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51)
여전히 방긋방긋 미소 짓고 있으려니, 그가 느른하게 고개를 꺾었다.
나는 그에 따라 가로로 늘어진 길쭉한 동공을 바라보며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어르신이 저렇게 아무 말 없이 빤히 바라볼 때마다 심장이 아파.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거지만, 그보다는 너무 무서워서.
“내가 이 모습으로 와이번의 등에 건 마법.”
곧이어 그가 기울였던 고개를 원위치하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 마법이 무슨 마법인지 알고 있느냐.”
여기서 갑자기 질문 타임이라니?
“저는 마법은 정말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는데요……. 대충 복합적인 마법이 아닐까요?”
산소의 부족함 없이 주변 온도를 유지하며 모든 물리 공격까지 막아 주고, 심지어는 그렇게 빨리 날면서도 바람이 통하게 해 줄지언정 날아가지는 않게 조절까지 하니까.
굳이 따지자면 하이-테크놀로지? 솔직히 과학으로도 이건 못 하지 않을까?
“틀렸다. 이건 아주 단순한 마법이란다.”
하여 이 모습으로도 가능한 거지.
이윽고 어르신이 내 이마를 톡 치며 내내 굽혔던 상체를 바로 세웠다. 나는 괜히 이마를 문지르며 시선을 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결계 마법은 아닌 것 같았는데요.”
“그야 결계 마법이 아니니까.”
“결계 마법이 아니라면…….”
“소원 마법이란다. 나는 주로 명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말을 마친 그가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 냈다. 어제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얘기해 주는 것만큼이나 여상스러운 태도였다.
물론 내게는 전혀 여상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대로 입술을 오므렸다.
그게 뭐가 단순해…….
“와이번의 등에는 ‘인간이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라’라는 마법을 걸었지.”
“아하.”
저 명령으로 인해 내 ‘안전한 이동’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이 모조리 상쇄된 거구나. 거참 신기한 마법일세.
나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제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해 달라고 빌면 되지 않을까요?”
과학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낼 정도면, 내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미에나 시두스의 건강 상태가 고정되었으면, 하고 빌면 되는 일 아닌가?
“소원 마법은 단순한 만큼 한계도 명확한 편이다. 그게 뭔지 아느냐?”
“아뇨,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숨도 쉬지 않고 재빨리 답했다.
배우지도 않은 지식을 자꾸 물어보는 저의가 궁금합니다, 교수님.
자못 진심을 담아 솔직히 답하자, 황수정 같은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그러고서 그는 노래하듯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원을 실현하는 강제성은 시전자가 가진 능력을 상회할 수 없다.”
“…….”
“즉, 그릇의 크기에 따라 이룰 수 있는 소원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지.”
이어 길고 수려한 손가락이 내 머리를 콕 찌른다 싶더니.
“내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네 몸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느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채 또다시 물었다. 나는 곧바로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고서 정답을 말했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순 바보는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그가 손바닥을 들어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 뭔가 정말 선생님께 칭찬받는 기분인걸.
심지어 인자한 미소까지 합쳐지니 공부 열심히 하라며 사탕이라도 쥐여 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 당장 네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건 내 심장뿐이다. 하나 지금은 잠들어 있는 상태라 네게 건네줄 수 없지.”
분명 아무 느낌도 없어야 할 쓰다듬인데도 괜히 뒤숭숭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그가 덧붙여 말했다.
“누군가 강제로 내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게 가능한 존재는 아마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정답이다. 하찮은 잔챙이들은 잠든 채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니.”
말을 마친 그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미소 지었다. 나는 눈동자를 사선으로 데굴데굴 굴리며 어색하게 입술을 끌어 올렸다.
하여간 대단한 힘이야.
그 거대한 힘이 응축되어 있는 드래곤의 심장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내 힘도 대단하고.
‘생각해 보니 화나네.’
나는 이런 강함을 원하지 않았는데. 아니, 애초에 이건 강한 것도 아니잖아.
내 힘이 강해져 봐야 꿈의 탐지 범위가 늘어나는 것밖에 더 없잖아?
“어르신과 비교하면 제 능력은 정말 하찮고 쓸모없는 것 같아요.”
차라리 드래곤처럼 강했으면 몰라.
작게 투덜거리자, 그가 이번에도 내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쑤석거리는 시늉을 했다.
“내 네게 가진 것을 다 줄 만큼 유용한 능력이지 않으냐. 무식하게 힘만 쓸 줄 알았다면 너는 지금 이곳에 서 있지도 못 했을 테지.”
“그건 그렇지만…….”
확실히 돈 벌기에는 좋은 능력이지. 그렇게까지 몸을 쓸 일도 없……나? 어쩐지 최근엔 많이 돌아다닌 느낌인데.
“그래도 네 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니 다행이구나.”
그사이 어르신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얘기 나눴을 때는 아예 마음을 정리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나는 몇 번 헛기침을 내뱉고서 투덜댔다.
“어르신께서 절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계속 말씀하시니까 그런 거잖아요. 아니었으면 지금쯤 편하게 쉬고 있었을 텐데.”
“편히 쉬기는. 분명 네 욕심 하나 못 참고 돌아다니고 있었겠지. 내 너를 모를 줄 아느냐.”
“역시 어르신은 대단하시다니까.”
괜히 찔리는 마음에 부러 더 과장되게 말하니, 어르신이 픽 코웃음을 내뱉었다.
다행스럽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이는 웃음이었다.
“아무튼 내가 깨어날 때까지 얌전히 몸 보전하고 있거라. 괜히 혼자 빨빨대지 말고.”
“언제는 자주 놀러 오라고 하셨으면서.”
“물론 나는 자주 보러 와야지.”
그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저 당당한 태도, 오만한 자신감.
그 모습이 퍽 익숙하면서도 웃겨서 작게 키득거렸다가,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르신은 언제쯤 깨어나실 수 있는 거예요?”
“글쎄. 그래도 머지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점점 의식이 선명해지고 있으니.”
그러니 이런 잔재주도 부릴 수 있는 거고.
곧이어 그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심드렁히 답했다. 나는 말을 꺼내는 대신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당장 내일 걸어가다 넘어져 죽을지도 모르는 게 인간인데.
역시 괜한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겠어. 준 적도 없는데 줬다 빼앗기는 느낌은 받고 싶지 않으니까.
“쯧, 하여튼 알기 쉬운 표정.”
바로 그때, 어르신이 혀를 한 번 차더니 내 이마 위에 검지 끝을 가져다 댔다.
동시에 양 눈썹 사이로 희미한 열기가 맺힌다 싶더니, 환한 빛무리가 몸을 타고 넘실넘실 흐르다 사라졌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너희 미물의 몸은 참 하찮구나.”
“지금 이거 마법이죠? 무슨 마법인 거예요?”
“간단한 보호 마법이다. 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하지.”
어르신의 ‘간단하다’는 절대 간단하지 않을 텐데.
여전히 남아 있는 마력의 느낌에 멀뚱히 두 눈을 깜빡이려니, 이내 그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제 길 가다 넘어져 죽는 일 같은 건 없을 게다.”
“어르신…….”
“피곤하구나. 이만 가 보거라.”
그러고서 그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뒤척이는 그의 본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이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여러모로 신세 많이 지고 갑니다.
* * *
“이곳이 너무 그리웠어.”
그렇게 며칠이 지난 오후.
지크프리트 씨가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리고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요양을 떠난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수척했다.
‘내가 밥을 덜 먹인 것도 아니고.’
며칠에 걸쳐 옮긴 덕에 사실 그렇게 힘든 작업도 아니었을 텐데.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 지크프리트 씨가 직접 마차를 몰 수밖에 없긴 했지만.
아무튼 이게 다 잠을 못 자서 그래.
“수고 많으셨어요, 러셀 경. 들어가면 일단 푹 주무세요.”
“그전에 저거 먼저 다 옮겨야지.”
곧이어 나를 내려 준 지크프리트 씨가 턱으로 마차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끝에는 빵빵한 자루들이 빼곡하게 자리해 있었다.
“나야 뭐 시키는 대로 옮겼다지만, 저거 어떻게 설명할래?”
이내 그가 시선을 돌려 이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천천히 손을 흔들어 보이고서 방긋 미소 지었다.
“어쩌긴요. 언제나처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시길 바라야지.”
답은 언제나 ‘그렇게 됐다’ 전법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