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66)
“무슨 이야기요?”
“그, 데뷔탕트 무도회를 제외하고는 정략혼 전까지 딸을 아예 저택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 가문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소식 들었어요. 마운트 남작 가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자식으로 장사하는 그 집안 말이군요. 정말 격 떨어지기도 하지. 그 가문의 영애들이 안쓰럽네요.”
좋아, 화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넘어가는군.
나는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적립하며 찻물을 들이켰다.
귀족의 소문은 역시 귀족에게 듣는 게 최고였다.
특히나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사람들이면 귀족의 소문에 대해서는 아주 빠삭하겠지.
‘꿈의 배경은 마정석이 박힌 샹들리에가 있을 만큼 부유한 방이었어. 목욕 시중을 드는 하인들도 있었고.’
그렇다면 분명 루스를 가둔 사람도 귀족, 혹은 그에 비견하는 상당한 부호일 터.
지금은 또 모르겠으나, 루스의 꿈은 그 당시의 꿈 범위에 잡힐 정도였으니.
‘그나마 황도 주변의 지역으로 한정할 수 있어.’
지크프리트 씨처럼 아예 산속에 처박혀 있지 않은 이상 사람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그 지크프리트 씨도 결국에는 위치가 발각되지 않았는가.
‘가진 단서는 얼마 없지만, 그건 소문을 따라 맞춰 가면 돼.’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포착되면 바로 이야기가 오르내리게 될 테니, 그 점을 잘 파고들어야 한다.
“저, 그, 그래서 말인데…….”
그 순간, 또 한 번 소심한 목소리가 사이를 파고들었다. 당연하게도 레이디 에카르트였다.
그러고서 그녀는 간절함 담긴 눈동자로 주변을 몇 번 둘러보았다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어물거렸다가, 잠시 나를 바라보는 듯싶더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국 다시금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나는 그 짧은 찰나 마주한 눈빛을 마주하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안과 걱정, 결연함과 체념.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지?
* * *
그렇게 한바탕 전쟁 같은 다과회가 지나가고.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레이디.”
“다음에 또 불러 주세요. 레이디께서는 바깥소문에 어두우니, 제가 레이디께서 흥미로워할 만한 소문을 많이 얻어 올게요.”
“모두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드디어 이 일과가 끝나는구나. 더 오래 했으면 그대로 쓰러졌을 뻔.
“저어…….”
하나둘 떠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살갑게 배웅하고 있으려니, 별안간 등 뒤에서 자그마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등을 돌려 레이디 에카르트를 바라보았다.
“오늘 와 줘서 정말 감사했어요, 레이디 에카르트.”
자못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전 보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길래 저렇게 결의에 찬 눈빛을 하는 거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 그, 그게 사실…….”
그녀는 내 얼굴과 잔디밭을 번갈아 바라보며 뜸을 들이다가, 내가 계속 바라보자 빨개진 얼굴로 재빨리 입을 열었다.
“혹시 전생을 믿으시나요?”
“전생……, 이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종교 권유였나. 나에게 호감을 산 다음 알 수 없는 사이비의 세계로 끌고 가려는 작전?
‘그런데 하필이면 나한테 전생 얘기를 꺼내네.’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 따지고 보면 전생을 믿을 수밖에 없는 편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냅다 믿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지. 그냥 모르는 척해야겠다.
“저는…….”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기 전의 일이었다.
“호, 호혹시. 제가 방금 무슨 말을 했나요?”
별안간 레이디 에카르트가 나보다 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저 당황한 표정을 보아하건대, 아무래도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이 아닌 다른 문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이이, 이걸 먼저 말하려던 게 아닌데……!”
급기야 그녀는 손을 들어 예쁘게 정돈된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빠르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좀 진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저, 레이디 에카르트…….”
일단 진정하라는 의미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순간이었다.
“죄, 죄송해요!”
내 손이 어깨에 닿자마자 그녀가 꽥 소리를 지르며 사과를 건넸다.
그러고서 그녀는 엉거주춤하게 허공에 뜬 내 팔과 어색하게 미소 지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방금 한 말은 잊어 주세요!”
마지막 말을 건네고선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박찼다.
물 흐르듯 이어진 일련의 상황에, 나는 팔을 제자리로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방금 뭐가 거하게 지나간 느낌인데. 고개를 숙이고서도 사람이 저렇게 재빠르게 달릴 수 있나…….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종교 권유는 아닌 듯싶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이상한 점투성이라.
아까의 그 뜻 모를 눈빛도 그렇고, 하필이면 ‘전생을 믿냐’라고 물어본 것도 그렇고.
저렇게 수상한 티를 대놓고 내주니, 예의를 봐서라도 좀 파 봐야겠지.
‘오늘 밤 당신의 꿈에 방문하겠습니다, 레이디 에카르트.’
걱정하진 마세요. 전 바쁜 사람이니까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 * *
[미에나!]새하얗게 빛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 새하얗게 빛나는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서 해맑게 미소 지었다.
오늘도 복습하고 있었구나. 착하기도 하지.
나는 그의 주변에 널려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일별한 후,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냉큼 말을 이었다.
[일단 인사 먼저 하려고 왔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얌전히……, 아니, 얌전할 필요 없다. 뛰어놀면서 기다리고 있어!]이왕이면 책만 읽지 말고 산으로 들로 좀 놀러 가고.
말을 마치고서 다시 냉큼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니, 등 뒤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가냘프게 흘러나왔다.
[미, 미에나……?]나는 거침없이 내디디려던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긴, 이렇게만 말하면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겠구나.
나는 그를 향해 씩 미소 지으며 정확한 설명을 덧붙였다.
[혹시라도 내가 늦게 오면 오늘은 내가 오지 않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실망할까 봐, 미리 와서 인사부터 해 봤어.] [아……! 이해했어요!] [아이고, 착하기도 하지. 이해해 줘서 고마워. 진짜 금방 다녀올게!]내 말에 루스가 다시금 함박웃음을 지으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저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지 않고 그냥 나오는 데에 상당한 인내심을 쏟아야 했다.
루스는 가면 갈수록 애가 귀여워지는 것 같단 말이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음울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나마 좋은 변화지.’
이제는 이 변화를 내가 없어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니, 바지런히 움직여야지.
아무튼, 루스한테 약속도 하고 나왔으니 빨리빨리 진행해 볼까.
나는 곧바로 종이비행기에 이름을 끄적거린 후 예쁘게 접어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 적힌 것은 클레어 에카르트, 그러니까 레이디 에카르트의 이름이었다.
[이번에도 설마 날아가다가 멈추지는 않겠지.]안심하고 따라가기에는 지난 전적들이 꽤 화려해서.
나는 혹시라도 종이비행기가 갈피를 잃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종이비행기가 이끄는 곳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딱히 빛나는 문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려고 한 게 아닌데.’
이 정도면 나는 거대한 빛나는 문 세계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는…….
‘생각보다 루스 꿈이랑 가깝잖아?’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가늠해 본 결과, 두 꿈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꿈 주위에도 다른 꿈은 보이질 않고. 그 어린애가 혼자 사는 건 아닐 텐데.
[터가 안 좋나…….]아니면 종이비행기 성능이 고새 안 좋아졌나?
나는 눈을 찌푸린 채 곧장 앞으로 다가가 문패를 살폈다.
그곳에는 ‘클레어 에카르트’라는 글자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종이비행기가 잘못된 건 아닌데.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로 밝네.]루스 정도로 밝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크프리트 씨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유스틴이 명단 끝에 이 이름을 적어 넣었던 걸까?
[어쨌든 잘된 일이네.]이상하게 이쪽 주변은 다른 사람들의 꿈 문이 보이지 않아서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웠었는데.
클레어 에카르트가 루스의 꿈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대략적인 위치 정도는 추측할 수 있을 터였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수확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파헤쳐 봐야지.
마침 이동 시간도 단축되었겠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들리지 않을 인사를 건네며 문을 열어젖히니, 곧 깜깜한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루스의 꿈처럼 아예 새까만 칠흑으로 점철된 공간이라기보다는, 달빛 한 점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저택의 복도 같은 느낌이었다.
꿈 배경은 일단 한밤중의 저택인 것 같고.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그믐날인 건가.
‘잠시 좀 돌아다닐게요.’
이번에도 속으로 주인 없는 양해를 구한 후, 나는 익숙하게 몸을 숨기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복도에는 협탁이나 가구 같은 게 놓여 있지 않아, 걷는 것 자체에는 큰 무리가 들지 않았다.
‘꿈이 상당히 정교한데.’
뚜렷한 기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이상, 꿈 주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은 어딘가 일그러지거나 뭉뚱그려지기에 십상인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 2층 복도에 다다른 찰나였다.
[흐윽…….]누군가 흐느끼는 목소리가 불현듯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