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6)
“저 샘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시면 그때는 얌전히 저택으로 돌아가 몸을 회복하는 데에만 열중하겠어요.”
“흐음.”
내 말에 아버지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조금 전과는 달리 이해득실을 따지는 상인의 눈빛이었다.
이건 못 넘어갈걸. 나는 생긋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연명 치료도 군말 없이 열심히 받을게요. 설령 아버지께서 또 빚을 지신다고 할지라도요.”
“그게 정말이냐?”
역시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실처럼 가느다랗던 아버지의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번쩍 뜨였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빚을 내도 좋다는 말에 달려드는 사람은 세상에 아빠 말고 또 없을 거야. 남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아끼고자 그렇게 아등바등하는데.
“아직도 이해는 잘 못 하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해가 될 것 없는 제안이구나. 그래, 좋다!”
곧이어 아버지가 흔쾌히 수락하려던 찰나였다.
“아, 대신.”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말을 막아서며 덧붙여 말했다.
“저기서 정말로 무언가가 나온다면, 그때는…….”
“그때는?”
“앞으로 시두스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세요.”
사실 방금 건 그냥 미끼고, 본론은 이거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설득하려 들었다간 안 그래도 짧은 명줄이 더 짧아질 게 뻔했다.
“시두스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버지가 내 말을 되뇌며 침음을 흘렸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가문에 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
“…….”
“딱히 제 몸을 혹사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남은 시간은 가족이랑 보내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이게 다 가문 살리려고 하는 거라니까? 저스트 트러스트 미!
“그래, 그러마.”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혼신의 눈빛 공격을 보내려니, 결국 아버지가 나지막이 긍정했다.
사실 이렇게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지. 내 말이 거짓이어도, 거짓이 아니어도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솔직히 보물 상자가 있으면 싶다가도,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윽고 샘에 조심스레 발을 담근 아버지가 고해하듯 말을 내뱉었다.
“이미 너와 약속까지 했으니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말이다.”
“…….”
“나는 네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그러고서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이른 나이잖니.”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마주 바라보았다.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던 탓이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줄 수 없다.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내 몸은 이미 희망과 포기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남은 건 그저 끝을 기다리는 것뿐.
“……그래, 견뎌야 하는 너도 고역인 거겠지.”
아버지 역시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곧 고개를 돌려 더 깊숙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런데, 미아. 정말로 이곳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샘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아버지가 포기 선언을 내뱉으려던 순간, 그가 돌연 말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었다.
그 정직한 반응에, 나는 그대로 입꼬리를 씨익 빼 당겼다.
찾았구나! 내 보물! 내 돈!
“설마, 진짜로……?”
이내 아버지가 허리를 숙여 물밑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표정에는 불신과 놀라움이 한데 섞여 있었다.
“진짜로 뭐가 있나요, 주인님?”
티나 역시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버지의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관람하며 손가락으로 코 밑을 쓱 훑었다.
‘당연히 놀랐겠지.’
설마 저 더러운 샘에 뭐가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그래서 로레인 씨가 일부러 저곳에 보물 상자를 숨겨 둔 거지만.
그는 시작점과 끝을 똑같이 설정하였다. 일부러 수많은 시험을 통과한 후 끝내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해 순환의 이치를 깨닫게 했으며.
‘보물의 가치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교훈을 심어 놨지.’
비단 보물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재능이나 특기도 마찬가지였다.
능력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그사이 상자를 샘 밖으로 꺼내 온 아버지에게 작게 고갯짓했다.
“열어 보세요, 아버지.”
적어도 빚을 다 갚을 정도는 될걸. 그 사람이 여간 부자였어야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아버지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샘 안에 들어가는 게 마지막 관문이었던 만큼, 상자의 잠금장치를 푸는 데는 별다른 열쇠가 필요하지 않았다.
곧이어 물에 젖은 상자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고,
“……맙소사, 신이시여.”
안에 담긴 내용물을 확인한 아버지가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서 쾅! 상자를 닫았다.
그러고서 그는 몇 번이나 심호흡하고서 다시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가.
“신이시여, 맙소사.”
다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쾅! 상자를 닫았다.
그렇게 끼익, 쾅! 끼익, 쾅! 하는 소리가 여러 번 반복되었을 즈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버지가 급기야는 황망함을 넘어 허망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말을 건넸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실 제게는 돈 냄새를 맡는 능력이 있거든요.”
조금 자랑스러워하셔도 돼요.
와! 백작님 딸 건강 말고 다 있다!
“원래는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숨기고 살려고 했는데, 저 때문에 급기야 빚까지 지셨다고 하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미에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여전히 영혼 한 조각 떨어진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혹시 왜 그런 능력을 지금껏 숨겨 왔냐고 뭐라고 하시려는 걸까. 그렇지만 이 능력은 방금 급조한 거라서요…….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재빨리 변명하기 시작했다.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 그래도 제가 저 때문에 날린 돈은 다 갚아 드릴 테니까요.”
그 보물 지도의 암호만 해독된다면 이 탈레스 폐광산의 가치도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물론 보물은 우리가 이미 꿀꺽한 후겠지만.
“이 상자가 가볍게 느껴져도 사실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거든요. 이럴 줄 알고 최소한의 호위도 안 데려온 거니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운반할 수 있을 거예요. 마부도 기껏해야 낡은 상자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나중에 사람들이 이 탈레스 폐광산에 몰려들 텐데, 그때 가서 막기에는 너무 늦으니 우선 이른 시일 내에 높은 울타리를 쳐서 이곳이 사유지라는 걸 알리고, 사람들이 이곳을 넘기라고 찾아오면 그때부터…….”
“미에나, 잠깐!”
완벽한 계획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던 순간, 아버지가 내 말을 막아섰다.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춘 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내가 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단지. 내 말 좀 들어 보렴.”
“아, 죄송해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또 내 말만 하고 있었네.
나는 입을 합 다물고서 어서 말하라는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를 한 번, 티나를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자를 한 번 바라보았다가.
더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상자를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이 돈은 네 치료비에…….”
“안 돼요.”
나는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도박 중독도 아니고.
아니, 치료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
* * *
예상대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금화와 보물은 아버지가 진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 연유로 일단 보물의 3분의 1은 빚을 갚는 데에 사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남은 3분의 2였는데.
‘들어 보렴, 미아. 치료를 포기하자고 했던 건 어디까지나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이잖니. 그런데 이렇게 돈이 굴러 들어왔으니…….’
바로 아버지가 액수를 가늠하자마자 눈이 돌아가 남은 돈을 또 헛된 곳에 쓰려고 한 것이다.
물론 나는 뻥 뚫린 하늘을 이불 삼아 잠들고 싶지는 않다, 타지에 나가 계시는 어머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등등의 이유로 어찌어찌 막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겠어. 방심했다가는 또 모두 탕진하고 말 거야.
내가 눈 뜨고 살아 있는 한 그 꼴은 못 본다. 앓느니 죽어야지.
[아, 난 이미 앓고 있지.]곧 있으면 죽기도 할 테고.
읽고 있던 인명사전을 대충 던져 두자, 곧 사전이 둥실 떠올라 저절로 책장에 꽂혔다.
이래서 꿈이 좋다니까. 나는 그대로 뒤로 벌러덩 누우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가 참 길었지. 보물 찾는 데까지는 그래도 좀 괜찮았는데, 이후에 아버지랑 설전을 벌이느라 온 기력이 다 소진됐어…….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지만.]이윽고 플라네타륨에서 시선을 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거상의 아들 이름이 패트릭 존슨이었지. 당신이 바로 오늘의 특별 방문 당첨자십니다, 와아.
이 이름 찾겠다고 신문 뒤지고 대화 엿듣고 꿈에서 발품도 팔아 가며 정성스레 만든 미에나 시두스 특제 인명사전까지 뒤졌더란다.
암호가 해독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차라리 직접 꿈에 들어가 힌트라도 주는 게 낫잖아.
종이비행기를 하나 만들어 휙 날리니, 잠깐 흔들리던 종이비행기가 곧 궤도를 찾은 것처럼 안정적으로 날기 시작했다.
패트릭 존슨의 꿈으로 안내하는, 나름의 길잡이 역할이었다.
[어디 업데이트된 건 없나.]종이비행기를 따라가며 슬쩍슬쩍 빛나는 문과 명패를 확인하고 있으려니, 곧 저 멀리서 낯익은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만 살짝 동떨어져 있는 채로, 눈부시게 밝은 빛을 쏟아 내고 있는 이름 없는 문.
[아.]그러고 보니 쟤가 있었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