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94)
“아가씨!”
“미에나!”
이미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었던 탓에 각혈 쇼는 숨길 겨를 없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고.
나는 곧바로 내게 기겁하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이런 적은 오랜만이라 잠깐 멍해질 뻔했네.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각혈할 건 또 뭐람.
괜히 분위기 나빠지게.
“아까 말을 너무 열성적으로 해서 그런가 봐요. 게다가 기침도 되게 열심히 했잖아요. 그냥 목이 긁힌 걸 거예요.”
아무렇지 않게 손수건을 고이 접어 주먹 속에 말아 넣으며 말을 건네자, 유스틴이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장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대공자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이제야 막 제대로 여행을 즐기려고 하는데 갑자기 돌아가자니!
“아니, 저 진짜로 괜찮은데요.”
“괜찮다는 사람이 피를 토합니까?”
“아니, 진짜 요만큼인걸요. 저 약도 꼬박꼬박 먹고 있잖아요. 걷기도 잘 걷고, 어지럽지도 않고.”
“그건 치료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되는 설전에 유스틴이 참지 못한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그제야 반박하는 걸 멈추고 합 입을 다물었다.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그것도 큰소리는 한 번도 안 낼 것 같던 사람이.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약을 후원하는 게 아니었어.”
곧이어 유스틴이 짓씹는 듯한 어조로 혼잣말하더니, 나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절망으로 치닫는 분위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되록되록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아, 미에나.”
어머니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와 시선을 맞추며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너는 예정대로 계속 여행하고 싶은 거지?”
“……네에.”
“그래, 좋아. 네 마음이 그러니 돌아가자고 하지 않으마.”
헉,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가 먼저 이렇게 말씀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어머니가 눈동자를 반달처럼 휘어 웃었다.
아름답고 서러운 미소였다.
“네가 원하는 만큼 여행해도 좋아. 우리는 언제든 너를 따라갈 테니까. 다만.”
이내 그녀가 내 손에 있던 손수건을 빼앗아 들며 말을 이었다.
“네 상태를 속이지는 말아 다오.”
“아니, 하지만 방금은―”
“부탁이란다, 내 아가.”
말을 마친 그녀가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아 주며 다시 한번 힘없이 미소 지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내게 이 고통이 익숙하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까지 이 고통이 익숙할 리 없는데.
“저는 정말로 괜찮아서 그런 거였어요. 예전에도 종종 이런 적이 있었고, 또 솔직히…….”
나는 어차피 죽어 가는 몸이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끝내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어, 나는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지금은 정말로 특별히 아픈 곳 없어요. 게다가 기분도 좋아서 식욕도 돋고, 음, 그리고…….”
“…….”
“저 때문에 울적해지는 건 싫어요. 모두 쉬려고, 즐기려고 온 여행이잖아요.”
애초에 이 여행의 테마는 ‘힐링’과 ‘경험’이지 ‘이별’이 아니라고.
“나중에 떠올렸을 때 즐겁고 행복했다고 추억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요.”
이번 일로 보람도 느꼈으니 결과적으로는 순조로운 출발 아닌가.
차마 위를 보고 말할 용기는 없어 애꿎은 발끝만 보며 중얼거리려니, 곧 누군가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나는 순식간에 멀어진 바닥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안아 든 사람을 응시했다.
“아버지?”
지크프리트 씨가 아니었잖아.
“그래, 미아.”
곧이어 그가 환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너를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단다, 아가.”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아버지가 내게 말해 주었던 말이 다시금 그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아, 나는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두르고서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 아빠.
나 원래 이런 응석 잘 부리지 않지만,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나, 이 여름을 갖고 싶어요.’
이 여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보내고 싶지 않아요.
떠나고 싶지 않아졌어요.
“……바다에 발 담그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고, 응석을 부리기에는 이미 많은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한도 내의 소원을 입에 담았다.
목이 홧홧했다.
* * *
그래도 지구는 돌고 꿈은 이어진다.
나는 모래 알갱이 위에서 청량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 위를 덮은 순수한 아이의 외침을 들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내 앞에는 루스가 옅은 파도 자락 아래 발을 담그고 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역시, 이게 힐링이지.
내 새끼가 예쁜 거 보고 기뻐하는 모습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없어요.
‘어쨌든 루스한테 이 세계의 바다를 보여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때를 위해서 오늘도 해변에서 열심히 눈을 부라렸지.
[좋아, 루스?] [네!]이내 루스에게 다가가 물으니, 그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 햇살보다 더 빛나는 미소에, 나 역시 그를 따라 웃으며 막간 안전 교육을 펼쳤다.
[하지만 명심해, 루스. 바다는 얕아 보여도 갑자기 푹 꺼질 수 있어서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파도가 높으면 절대 가까이 가서는 안 되고.] [네에!] [만약에 물에 빠지면 당황하지 말고 일단 몸에 힘을 쭉 빼. 그리고 수영은…….]잠깐, 수영은 내 전문이 아닌데. 나조차도 아직 음파음파를 못 하는걸.
[……어쨌든 이렇게 발만 담그기로.] [응, 좋아요!]뭐가 그리 좋은 건지, 루스는 내 말에 단 한 번도 토를 달지 않고 마냥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서 그는 이번에는 해변가에 완전히 주저앉더니 손가락 사이를 메웠다가 빠져나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노래하듯 말을 꺼냈다.
[있잖아요, 미에나.] [응, 듣고 있어.] [저번에 읽은 책에서 그랬는데, 바닷물은 짜다고 그랬어요. 하얀 소금이 많대요.] [그렇지, 짜지.]안 그래도 오늘 유스틴한테 바닷물 한번 잘못 뿌렸다가 오만상 찌푸린 악마를 마주했더랬지.
[그런데 저는 사실 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그사이 루스가 다른 쪽 손으로 뺨을 긁적이며 담담히 말했다.
나는 순간 숨을 멈추고서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루스는 매일 똑같은 식단의 식사만 하니까.’
항상 같은 음식을 먹으니, 무엇이 특히 짜고 단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단어를 알아도, 매치하질 못하는 것이다.
미각과 촉각은 꿈에서 재현할 수가 없어서 이런 문제가 생긴단 말이야.
[……으음, 루스.]뭐라고 답을 꺼내야 할지 몰라 조심스레 말을 고르던 찰나였다.
[그래도 나중에 바다에 가서 직접 바닷물을 마셔 보면, 그때는 짜다는 게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나보다 한발 앞서, 루스가 여전히 해맑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이번에도 숨을 들이켜고 루스의 발언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루스가 스스로 ‘바다에 간다’고 말한 거지?
밖으로 나가겠다고.
단순히 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직접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루스!]세상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내 새끼가 드디어 밖으로 나갈 마음이 든 것 같아요!
원래는 내가 ‘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직접 보자!’라고 해야 떨떠름하게 ‘같이 봐요’라고 답하던 애였는데!
[나는 정말 너무 기뻐…….]역시 이렇게 돌아다닌 보람이 있어.
각혈이 뭐 대수냐, 나는 이미 옛날 옛적부터 시한부 인생이었는데!
이렇게 애한테 살아갈 이유를 하나 쥐여 주는 것만으로도 됐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자못 진심을 담아 말하자, 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헤벌쭉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주책을 부렸네.
[모, 모두 미에나 덕분이에요…….]곧이어 루스가 속눈썹을 가지런히 내리깔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미에나가 알려 주는 세상이 너무 예뻐서, 책으로 보는 거랑은 또 다른 느낌이어서.] […….] [이제는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응, 할 수 있어.]나는 진심을 담아 그에게 말해 주었다. 네가 원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동시에 루스가 고개를 들어 푸른 눈동자 속에 나를 가득 담아내며 덧붙여 말했다.
루스와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내가 용기를 북돋우면 루스가 그에 응해 한 발을 뻗고, 동시에 뒤를 돌아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다.
예전에는 과연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어 확답해 줄 수 없었지만…….
[응. 노력할게.]끝까지 함께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루스가 만들어 나갈 책의 첫 페이지 정도는 장식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 혼자만 그를 찾는 게 아니니까.
‘이제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이 제국에서 가장 능력 좋은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고 했거든.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거든.
[그래, 루스.]한 번도 신뢰를 깨트린 적이 없는 사람의 약속이라 그런 걸까.
어쩌면 루스가 먼저 발을 내디딘 게 너무 기뻐서, 그것도 아니면 내가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워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조금은 초조하고 불안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곧 너를 찾으러 갈게.]나 역시 처음으로 그를 곧 찾으러 가겠노라고 선언했다.
무를 수 없는 형태가 되어, 꿈속의 언약이 되었다.
[네!]돌아온 것은 언제나처럼 해맑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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