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84)
우리 리처드 8세가 첫인상은 조금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닌데.
적어도 내 앞에서는 사람도 공격 안 하고, 하라는 건 척척 잘하고.
“거기다 이렇게 애교도 잘 부리고.”
“어떻게 하면 그게 애교로 보이는 겁니까……?”
유스틴이 나와 리처드 8세를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흥, 리처드 8세의 귀여움을 알지 못하는 당신이 불쌍해요.
“수고했어, 리처드 8세. 푹 쉬고 다음에 봐.”
나는 꼬리를 붕붕 흔드는 리처드 8세를 돌려보낸 후, 고개를 돌려 일행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우선 아버지.
“물……, 티나, 물 좀 다오.”
아버지는 처음 잠깐 혼절하고 정신을 차린 이후로 내내 퍼렇게 질려 있었다.
와이번을 처음 본 사람이면 보통 저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역시 우리 아버지는 매우 상식적이셔.
‘반면에 어머니는…….’
나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그 옆에 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귀신같이 나와 시선을 맞추고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빠른 이동 수단이 있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꽤 많은 일을 저지르고 다녔겠구나.”
“헙.”
“두 사람이 같이 외출하고 왔던 것만 계산해도…….”
곧이어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샐쭉 가늘어지며 내 뒤에 선 지크프리트 씨에게 향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찌나 이렇게 침착하신지.
“널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헤헤, 헤헤헤.”
“어휴…….”
나와 지크프리트를 노려보던 어머니가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와이번의 존재보다는 내가 몰래 싸돌아다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레, 레이나……. 나는 정말…….”
곧이어 아버지가 비척비척 다가와 어머니의 팔에 몸을 기대며 힘없이 입을 열었다.
“나도 나지만, 대공자님께서는 또 얼마나 놀라셨을지…….”
동시에 와이번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유스틴이 담담히 대답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특유의 은빛 눈동자는 대단한 실험 대상을 눈앞에 둔 연구원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목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마차를 대기시켜 달라고 부탁받았을 때부터 이럴 줄 예상했으니까요. 평소라면 거절했을 테지만, 이 와이번의 안정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승낙했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아버지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스틴은 상당히 흥미롭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해치기는커녕 친밀함을 표시하다니, 조사했던 것과 제법 다르군요. 게다가 안정성 측면도 흥미롭고요. 이착륙 시 번개가 내려친다는 걸 제외하면, 당신에게는 꽤 좋은 이동 수단인 것 같습니다.”
“으음, 모든 와이번이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얘는 특수 처리가 된 거라.”
다른 애를 탔다가는 그대로 벼락 맞고 천국으로 가지 않을까?
‘아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천국행 티켓 끊게 되겠지.’
이게 다 내가 어르신과 계약을 맺어서 가능한 일이니까.
“다른 와이번을 만날 일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길들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걸 당신 말고 누가 타겠습니까?”
“그렇게 말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난 또, 아까 안정성 테스트랍시고 온갖 걸 다 하길래 혹시나 했지.
‘어찌나 꼼꼼하고 세심한지.’
내심 리처드 8세가 유스틴을 공격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볼 정도였더란다.
“티나는 어땠어?”
나는 이내 유스틴에게서 시선을 떼고서 티나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내내 아버지를 살피고 있던 티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티나라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줄 것 같단 말이지.
“저, 저는 사실 너무 좋았어요……. 처음엔 많이 놀랐기는 했는데, 보다 보니 귀엽더라고요.”
“그렇지, 그렇지?”
“게다가 날 때는 가슴이 어찌나 뻥 뚫리던지, 여태까지 얻었던 모든 화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니까요.”
“맞지, 맞지!”
역시 우리 티나야!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헤헤, 다들 좋아해 줘서 기뻐.”
“대체 언제부터 한 사람의 의견이 모두의 의견을 대변하게 된 겁니까?”
“그러면서 돌아갈 때 마차 타고 가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할 거잖아요.”
내 말에 모두가 반박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심지어 아버지마저도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하긴, 시간이 그렇게 단축됐는데.’
원래라면 며칠 동안 마차에서 고생할 걸 몇 시간 만에 도착했는데, 누가 다시 마차를 타고 싶겠는가.
게다가 마법이 걸려 있어서 마차보다 안전해! 누구한테 습격당할 일도 없어!
최고의 이동 수단, 추천합니다.
“성원에 감사합니다, 여러분. 돌아가는 길도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그 이야긴 나중에 하고. 우선 지금은 이 비루한 마차에 타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곧이어 내내 겁먹은 말들을 진정시키고 있던 지크프리트 씨가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차에 올라탄 나는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흘렸다.
이렇게 멀리까지 놀러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이전에는 바다는커녕 유스틴의 별장에 가는 것만으로 체력이 모두 소진될 정도였으니.
“바다에 발을 담그고 싶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밤바다 산책은 조금 힘들려나요? 약 먹고 나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여름이라 그렇게 춥지 않을 테니 아마 괜찮을 겁니다.”
의견을 하나 제시할 때마다 곧바로 그러겠노라 긍정하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내가 만족할 만한 여행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 목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정말로 쉬기 위한 여행.
‘루스를 두고 놀러 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으니까.’
발만 동동 구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럴 시간에 견문을 넓히고 아이에게 알려 주는 게 더 낫지.
나는 열어 놓은 창문 새로 솔솔 파고드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서 눈을 감았다.
오늘 본 바다를 밤에 루스에게 보여 줘야지.
드넓은 해변과 모래, 흘러가는 구름과 불어오는 바람까지 모두 소중히 간직해서 알려 줘야지.
언젠가 이곳에 올 너에게, 이 바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고.
이 세상은 이다지도 아름답다고.
* * *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카타르타는 제국의 북쪽에 자리한 작고 소담한 마을이었다.
‘여길 찾겠다고 오랜만에 플라네타륨에 들어가 서재를 뒤졌지.’
그다음에는 내가 찾은 장소가 루스의 꿈에 닿을 수 있는지 발걸음 수를 세어 가며 확인해 보고.
그렇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선택된 게 바로 카타르타였다.
“그러고 보면 대공자님도 이쪽 근처는 처음이라고 하셨죠?”
“이쪽은 내 관할이 아니라서요.”
“그런데도 용케 숲속에 마차를 대기시켜 놨네요.”
“이 정도야, 뭐.”
내 말에 유스틴이 작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어깨 대신 눈썹을 으쓱였다.
하긴, 아무래도 돈이면 안 되는 게 없긴 하겠지.
“당신이 숙소를 미리 구하지 말라고 해 일단 그렇게 하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괜찮겠습니까?”
곧이어 이번에는 유스틴이 내게 질문했다.
“당연히 괜찮죠. 미리 구해 달라고 요청했으면 여관을 통째로 사서 개인 별장으로 만드셨을 거 아녜요.”
“그편이 치안도 위생도 더 좋으니까요.”
“대신 낭만이 없잖아요.”
가끔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그 지역의 풍토를 느껴 봐야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퉁명스레 답하자, 유스틴이 못 말린다는 듯 설설 고개를 내저었다.
하기야, 온갖 곳에 별장을 세우는 에버딘 가문의 자제가 이해하기에는 난도가 높긴 하지.
“이왕이면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싶어서 그래요. 언제 또 이렇게 여행해 보겠어요?”
“원한다면 몇 번이고 함께해 줄 수 있단다, 미아.”
“하지만 너무 위험한 곳은 안 돼.”
잠자코 우리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부모님께서 다정하면서도 자못 단호하게 덧붙여 말했다.
아무래도 두 분 사이의 내 이미지가 사고뭉치로 굳은 모양이군.
이전까지는 유약하고 안타까운 마지막 잎새 같은 딸이었는데.
“아가씨, 저기 좀 보세요!”
어떻게 하면 다시 이전의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의 이미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티나가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철썩이는 파도의 물결, 새파란 바다 위로 유리를 흩뿌린 듯 새하얗게 반짝이는 윤슬.
구름 한 점 없이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까지.
“와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쁘잖아.
나는 진심을 담아 자그맣게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로 고르기를 잘한 것 같아. 여기서 경치만 구경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 같은데?
“저기 해변도 있구나. 묵을 곳을 구한 다음 가 봐도 좋겠어.”
“좋아요, 너무 좋아요!”
신발 벗고 모래사장 걸어야지.
엄마도, 아빠도, 티나도, 유스틴도 나 따라 하라고 해야지!
나는 점차 가까워지는 마을을 바라보며 발을 앞뒤로 굴렀다.
설레는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
.
.
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대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