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74)
‘분명 발걸음 소리는 안 들렸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저 사람은 아직 마담의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혹시…….
‘나를 공격하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나를 해칠까 봐 걱정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어르신의 방어 결계를 깨트릴 수 있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더 무섭다고오!’
괜히 나한테 덤벼들었다가 어르신의 방어 마법에 한 대 맞고 튕겨 나가면 어떡해.
클레어가 신경 쓰는 애란 말이야. 마담한테 세뇌당한 실험의 피해자기도 하고.
나도 딱히 해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게다가 따로 부탁받은 것도 있고.’
순간 떠오르는 기억의 자투리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저, 어, 어려운 부탁인 줄 알지만, 혹시 잭을 저보다 먼저 마주치신다면, 그 아이는 최대한 무탈하게 제압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혹여라도 지크프리트가 저보다 먼저 잭을 마주쳐 처리해 버리지 않을까, 클레어는 연신 노심초사하며 불편한 사람에게 더듬더듬 부탁을 건넸었더란다.
지크프리트 씨 옆에 있던 나 역시 덩달아 그 부탁을 들어버렸으니,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저어, 매우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결국 나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지런히 발걸음을 뒤로 물린 덕에, 나는 곧 쇠창살 바로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곧이어 양팔을 들어 올려 아이들 앞을 막아서는 자세를 취한 후.
“일단 공격은 하지 말아 주실래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하고서 사르르 눈꼬리를 휘었다.
이게 내가 다칠까 봐 그러는 게 아니야. 공격해 봤자 네가 다친다고.
‘아까 보니 방어 결계의 반격은 들어온 공격의 세기에 비례하는 것 같던데.’
만약 저 남자가 진심을 담아서 공격한다면, 이곳에서 죽는 건 나나 아이들이 아닌 저 남자가 될 터.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당신이 죽어 버리면 나도 억울하고, 당신도 억울하고, 클레어도 슬프지 않겠어?
“……아이들을 구한다고.”
곧이어 잭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은 게 맞나?”
다행히 그는 당장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갑자기 대화를 요청할 줄은 몰랐는데. 나야 나쁠 건 없지.
“네, 맞아요.”
어차피 들킨 마당에 뭘 변명하랴.
나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잭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재차 물었다.
“네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아니,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 짧다?
그럼 나도 말이 짧아질 수밖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단신으로 이곳까지 온 마당에, 능력을 꼭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나?”
저 남자의 심기를 괜히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딱히 해치고픈 마음이 없는데, 적을 도발해 봤자 돌아오는 건 공격일 테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여.’
어쩐지 조금 전부터 내 직감이 끊임없이 외쳐 대고 있었다.
저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고. 나를 해할 마음이 없다고.
그래, 사실 정말로 공격할 거였으면 내가 자기를 눈치채지 못했던 순간에 이미 덮쳤겠지.
‘분명 세뇌당했다고 했었는데.’
왜 나를 공격하지 않는 거지?
“여기에 발을 들인 이상,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곧이어 그가 더없이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세뇌당했다는 게 아예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담담하게 답했다.
“아니, 나갈 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지?”
동시에 잭의 검은 눈동자가 일순 공포심에 젖어 든다 싶더니, 그가 빠르게 말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너도 같이 잡혀 저들과 같은 꼴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설령 운이 좋아 여기서 벗어난다고 한들, 그 사람의 눈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 안에 스민 건 깊은 절망, 그리고 무력감이었다.
루스가 그랬던 것처럼.
잭은 자신이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학습하고야 만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받은 세뇌였다.
“……당연하지.”
나는 그런 잭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설마 내가 그런 것도 예상 못했을까 봐?”
혼자서는 분명 빠져나갈 수 없었겠지.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운 좋게 이 저택을 빠져나간다고 한들, 힘없는 아이들로서는 결코 마담의 눈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내게는 제국 내에서 황제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조력자가 있고, 그들을 지원할 재력이 있다.
‘여차하면 성황에게 부탁해 아이들을 리넥스로 보내도 되고.’
뭐, 아무튼.
“이곳은 오늘 무너질 거야.”
나는 한 점 흔들림 없이 선언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러기 위해 여기 온 거니까.
내 말에 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에는 언뜻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채가 서려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서 씩 미소 지었다.
“그러니 막을 테면 막아 봐.”
만약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찬 게 마법적인 세뇌가 아닌 무력함이라면, 그저 바깥으로 나갈 용기가 없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당신을 문 앞에 데려다줄 거야.
“……허무맹랑한 소리.”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
잭이 짓씹듯 뇌까리고서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날카롭게 벼린 검신 주위로는 마력을 두른 듯 은은한 빛무리가 떠돌고 있었다.
‘오우, 제법 본격적인데.’
곧이어 잭이 검을 내 쪽에 겨누고서 천천히 다가왔다. 동시에 내내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다시금 흐느끼며 울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위협적인 모습이기는 한데.
“이왕 공격할 거면 살살…….”
여전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내가 입을 연 찰나였다.
그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검을 휘두른다 싶더니, 쇄액 소리와 함께 두 번의 검격이 이쪽을 향했다.
정확히는 나와 아이들이 아닌, 사이를 막고 있는 쇠창살로.
챙강, 챙강!
순식간에 조각난 쇠창살의 중간 부분이 지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따라와.”
이윽고 잭이 곧바로 내게서 등을 돌리며 명령했다.
“아이들이 이곳에만 갇혀 있을 것 같나? 빨리 오지 않으면 나도 더는…….”
그러고서 그는 말을 하다 말고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좁히더니, 이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아이들에게 빠르게 말을 건넸다.
“이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 너희들은 여기서…….”
“걔네도 모두 데리고 와. 철창이 끊어진 걸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다음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렇대, 얘들아. 서로 손 꼭 잡고 내 주변에 모여서 따라오자.”
어차피 내 몸 때문에 속도도 잘 안 나는데, 옹기종기 모여 봤자 더 나빠질 것도 없겠네.
‘나한테 붙어 있는 게 더 안전할지도 모르고.’
어르신의 방어 결계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몸으로 막아서면 어떻게든 되겠지.
“……우, 우리.”
그렇게 사랑반 선생님이 된 기분으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으려니, 문득 내 손을 잡고 걷던 아이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정말로 나, 나갈 수 있는 거예요……?”
나는 아이의 손을 더더욱 세게 그러쥐고서 방긋 미소 지었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 다 같이 나가는 거야. 저거 봐, 저 아저씨도 우리 도와주고 있잖아.”
“저 아저씨는 무서운데…….”
“조용히 하고 따라와.”
“저, 저거 봐요. 진짜 무서운데…….”
잭의 핀잔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가 내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나는 또 한 번 미소 짓고서 고개를 돌려 앞장서 걷는 잭에게 말을 걸었다.
“결심이 꽤 빠르던데, 사실은 당신도 늘 이러고 싶었던 거죠?”
“…….”
“그래서 혼자 도망칠 능력이 있었으면서도 굳이 이곳에 남았던 거야.”
차마 이 아이들을 두고 홀로 떠날 수는 없어서 우울해하면서도, 절망하면서도 줄곧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거야.
“……나는 구할 수 없어.”
잠깐의 침묵 후, 잭이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음울하게 입을 열었다.
망설이는 것 같기도, 고해하는 것 같기도, 혹은 그저 고통을 토로하는 것 같기도 한 음성이었다.
“네 말처럼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야. 나는, 나는…….”
그렇게 그가 드문드문 제 말을 토해 내던 순간이었다.
“어머나,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불현듯 등 뒤에서 우아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는 마치 흥미로운 놀잇거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율동적으로.
마담 아페르타가 인사를 건네듯 입을 열었다.
“이런 앙큼한 짓을 벌이고 있을 줄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