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71)
“너 설마…….”
내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역시나 지크프리트 씨였다.
그는 미간을 있는 대로 좁히고서 날카롭게 물었다.
“납치라도 당할 생각은 아니겠지?”
“네? 제에가요?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세요?”
“어. 완전.”
지크프리트 씨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눈썹을 씰룩이고는 생긋 미소 지었다.
눈치가 빠르신데.
“말했지. 나는 네가 제발 가라고 사정해도 네 곁에 딱 달라붙어서 절대 안 떨어질 거라고.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은 입 밖으로 꺼낼 생각도 하지 마.”
곧이어 그가 내게 경고를 날렸다. 걱정인지 살인 예고인지 모를 정도로 살벌한 눈빛까지 한 채였다.
나는 너털웃음을 내뱉고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저라도 그렇게까지 무식한 방법을 쓰지는 않아요.”
생각만 조금 했어, 조금. 그것도 얼마 안 가서 바로 폐기했다고.
내 말에 지크프리트 씨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늘였다. 심지어는 클레어마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지크프리트 씨는 그렇다고 쳐도 클레어는 왜?
나는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어 곧바로 반론했다.
“아니, 두 분 다 생각을 좀 해 보세요. 마담 아페르타가 바보도 아니고, 에버딘 대공자의 약혼자를 대놓고 납치하려 들겠어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몇 달 전이면 모를까. 지금 시두스 가문의, 나의 위치는 고작 황도의 귀족 정도가 아니었다.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현재 황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사람이 바로 저잖아요. 괜히 납치 소동이 벌어졌다가는 황도가 발칵 뒤집히겠죠.”
우선 유스틴이 가만있지 않을 테고, 아버지 어머니도 눈에 불을 켜고 날 찾으려 들 테고.
그리고 만에 하나 마담 아페르타가 제정신이 아니라 나를 납치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납치는 불가능할걸요.”
어르신의 방어막이 있는데, 납치를 당할 수나 있을까.
내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모든 외부 요소를 제거하려 들 텐데.
결국 이건 내 몸에 드래곤의 방어막이 둘린 순간부터 전제가 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납치극이 가장 빠르고 편하고 정확한데…….
“또 또, 허튼 생각 하려고 하지.”
그 순간, 지크프리트 씨가 내 의중을 읽은 듯이 이마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나는 헤헤 웃음을 흘리고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무튼, 마담한테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박힌 이상 당장 섣불리 절 건들지는 못할 거예요.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굳이 고아들만 모아 실험을 진행한다는 건 다시 말해 뒤탈이 없을 정도로만 일을 벌인다는 뜻이었다. 뒤처리하기 귀찮아서일 수도 있고.
어찌 됐든, 지금 당장 나를 건드리는 건 마담 아페르타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터.
“그, 그럼 레이디를 아예 안 건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클레어 에카르트가 마지막 희망을 품은 것처럼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직도 그녀는 내가 이 일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그건 또 아니에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까지 계속 실험을 진행해 왔다면, 그건 다시 말해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잖아요.”
“지, 지금은 실험을 안 하고 있을 수도…….”
“그랬으면 제가 제 증상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렇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겠죠.”
그녀의 연둣빛 눈을 바라보며,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동시에 싱그럽게 빛나던 녹음 진 눈동자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나는 차마 그 절망을 마주하지 못하고, 지크프리트 씨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지금쯤 마담은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을 거예요. 그렇게 퍼붓고도 마땅한 성과가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죠.”
그런 상황 속에서 나타난 완벽한 조건의 실험체?
‘이걸 어떻게 참겠어.’
나라도 당장 손아귀에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으려 들 텐데.
“제가 밑밥까지 깔아 뒀으니,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하루에도 관심사가 몇 번씩 바뀌는 게 바로 어린아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여 준 모습은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변덕스러운 아이가 언제 ‘후원’에 관심을 끊을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해치우려 할 터.
‘아마도 다음 그믐 전에 나를 확보하려 들겠지.’
클레어의 꿈으로 추측하건대, 실험은 항상 그믐에 이루어지는 것 같았으니.
“아마도 세 번 이내.”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그 안에 마담은 저를 노릴 거예요.”
사실 마담 아페르타의 시각에서 봤을 때 가장 최적의 순간은 내가 그녀를 처음 찾아간 바로 지금이었겠지만, 지크프리트 씨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유스틴이 직접 추천서를 적어 주기도 했고.
‘그래서 앞으로의 일은 유스틴한테 당분간 비밀로 할 예정이라고 말을 흘려 놨지.’
마담 아페르타가 곧이곧대로 내 말을 믿을지는 사실 미지수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절박함을 믿고 있었다.
절박함 앞에선 의심도 속수무책이 될 뿐이니까.
“그쪽도 기회는 한 번뿐이라고 생각할 테니, 아마 만반의 준비를 할 거예요.”
“만반의 준비라면…….”
“지크프리트 러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도록. 에버딘 가문의 예비 대공비를 건드리고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2주 동안 전력을 비교하고, 계획을 짜고, 알리바이를 마련해 놓겠지.
그런 후에야 나를 건들 것이다.
그래서 ‘세 번’이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쨌든 이쪽엔 숨기고 있는 카드가 있으니까요.”
“어,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너무 위험하잖아요! 지, 지금은 마력 추출 실험 이외에도 다른 실험을 더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내 말에 클레어가 사색이 된 얼굴로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그 저택에 있는 사람들 모두, 보, 보통내기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다못해 그, 집사까지…….”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죠.”
누군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클레어 에카르트가 감금당했을 때는 이런 정도가 아니라고 했던 걸 보면, 아마 그녀의 사망 이후 다른 아이가 탈출을 시도했던 거겠지.
‘탈출을 시도했던 아이는 잡혔을까.’
잡혔다면 어떤 짓을 당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는 정말 괜찮아요. 일단은 지크프리트 씨도 있고.”
나는 굳으려는 입매를 억지로 빼 당겨 웃으며 클레어를 달랬다.
“이미 레이디도 알고 있겠지만, 저도 보통은 아니라서요.”
무엇보다도 내게는 감히 길 가다 넘어져 죽을 수도 없게 해 주는 지상 최강의 보호막이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려니, 클레어가 몇 번 입술을 어물거리다 말고 곧 눈매를 굳혔다.
그러고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더없이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도 돕게 해 주세요.”
“얘 하나로도 벅찬데 두 사람이나 신경 쓰라고?”
동시에 지크프리트 씨가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아무리 내 호위라고 해도 지크프리트 씨 성격상 클레어를 신경 안 쓸 수 없겠지.
“저, 죄송하지만 레이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이미 두 분도 조금은 눈치채셨을 거 아니에요. 제가 왜 호위 하나 없이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제가 가진 모든 정보를 넘겨드릴게요. 절대로 두 분께 누가 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클레어 에카르트가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고서 단호히 부탁했다.
“저도 함께하게 해 주세요.”
나는 그녀의 녹색 눈동자를,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지크프리트 씨는 그녀에게서 짙은 살기를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동자 안에 스며 있는 건 처절한 분노도, 복수심도, 살기도 아닌.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
내게는 그 마음을 막을 자격이 없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마담이 어떤 수를 써서 저를 잡으려 할지는 저도 알 수 없어요. 러셀 경은 저의 호위니만큼 저를 최우선으로 지키려 할 테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레이디가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요.”
“전 괜찮아요. 두 분께 절대 폐 끼치지 않을게요. 믿어 주세요.”
“그게 아니라…….”
지금 당신을 걱정하는 거잖아.
나는 긴 숨을 내쉬고서 다시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를 말리던 지크프리트 씨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쩐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걸.
‘그래서 더 막을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네요.”
이내 나는 클레어 앞으로 손을 내밀고서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레이디 에카르트.”
* * *
결과적으로 클레어의 합류는 나름대로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저택 내부의 구조 같은 건 쉬이 바꿀 수 없으니까.’
물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고, 바뀐 부분이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봐야겠지만.
어쨌든, 클레어와 지크프리트 씨가 이 저택에 관한 정보를 슬금슬금 모으고 확인하는 동안 나는…….
“그냥 아이들한테 돈을 주면 되는 일 아닌가요, 마담?”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직접 돈을 건넸다가는 자칫 아이들을 더 큰 위험에 빠트릴 수 있어요.”
“아우우, 후원 한 번 하는데 뭔가 귀찮은 게 많네요…….”
마담 아페르타의 속을 있는 대로 긁어 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매우, 정말 열성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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