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55)
잘 가다가 난데없이 길 잃은 종이비행기가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꿈의 주인이 도중에 잠에서 깬 것.
혹시나 다시 문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한참 기다려 봤으나, 한 번 추락한 종이비행기는 다시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기다리자니 지크프리트 씨 때처럼 될 것 같아서.
[미에나 눈이 세모예요.]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으려니, 루스가 손가락으로 제 눈을 아래로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는 곧바로 잡념을 지우고서 생긋 미소 지었다.
며칠 만에 만났는데 괜한 생각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지금은 루스한테 집중하자.
[루스가 보기에 내 표정이 안 좋아 보였구나. 이거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오늘은 인성 교육 시간이랍니다, 작은 신사님.
부드럽게 웃으며 묻자 루스가 앙증맞은 뺨을 붉게 물들이며 답했다.
[미에나가 웃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그러고서 그는 짧게 망설이다가, 이내 다가오라는 듯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나는 곧바로 허리를 굽혀 루스와 시선을 맞췄다.
[왜, 루스?]그리고 바로 그 순간.
[기분 좋아져라.]하얗고 자그마한 손이 내 머리 위에 닿더니, 이내 천천히 궤적을 그리며 앞뒤로 움직였다.
서툴면서도 한없이 다정한 손길이었다.
[아, 그, 그게. 미에나가 이렇게 해 줄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서…….]예상치 못한 행동에 멀뚱히 눈을 깜빡이고 있으려니, 루스가 푸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우물쭈물 설명을 보탰다.
나는 귀 끝까지 빨갛게 물든 홍당무 같은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기분 정말 좋아졌어.]루스의 경우 몇 년 동안이나 타인과 정서적으로 제대로 교류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내심 걱정했는데.
내 마음에 공감해 주는 거로도 모자라 이렇게 귀여운 위로까지 건네주다니.
[위로해 줘서 고마워, 루스.]내 감사 인사에 루스는 몇 번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곧 환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 맑은 눈동자 속에 차오른 순수한 기쁨을 마주하고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요 작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이 맛에 애를 키우는구나!
[이렇게 귀여워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미에나?] [나 진짜 힘낼게, 루스.]널 이 암흑에서 꺼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나 이제 돈도 많아.
세상은 돈과 권력이면 못하는 게 없단다.
내가 가진 권력은 별로 없지만, 이것도 어떻게 비비면 될 것 같거든?
‘이렇게 된 이상 성황을 내 편으로 만든다.’
나는 루스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비며 각오를 다졌다.
드래곤도 꼬셨는데 성황이라고 못할쏘냐.
[저, 저도 힘낼게요.]저를 가르치는 일을 힘내겠다고 한 줄 알았는지, 루스가 품에 안긴 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나는 그의 머리칼을 앞뒤로 벅벅 문지르며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죽기 전에 얘를 그 사육장에서 빼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설령 그럴 수 없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사회에 내던져지게 될 이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도록.
내가 꼭 준비해 줄게.
* * *
다음 날 아침, 유스틴은 곧바로 시두스 저택에 황궁으로 향하는 마차를 보냈다.
고작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다니, 이유는 모르겠으나 성황도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황궁에서.
“내가 제 발로 황궁에 다시 발을 들이는 순간이 올 줄이야.”
안내인의 뒤를 따르던 중, 지크프리트 씨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거대한 몸을 한껏 구긴 채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런다고 숨어지겠습니까, 휴먼.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고 저택에 그냥 계시래도요.”
“명색이 네 호위인데 어떻게 너만 황궁에 보내? 황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그걸 알고 계시면 제 등 뒤에 숨어 계실 게 아니라 절 지켜 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근데 적어도 지금은 네가 나보다 더 강한 것 같아. 그러니까 네가 나 좀 지켜 줘.”
말을 마친 지크프리트 씨는 급기야 제 옆머리로 가짜 수염까지 만들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와이번을 상대로도 기죽지 않던 인간이 이렇게 쭈그러진단 말인가.
“황제 폐하가 두려우신 건가요? 아니면 사람들한테 들키는 거?”
“남들이야 나를 알아보든 말든 신경 안 써. 황제, 정확히는 그 입에서 나올 명령이 무서운 거지.”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솔직히 명령에 충성할 것처럼 보이진 않으신데요.”
“평소라면 그러겠지. 그런데 황제……, 폐하껜 빚진 게 있어서 불복할 수도 없단 말이야.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어어, 뭔가 거기서 더 말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가뜩이나 듣는 귀 많은 황궁에서 불경한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따라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한 번 혀를 쯧 차고서 안내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거침없이 발을 들였다.
“나도 막 그 생각을 한 참이야.”
지크프리트 씨 역시 재빠른 걸음으로 내 뒤를 따랐다.
성황이 머무는 별궁은 본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해 있었다.
게다가 단순한 사절도 아닌 리넥스의 성황이 직접 행차한 까닭에, 별궁을 드나드는 시녀의 수도 상당한 상황.
그 와중에 웬 작고 허여멀건, 공식 사교계에 등장하지도 않은 유령 같은 여자애가 별궁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소문 퍼지는 건 한순간이겠네.’
이곳에 오는 동안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던 것도 그렇고.
심지어 앞서 나가는 안내인조차 연신 눈동자를 뒤로 굴리며 나를 살피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언젠가는 퍼질 소문, 거기서 뭐 하나 추가된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지만…….
‘유스틴이 괜찮을지 모르겠네.’
한때의 소문이라고 한들, 남은 사람은 그 한순간의 가십에 평생을 붙들리게 될 터.
‘뭐,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되리란 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황궁에 부른 것도 유스틴이고.
“이곳입니다.”
시시콜콜한 생각을 흘려보내며 걸음을 옮기려니, 곧 안내인이 걸음을 멈추고서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서 그는 짧게 목을 가다듬은 후 이전보다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하, 시두스 백작 가문의 영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거라.”
이윽고 안쪽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안내인의 것보다도 훨씬 앳된 음성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보았던 신문에서 이번 대에 최연소 성황이 선출됐다고 했었지.
‘지크프리트 씨와 비슷하거나 좀 더 어린 느낌이려나.’
감상을 마치고서 안쪽으로 발을 들이던 찰나였다.
“죄송하지만 경께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으응?”
안내인이 팔을 뻗어 지크프리트 씨의 앞을 막아섰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졸지에 앞이 가로막힌 지크프리트 씨는 안내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알현을 허락받은 이는 레이디 시두스뿐입니다. 경께서는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제대로 된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고 대뜸 레이디만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겁니까? 그것도 저 엎어지면 죽을 것 같은 어린애를?”
마지막 말은 굳이 안 덧붙여도 됐을 텐데요…….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지크프리트 씨의 항의에도, 안내인은 일관된 태도로 그의 앞을 막아설 뿐이었다.
이러다 일 나겠네.
나는 지크프리트 씨의 옷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고서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전 괜찮으니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아니, 하지만…….”
“별일 없을 거예요. 절 믿어요.”
개인적인 용건이든 뭐든, 어쨌든 나는 리넥스 성황의 부탁 아래 황궁에 발을 들인 솜니움의 귀족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국가적 분쟁이 될지도 모르는데, 설마 무슨 짓을 하겠어? 그것도 타국의 중심부 한복판에서.
오히려 저쪽에서 경계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결국 지크프리트 씨 역시 한 수 접기로 했는지, 한 걸음 뒤로 물리며 내 목에 걸린 마정석 목걸이를 빤히 응시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리처드 8세를 부르라는 표현인 듯싶었다.
나는 대충 이해했다는 표시로 눈썹을 한 번 씰룩이고서 다시 등을 돌렸다.
와이번은 무슨. 부르는 순간 전쟁 시작이에요, 이 양반아.
물론 이 안에 있는 작자가 전쟁도 불사하는 미친놈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시두스 가문의 여식, 미에나 시두스가 리넥스의 성황께 인사 올립니다.”
이윽고 완전히 응접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리 어린아이가 올 줄 알았으면 달콤한 다과를 준비해 놓을 것을.”
“…….”
“인사치레는 되었으니 고개를 드세요, 레이디 시두스.”
이어 흘러나온 건 정중하면서도 유한 높임말이었다.
성황이 나한테 존댓말을?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 보면 일단 내가 저지른 짓은 모르는 게 분명한데.
“부디 공대를 거두어 주세요, 성하.”
말을 마치고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람을 바라본 찰나였다.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는 어쩐지 익숙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