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80)
내가 구한 아이들이니만큼 애프터 서비스는 확실히 해 줘야지.
“구해 놓고 알아서 살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잖아요, 그렇죠?”
‘자! 너희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 보렴!’도 아니고.
“그래서 마침 이전부터 생각했던 어린이 구호 후원 재단을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아뿔싸. 저번에 국외 은행 설립한다고 돈을 많이 쓴 거 있죠?”
국외 은행만으로도 나중에 후원 재단을 설립할 정도의 이윤이 들어오긴 하겠지만.
당장 지금은 착수 단계에 불과해서 원금 회수도 한참 멀 것 같더라고.
“그때 딱 생각났죠. 마음씨 좋은 어르신의 레어에 마침 털지 않은 창고가 많이 남아 있었지! 선량하고 아량 넓은 어르신은 이곳에 있는 모든 게 내 것이라고 했으니, 조금 빌려다 쓰고 나중에 갚아야겠다. 하하.”
“…….”
“하하, 하하하…….”
제발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줘라.
나는 여태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미남자를 마주하며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묻는다면, 어르신 기분 풀어 드리기 대작전 되시겠다.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냥 평소처럼 레어를 털고, 적적해할 어르신한테 재롱 좀 부리고, 공격 마법도 알려 주면 안 되냐고 딜을 걸려고 했을 뿐인데.
‘이게 뭐지?’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레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성 입구에서 스산하게 피어오른 핏빛 글자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당장 내 앞으로 올 것>그렇게 나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일단 X 됐음을 느꼈고, 당연히 나를 걱정할 줄 알았던 지크프리트 씨는…….
‘너 그렇게 쏘다니다가 이 꼴 한 번 날 줄 알았지, 하하하!’
정확히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어르신을 응원했더란다.
‘지크프리트 씨가 별말 없이 날 보낸 걸 보면 분명 나쁜 건 아닐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손발을 가만히 두지 못하겠지?
마치 엄마 아빠한테 크게 혼나기 직전처럼…….
“너.”
바로 그 순간, 내내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슬며시 벌어지며 듣기 좋은 미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곧바로 잡념을 모두 지워 내고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세요.”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한 글자라도 내뱉었으니 반은 성공한 거다.
“내 네게 말해 주지 않은 게 있었다.”
그가 언뜻 권태로운 듯 예리한 눈동자를 내게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불현듯 목뒤가 서늘하게 굳어지는 느낌에 바르르 어깨를 떨었다.
살기는 아닌데, 왜 이렇게 춥지.
“뭐, 뭘까요……?”
“네가 성능 좋은 방어막으로만 여기는 내 마법 말이다.”
뒤이어 어르신이 느른하게 고개를 꺾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사실 네 몸과 내 영혼 일부를 연결한 거란다. 정확히는 내 본능 일부를 심어 놓아 위급한 상황에 널 보호하도록 해 놓은 거지.”
“헤헤, 거참 신통방통하네요…….”
저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어째 불안한 예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지?
“물론 극히 일부분인 만큼 내게 직접적인 타격은 오지 않으나, 적어도 네게 향한 충격을 내 직접 감지할 정도는 되지.”
“와, 정말 멋진 마법이네요! 저도 어르신처럼 그런 멋진 마법 쓰고 싶어요…….”
언제는 간단한 보호 마법이라며.
누가 길 가다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보살펴 준다고 하면서 자기 영혼 일부를 심어 넣는데!
상당히 망했음을 감지하고서 최대한 아양을 떠는 사이, 그가 한쪽 입매를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잠자코 몸 보전하며 날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도 무시한 거로도 모자라…….”
“…….”
“이런 불결한 흔적까지 남기고 왔으니.”
이윽고 그가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내 이마에 툭 가져다 대며 고저 없이 중얼거렸다.
여성체 드래곤의 손가락이 닿았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내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긴요.
“살려 주십시오, 어르신.”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서 최대한 화사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동시에 어르신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실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내 나의 소중한 계약자를 해칠 리가 있겠느냐.”
“헤, 헤헤…….”
죽이지 않을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괜히 쫄린단 말이지.
나는 멋쩍게 웃은 후 이번에도 나름의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그렇지만 저도 이럴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세상에 어르신 말고 다른 드래곤이―”
“찌꺼기.”
“네, 다른 찌꺼기……? 뭔가 말이 이상한데, 아무튼, 그런 게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단 말이에요.”
그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나도 안 나대고 얌전히 다음을 기약했겠지.
“게다가 그분은 어르신을 꽤 반가워하던 눈치였는걸요. 그런데 어르신은 다짜고짜 아무 말도 없이 절 막 세워 두고, 화내시고, 불결한 거 묻혀 왔다면서 막 이마 누르고…….”
아니, 말하다 보니 좀 억울하네.
애초에 나같이 연약한 인간은 초월자가 건들면 건드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네게 화낸 적 없다. 내 진정으로 화를 냈으면 이곳이 이리 고요할 리 없지 않겠니.”
내 말에 어르신이 그제야 표정을 풀며 나른하게 말을 건넸다.
“하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 계약자를 웬 찌꺼기가 허락 없이 건드렸는데, 그럼 화가 안 나겠느냐?”
어쨌든 화났다는 거네.
나는 목구멍 앞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내리누르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사이 어르신은 이마에 갖다 댔던 손을 위로 옮겨 내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하며 말을 건넸다.
“아무튼, 가만히 좀 있거라. 몸도 성치 않은 아이가 뭐 그리 바쁘다고.”
“하지만 급했단 말이에요. 제가 나서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죽었을 거예요.”
“하여간 인간답지 않아서.”
“저처럼 사람다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물론 이번에 인류애가 좀 박살 나기는 했지만.
“이번이야 괜찮게 넘어갔다지만, 다음번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그때는 어찌 될지 몰라. 혹 네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단 말이다.”
곧이어 그가 나른하게 읊조렸다.
여전히 권태롭고 고저 없는 목소리였으나, 그 속에는 옅은 걱정이 스며 있었다.
처음에 내게 살기를 뿜어내던 드래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다정함.
“네에, 주의할게요.”
내게는 퍽 익숙한 다정스러움에, 나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웅얼대듯 대답했다.
이번 일로 여러 종족 걱정시켰네.
앞으로는 진짜 자제해야지.
“아, 저 그런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느껴지지 않는 다정한 손길에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 드래곤이 ‘형벌’이라는 단어를 꺼냈던 것 같은데.
‘이 세계에 드래곤이 어르신 혼자만 남은 것도, 혹시 그거랑 관련 있는 걸까?’
그런데 어르신한테 형벌을 내릴 존재가 있기는 해?
만약 그렇다면, 세계수를 찾는 것도 그 형벌과 연관이 있을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결국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다시금 눈을 내리깔았다.
물어보고 싶은 건 산더미지만.
‘솔직히 질문한다고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괜히 심기 거스르지 말고 얌전히 레어나 털고 나가야지.
“그래서, 그 애는 찾았느냐?”
바로 그때, 이번에는 어르신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르신을 마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애는 왜요?”
“네가 나한테까지 찾아 달라고 떼를 쓰며 신경 쓰던 아이니, 이번 일도 분명 그와 관련이 있었을 테지. 그렇지 않으냐?”
“헤헤, 예리하기도 하셔라.”
“흐음, 반응을 보니 못 찾은 모양이구나.”
곧이어 그가 장난스럽게 눈매를 휘며 말했다.
“결국 네 목적은 이루지도 못하고 남 좋은 일만 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 * *
옆에서 한탄을 늘어놓고 있으려니, 나의 하얀 찹쌀 강아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건넸다.
나는 루스의 머리카락을 설설 쓰다듬으며 힘없이 미소 지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너 찾는 거야, 너 찾는 거…….
[이번에도 늦어서 미안해, 루스.]아이들 구하랴, 레어 다녀오랴.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이제야 찾아오는 날 용서해 줘.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를 건네자, 루스가 조금 전과는 달리 단호한 기색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미에나가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잘 기다릴 수 있고, 지금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여 주고 있잖아요.]그러고서 그는 자기가 앉아 있던 구름 아래를 굽어보며 해맑게 미소 지었다.
[이런 건 처음 봐요. 너무 좋아요.]나는 루스를 따라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루스에게 황도의 전경을 보여 주려고 일부러 높게 올라왔는데.
‘애한테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다행이지.’
내가 경험한 장면을 보여 주려다 나온 결과는 다른 무엇도 아닌.
‘김 리처드 8세 탑승 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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