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58)
말을 마친 성황이 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미소 지었다. 그 어느 때보다 유약하고 힘없어 보이는 미소였다.
그거라면 일단 내가 도울 수 있는 분야기는 한데.
그렇지만 괜히 그의 꿈에 들어갔다가 내가 남의 꿈에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자연적으로 베르단디 여신의 신탁 역시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흘러갈 텐데.
“저, 그게…….”
사정은 안타깝지만, 나와 유스틴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지.
나름대로 정중한 거절 문구를 떠올리던 찰나였다.
“비록 제 개인적인 부탁이기는 하지만, 응해 주신다면 성심을 다해 은혜를 갚을 생각이에요.”
그보다 한발 앞서, 성황이 빠르게 덧붙여 말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레이디의 소원 하나쯤 들어주는 건 예삿일도 아니죠.”
“저만 믿어 주세요, 성하.”
안 돼도 되게 만들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확답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기다려라, 유스틴.
이 누나가 국외 은행 유치권 딱 따온다!
* * *
“왜 이렇게 안 나오나 했네. 기다리다가 지치는 줄 알았어.”
응접실 밖으로 빠져나오자, 지크프리트 씨가 냉큼 내 두 어깨를 잡아채고서 신중하게 내 몸을 살폈다.
무슨 공항 수색대도 아니고.
“저 정말 괜찮으니 그 정도만 해요. 초대해 주신 분께 실례잖아요.”
나는 그의 크고 투박한 손을 아래로 끌어내리며 안내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분은 우리의 무례를 못 본 척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성황이 개인적으로 모셔 오라고 부탁한 사람인 만큼, 최대한 비위를 거스르지 말자고 판단한 거겠지.
“차라리 ‘그곳’에 드나드는 게 몇 배는 더 나은 것 같다. 여긴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혀서, 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안내인의 배웅을 받아 시두스 저택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탄 후, 지크프리트 씨가 조금 풀어진 행색으로 툭 말을 내뱉었다.
“내가 괜히 주책을 부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곳이 황궁인 이상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알고 있어?”
“그래도 설마 타국 중심부에서 해당 국민을 해하려 들겠어요. 성황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방심하다가 훅 가는 거라니까? 꼭 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상한 짓은 할 수 있다고.”
그건……,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군.
나는 한순간 내 온몸을 휩쌌던 성황의 마력풍을 떠올리고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크프리트 씨가 마차 한편에 두고 내렸던 검집을 다시 허리에 차며 덧붙여 말했다.
“가뜩이나 너는 내가 툭 치면 쓰러질 정도로 약한데.”
“러셀 경이 툭 치면 누구든 쓰러지지 않을까요……?”
솔직히 검이 없어도 지크프리트 씨라면 누구든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자, 지크프리트 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여튼, 좀만 한눈을 팔면 또 이상한 소동에 휘말리니. 너 때문에 내가 제 명에…….”
지크프리트 씨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하고 그의 입 안으로 녹아들었다.
제 명에 못 산다는 말이었겠지. 그런 건 그냥 말해도 되는데.
“아무튼, 그래서 넌 왜 부른 거래?”
곧이어 지크프리트 씨가 두어 번 헛기침을 내뱉고선 화제를 돌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제게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으셔서요.”
“널 어떻게 알고 콕 집어서?”
“높으신 분들께는 다 방법이 있겠죠.”
물론 이번에는 권력으로 찾은 게 아니지만.
음, 아닌가? 유스틴을 만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날 몰랐을지도.
“무슨 부탁인데?”
“그건 못 말하죠. 의뢰인께서 비밀 유지를 부탁하셨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고객의 개인 정보는 비밀 보장이 원칙인 법.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 씨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너 설마 그 대공자한테도 말 안 하려고?”
“당연하죠.”
이건 당연히 유스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유스틴이 굉장히 궁금해하겠지만, 어쩌겠어. 내가 이걸 말하는 순간 다 같이 위험해질 텐데.
게다가 나야 어르신의 보호 마법이 있으니 괜찮다지만, 지크프리트 씨나 유스틴은 그런 뒷배가 없잖아.
특히나 제 한 몸 정도는 어떻게든 보전할 수 있는 지크프리트 씨와는 달리, 유스틴은 머리 쓰는 게 전부인 연약한 도련님인데.
“가뜩이나 대공자님은 몸 쓸 줄 모르는 연약한 두뇌파 도련님이라, 더 알려 드릴 수 없어요. 위험해.”
“대체 무슨 비밀이길래 그렇게까지 말하는……, 잠깐만.”
덩달아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지크프리트 씨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너 지금 그 도련님을 연약한 사람이라고 말한 거야?”
나를 바라보는 짙푸른 눈동자에는 황당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난 사실만을 말했을 뿐인데 왜 저런 표정이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유스틴은 그냥 잠 못 자서 휘청대던 비리비리한 소년이잖아.
그리고 오늘 비실이가 한 명 더 추가되었고.
“진짜 별나다고 해야 할지…….”
서로 다른 분위기의 다크서클 트윈즈를 떠올리고 있으려니, 지크프리트 씨가 설설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의 반응을 흘려 넘기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그래도 대공자님이 직접 중간 다리 역할을 해 주긴 하셨으니, 오늘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을 드리긴 해야겠네요.”
그렇게까지 나를 걱정했다는데,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유스틴이라면 알아서 잘했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확실하게 못 박는 게 좋겠지.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의뢰부터 해결해야겠지만.
* * *
그날 밤, 여지없이 잠든 꿈속에서.
[좋아, 잘 가네.]나는 이상 없이 순항하는 종이비행기를 따라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스틴을 통해 귀한 약재를 보냈는데, 다행히 그걸 먹고 잠든 모양이었다.
참고로 그 귀한 약재는 모두 수면제 성분이다.
성황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약사를 불러 모든 약재 성분을 알아봤을 것까지 고려해, 특별히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재료와 조제법을 사용했더란다.
‘레어 창고에 고대 약 제조법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드래곤의 지혜를 빌려 만든 건지, 안에 적힌 내용들은 하나같이 어느 가문의 비전으로 전해졌을 법한 유용한 것들뿐이었다.
……설마 어르신이 어디 가문에 줬다 뺏은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이 약 덕분이라고 생각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한 성격으로 보건대, 그렇게 쉽게 넘어갈 리는 없겠지.
설령 그래도 상관없기는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가 안정적으로 잠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뿐이니까.
‘그래도 안심하면 안 돼.’
성황은 오랜 시간 불면증을 앓아 온 만큼 온갖 약재나 수면 성분에 내성이 있을 터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하루는 거뜬하게 잠드는 양이라지만, 성황에게는 아마…….
[길어도 여섯 시간이려나.]이것도 최대로 잡은 거고, 그전에 깰 가능성이 더 컸다.
시간이 엄청 촉박한 건 아니었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법.
[찾았다, 이둔 3세.]나는 어느덧 눈앞에 나타난 문을 바라보며 의지를 다졌다. 역시나 그의 꿈은 하얀 빛무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르신이나 루스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밝긴 밝단 말이야.
[실수하지 말자.]이번 임무는 비단 의뢰의 완수뿐만이 아니라, 지난 의뢰의 비밀 유지 엄수까지 달린 일이었다.
성황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내가 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끝까지 숨겨야 한다.
[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최종 점검을 끝마친 후,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젖혔다.
곧바로 모습을 가린 후 둘러본 주변은…….
‘뭐야, 이게.’
이거 완전 수라장이잖아.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고서 숨을 삼켰다.
성황의 꿈속은 어린아이가 하나 들어온다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 꼬마부터 늙은이까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들 중 대다수는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아아악!] [끄어억……!]모두 저마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한곳으로 달려들고 있었다는 것.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하는 모습에,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벌리는 동시에 눈동자를 굴려 그들이 달려드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끝에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당연하게도 이둔 3세였다. 공포에 젖은 얼굴은 지금보다 소년 태를 벗지 못해 앳되어 보였다.
그 곁에 있는 이는 그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는데,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둔 3세를 챙기는 모습이 꽤 애틋했다.
사람들에게 쫓기는 악몽이라. 하지만 성황 성격상 이런 걸로 고질적인 불면증까지 얻을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더, 충격적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윽!]이둔 3세를 지키며 뒤를 따르던 중년 남성이 결국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러고선 소름 끼치는 소리가 꿈속에 울려 퍼진다 싶더니.
[라……, 그나르!]이내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대신, 누군가의 한 맺힌 고함이 귓속에 벼락같이 꽂혔다.
[너 때문에! 너만, 없었어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