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Need Salvation? RAW novel - Chapter (96)
비상이다.
얼마나 비상이냐면, 진짜 완전 비상이야.
요즘 나를 보고 싶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폐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황실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마주한 채 몇 분이고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으셨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저 ‘폐하께서’ 발언도 벌써 열 번째였다.
그사이 나는 일단 외출할 준비를 초고속으로 끝마친 상태였고.
“왜 부르시는 걸까요?”
우리는 갖고 있던 토지마저 팔아 버린, 그야말로 쩌리 귀족 집안인데.
“사실 이유야 많긴 하지.”
곧이어 어머니가 가장 먼저 이성을 되찾으시고서 내가 황제의 부름을 받을 만한 이유를 하나씩 읊기 시작했다.
“우선 대공자님의 약혼자로 소문이 났잖니.”
“시작부터 너무 큰 걸 말하는 거 아니오, 레이나?”
“게다가 마담 아페르타 사건의 중심에도 미에나가 있고, 저번엔 성황의 부름을 받아 별궁에 갔다 오기까지 했고.”
“거기다 이번 일도 있으니 말이죠.”
곧이어 지크프리트 씨까지 합세하며 말을 얹었다.
나는 말이 끝난 직후 내게 쏟아지는 세 쌍의 시선을 마주하며 헤실헤실 미소 지었다.
“헤헤, 부르실 만하네요.”
지금까지 황제가 나를 안 부른 게 이상할 정도인데?
나 같아도 ‘이 녀석은 대체 무엇인고’ 하면서 구경하러 오겠다.
“안 간다고 할 수는 없겠지? 안 그래도 여행 다녀온 이후로 애 몸도 성치 않은데.”
“황제의 명인데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여보. 미에나가 갑작스레 쓰러지지 않는 한은…….”
“어, 혹시 저 지금 쓰러져야 하는 상황인가요?”
그냥 황제 한번 알현하고 오면 안 되는 거야? 제가 사건을 몰고 올까 봐 영 불안한가요?
“하다못해 내가 함께 갈 수라도 있다면―”
“그건 안 됩니다. 폐하께서 황궁으로 부른 건 레이디 시두스뿐이라서요.”
바로 그때, 문간에서 퍽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유스틴 에버딘이었다.
며칠 바빠 보이더니, 이제는 또 제집처럼 시두스 저택을 드나드는군.
“모시러 왔습니다, 레이디 시두스.”
이윽고 그는 황제의 서명이 담긴 서류를 보여 주더니, 곧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보시오, 전개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소?
“대공자님더러 직접 저를 데리고 오라고 하신 건가요?”
당장 입궁하라는 편지를 받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찾아가는 서비스까지 해 줄 줄은 몰랐는데.
“제가 자처했습니다. 어찌 됐든 당신을 가장 잘 아는 건 저고, 제가 직접 데리고 가는 편이 두 분……, 세 분께도 마음 놓일 것 같아서요.”
“그 말은 곧 나도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이군.”
유스틴의 말에 지크프리트 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만 볼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그리 걱정하진 마세요. 폐하께서는 그저 레이디 시두스를 궁금해하시는 것뿐이니까요.”
이런 내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스틴이 말끔하게 미소 지으며 부모님과 지크프리트 씨를 안심시켰다.
그간의 신뢰와 에버딘 가문이라는 명성을 한데 담아낸, 그야말로 번듯함의 정수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유스틴이 저렇게 부드럽게 웃을 사람이 아닌데.’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머뭇거릴 시간 없습니다. 준비는 끝난 것 같으니 어서 가시죠.”
곧이어 유스틴이 내게 내민 손을 한 번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며 재촉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위에 손을 올리고서 엉거주춤 인사를 건넸다.
뭐가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황제 알현을 이렇게 우당탕탕 해도 되는 건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지만.
“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대공자님 말씀대로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요…….”
어쨌든 지금 당장 믿을 사람은 유스틴밖에 없잖아. 유스틴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겠지.
* * *
“요즘 제 일상이 정말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황궁으로 향하는 마차 안.
나는 저택을 빠져나온 이후로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앉아 있는 유스틴에게 머쓱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유스틴은 나를 한 번 바라봤다가, 곧바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가.
“……지금은 괜찮을 것 같군요.”
곧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 제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나는 그의 일련의 행동들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눈에 담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저희 혹시 도청 같은 거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황궁엔 정말 조심해야 할 게 많네요…….”
저번에 지크프리트 씨도 그러더니.
그러고 보면 조금 전 시두스 저택에서도 유스틴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했었지. 그때도 설마 조심하고 있었던 걸까.
대체 무슨 일로?
“저 혹시 심문받으러 가는 건가요? 진짜 괜찮은 거 맞……죠?”
네가 그러니까 불안해지잖아.
황제가 나를 부르는 정확한 이유도 못 들었는데.
“……한 가지, 당신이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내 말에 유스틴이 또 한 번 숨을 길게 내뱉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 앞에서 그 어떤 것도 티 내지 마세요.”
왜 그렇게 공포 게임 도입부 같은 대사를?
혹시 이거 나폴리탄 괴담인가요?
“자세한 건 지금 말해 줄 수 없습니다. 특히나 당신의 그……, 표정 관리 능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렇게 말을 꺼낸 순간부터 제 표정이 이상해질 거라는 사실은 혹시 예상하지 못하셨나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아까랑 딱히 달라지지도 않았고요. 그보단…….”
유스틴이 잠시 말을 멈추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은빛 눈동자에는 언제나 깃들어 있던 특유의 오만함 대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제가 더 제대로 막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곧이어 그가 속눈썹을 가지런히 내리깔며 내게 사과를 건넸다.
“아니, 아니에요.”
나는 곧바로 손사래를 치며 고개도 같이 내저었다.
조금 불안하기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어느 정도는 항상 각오하고 있던 일이라서요. 어찌 됐든 대공자님께선 폐하께 보고를 꼬박꼬박 올리고 계셨잖아요.”
“그건.”
“자잘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벌어진 사건들의 중심에 모두 제가 있었는걸요. 어쩔 수 없죠.”
여전히 아무것도 티 내지 말라고 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제가 사고를 적당히 몰고 다녔어야 말이죠.”
“……이제라도 알았으면 다행입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자, 그제야 유스틴이 옅게 미소 지었다.
시두스 저택에서 지었던 믿음직스러운 미소는 아니었으나, 조금 더 유스틴다운 미소였다.
“제가 당신에게 겁을 너무 준 것 같군요. 폐하께서 당신을 부른 이유는 정말로 단순한……, 호기심일 뿐일 테니, 당신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 어떤 것도 티 내면 안 되고요?”
“네. 그 어떤 것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유스틴이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거의 나를 세뇌하려는 듯한 어조에 가까웠다.
“뭐어, 일단 명심할게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니, 유스틴이 그제야 긴장을 풀며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몸은 좀 어떻습니까?”
“평소랑 비슷하죠, 뭐.”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유스틴의 시선을 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몸 상태는 유스틴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좋지 않다고 봐야 했다.
차마 괜찮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는 약을 먹어도 울컥 통증이 치미는 때도 있으니까.’
저번부터 약에 내성이 생긴다 싶더니, 레어에 다녀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더란다.
지금도 사실 은은하게 두통이 이어지고 있고.
이제부터는 어르신 말대로 정말로 버티기 싸움인 거겠지.
그래도 조금 다행이었다. 나는 이런 싸움이 제법 익숙했으니까.
“대공자님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멀쩡히 움직일 수 있어서 좋네요. 항상 감사해하고 있어요.”
“제게 고마워하지 마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스틴이 한껏 표정을 굳히고서 답했다.
나는 놀라 토끼 눈을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저래?’
진짜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황제가 날 부른 것 때문에 이러는 것치고는 뭔가 더…….
“대공자님, 혹시.”
짧게 생각을 마친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부탁드린 일이 뭔가 잘못된 건가요?”
그러고 보면 유독 소식이 늦긴 했어. 평소 같았으면 편지로라도 진행 상황을 알려 줄 사람인데.
찾았다면 찾았다고, 못 찾겠으면 ‘불가능하다’라고 딱 잘라 말할 인간이 내내 아무 소식도 들고 오지를 않으니.
“그건…….”
이거 봐, 또 반응 이상하잖아.
“만약 찾을 수 없는 거라면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해 주세요. 아이한테 괜한 기대감 심어 줄 수 없어서 그래요.”
사실 유스틴을 믿고 이미 약속까지 해 버린 상황이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한 뒤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위치는 윈프리드 거리 주변으로 한정했으니, 대충 그쪽을 싹 쓸어 보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조립했다 해체하며 계획을 짜던 순간이었다.
“……미에나.”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던 유스틴이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 아이, 안 찾을 수는 없는 겁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