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79)
“아이가 일부러 본모습을 감추는 게 아니라면요……?”
꿈속의 내 기억력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없으니까.
“무슨 일 있나요? 혹시 아는 사람이 떠올랐다거나?”
“……아니, 아닙니다.”
덩달아 심각해져 묻자, 유스틴이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심각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진짜 뭔데. 왜 그러는데.
“우선 알겠습니다. 들은 내용을 토대로 최대한 찾아보죠. 다만…….”
그러고서는 스스로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몇 번 입술을 어물거리더니, 결국 유스틴이 찜찜한 눈빛으로 내게 재차 물었다.
“그 아이를 어디서 만났습니까? 그러니까, 꿈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습니까?”
그게 됐으면 지금 댁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겠지…….
“레이디 에카르트, 그리고 마담 아페르타의 저택과 그나마 가까운 지역에 있는 것 같았어요. 사실 그래서 더 마담의 저택을 조사하려고 했던 것도 있어요.”
“윈프리드 거리 쪽이군요.”
“그렇긴 한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가깝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이고, 레이디 에카르트의 꿈도 그 아이의 꿈에서 꽤 걸어가야 나왔거든요.”
“…….”
“보통은 그 주변의 꿈 주인을 살펴서 위치를 특정하는데, 이상하게 그쪽 부근은 레이디 에카르트를 제외하고는 아무 꿈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마을 전체가 깊은 안개에 숨은 것처럼.
처음에는 내 탐지 범위가 딱 루스의 꿈에 닿는 만큼 늘어난 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한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내 말에 유스틴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조금 더 짙어졌다.
“……일단 알겠습니다. 오늘은 일이 많았으니 우선 푹 쉬세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정돈하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설마 자기 궁금증은 다 해소했으니 이만 돌아가겠다, 이거야?
‘나도 묻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
나는 곧장 그의 옷소매를 붙잡고서 말을 내뱉었다.
“잠깐만요, 대공자님. 우리 아직 얘기 다 안 끝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유스틴이 멈칫하다 말고 슬며시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는 모르겠다는 저 표정 좀 봐.
결국 내가 말해야겠냐고.
“그, 우리, 약혼 말이에요.”
당사자는 모르는 당사자의 약혼 소식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알아?
내 말에 유스틴이 일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이해했다는 듯 툭 말을 내뱉었다.
“아, 그거요.”
아, 그거요?
“제가 시두스 저택을 그리 드나들었으니 그런 소문이 퍼질 만도 하지요. 처음부터 예상했습니다.”
“아니, 그럼 왜 정정을 안 해요?”
“딱히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곧이어 온전히 나를 담아내던 은빛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평소의 그 희미한 미소가 아닌, 꽤 노골적인 눈웃음이었다.
“어차피 당신도 소문이 퍼져서 더 편하지 않았습니까? 레이디 에카르트에게 듣자 하니 이번에도 제법 알차게 써먹은 것 같던데.”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그 오묘한 눈동자 안에 담긴 짙은 장난기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말꼬리를 늘였다.
‘역시 유스틴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건가?
“저야 상관없지만, 대공자님께서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볼을 긁적이며 말하려니, 가늘게 휘었던 유스틴의 눈매가 순간 이전처럼 차갑게 굳었다.
조금 전 내 발언이 제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해 보였다.
“……힘들지 않습니다.”
이윽고 그가 제 옷소매를 쥐고 있던 내 손을 부드럽게 떼어 내며 입을 열었다.
“매번 들어오던 청혼서가 더는 들어오지 않거든요.”
그 손길이 어찌나 다정하고 조심스러운지, 내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오그라들 정도였다.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내 손등을 바라보며 다시금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가 떠나고 나면 평생 꼬리표가 따라다닐 텐데요…….”
이거 진짜로 내가 남의 혼삿길 막아 버리는 것 같은데.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이런 외모는 세상에 길이 남겨야 마땅한데.’
나 때문에 괜히 좋은 혼처 못 찾는 거 아니야?
“……떠나면…….”
내 말에 유스틴은 여전히 표정을 굳히고서 단어를 곱씹는다 싶더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미소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어쩐지 절제미가 돋보이는 웃음이었다.
“손님이 온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급한 일은 모두 끝났으니 조만간 다시 찾아오죠.”
그러고서 그는 허리를 숙여 제 손 위에 놓여 있던 내 손등에 얕게 입을 맞췄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리고 유스틴을 바라보았다.
죄송한데 이거 혹시 상황극인가요?
‘약혼자, 약혼자 하더니 이 사람 진짜 미쳤나 봐!’
그게 아니고서야 갑자기 이런……, 이런? 이런 짓을?
“앗, 저어, 러셀 경께서 빨리 들어가 보라고 하셔서, 그, 어…….”
바로 그 순간, 문 쪽에서 누군가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눈알이 빠질 듯 경악한 채로 삐걱삐걱 목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레이디 에카르트……?”
유스틴 이 자식, 설마 이거 보여 주려고 어그로를 끌었나?
“두, 두 분을 방해해서 죄송해요! 다시, 나중에, 다, 다시……!”
“아뇨, 괜찮습니다. 이제 막 나가 보려던 참이었으니까요.”
이 혼란과 공포 속에서, 오로지 유스틴만이 멀쩡하게 미소 지었다.
곧이어 그는 레이디 에카르트에게 예를 차리더니, 나를 슬쩍 바라보고는 곧바로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클레어에게 손짓했다.
“놀라셨죠, 레이디. 죄송해요. 그래도 일은 다 끝났으니까 이리 와서 앉아 주시겠어요?”
조금 전의 충격적인 장면은 우리의 뇌 속에서 지워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급하게 돌아오느라 이후 이야기는 제대로 못 들었네요. 잭……, 사무엘은 괜찮나요?”
클레어가 소파에 앉은 즉시, 나는 냉큼 화제를 돌리고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희게 질렸던 클레어의 낯빛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네, 네에……. 지금은 제 저택으로 가서 쉬고 있어요. 항상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한 일도 없는데요, 뭘. 레이디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나는 안 죽고 사무엘이 죽었겠지.
내 말에 클레어가 두 뺨을 붉히며 수줍게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지하 복도에서 마주했던 용맹한 모습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그, 그래서 말인데……, 사무엘을 저희 가문으로 데려가고 싶어요. 무, 물론 두 분께서 허락해 주신다면요…….”
“레이디의 저택으로요?”
“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사무엘의 세뇌를 완전히 풀어 주려면 아무래도 실력 있는 마법사가……, 앗, 그, 저는 아직 그렇게 대단하지 않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남한테 맡기느니 스스로 하는 게 좋은 거겠지.
‘게다가 말마따나 제국 내에 마법사의 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마정석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꽤 많으면서도, ‘마법사’라고 칭할 정도의 수는 상당히 적단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클레어 에카르트는 후일 촉망받는 마법사가 될 것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호위도 없이, 그것도 마검사를 상대할 정도였으니까.
“사무엘한테는 최대한 책임을 묻지 않도록 노력할 테지만, 그도 결국에는 저택의 일원이었던 만큼 아예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을 거예요.”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갛게 물든 그녀의 얼굴을 모른 체하며 담담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클레어 역시 금방 침착함을 되찾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건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무엘이 스스로 증언해 줘야 할 때도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일반 사람들은 레이디의 말을 온전히 믿어 줄 수는…….”
“그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이윽고 그녀가 초록빛 눈동자를 내게 고정하고서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더듬지도 않고, 그저 온전한 진심을 담아.
“저를 믿어 주셔서, 저희를 믿고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러고서 그녀는 허리를 깊게 숙여 내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나는 괜히 머쓱한 마음에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레이디. 저는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게다가 나도 처음엔 완전히 선한 마음으로 다가간 게 아니란 말이야.
“해야 할 일이라고 해도, 남을 선뜻 도와주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사실 저는 레이디가 이렇게 바로 저를 믿어 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그, 그거야 나도 전생을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다른 사람을 괜히 위험에 끌어들이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항상 힘들었는데…….”
“모두 레이디가 포기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인 걸요.”
아무리 내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클레어에게 의지가 없었다면 애초에 아이들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일의 공은 내가 아니라 클레어에게 돌아가는 게 마땅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하지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건지, 클레어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게요. 언제가 되었든, 10년 후가 되더라도 불러만 주시면…….”
나는 순간 덜컥 몸짓을 멈추고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클레어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동요하는 걸 보고 말았을 텐데.
“그보다는, 일이 다 끝나면 뭐 하실 생각이신가요?”
짐짓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리자, 클레어가 고개를 들어 올리고서 다시금 해맑게 미소 지었다.
“일이 모두 정리되면……, 화장한 아이들의 유골함을 들고 사무엘과 함께 여행을 떠날까 해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미래를 그려 나가는 자의 순수한 기쁨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면 어디든 놀러 가자고 약속했었거든요. 사무엘과도, 다른 아이들과도.”
“좋은 생각이에요.”
“다만 저택에서 구출한 아이들을 어쩌면 좋을지 아직 생각하지 못해서…….”
그 맑은 눈동자에 옅은 수심이 스쳐 지나간 즉시,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고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 아이들은 저희 쪽에서 책임질 거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