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7)
나는 가던 걸음을 뚝 멈추고서 유난히 빛나는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기묘한 꿈에, 이상하기 짝이 없는 만남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무리 빛나는 문이라고 해도 엮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저기, 이름이 뭐예요?’
‘……그게 뭐예요?’
한편으로 그때 잠깐 나눴던 이야기를 복기해 보면, 또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단 말이지.
목소리도 앳되었었지. 기껏해야 내 또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으으, 으.]정신 차리자. 나는 지금 탈레스 폐광산의 가치 상승을 위한 중요한 기로에 서 있잖아? 돈은 중요하지.
……하지만 인재는 더 중요하잖아.
[앓느니 죽지, 진짜.]게다가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어린애를 매몰차게 지나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나는 결국 가던 걸음을 돌려 이름 없는 문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홀로 밝은 빛을 뿜고 있는 자그마한 문은, 마치 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다시 봐도 진짜 밝네. 한평생 이렇게 빛나는 문은 본 적이 없는데.
꿈속도 그렇게 좀 빛나면 얼마나 좋을까.
[실례하겠습니다.]곧이어 문 앞에 도착한 후, 작게 심호흡하며 문고리를 돌렸다.
뒤이어 펼쳐진 건 저번에 마주했던 것과 별다른 것 없이 그저 새까만 풍경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지.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작게 목을 가다듬고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과연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던 약속 지키러 왔습니다.
물론 기억할 거라고 믿어요. 내가 들어갔던 꿈은 다들 깨고 나서도 생생하게 기억하더라고. 적어도 시두스 가문 사람들은 그랬는데.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말을 건네니, 얼마 지나지 않아 깜깜한 공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안녕하세요…….]오늘도 훅 불면 꺼질 것처럼 작고 유약하기 그지없군.
나는 한 번 씨익 웃고서 곧바로 새까만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지, 진짜로…….]그러자 꿈의 주인이 우물쭈물 중얼거렸다. 내가 제 꿈에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한 모양이었다.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도 아니고, 괜히 마음 약해지게.
[오늘은 차근차근 이야기 좀 나눠 보자고요.]오늘은 저번처럼 갑작스레 깰 일도 없을 테고. 물론 꿈 주인 쪽이 잠에서 깬다면 나도 내쫓기니 그건 어쩔 수 없지만.
솔직히 나도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여긴 너무 어둡고, 내가 주워 먹을 만한 별다른 정보도 없으니까.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라면 깊게 엮이지 않는 게 맞아.’
어차피 나는 곧 죽을 목숨이고…….
[하, 하지만 아무랑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그 순간, 자그마한 중얼거림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저번에도 그 소리 하더니.
[그런 말 듣지 마요.] [네, 네?] [그딴 말 듣지 말라고.]아이들은 교류를 통한 상호작용으로 사회화해야 하는데,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망발을 지껄여?
내 말에 거대한 공동 같은 공간에 또 한 번 깊은 침묵이 찾아들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처음 나랑 인사 주고받은 순간부터 망한 거예요.]진짜로 나랑 대화할 마음이 없었다면 내가 인사 건넨 순간 ‘대화는 안 돼요!’ 하면서 거절했겠지.
애초에 내가 등장했을 때부터 실컷 기다렸다는 티는 다 내고선.
신뢰감을 조성하기 위해 부러 더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하자, 검은 공간에 한차례 정적이 깔렸다.
내 말이 옳은지 아닌지 나름대로 판단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닌 거 같으면서 은근히 깐깐하게 구네.’
꿈속에서조차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세뇌에 시달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그냥 넘길 수가 없겠는데.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바로 그때, 자그맣게 떨리는 목소리가 또 한 번 귓전을 두들겼다. 어쩐지 조금 전보다 더 가까이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이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대답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한테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그, 그건 자신 있어요.] [시원한 대답 아주 좋고.]그러고 보면 목소리도 조금 더 밝아진 것 같단 말이야. 고작 두 번 대화 나눴다고 이렇게 마음이 풀어지다니. 어린 강아지와 교감이라도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가끔 무의식적으로 반말이 나가네. 이곳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사실 꿈속에서 나이와 신분을 따지는 것보다 이상한 게 없는데.
[좋아. 그럼 우리는 이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니까, 서로 말도 편하게 하자.]이럴 땐 그냥 서로 시원하게 말 놓는 게 제일이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일단 방긋방긋 웃으며 제안하자, 곧 어리둥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말을 편하게 한다는 게 뭐예요……?] [친구처럼 반말하자고.]반말 모드 모르니? 우리 반모 합시다, 반모. 이런 건 일찍 안 익숙해지면 아무리 친해져도 평생 존댓말 하게 된다고.
[반말……?]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대신 ‘안녕’. ‘뭐 하세요?’ 대신에 ‘뭐 해?’ 이런 식으로.] [제, 제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안 될 건 또 뭐야.]어차피 목소리 들어 보니 우린 또래인 것 같고, 혹여 나이 차가 나더라도 몇 살 차이는 그냥 다 친구나 다름없는데.
[익숙해지면 써, 익숙해지면.]괜히 또 부담 가질라. 나는 손을 설설 내저으며 말을 번복했다.
이런 건 이론을 알려 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적응되는 게 아니니까.
[저, 그럼.]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친구라는 건 뭐예요?]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혀서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면, ‘친구’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하는 걸까.
이 어두컴컴한 꿈속 세계와 건드리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여린 목소리의 주인은.
대체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친구라는 건.]나는 가까스로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만나서 같이 대화하고 놀 수 있는 사이야.] […….] [서로 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 주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하고, 맛있는 게 있으면 나눠 먹고.] [……조, 조금 어려워요.] [어렵지 않아.]어려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꿈의 주인의 흔적을 의미 없이 좇다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빛나는 문 하나 찾아왔다가 어쩐지 필요 이상으로 엮이는 기분인데.’
하지만 인재 발굴은 내 계획 중 하나기도 하고, 또 이런 모습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기도 하고.
여차하면 어떻게 해서든 얘를 데리고 나와 시두스 가문의 양자로 입적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 대신, 두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줄게.]판단을 마친 나는 이내 내리깔았던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담담히 말문을 열었다.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 탓에 시선은 조금 어정쩡했지만.
[나랑 친구 하자.]비록 기간 한정 이벤트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일부러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네자, 작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그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음성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제가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게 뭐 있어.]대체 현실에서 애를 어떻게 대하면 자존감이 뚝 떨어져 있단 말이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눌러 담기 위해 손바닥으로 뺨을 꾹꾹 눌렀다.
그래도 애 앞인데 표정 관리는 해야지. 예상과는 달리 얘가 날 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무튼, 그럼.]곧이어 나는 완벽하게 표정을 정돈하고서 생긋 웃는 얼굴로 물었다.
[너 이름은 뭐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불러?] [그, 그런 거 없는데…….]저번에 ‘그게 뭐예요?’라는 답을 들었을 때 예상은 했지만, 당사자한테 직접 말로 들으니 더 화나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죽기 전에 애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족치고 만다. 어른이 되어서 아이를 지켜 주지는 못할망정.
어쨌든,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내가 네 이름 지어 줘도 돼?]헤매지 않고 찾아오려면 종이비행기를 날려야 하고,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위해선 이름이 필요하니까.
[조, 좋아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긍정적인 답이 들려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생각에 잠겼다.
성도 없는 상태에서 흔한 이름을 지어 줬다가는 종이비행기가 이상한 곳으로 안내할지도 몰라.
그러니 흔하지 않은, 나아가 사람이 잘 쓰지 않는 이름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이름이 있나? 그렇다고 사람한테 ‘퍼피’, ‘초코’ 같은 이름을 붙여 줄 수도 없고.
뭔가 의미 있으면서도, 그렇게 흔하지는 않은…….
[루미니스, 루스.]이름은 루미니스, 애칭은 루스.
루미니스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적어도 내 능력 반경 내에서는 찾지 못했으니, 아마 곧잘 찾아올 수 있을 터였다.
[루스…….]내가 지어 준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녀린 목소리가 몇 번이나 제 이름을 되뇌었다.
나는 괜히 뿌듯해지는 마음에 슬쩍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 루스.
내가 죽기 전까지 짬짬이 시간 내서 네게 많은 것을 알려 주겠어.
[나는 시두스! 가문의 미에나야, 미에나 시두스.]그러니 너도 꼭 잊지 말고 은혜 갚아라.
나한테 말고, 내 가문에.
이후로 나는 루스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서 그의 꿈을 빠져나왔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던 탓에, 대부분 신변잡기식의 가벼운 질문과 답변이었다.
‘루스, 너 몇 살이야?’
‘몰라요.’
‘음, 그럴 수 있지. 있나? 아무튼, 그럼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
‘……모르겠어요.’
‘역시 그렇겠지. 내가 괜한 걸 물었네.’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야겠다는 열의가 불타오르던걸.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