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75
#닥터 플레이어 275화
‘비통의 저주, 이건 내분비계 시스템의 교란으로 생긴 증상이야.’
내분비계 시스템.
정확히는 호르몬 체계의 문제로 생긴 증상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산, 체모 증가, 남자들에게 생긴 거유증. 모두 성호르몬 계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야.’
그렇게 레이몬드는 명확한 진단을 내렸다.
문제는 원인이었다.
‘왜 성호르몬 계통에 문제가?’
일전 라팔드 지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마정석 광산에 문제가 생겨 다량의 내분비 교란 물질이 방출되었지만, 록타르 지방에는 그런 마정석 광산이 없었다.
‘검은 어둠이 사용한 흑마법의 여파일까?’
정확한 건 역학조사가 끝나야 결론이 날 것 같았다.
‘광기의 저주. 이건 또 다른 문제야.’
광기의 저주에 걸린 환자들의 상태를 떠올린 레이몬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내분비계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한 가지 진단이 떠올랐지만, 쉽게 그걸 내뱉지는 못했다.
‘……만약 광기의 저주가 내가 생각한 이유로 생긴 게 맞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아직 확실한 일은 아니었다.
이것 역시 조사를 끝내야 명확히 결론이 날 것 같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무언가 숨기는 기색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지.’
레이몬드는 탁자를 툭툭 두들겼다.
비통의 저주도 그렇고, 광기의 저주도 그렇고.
환자들 모두 무언가 숨기는 기색이었다.
‘그걸 알아내야 해.’
레이몬드는 제자들에게 임무를 나누어주었다.
“쥬드 왕세녀님은 비통의 저주를 앓은 환자들을 면담해 주십시오. 혹시나 사람들이 숨기는 게 있다면, 모두 알아내 주십시오.”
‘이런 건 제자 왕세녀님이 잘해줄 거야.’
레이몬드는 쥬드 왕세녀의 재능을 파악했다.
그녀는 남들을 위하는 헌신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성군의 자질이었다.
사람들도 그런 그녀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무언가 숨기고 있던 사람들도 그녀에게는 진실을 털어놓을 가능성이 컸다.
다음에는 미엔이었다.
“미엔, 너는 광기의 저주를 앓는 사람들을 감시해 줘.”
-감시요?
미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환자를 감시라니?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확고히 말했다.
광기의 저주가 그가 짐작하는 바가 맞는다면, 환자들은 반드시 모종의 수상한 행동을 할 것이다.
그걸 포착해야 했다.
“그들을 감시하다가 혹시나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말해줘.”
-네, 알겠어요!
나머지 제자들에게는 다른 역학조사를 부탁했다.
이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 * *
치료 병단의 대표 마란은 좌절에 빠져 있었다.
‘해결할 수 없어.’
아무리 힐을 써도 누구도 좋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데.’
마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버몬트는 치료 병단이 저주를 해결해 낼 거라고 거창하게 소문을 퍼뜨린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두 손을 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그의 경력에도 커다란 오점이 남을 거다.
‘안 돼. 그러면 내 중앙 진출도 물 건너갈 거야.’
카탈 왕국의 상급 힐러들은 모두 경력을 쌓은 후 권력을 지닌 중앙의 정치 힐러가 되길 꿈꾼다.
마란도 마찬가지였고, 반드시 이번 일을 해결해 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야. 저주받은 이들을 ‘격리’할 수밖에.”
마란은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지금 말한 ‘격리’는 다른 의미였다.
정확히 말하면, ‘추방’이었다.
병에 걸린 이들을 사람들이 오가지 못하는 머나먼 무인도, 오지 등으로 추방해 버리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소거’만큼이나 전염병의 해결책으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이건 내 욕심 때문이 아니야. 저주가 더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야.’
마란은 시뻘게진 눈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환자들을 모두 한곳으로 모으도록!”
치료 병단과 함께 온 병사들이 환자들을 잡아들였다.
환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이이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제발!”
졸지에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되어 오지에 추방가게 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꼭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겁니까?”
병사들의 지휘관이 반발했다.
하지만 마란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
그렇게 록타르 지방에 난리가 났다.
물경 수백에 달하는 환자가 한자리에 모였고, 수많은 가족이 난데없는 생이별의 비극을 맞게 되려는 찰나.
그들을 구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요! 이게 뭐하는 짓이죠!”
쥬드 왕세녀였다!
그녀가 평소와 다르게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타났다.
하지만 마란은 뻔뻔하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저도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근거가 있나요?”
마란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왕세녀 전하께서는 저주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라도 있으시단 말입니까?”
마란은 비웃음을 지었다.
“만약 왕세녀 전하께서 저주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제가 사죄하겠습니다. 경솔히 격리를 결정한 것에 책임을 지도록 하지요.”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거로 확신해서 하는 말이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치료 병단이 뛰어들어도 속수무책이었으니까.
하지만.
“해결책이라면 있습니다.”
“……!”
마란의 눈이 커졌다.
쥬드 왕세녀의 뒤에서 레이몬드가 나타났다.
그는 마란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 당장 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짓거리를 그만두시죠.”
“무, 무슨? 어떤 해결책이 있다는 겁니까?”
마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거렸다.
“전하께서는 이 저주의 정체를 알아내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레이몬드는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정석입니다.”
“……네?”
“비통의 저주가 생긴 원인이 마정석 때문이라고요. 그러니 환자들에게서 마정석을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정석이 저주의 원인이라니?
마란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턱짓했다.
“엘무드, 수거한 마정석을.”
“네!”
엘무드가 수레를 끌고 왔다.
천을 벗기니 놀라운 물건들이 나타났다.
오염된 마정석이었다!
“이건?”
“비통의 저주에 걸렸던 환자들의 집에서 수거한 마정석입니다.”
‘이 마정석들이 내분비계 시스템을 교란한 거였어.’
레이몬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마정석을 숨겨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는.’
레이몬드는 조사를 시작한 후에 난관에 부닥쳤다.
아무리 찾아도 내분비계 시스템을 교란할 만한 원인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쥬드 왕세녀가 환자들과 면담 중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곳 사람들이 마정석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검은 어둠은 반란 막바지 당시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 마정석들을 이용해 언데드들의 힘을 보강했지요.”
듀라한처럼 강한 마물들뿐이 아니었다.
중급 이하의 언데드에도 마정석을 작게 나누어 이식했고, 그 언데드들은 소멸할 때마다 마정석의 파편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 결과 록타르 지방 전체에 걸쳐 수많은 마정석이 남게 되었고, 이곳 사람들은 그 마정석들을 보물처럼 챙겼습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라팔드 지방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오염된 마정석은 인체에 굉장히 유해한 작용을 하였다.
이번 경우에는 성호르몬 계통을 망가뜨린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짐작일 뿐 아닙니까? 어떻게 그 말을 입증…….”
레이몬드는 말을 자르고 턱짓했다.
입증할 증거물은 당연히 준비했다.
“렌, 준비한 걸 가져와.”
렌은 커다란 철창을 가져왔다.
“몬스터? 뭐지?”
조그만 이족보행류의 몬스터였다.
자세히 보니, 남성체였는데, 가슴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오염된 마정석을 소유하고 있던 몬스터입니다.”
레이몬드는 설명하였다.
“마정석을 얻은 건 마을 사람들뿐이 아니죠. 지성을 가진 몬스터들도 마정석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결과, 똑같은 증상을 겪게 되었죠.”
“어, 어떻게 그런…….”
마란은 떠듬떠듬 말을 더듬었다.
마정석이 원인이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 그러면 광기의 저주는 어째서입니까? 그것도 마정석 때문이란 말입니까?”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음성이었다.
레이몬드는 잠시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는 입을 열었다.
“광기의 저주는 마정석과 상관없습니다.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나 풀잎 때문입니다.”
하나나.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이름이다.
곧 마란은 경악한 얼굴을 하였다.
“서, 설마?”
“맞습니다.”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마약에 중독된 것입니다.”
하나나 풀잎.
마약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환각성 풀이었다.
* * *
‘록타르 지방에 하나나 풀잎이 있다니.’
처음에 레이몬드는 광기의 저주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였다.
하나나 풀잎은 자유 도시 연합에서 주로 자라는 환각성 풀이었다.
그런데 생뚱맞게 록타르 지방에서 발견된 거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조금씩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대량 재배되고 있었다.
‘그것도 검은 어둠이 선포한 금지(禁地)에.’
검은 어둠은 록타르 지방 깊은 곳 넓은 영역을 금지로 선포하였다.
록타르 지방 사람들은 검은 어둠을 두려워하며 금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어둠이 패퇴한 후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들어갔다가 하나나 풀잎을 발견한 거다.
‘처음에는 굶주림에 못 이겨 먹게 되었다고 하지. 그러다가 점차 중독되어 완전히 정신이 피폐해진 거고.’
이게 광기의 저주의 전말이었다.
‘설마 검은 어둠이 하나나 풀잎을 재배하고 있었다니. 누군가와 비밀리에 거래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레이몬드는 어두운 얼굴로 생각했다.
마약 거래.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었다.
괜히 이런 끔찍한 걸 재배하지 않았을 테니까.
‘으으, 마약이라니.’
휴스톤 왕국은 마약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대륙 중부에는 이런 마약이 암암리에 유통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골칫거리였다.
‘이건 나중에 쥬드 왕세녀에게 맡겨야지.’
그는 이방인이다.
검은 어둠이 유통한 마약의 경로를 찾는 일은 카탈 왕국의 이들에게 맡기는 게 옳았다.
어쨌든 원인을 알아냈으니, 이제는 환자를 치료할 때다.