아 내 한결 깔끔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인사했다.
“또 만나네, 꼬마 아가씨.”
지크프리트 씨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머리나 수염은 말할 필요도 없고.
유행이 조금 지나기는 했지만, 그는 먼지 묻은 옷 대신 단정한 셔츠와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제복이 아닌 사복이라는 점만 빼면 빅토리아 씨의 꿈에서 봤었던 젊은 지크프리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나저나 지크프리트 씨가 여기 왔다는 건, 결국…….’
예상은 했지만 역시 조금 마음이 쓰린걸. 지크프리트 씨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지만.
“저…….”
무어라 위로의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아, 우선 감사 인사부터 건네마. 저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그냥 보냈지.”
나보다 한발 앞서, 지크프리트 씨가 웃는 낯으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그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기색에, 나는 홀린 듯 그의 손을 맞잡았다.
“덕분에 니케도 나도, 모두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이에요. 티나, 손님이 오셨으니 차 좀 내어 올래?”
나는 맞잡지 않은 손을 들어 연신 이쪽을 흘끗거리는 티나에게 나가 보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티나는 경계심 넘치는 눈빛으로 나와 지크프리트를 연신 흘긋거리다가, 이내 다른 하인 한 명을 응접실 안에 세워 놓고 나서야 찻주전자를 챙기러 갔다.
‘저래 봤자 별 쓸모는 없을 텐데.’
물론 티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저 거대한 사람이 다짜고짜 나를 찾아왔다는데, 걱정될 만도 하지.
그나저나 고작 악수만 하는 건데도 몸이 휙휙 흔들리는군. 역시 힘이 좋으셔.
“모두 네 덕분이야. 큰 빚을 졌어.”
그사이 지크프리트는 계속해서 내 손을 붙잡은 채 연신 감사를 표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빚이라뇨,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인데요.”
딱히 대가를 바라고 한 일도, 생색내고 싶어서 나선 것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기분인걸.
괜히 싱숭생숭한 느낌에, 나는 지크프리트 씨가 내 손을 놓아준 즉시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감사 인사라면 편지를 보내셔도 됐을 텐데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부모님이라도 뵙고 가시는 건 어떠세요?”
“응?”
“두 분께선 잠시 외출하시긴 했는데, 아마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그때까지 잠깐 앉아 계시면―”
내가 채 말을 끝마치기 전의 일이었다.
“하녀한테 전해 듣지 않았나?”
지크프리트 씨가 푸른 눈동자를 내게 고정한 상태로 끼어들었다.
“물론 형님 내외를 보는 것도 좋긴 하다만, 그전에 우선 나는 널 찾아온 거야.”
“저를…….”
“그때 내가 거절했던 제안, 아직 유효하지?”
이어 말을 마친 지크프리트 씨가 다시 한번 눈부신 호선을 그렸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 말고 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사실 유스틴이 저번에 그렇게 호언장담해 놓은 탓에, 이곳에 왔다고 했을 무렵부터 어렴풋이 예상하기는 했지만.
다짜고짜 은혜니 큰 빚이니 하며 감사 인사를 건넸을 때도 ‘올 것이 왔구나’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내 처지로서는 복이 넝쿨째 들어온 경우나 다름없으니 냅다 절부터 하는 게 옳지만!
“그래도 이건 좀…….”
“왜, 내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찾아온 것 같아?”
작게 중얼거리기 무섭게, 지크프리트 씨가 냉큼 질문을 던졌다.
나는 슬며시 머리카락 몇 가닥을 붙잡아 얼굴을 가렸다.
아무래도 조만간 유스틴한테 진짜로 표정 숨기기 개인 강습을 들어야 할 듯싶었다.
내 속마음은 혹시 공공재인가.
“나는 네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정리하면서 보냈어. 너도 알다시피 꽤 어리석은 생각까지 했었잖아.”
뒤이어 지크프리트 씨는 커다란 손으로 제 뒷머리를 슬슬 긁으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니케도 내가 천년만년 슬퍼하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 오래 땅 파고 있을 수는 없지.”
그렇지, 맞는 말이지.
아주 바람직한 마인드입니다. 마음을 고쳐먹어서 참 다행이에요.
“게다가 이쪽도 어지간히 급해 보이고.”
음, 이것도 맞는 말이지.
곧 있으면 당장 리넥스 성황이 솜니움에 도착할 텐데, 그전에 적어도 레어 안에 보화가 얼마나 있는지 정도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유스틴이 급한 일이라는 것까지 언급했던 걸까?
“그날 네가 해 준 일들에 목적이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
내가 쓰러진 사이 두 사람이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눴던 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안, 지크프리트 씨가 말을 이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니케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했으니, 나름대로 유언도 잘 지키는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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