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76)
“정신 차려요, 잭!”
자칫 잘못하다간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는데!
황급히 몸을 돌려 있는 대로 아이들을 감싸 안은 순간이었다.
잭의 마력 서린 검이 내게 향하기 직전.
일렁이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요요히 휘돈다 싶더니.
“안 돼!”
내 앞을 막아선 소녀가 더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신 차려, 사무엘!”
그 외침이 어찌나 우렁찬지, 나는 순간 목소리의 주인을 믿지 못하고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내 앞에 있는 건 분명 클레어가 맞는데.
클레어가…… 소리를 질러?
“괜찮으신가요, 레이디? 제, 제가 조금 늦었죠?”
한 손으로는 바람 마법으로 방벽을 만들어 잭의 공격을 막은 채, 클레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물었다.
나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살짝 원망할 뻔했지만……, 완벽한 등장이었어요.”
“다행이에요.”
내 말에 클레어가 안심한 듯 옅게 미소 지었다.
“러셀 경과는 방금 막 합류했었는데, 레이디가 걱정된다고 빨리 가 보라고 하셨어요. 위쪽이 모두 정리되는 대로 곧 오실 거예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조금 부끄럽네요.”
오히려 괜찮지 않은 쪽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아끼는 잭이라서…….
“레이디, 앞에!”
슬쩍 눈이 마주치나 싶더니, 이내 잭이 다시 한번 크게 검을 휘둘렀다.
나는 순간 뒤로 밀린 클레어를 두 손으로 받쳐 주며 빠르게 말을 건넸다.
“잭은 지금 마담한테 세뇌당한 상태예요. 마법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마 마담이 가까이 있을 때, 특히 눈을 마주 보면 세뇌가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 그런…….”
“마담과 마주치기 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저를 도와 아이들을 구해 주려 했으니, 세뇌만 풀리면 아마 이지를 되찾을 거예요.”
조금 전 마담과 나눈 대화를 미루어 보았을 때, 잭이 일부러 이곳까지 나와 아이들을 유인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니 일단은 저 여자와 잭을 멀리 떨어트려야 해요.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세뇌가 옅어지는 것 같으니……!”
말을 마치기도 채 전에, 다시 한번 잭의 검이 횡으로 길게 검격을 날렸다.
클레어의 바람 방벽이 이번에도 그의 공격을 온전히 막아 내기는 했으나, 소모전이 이어졌다간 금방 힘이 바닥날 게 분명했다.
뭔가 할 수 있는 게…….
“레이디, 눈이요. 마법으로 잭의 눈을 가리는 것도 가능한가요?”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잭의 눈동자 안에 스민 붉은 안광을 발견하고서 다급히 클레어에게 말을 걸었다.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곧바로 작게 주문을 외웠다.
“……?”
그러자 잭의 검은 눈이 뿌연 안개처럼 흐려지더니, 이내 그가 두 발을 휘청대며 몸을 주춤댔다.
좋아, 다행이군.
“잭도 잭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잠깐 한숨을 돌리며 클레어의 귓가에 속삭이던 찰나였다.
“뭐 하는 거니, 잭.”
이 모든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마담 아페르타가 더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이 더 힘들어질 텐데?”
동시에 정처 없이 허공을 맴돌던 잭의 두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정확히는 나와 클레어 뒤에 선 아이들에게로.
“나, 나는…….”
뒤이어 잭이 갈팡질팡하며 힘겹게 입술을 떨었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는 짙은 안개에 가려진 듯 뿌옇게 흐렸지만, 이조차도 그의 고통을 가릴 수는 없었다.
그래, 잭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죽어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렴. 그 아이들이 질러 댔던 비명을 잊은 건 아니겠지?”
제 것이 아닌 죄책감에 사무쳐.
“듣지 마, 사무엘!”
클레어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마담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상체는 당장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싶은 것처럼 눈에 띄게 앞으로 쏠려 있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겠지.’
제 등 뒤엔 지켜야 할 사람이 남아 있으니까.
차마 나와 아이들을 뒤에 두고 멋대로 행동할 수 없는 거야.
“설마 지금 도망치려는 건 아니겠지, 잭?”
그러는 동안에도 마담 아페르타는 동화를 읽어 주는 어머니처럼 다정하고, 또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잖니. 네가 여기서 도망친다고 한들, 내가 이 실험을 그만둘 리는 없다는 걸.”
“윽, 흑…….”
“도망치려면 도망쳐도 좋아. 다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아이가 너의 역할을 이어받게 되겠지. 적합한 아이를 찾지 못하면 또 아주 오래, 많은 아이가 희생되어야 할 테고.”
“나는, 저는…….”
“비겁하구나, 잭. 정말로―”
“작작 해!”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마담을 향해 빽 소리를 내질렀다.
“개소리도 웬만큼 해야 들어주지!”
보자 보자 하니까, 뭐?
비겁해? 도망쳐?
“그게 왜 잭 때문이야! 이게 왜 애 잘못인데? 다 네가 벌인 짓이지!”
“어머나?”
“네 죄를 아이한테 전가하지 마!”
곧이어 나는 미친놈한테서 시선을 뗀 후, 클레어의 어깨를 붙잡고서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잭의 시야를 차단한 것처럼 일시적으로 청력도 차단할 수는 없나요? 계속 저 개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잖아요!”
“저, 저는 한 번에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많지 않아서……. 이미 시야를 가린 것만으로도…….”
“나도 마법은 못 쓰는데!”
저놈의 주둥아리를 막아야 하는데, 진짜 환장하겠네!
“그럼 애들 좀 지켜 줄 수 있어요?”
나를 붙잡고 있던 아이들의 손을 풀어내며 묻자, 클레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사적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뭐, 뭐 하게요!”
“뭐 하긴요! 손으로라도 저 입을 막아야죠!”
내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저 정도쯤은 나도 달려갈 수 있거든!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클레어의 손을 뿌리치고서 마담을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클레어의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위험해요, 레이디!”
“안 위험해!”
이윽고 마담의 입을 향해 손을 뻗은 찰나였다.
“……?”
작게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마담의 입에 닿으려던 내 몸이 부드럽게 튕겨 나갔다.
심지어는 마담 역시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생각이 스친 찰나,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역시나 내 손은 그녀에게 닿지 못하고 다시 한번 고무공에 부딪힌 듯 퉁 튕겼다.
아무래도 어르신의 방어막이 마담 아페르타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판단하고 막아 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뭐 이런……!”
쓸데없이 성능 좋은 방어 결계가 다 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레이디도 제 말을 막는 데는 실패한 것 같군요.”
그사이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마담은 생긋 비웃음을 머금고서 다시금 잭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히 서 있을 거니, 잭. 아직도 네가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닥쳐!”
“너를 지켜 주려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렴. 모두 너 때문에 죽고 말았잖니. 그 아이들을 두고 도망칠 셈이야? 지금도 아이들은 너를 원망하고 있을 텐데.”
“으, 으윽……!”
마담의 말이 이어지자, 잭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듯 거칠게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잭이 다시 폭주할지도 모르겠는데. 지크프리트 씨가 언제 올지도 아직 미지수고.
‘차라리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를 막는 편이…….’
결국 아랫배에 힘을 주고서 냅다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이었다.
“달이 기울어도 울지 말렴, 내 아가…….”
옅은 노랫소리가 어두운 복도에 서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힘겹게 몸부림치던 잭이 모든 행동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달님이 구름 뒤에 숨어도 울지 말고 잠들렴, 우리 아가.”
“…….”
“둥근 달은 다시 뜰 거야, 포근하게 감싸 줄 거야…….”
자라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퍽 낯선 자장가.
동시에 꿈속에서 들어 본 적 있는, 익숙한 노랫소리.
“그러니 울지 말렴, 내 아가. 울지 말고 잠들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마담 아페르타마저도.
“……캐서린?”
“달이 우리를 지켜 줄 테니까, 우리를 바라볼 테니까…….”
그사이 클레어가 조금씩 잭에게 다가가, 어느새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어린 동생을 달래듯, 그의 모든 불안을 잠재우려는 듯.
“널 원망하지 않아. 널 지킨 걸 후회하지 않아. 네 탓이 아니니까, 네 잘못이 아니니까.”
저보다 훨씬 큰 남자의 등을 품에 안은 채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리 같이 나가자. 너랑 나랑 마이크랑. 또 보니도, 모두 함께. 그러니까, 그러니까…….”
“…….”
“더는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아도 돼.”
이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서 홀로 버티지 않아도 돼.
그녀가 연둣빛 눈동자를 부드럽게 휘어 웃으며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러움’이었다.
내가 스승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성황에게 건넸던 허울뿐인 위로가 아닌, 당사자가 직접 건네는 위로.
남은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있어서.
나는 전해 줄 수 없었는데. 전해 줄 수 없는데.
전해 줄 수 없을 텐데.
“뭐가 이렇게 어두워?”
바로 그때, 복도 저편에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지크프리트 씨의 목소리였다.
“러셀 경, 여기예요!”
나는 곧바로 추한 감정을 뒤편에 밀어 넣으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 씨의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다친 덴 없어?”
“네, 괜찮아요!”
당신만 오면 진짜 완벽하게 괜찮아질 것 같아요!
곧이어 지크프리트 씨를 마중 나가기 위해 한 걸음 뗀 순간이었다.
“……귀한 피실험자에게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안간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서늘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군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검은 연기가 나를 덮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