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63
#닥터 플레이어 263화
검은 어둠, 헤나투스.
무려 이현(二賢)격의 아크 메이지 흑마도사였다.
오랜 기간, 카탈 왕국 남부 지방에 공포로 군림하다가 봉기를 일으켰다.
놀라운 건, 일반 백성이 그의 뒤를 따랐던 거다. 귀족과 힐러들의 오랜 학정에 지친 탓이었다.
덕분에 봉기는 쉽게 진압되지 않았고, 카탈 왕국 남부 지방을 거세게 휩쓸었다.
반란은 무려 1년이나 지속하였고, 카탈 왕국 최강 기사, 나헬의 목숨을 바친 분투로 이윽고 막을 내렸다.
최후의 순간, 헤나투스는 이렇게 외쳤다.
‘저주받으리라! 너희는 영원히 내가 내린 저주의 고통 속에서 시름겨워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리 아크메이지급의 흑마도사라도 수많은 사람에게 그런 큰 저주를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헤나투스의 저주가 거짓이 아님임을 깨달았다.
남부 지방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그가 최후의 죽음을 맞이한 록타르 지방에 세 개의 끔찍한 저주가 내린 것이다.
그날 이후, 록타르 지방은 죽음의 땅이 되었다.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 서랜스 성입니다.”
엘무드가 말했다.
그는 바짝 기합이 들어 룬과 렌에게 외쳤다.
“이곳은 죽음의 땅! 우리가 전하를 지켜야 합니다! 휴식 전에 단련을 시행하겠습니다!”
똑똑하지만, 사회생활이 미숙한 쌍둥이는 어버버 엘무드의 단련에 동참했다.
“네!”
“힘들지만, 주군을 위해 힘냅시다!”
“……네!”
“주군을 위한 훈련은!”
“……기쁘다.”
“훈련은!”
“……기쁘다.”
엘무드는 쌍둥이들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나무 위에서 하품하고 있는 미엔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기, 미엔 경. 미엔 경도 구호기사단에 들어와 훈련에 동참하는 건…….”
휙.
미엔은 듣지도 않고 다른 나무로 사라졌고, 엘무드는 풀이 죽었다.
이전부터 계속 미엔을 꾀려 하고 있었지만, 도통 통하지가 않았다.
“냐옹.”
미엔은 쥬드 옆에 가서 하품하며 누웠고, 쥬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있다니.’
쥬드는 처음 미엔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너무 귀엽고 예뻤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란 건, 일행 중 누구도 미엔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일행 모두 레이몬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엔은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나라도 어울려주자.’
그런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미엔 경은 구호기사단에 들어가는 건 싫은가요?”
미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왜요? 굉장히 뜻깊은 기사단 같은데.”
쥬드는 환자를 위한다는 구호기사단의 이념을 듣고 크게 감탄하였었다.
[……다른 사람이랑 똑같아지는 것 싫어요.]“네?”
[조금 더 다르고 특별하게 선생님을 위하고 싶어요.]쥬드는 그 말에 깨달았다.
레이몬드만 보는 건 다른 일행뿐이 아니란 것을.
미엔도 마찬가지였다.
아닌 척, 늘 먼 곳을 맴돌고 있지만 미엔은 레이몬드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이렇게 빠져 있다니.’
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이렇게 열렬히 신뢰하고, 추종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하긴, 저렇게나 훌륭하시니까. 다들 이러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쥬드는 저 멀리 수풀에 가 있는 레이몬드를 보며 생각했다.
레이몬드는 린든과 무거운 얼굴로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분명 저주를 정화하는 일을 토의하고 있는 것이리라.
‘린든 경도 존경스러워. D급 힐러인데 끝없이 노력해 저런 의술까지 갖추게 되었다니.’
쥬드는 분연히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꼭 저 자리에 서고 말겠어!’
한편, 그녀가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님 레이몬드와 선배 린든은 지금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에라도 돌아가야 해요! 위험하다니까요!”
린든은 핑핑 돌아가는 눈으로 필사적으로 외쳤다.
“제가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다 전하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예요! 전하는 우리 휴스톤 왕국의 희망이자 빛! 잘못되기라도 하시면 어떻게 해요!”
린든은 ‘나 무서워요!’란 얼굴로 외쳤다.
속마음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레이몬드야말로 제일 무섭고 돌아가고 싶었다.
‘으으. 직접 와보니 더욱 으스스하네. 괜히 한다고 했나?’
이미 그들은 록타르 지방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인 서랜스 성이었다.
‘서랜스 성에 도착하면 괜찮겠지. 든든한 기사, 병사님들이 있으니까.’
무려 왕세자, 왕세녀의 행차인데 당연히 그들 7명만 달랑 온 게 아니었다.
서랜스 성에 도착해 기사, 병사들의 호위를 받을 계획이었다.
기사님과 병사님들이 그들을 든든하게 지켜주리라.
‘서랜스 성에 있는 병사의 숫자가 200명 정도라고 했나?’
원래는 500명 정도가 주둔했는데, 검은 어둠이 내린 ‘죽음의 저주’로 무려 300명이나 되는 병력이 사망한 탓에 현재는 200명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도 200명 정도면 호위에 충분하겠지. 검은 어둠은 이미 죽어 사라져 남은 마물의 잔당들만 조심하면 되고, 성궁도 있으니까.’
마음을 안심시킨 레이몬드는 고개를 젓고는 다른 생각을 하였다.
‘사실 마물보다는 록타르 지방 사람들의 마음을 회유하는 게 더 문제야.’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는 것에 알 수 있듯, 남부 지방의 백성은 카탈 왕국을 증오하고 있었다.
특히, 그게 가장 심한 곳이 이곳 록타르 지방이었다.
이들은 놀랍게도 흑마도사 헤나투스의 재림을 다시 바라고 있다고 한다.
‘현지인들의 협조가 없으면 저주의 명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건 어려워.’
최악에는 그들은 레이몬드가 하려는 일을 훼방 넣으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먼저 이곳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해. 잘하자.’
그렇게 다짐 후, 레이몬드 일행은 다시 비행을 시작했다.
‘으아아!’
“으아악!”
레이몬드와 린든의 비명과 함께 드디어 서랜스 성에 도착했다.
‘으어어. 타도, 타도 맨날 무서워.’
셔트폰에서 내리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주군, 무언가 이상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응?”
엘무드가 어벙한 평소와 다르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레이몬드도 급히 주변을 살폈다.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병사님들이?’
원래라면 미리 기다리고 있어야 할 카탈 왕국군이 보이지 않았다
휑했다.
“뭐지?”
레이몬드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죽어 있는 성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주군, 다시 셔트폰으로!”
엘무드가 외쳤지만, 늦었다.
파앗!
화살이 날아들었다!
“……!”
엘무드가 다급히 검으로 화살을 쳐냈다.
하지만 하나가 아니었다.
파앗! 팟! 팟!
마치 빗발치듯 화살이 날아들었다!
‘뭐, 뭐야?’
레이몬드는 뻣뻣이 얼었고, 룬과 렌이 나섰다.
“실드!”
“실드!”
두 겹의 실드가 처진 덕에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파아앗!
화살 하나에 마나가 실려 날아든 것이다!
“보우 익스퍼트!”
엘무드가 깜짝 놀라 외쳤다.
화살에 마나를 싣는 궁수를 뜻한다!
“주군, 제 뒤에 서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화살은 레이몬드를 노리지 않았다.
저 뒤에 있던 셔트폰에게 날아들었다!
[크어억!]“셔트폰!”
셔트폰은 다급히 회피하려 했으나 하필 화살이 왼쪽 날개 두 개를 쫘악 스치며 지나갔다.
‘안 돼!’
다급히 살피니, 다행히 잘리지는 않았다.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는 상처였지만, 문제는 지금이었다. 왼쪽 날개가 모두 다쳐 비행은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
레이몬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늘로 도망갈 퇴로가 막힌 것이다.
엘무드가 이를 악물며 강하게 외쳤다.
“공격을 멈춰라! 우리는 적이 아니다!”
외침을 들은 걸까? 화살이 날아드는 게 멈추었다.
하지만 적대 행위를 멈춘 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무기를 든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왕국 군이 아니야?’
모두 놀란 얼굴을 하였다.
왕국 군은 어디로 가고, 난잡한 복장을 한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왕국 군은 어떻게 된 거지?”
“모두 도망쳤다.”
“……!”
모두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그게 무슨?
커다란 대궁을 든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 사내가 아까 마나 화살을 날려 보낸 보우 익스퍼트인 듯했다.
“며칠 전에 병사들을 통솔하던 기사들이 성 밖으로 순찰을 나갔다가 마물의 기습을 받고 모조리 사망했다. 남은 병사들은 눈치를 보다가 죽음의 저주가 두려워 모조리 도망쳐 버렸다.”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그러면 너희는?”
“우리는 자경대다!”
그들은 형형한 눈빛을 빛냈다.
“나는 자경 대장 스탱. 우리 스스로 힘으로 록타르 지방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크리스틴이 앞으로 나섰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이분들은 휴스톤 왕국의 레이몬드 왕세자 전하, 카탈 왕국의 쥬드 왕세녀 전하입니다. 당신들은 이분들께 예를 표하십시오.”
“왕세녀라고?”
자경 대장 스탱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러더니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화살을 겨눈 것이다!
“무슨!”
“우리는 썩어 빠진 카탈 왕국 따위 필요 없다. 우리 힘으로 록타르 지방을 지킬 것이다.”
일행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채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들은 단순한 자경대가 아니었다.
‘봉기군의 잔당이었어.’
당연하지만, 봉기에 따라나선 이들은 모두 잡힌 게 아니었다. 수만에 달하는 이들이었으니까.
이들은 그때 잡히지 않고 흩어진 봉기군이 분명했다.
‘이들은 카탈 왕국을 증오해.’
레이몬드는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다행히 그는 타국인이자 힐러였다.
저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레이몬드는 최대한 숭고하고 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군요. 저희는 여러분을 도우러 온 겁니다. 록타르 지방에 내린 검은 어둠의 저주를 정화할 계획입니다.”
“저주를 정화할 거라고?”
스탱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필요 없다.”
“……!”
“너희를 제물로 바치면, 검은 어둠께서도 분노를 풀어주실 테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레이몬드는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스탱은 진심인 듯했다.
더욱 살기 어린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저놈. 이상해.’
레이몬드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스탱의 눈에서 이상한 광기가 느껴졌다.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놈, 설마 ‘광기의 저주’에 당한 건가?’
광기의 저주는 록타르 지방에 내린 3개의 저주 중 하나였다.
이 저주에 걸린 이는 이지를 잃고 환청,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